낭왕전생 6권 – 17화 : 사막 신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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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6권 – 17화 : 사막 신수 (2)


사막 신수 (2)

결국 일각여 뒤에 살라만더는 긴 혀를 빼고 모래에 바짝 엎드렸다. 설우진의 힘에 굴복한 것이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설우진 은 살라만더를 앞세워 열사동으로 향했다. 살라만더는 신기하게도 강 물처럼 흐르는 유사에서 용케 안쪽 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냈다.

길을 잃고 헤매던 작은 석척이 유 사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과는 판 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뭐, 아주 쓸모없진 않네. 생긴 게 영 비호감이긴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설우진은 열심히 길 안내를 하는 살라만더를 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 를 지었다.

뭔가 불안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살 라만더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설우진은 입가에 미소 를 지운 뒤였다.


“음, 소문으로 들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인데………… 인세에 지옥이 있다면 열사동과 같다고 하더니 겉 모습은 그냥 사막의 녹주잖아.”

살라만더의 길 안내로 별다른 위험없이 열사동으로 들어선 설우진은 눈앞에 펼쳐진 정경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열사동은 세간에 알려진 악명과 달 리 사람이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한가운데 자리한 물웅덩이를 중심 으로 싱싱한 푸른빛을 자랑하는 나 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주변으 로 목이 말라 찾아온 짐승들이 평화 롭게 뛰어놀고 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소문은 모두 조작 된 것입니다. 사실 열사동은 누란왕 의 안가가 자리한 곳입니다. 외세가 침입했을 때 왕족들은 모두 이곳으 로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괜히 서둘러서 왔잖아.”

설우진은 살짝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그는 자스민의 건강을 걱정했었다. 열악한 환경에 서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얼마나 버 틸 수 있을지 염려됐던 것이다. 한데 눈앞에 펼쳐진 녹주를 바라보 고 있노라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자스민은 어디 있지?” 

“아마 저쪽 별궁에 있을 겁니다.” 

투르판이 나무 뒤로 보이는 한 채 의 건물을 가리켰다. 설우진은 그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곧장 그 쪽으로 신형을 튕겼다.

지친 몸으로 힘겹게 물웅덩이로 다가갔던 살라만더는 물 한 모금 입가에 적셔 보지 못하고 설우진에게 딸 려 갔다.

분노의 울음소리라도 내지르고 싶 었지만 목줄 때문에 그마저도 불가 능했다.


“후우, 지금쯤 날 많이 걱정하고 있겠지? 이리 시간이 걸릴 줄 알았 더라면 미리 서한이라도 보내 두는 거였는데……..”

자스민은 창밖을 바라보며 설우진 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을 드러냈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 그녀는 단 하 루도 그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 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데, 요 며칠 그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 다. 첫째 언니인 아슬라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열이 펄펄 꿇고 피 섞인 기침을 하기도 했다. 안가에 비축된 약을 먹여 봤지만 별반 차도가 없었다.

“우진아, 나 어떡하지? 언니가 잘 못되면 평생 이곳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자스민의 눈가에 물기가 번졌다. 설우진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 에 설움이 복받친 것이다.

“뭐가 그리 서러워서 울고 있어, 이 경치 좋은 낙원에서?”

‘이 목소린……?’

자스민은 흠칫했다.

꿈속에서도 그리워했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 것이다.

“내가 지치긴 많이 지쳤나보네, 환 청이 다 들리고.”

자스민은 정신을 차리려 얼굴을 감 싸 쥐었다.

한데 바로 그때, 따뜻한 손길이 그 녀의 목덜미와 가슴을 감싸 안았다. 

“저, 정말 진랑이야?”

“후훗,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 목소리는 잊지 않았나 보네. 맞아, 나야.”

설우진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뒤로 돌렸다.

오랜만에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했 다. 요동치는 자스민의 눈동자. 일순 간 눈물이 폭포가 되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설우진은 가만히 그녀를 꽉 껴안았다. 이럴 때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안아 주는 게 낫다는 걸 연애 백서에서 읽은 기억 이 난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둘은 뜨거운 해 후를 나눴다. 한데 뜻밖의 훼방꾼이 등장했다.

쉬익.

귓가를 간질이는 혀 놀림. 자스민 은 설우진의 어깨 위로 고개를 내민 살라만더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살라만더는 그 모습을 보고 고소하 다는 듯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눈알 을 데굴데굴 굴렸다.

“하아, 이 눈치 없는 석척 새끼!” 

분노한 설우진이 살라만더를 바닥 에 패대기쳤다. 살라만더는 특유의 유연한 몸을 활용해 충격을 최소화 하려 했지만 설우진이 마지막 순간 에 목줄을 당겨 그 의도를 무산시켰 다.

쿵.

대리석 위에 살라만더의 머리가 떨 어졌다.

많이 아픈지 살라만더는 짧은 앞발 을 머리 쪽으로 향하며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진랑, 저 석척, 설마 살라만더는 아니지?”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자스민이 살라 만더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희 왕국에서 신성시한다는 그 석척 맞아.”

“어떻게 살라만더를…………?”

“투르판인가 뭔가 하는 놈이 알려 주던데, 왕궁 꼭대기 층에 있다고.”

“투르판 아저씨는 금뇌고에 갇혀 있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뇌옥 안으로 들어가서 데려왔지. 옥장이 특이한 무공을 써서 조금 당 황하기는 했는데 뭐, 그래 봐야 내 상대는 아니었지.”

설우진은 이곳까지 오게 된 과정을 간략하게 요약해 설명했다. 믿기 힘 든 얘기들의 연속이었다.

‘그래, 진랑이라면 왕국 내에 들어 온 그 불온한 세력들을 쫓아낼 수 있을지 몰라.’

자스민의 가슴에 작은 희망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뮬란 공주가 끌어들인 외인들은 강 했다. 아슬라 공주에게 충성을 맹세 했던 아지르들이 채 십 초를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어 버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설우진이 그들을 상대한다 면 어떨까?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섰다.

설우진은 무가의 인재들이 득실거리는 황룡 학관 내에서도 싸움 실력 을 인정받고 있었다. 특히 학관 내 에서 규격 외로 분류되고 있는 남궁 벽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점이 고 무적이었다.

“저기…..”

자스민이 어렵게 입을 뗐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 해도 이 런 일을 일방적으로 부탁하기란 쉬 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설우진이 먼저 선수를 쳤다.

“네 언니는 지금 어때?”

“으응?”

“투르판의 얘기로는 꽤 큰 부상을 입었을 거라고 하던데.”

“아, 실은 상태가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더 심해졌어.”

“치료는 제때 한 거야?”

“응. 다행히 안가에 외상에 좋은 약초들이 보관되어 있었거든. 근데 이상하게 효험이 전혀 없어.”

자스민이 아슬라 공주의 상태를 자 세히 설명했다.

이에 설우진은 자신이 직접 몸 상 태를 확인해 보겠다며 그녀가 머물 고 있는 방으로 안내해 달라 청했 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섰 다.

화려한 가구들 사이로 파리한 안색 의 아슬라 공주가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숨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게 이어지고 눈 밑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증상이지?’

설우진은 의원이 아니었다. 독에 중독된 것이라면 그간의 경험을 통 해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외의 것이 원인이라면 그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다.

바로 그때 그 답을 알려 줄 인물 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설우진과 함께 유사를 건너왔던 투르판이었 다.

“아슬라 전하!”

투르판은 침대 맡에 고개를 박았다. 그리고 신하 된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대성통곡했다.

“시끄러우니까 그만 닥치고, 왜 저 렇게 됐는지 이유를 알아봐. 머리 좋으니까 그 정도는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설우진이 투르판의 목덜미를 잡아 채 일으켜 세운 뒤 아슬라의 상태를 확인하게끔 했다.

투르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 슬라 공주의 몸을 이곳저곳 살피기 시작했다. 한데 아물어 가는 옆구리 쪽 상처를 확인한 후 곤혹스러운 표 정을 지어 보였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시름시름 앓 는 건지 알아냈어?”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문제없이 아물어 가고 있는데…”

“그럼 안이 문제겠지.”

“하면 내상이라도 입으신 걸까요?”

“그걸 내가 어찌 알아, 현장에 있 었던 것도 아닌데!”

설우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 움이 될까하고 데려왔는데 알고 보 니 영 허당이 아닌가.

“혹시, 쇳덩이가 몸 안에 들어갔을 때도 저런 증상이 생길 수 있나요?” 

자스민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투르판은 그녀의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친절히 답을 건넸다. 

“공주님, 그 쇳덩이가 몸 안의 장기를 건드렸을 경우에는 이와 비슷 한 증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장 기에 손상이 가면서 쇠에 묻어 있던 나쁜 물질이 그 안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당장 그 원인을 제거해야겠네요?”

“혹시 짐작되는 것이 있으십니까?” 

“실은…….”

자스민이 아슬라가 몸 안에 바흐만 의 심장을 감췄다는 얘길 장황하게 털어놨다.

“그래서 뮬란 공주님이 절 살려 두 셨던 거군요? 혹시라도 제가 그것을 숨겨 뒀을까 봐.”

“그게 아니었더라도 언니는 아저씨를 해치지 않았을 거예요. 누가 뭐래도 아저씨는 우리 가족이니까.” 

“고, 공주님!”

투르판이 감격에 찬 눈빛으로 자스 민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번에도 설 우진이 분위기를 확 깼다.

“청승 그만 떨고, 어때?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독을 뿜고 있는 바흐만의 심장만 빼낼 수 있다면 치료는 가능할 겁니 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밖으로 빼낼 만한 수단이 없습니다.”

“왜 없어? 째면 되지.”

“그, 그게 무슨……?”

“제 스스로 빼낼 수 없으니 배를 열어야 할 거 아니야? 어차피 이대로 두면 고통 속에서 죽게 될 텐데 뭘 망설여?”

설우진은 거침없이 배 째기를 권했다.

낭인들 세계에선 배를 째는 일이 흔했다. 의뢰를 수행하던 도중에 자 주 암기를 얻어맞기 때문이다. 그중 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암기는 새 털처럼 가벼운 우모사였다.

우모사는 바늘보다 가늘지만 충격 에 강한 탄철로 몸통이 만들어져 쉬 이 부러지지 않고 몸체에 나선 형태 의 홈이 패여 있어 한 번 몸에 박 히면 살을 째지 않고는 밖으로 빼낼 수가 없다.

설우진도 현역 시절에 적잖게 우모사를 얻어맞았었다. 처음엔 의원을 통해서 우모사를 빼냈지만 그 비용 이 만만치 않아 나중엔 제 손으로 살을 쨌다.

한참을 고민하던 투르판은 설우진 의 방법에 따르겠다고 했다.

이에 설우진은 양팔을 걷어붙였다. 

“자스민, 소도 하나만 불에 달궈서 가져와. 그리고 고통에 혀를 깨물지 모르지 깨끗한 헝겊 뭉치도 함께. 넌 상처를 씻어 내고 닦을 물을 길 러 오고.”

설우진은 두 사람에게 배를 째는 데 필요한 준비를 시켰다. 두 사람 은 부랴부랴 움직였고 잠시 후에 기 본적인 준비물이 갖춰졌다.

‘일단 옷부터 벗기고.’

준비가 끝나자 설우진은 아슬라 공 주의 상의를 벗겼다. 속곳을 입고 있지 않아서 그녀의 박속같은 가슴 이 훤히 드러났다.

투르판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에 반해 설우진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동안 많이 굶기는 했지만 아파서 신음하는 여자를 상대로 음 욕을 품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쯤 있을까?’

설우진은 손끝으로 그녀의 배를 천 천히 매만졌다.

바흐만의 심장이 어디 걸려 있는지 도 모르는 채 배를 쨀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물건을 감촉만으로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설우진은 고민 끝에 아슬라 공주의 몸 안으로 뇌기를 흘려보냈다.

미약한 양이었지만 그것에도 버티 지 못할 만큼 몸이 많이 쇠해졌는지 그녀의 입술 새로 가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설우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 고 끈질기게 되기를 밀어 넣었다. 

‘여기다.’

설우진의 두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의 시선이 꽂힌 곳은 아랫배 왼 쪽 부근에 자리한 대거혈이었다. 위치를 찾았으니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설우진은 자스민에게 받은 소도로 대거혈 부근을 세 치 정도 쨌다. 옷에 피가 튀었다. 이제부터는 시 간과의 싸움이었다.

바흐만의 심장을 빨리 찾아내지 못 하면 패혈증이 아니라 과다 출혈로 죽을 수도 있었다.

설우진은 야수안을 극한으로 발휘 해 대거혈 부근에 자리한 내장을 살 폈다. 그리고 미세하게 불룩 튀어 나와 있는 곳을 찾았다.

그 뒤는 살점을 쨀 때와 동일했다. 차이가 있다면 살을 쨀 때보다 손놀 림이 배 이상 빨랐다.

툭.

설우진이 바흐만의 심장을 바닥에 던졌다. 바흐만의 심장은 온갖 이물 질이 덕지덕지 붙어 지저분했다. 하지만 누구도 거기에 관심을 가지 는 이는 없었다. 살을 쨀 때보다 더 중요한 작업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 다.

‘후우, 오랜만에 심장이 쫄리네.’

설우진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몸 안의 뇌기를 손끝에 모아 실처럼 가늘게 뽑았다. 그리고 그것을 금황 침 끝자락에 매달았다.

휘리릭.

째진 부위 위로 금황침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자 믿기지 않게도 째졌던 부위가 말끔하게 봉합됐다. 뒤이어 피가 새어 나오고 있는 살점도 금황침으로 꿰맸다.

자수를 통해 정교해진 그의 손놀림 은 살을 쨌던 흔적마저 거짓말처럼 지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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