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8권 – 7화 : 변란의 조짐 (4)
변란의 조짐(4)
‘저 새끼가 뭘 믿고 나한테 개기는 거지? 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영감 을 믿는 건가?’
막소총이 궁악비를 흘깃 쳐다봤다. 겉보기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 인 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수의 상 징이랄 수 있는 양쪽 관자놀이의 태 양혈이 밋밋했다.
이에 막소총은 적반하장의 태도로 말도 안 돼는 궤변을 늘어놨다.
“방금 전에 이 객잔은 우리 호룡방의 것이 되었다. 하니 네놈이 쥐고 있는 술 또한 우리 호룡방의 것이 다.”
억지였지만 강호에선 힘 있는 자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리고 그에겐 투권이라는 확실한 힘의 원천이 있 었다.
“크큭, 그거 참 재밌는 논리네. 그 럼 내가 네놈을 때려잡으면 이 객잔 은 내 것이 되는 건가?”
설우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네놈 눈에는 저 투권이 보이지 않 는 게냐?”
막소총이 유연신을 거칠게 밀어붙 이고 있는 투권을 가리켰다. 두 사람의 승부는 거의 끝이 난 상태였다. 유연신이 혼신진력을 짜내 투권 의 주먹을 받아 내고는 있었지만 이 미 두 다리가 풀려 있었다.
역시 투권의 권은 묵직하고 강했 다. 하지만 설우진의 반응은 심드렁 했다.
“저 정도 주먹질로 권이라니 하여간 사파 놈들 제 실력 부풀리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
“왜, 내 말이 틀린 것 같아? 그럼 직접 확인시켜 줄 테니 두 눈 똑바 로 뜨고 잘 봐.”
설우진이 오른 주먹을 가볍게 움켜 쥐었다. 그리고 앞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우권을 뻗었다.
퍽.
주먹이 그대로 막소총의 얼굴에 꽂 혔다. 가볍게 내지른 것 같은데 막 소총의 고개는 뒤로 꺾이며 투권의 발치로 날아갔다.
순간 객잔 안이 고요해졌다. 투권 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막소총도 사 파 쪽에서는 제법 주목받고 있는 후 기지수였다. 한데 그가 주먹 한 방 에 나가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설우진 에게 쏠렸다. 그 안에는 투권도 있 었다.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먼 저 입을 연 건 설우진 쪽이었다.
“그런 실력으로 왜 승냥이들의 뒷 구녕을 닦고 다니는 거요, 투권이란 이름을 스스로 더럽히는 꼴인데?” “그게 궁금하면 일단 내 주먹을 꺾 어라. 사내라면 아까 네가 한 말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투권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력을 끌어올린 것도 아닌데 거칠고 사나 운 투기가 객잔 안을 그득 메웠다.
‘후훗, 내가 한 말에 자존심이 상 한 모양이군. 어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수라철권을 볼까나.’
설우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처음 투권이라는 이름을 들었 을 때 크게 놀랐다. 자신이 알고 지 내던 한 사내와 깊은 관련이 있어서였다.
사내의 이름은 척우기로 설우진과 더불어 십왕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권의 왕이었다.
“여기서 붙으면 객잔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으니 밖으로 나갑시다.”
설우진이 장소를 옮길 것을 제안했 다. 이에 투권도 주변의 기물들이 눈에 거슬렸던지 군말 없이 밖으로 먼저 걸어 나갔다.
잠시 후 객잔 밖에서 두 사람이 대치했다. 그 주변은 구경 나온 사 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어리다고 해서 주먹에 사정을 두 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니 죽을 각 오로 덤벼라. 어설픈 마음으로 나섰다가는 내일 권도 받아 내지 못할 것이다.”
투권이 날 선 경고를 날리며 선공 을 취했다.
그의 보법은 거칠고 투박했다. 흙 바닥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발자 국이 그 증거였다. 한데 그 투박한 움직임이 야수안을 교란시켰다. 궤 적을 읽어 냈다 싶은 순간 전혀 생 각지 못한 방향에서 투권의 주먹이 들이쳤다.
쉬익.
설우진이 급격하게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간발의 차이로 투권의 주먹 이 그의 오른쪽 옆구리를 훑고 지나 갔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처음에 공언한 것처럼 투권은 주먹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설우진이 채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 에 연격이 들어왔다. 몸을 휘돌리며 손등으로 관자놀이를 노리는 변칙적 인 공격이었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에서 설 우진은 왼팔을 들어 벽을 세웠다. 펑.
둔턱한 소리와 함께 설우진의 몸이 옆으로 크게 밀려났다.
‘크윽, 대체 수련을 얼마나 무식하 게 한 거야. 주먹이 쇳덩이잖아.’
어깨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설우진이 와락 인상을 쓰며 투권의 주먹을 노려봤다.
투권의 주먹은 우둘투둘했다. 반복된 수련으로 굳은살이 여러 차례 쌓 인 것이다.
이후로 투권은 설우진을 압도했다. 절대 설우진이 봐준 것이 아니다. 그도 여러 차례 기회를 틈타 반격을 취하려 했다. 한데 번번이 어긋났다. 그리고 되레 역으로 빈틈을 공략당 했다. 때문에 설우진의 옷은 넝마처 럼 여기저기 찢기고 터져 나갔다.
‘역시 비슷한 부류라 그런지 야수 감각도가 좀체 힘을 쓰질 못하네. 아쉽지만 벽뢰진천을 깨우는 수밖에……..’
막다른 벽에 몰리자 설우진은 봉인 해 두었던 벽뢰진천을 깨웠다.
단전에서 웅크리고 있던 뇌기가 기 경팔맥을 타고 그의 양 주먹으로 흘 러들었다. 그리고 한순간에 설우진 의 기세가 반전됐다.
“탐색전은 이쯤하고 제대로 붙어봅 “시다.”
퍼퍼펑.
설우진의 권이 속사포처럼 정면으 로 쏘아져 나갔다. 투권은 굳은 얼 굴로 양팔을 번갈아 세우며 주먹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참으로 기민한 대처였다. 하지만 문제는 주먹에 실 려 있는 뇌기였다.
주먹에 실려 있는 힘은 해소시킬 수 있었지만 뇌기는 그대로 몸 안으 로 파고들었다.
빠르게 팔이 경직됐다. 그 여파로 반응 속도 또한 전에 비할 데 없이 느려졌다. 결국 설우진의 주먹이 철 옹성 같던 투권의 방어를 뚫고 명치 를 두들겼다.
“크윽!”
투권의 입술 새로 거친 신음이 터 져 나왔다.
주요 혈맥이 지나는 통로인 명치는 권사들에게 있어 치명적인 급소였 다. 하지만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에 도 투권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에 닿아 있는 설우진의 주먹을 왼손으로 틀어쥐고는 남아 있던 우권으로 역공을 전개했다.
서로의 몸이 맞닿아 있는 상황이라 투권의 주먹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역시 소문난 싸움귀신답네. 동공 이 풀린 상태에서도 이만한 공격을 해내다니, 대단해.’
설우진은 투권의 움직임에 진심으 로 경탄했다. 하지만 그 마음과 별 개로 그의 몸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팔보다 다리가 길다는 점을 이용해 발끝으로 투권의 발목을 가 볍게 밀어 쳤다. 상체에 잔뜩 힘이 실려 있었던 터라 그 공격을 하체가 버텨 내지 못했다.
결국 투권의 마지막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투권은 허망한 얼굴로 바 닥에 주저앉았다. 공격이 실패로 돌 아간 순간 독기로 참고 있던 육체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든 것이다.
‘저 괴물 같은 놈, 주먹으로 투권 을 꺾어 버리다니. 앞으로 얼마나 더 날 놀라게 할지 상상이 안 가는 군.’
궁악비는 기절한 투권과 가볍게 주 먹을 매만지는 설우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