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6권 – 20화 : 흑랑 사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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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6권 – 20화 : 흑랑 사자 (2)


흑랑 사자 (2)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튕겨진 철륜에는 천뢰도의 힘이 더 해져 있었다. 철륜을 집어든 순간 그들의 손은 그 회전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찢어졌다.

“크윽.”

아지르들이 손을 부여잡았다. 살점 이 많이 찢겼는지 지혈을 하는데도 피가 멈추질 않았다.

한 번의 역공으로 철륜진을 무력화 시킨 설우진은 곧장 뮬란 공주 쪽으로 몸을 날렸다.

“공주님, 위험합니다!”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아지르들이 다급히 앞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들보다 설우진의 움직임이 한발 앞섰다.

“멈춰, 이 목을 확 꺾어 버리기 전 에!”

기습적으로 뮬란 공주의 목을 잡아 챈 설우진이 아지르들에게 소리쳤 다. 아지르들은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내, 내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뮬란 공주가 악을 내질렀다.

설우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거칠게 틀어 쥐었다.

여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지금의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내가 이 손에 조금만 힘을 줘도 네 얼굴은 그 형체를 잃고 말아.”

설우진이 뮬란 공주의 턱뼈를 힘껏 눌렀다.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됐는지 뮬란 공주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사, 살려 주세요.”

“내가 왜? 널 살려 줘야 하는 이 유를 대 봐.”

“저, 전 누란의 여왕이에요. 살려만 주신다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들어 드릴게요.”

“내가 원하는 게 왕좌라면?”

“그, 그건 안 돼요.”

“크큭, 봐! 원하는 건 다 들어준다

고 해 놓고 금세 말이 바뀌잖아.”

설우진은 그녀에게 냉소를 퍼부었 다.

애당초 그는 그녀와 거래할 마음이 없었다. 거래라는 건 신뢰가 밑바탕 이 돼야 하는데,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그 신뢰를 깼기 때문이다. 

“어이, 이년을 어떻게 하면 좋겠 “어?”

설우진이 투르판을 불렀다.

투르판은 아직까지 아지르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이에 그를 붙잡고 있던 아지르 중 하나가 허리에 차고 있던 만도를 빼 투르판의 목으로 가 져갔다. 그리고 외쳤다.

“이자를 살리고 싶다면 당장 공주 님을 풀어 드려라.”

“그거 너무 식상한 협박 아니야?” 

설우진은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냥 해 보는 말이 아니다. 네 선 택이 늦어질수록 이자는 고통받게 될 것이다.”

만도가 투르판의 목덜미 안으로 날 을 들이밀었다. 여린 목은 예리한 날을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피를 흘 려보냈다. 하지만 투르판은 설우진 에게 부담이 될까 입 밖으로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이봐, 협박이란 건 상대가 원하는 걸 수중에 쥐고 있을 때 효과를 발 휘하는 거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 는 그자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어. 어차피 길잡이 용도로 이곳에 데려 온 거거든.”

“그, 그게 무슨……?”

“말귀 못 알아들어? 죽이고 싶으면 그냥 죽여. 근데 이거 하나만은 똑 똑히 기억해. 그자의 목이 떨어지면 이 계집의 머리통도 부서질 거야.” 

설우진이 뮬란 공주의 머리칼을 거 칠게 잡아챘다.

이에 만도를 쥐고 있던 아지르는 한참의 망설임 끝에 투르판의 팔을 풀어줬다.

투르판은 그 즉시 설우진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그도 사람인 지라 완전히 속내를 감추지는 못했 다.

이를 방증하듯 그의 두 다리가 부 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 습니다.”

놀란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됐는지 투르판이 설우진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딱히 널 구하려고 나선 건 아니었어.”

“그래도 결과적으로 제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뭐, 그건 됐고. 자스민은 어딜 간거야?”

“그게 아까 저들을 막겠다고 나가서는………….”

투르판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아슬 라 공주의 안위만 신경 쓰느라 자스 민에 대해선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자스민을 어떻게 했지?”

설우진은 투르판 대신 뮬란 공주에게 자스민의 행방을 물었다. 

“나, 난 모른다.”

“네년을 막기 위해 나섰다고 하잖아.”

“회랑에서 몇 마디 말을 나눈 게 전부다.”

“저놈들을 시켜 해코지를 한 건 아니고?”

“자스민은 나와 한 피를 나눈 자매 다. 내가 왜 그 아이를 해하려 한단 말이냐?”

“방금 전까지 제 언니를 죽이겠다 고 설치던 건 누구였지?” 

“그, 그건…….”

뮬란 공주는 자신이 내뱉은 궁색한 변명에 되레 발목이 잡혔다. 하지만 다행히도 설우진은 그녀의 말이 거 짓이 아님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전과 다르게 두 눈에 흔들림이 없 어. 자스민의 일만큼은 거짓이 아니 라는 건데…………. 대체 자스민은 어디 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설우진의 시선이 문밖으로 향했다.

“이곳은 네놈들이 함부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썩 물 러가라.”

성난 표정의 만다르가 양손에 만도 를 쥐고, 정면에 마주선 이들에게 일갈을 내질렀다.

그의 맞은편에는 진한 마기를 뿌려 대고 있는 흑랑사자들이 도열해 있 었다.

“왜 그렇게 열을 내는 거지? 우린 한 배를 탄 사이로 알고 있는데.” 

“한 배를 타긴 누가 한 배를 탔단 말이냐!”

“흐음, 이런 반응이면 곤란한데. 우 린 도움을 주기 위해 이곳에 온 것 이다.”

“네놈들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 다.”

만다르가 한껏 기세를 끌어올렸다. 아지르 중의 아지르답게 노년의 나 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세는 흑랑 사자들을 거세게 압박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나빴다. 흑랑사자들은 소수정예로 이뤄져 있다. 일반 사자조차도 그 혼자서는 감당해 내기 힘들었다.

게다가 이곳에는 그들의 수장인 고 자성이 와 있었다.

고자성은 마기를 끌어올려 만다르 의 기세를 가볍게 찍어 눌렀다. 만 다르가 뛰어난 용사라 하나 마천의 절세마공을 익힌 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결국 만다르가 가슴을 움켜쥐며 주 저앉았다. 꽤나 큰 내상을 입었는지 창백해진 입술 가로 검붉은 핏물이 새어나왔다.

“그나저나 한 핏줄에서 태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모가 대단 하군. 게다가 나올 곳은 나오고 들 어갈 곳은 확실히 들어간 몸매까 지.”

고자성의 시선이 자스민의 몸을 길 게 훑었다. 자스민은 본능적으로 가 슴을 감싸 쥐며 뒷걸음질 쳤다. 

“겁먹을 것 없어. 몇 가지 묻기만 할 테니까.”

고자성이 한 줄기 바람처럼 그녀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녀는 피하려 했지만 흑랑사자의 유혼마보는 은밀하 면서도 빨랐다.

고자성이 자스민의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뮬란 공주가 아지르들을 데리고 이곳에 온 목적이 뭐지?”

“……”

“순순히 답을 하는 게 좋을 거야. 저 녀석들이 오랫동안 여자에 굶주 려서 내 명령이 떨어지면 무슨 험한 짓을 할지 모르거든.”

고자성이 음흉한 미소를 짓고 서 있는 흑랑사자들을 가리켰다. 그중 에는 대놓고 사타구니를 매만지는 자들도 있었다. 수치심에 자스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놈, 공주님 곁에서 떨어져라!”

만다르가 쌍도를 휘두르며 고자성 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고자성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그의 공격을 막아 냈다. 내상 이 심해 내력이 제대로 칼에 전달되 지 않은 것이다.

“살려 줄 때, 조용히 찌그러져 있 어. 네놈 따위는 맘만 먹으면 그 모 가지를 비틀어 버릴 수 있으니까.” 

고자성이 두 눈에 진한 살의를 머 금었다.

그 눈과 마주한 만다르는 심중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에 온몸이 얼어붙었 다.

“방해꾼은 떨쳐냈으니 다시 얘기 를 나눠 보자고. 우린 뮬란 공주를 돕는 조건으로 황금을 받기로 했어. 한데 그 계집은 사정이 있다며 약속 을 차일피일 미뤘지.”

“흥, 네놈들은 평생 가도 그 황금 을 구경조차 하지 못할 거야. 정통 계승자가 아닌 언니에게는 그 보고 를 열 수 있는 열쇠가 없거든.” 

“오호라, 그래서 그 계집이 자꾸만 시간을 달라고 청했었군. 그럼 누가 그 열쇠를 가지고 있지?”

“그, 그걸 내가 어찌 아느냐!”

자스민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거짓말을 하려 하자 몸이 절로 반응 한 것이다.

고자성은 그 미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이 계집은 분명히 알고 있어. 거 짓말에 서툰 이들은 눈과 말 속에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거든.’

“열쇠, 어디 있지?”

“모, 모른다.”

“모르면 곤란할 텐데. 아까 그 경 고는 그냥 해 본 말이 아니야.”

고자성이 자스민의 가슴을 움켜쥠 과 동시에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 었다.

“이거 놔! 죽여 버릴 거야!”

자스민이 가슴이 움켜쥐고 있는 고 자성의 손목을 사납게 물어뜯었다. 그의 손에서는 살점이 뜯기고 피가 흘렀다.

“이년이 뒈지려고!”

고자성이 자스민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머리를 부딪쳤는지 바닥에 흥건히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진짜 뒈진 건 아니겠지?’

자스민이 미동도 하지 않자 놀란 고자성이 의술에 능한 수하를 불러 그녀의 상태를 확인케 했다.

“맥이 가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치료할 수 있는 거냐?”

“필요한 약재와 침이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수하가 말꼬리를 흐렸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힘을 좀 빼는 거였는데, 이렇게 된 이상 다 른 입을 찾아봐야지, 과정이야 어찌 됐든 열쇠의 소재만 찾으면 되는 것 이니.”

“계집은 놔두고 위층으로 올라간 다.”

고자성이 수하들을 이끌고 위로 향 했다. 잠시 후 두 무리가 삼 층에서 조우했다.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군.”

고자성은 뮬란 공주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뜻밖의 지원 군의 출현에 뮬란 공주는 고무됐다. 

‘저들이라면 저 괴물 같은 놈도 제 압할 수 있어. 역시 태양신은 날 버리지 않았어.’

“약속한 황금의 두 배를 줄 테니 당장 이들을 제압해요.”

뮬란 공주가 소리쳤다.

이에 고자성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두 배가 아닌 다섯 배를 달라는 의미였다.

그녀는 잠시 고민했지만 당장의 위 기를 모면하기 위해 그의 제안을 받 아들였다.

‘멍청한 계집, 바흐만의 심장를 얻 어 내면 다섯 배가 아니라 황금 전 부를 본천으로 가져갈 것이다!’

고자성은 뮬란 공주를 비릿한 눈빛 으로 바라보며 수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에 흑랑사자들이 앞다퉈 설우진 에게 달려들었다.

한데 그들을 바라보는 설우진의 눈 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놈의 옷에서 비릿한 피 냄새와 자스민이 뿌리고 있던 사향이 어지 럽게 뒤섞여 있어.’

설우진은 예민한 후각을 통해 고자 성의 옷에서 자스민의 흔적을 발견 해 냈다.

그의 가슴속에서 참을 수 없는 불 안감이 밀려왔다.

이에 설우진은 처음부터 뇌기를 완 전히 개방했다. 단숨에 쓸어 버리겠 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을 알 리 없는 흑랑사자들은 여유롭게 공격을 전개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병기는 동영 에서 건너온 소태도였다.

도신이 길지 않아 빠르게 치고 빠지는 공격에 적합했다.

흑랑사자들이 마령귀보를 펼치며 설우진의 사위를 포위했다. 그리고 설우진의 시야가 닿지 않는 사각에 서 소태도를 뿌렸다.

검푸른 빛깔이 감도는 소태도의 날 은 간절히 피를 갈구하고 있었다. 한데 소태도가 설우진의 몸에 닿기 도 전에 사방으로 뇌기의 폭풍우가 일었고 그렇게 뇌기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다.

“끄아악!”

소태도를 휘두르던 흑랑사자들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 다. 성난 뇌기는 그들의 팔을 그대 로 물어뜯었다.

저항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잠시 후 흑랑사자들이 시야에서 완 전히 사라졌다. 뇌기에 완전히 잡아 먹힌 것이다.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엔 역한 노린 내만이 남았다.

‘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고자성은 눈앞에서 펼쳐진 믿지 못 할 광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이 아는 흑랑사자는 이리 쉽게 지워질 존재가 아니었다.

한데 실제로 그들은 눈앞에서 지워

졌다,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한 채로 너무도 무력하게.

심장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신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건 전대 천 주 이후로 설우진이 처음이었다. 그가 낯선 감정에 당황하고 있을때 설우진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내,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 니야. 무조건 도망쳐야 해.’

고자성은 밀려오는 무력감에 도주 를 감행했다. 그가 선택한 도주로는 녹주 쪽으로 나 있는 넓은 창이었 다.

“받아라.”

설우진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고자 성이 소태도를 암기처럼 날렸다. 내 기를 머금은 소태도는 날카로운 기 세를 발하며 설우진의 면전으로 짓 쳐 들었다.

이때 설우진의 오른손이 느릿하게 천뢰도를 잡아챘다.

쉬익.

사나운 바람과 함께 소태도가 그대 로 잘려 나갔다. 천뢰도의 도신에는 응축된 뇌기가 도강을 이루고 있었 다.

그사이 고자성은 창문에 다다랐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신 형을 튕겼다. 극성으로 펼치는 마령 귀보는 그의 몸을 한 마리 새처럼 날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 리웠다. 그것은 뒤따라 몸을 날린 설우진의 것이었다.

고자성은 다급히 허공을 박차 몸을 틀었다. 설우진의 칼이 쇄도하는 걸 본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칼날이 빗겨 갔다.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을 끌어들 인거야? 이 정도면 거의 본천의 호법급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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