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4)
흔들거리던 등롱의 불이 사그라들었다.
케이건은 썰매 위에 쓰러져 있었다. 왼팔과 오른쪽 다리는 썰매 바깥으로 내민 볼품없는 자세였다. 그런 모습으로 케이건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썰매 앞쪽에 앉아 있던 개들 중 한 마리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개는 썰매 바깥으로 내밀어진 케이건의 오른쪽 다리를 주둥이로 툭 건드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개는 한 번 더 케이건의 다리를 건드렸다. 그 행동은 반드시 우려와 애정에 기인한 것은 아닌 듯했다. 썰매 앞쪽에 앉아 있던 개들 중 몇 마리가 더 합류했다. 몸을 부딪힌 개들은 서로를 향해 으르릉거렸다. 서열 낮은 놈의 목을 깨무는 놈도 있었다. 우두머리는 원래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다른 개들은 모두 썰매 주위로 몰려들었다. 개들의 소란이 꽤 요란해졌지만 썰매 위에 쓰러진 케이건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개들은 차츰 대담해졌다. 그중 어떤 놈이 마침내 이를 드러낸 채 썰매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케이건의 가슴에 내려서기 직전, 개는 턱이 돌아갈 뻔한 일격을 선물 받았다.
호되게 나가떨어진 개는 등부터 빙판에 떨어졌다. 당황하여 썰매에서 물러난 개들은 어깨를 낮춘 채 케이건의 왼손을 응시했다.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라호친가히의 턱을 후려친 그 왼손은 서서히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앞쪽에 있던 우두머리 개가 벌떡 일어서더니 짧고 날카로운 소리로 짖었다. 개들은 도로 썰매 앞쪽으로 돌아갔다. 맞은 개는 침을 흘리며 약간 비틀거리는 동작으로 돌아갔다.
별들의 기묘한 운행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케이건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똑바로 떴다. 날카로운 별빛이 어둠에 익숙해진 그의 눈을 아프게 했다. 케이건은 왼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오른쪽 어깨를 만졌다. 기대하고 있던 감각이 느껴졌다. 어깨를 만지던 케이건의 손이 배 위로 옮겨졌다. 오른손 또한 그 뒤를 따랐다. 케이건은 두 손으로 배 위에 놓아두었던 물건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얼굴 가까이로 가져왔다.
살점이 벗겨진 나가의 머리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 얼굴은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케이건은 그 나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태어난 곳이 어딘지, 어떤 날씨를 좋아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즐겼는지도 알지 못했다. 누구를 좋아했고 누구를 싫어했고 어떤 소망을 가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케이건이 그 나가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세 가지뿐이었다. 그 나가가 여자라는 것, 소드락을 먹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극야의 밤 속에서 살점이 다 벗겨진 얼굴로 웃음 아닌 웃음을 보여야 하는 최후를 맞이할 거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명백한 사실들이었다.
케이건은 머리를 다시 배 위에 올려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극광이 다시 번득였다. 보기 드문 진홍색 극광이 케이건의 시야 가운데서 서서히 피어났다. 그것은 어떤 뚜렷한 의지를 지닌 것처럼 번져 나갔다. 케이건은 극광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대하게 퍼져 나간 극광은 수백 킬로미터짜리 얼굴이 되었다. 아는 얼굴이었기에, 케이건은 조용히 그 이름을 불렀다.
“아젤키버.”
살아났구나.
“천년 묵은 시체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씀입니다.”
너는 시체가 아니다. 너는 살아 있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
“제 초상화를 보여 드릴까요?”
케이건은 배 위에 놓아두었던 나가의 머리를 집어 들어 하늘로 향해 보였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그 얼굴을 들이대며 케이건은 복화술사처럼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케이건 드라카라고 합니다. 부디 얼간이라고 부르지는 말아 주십시오. 알려주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이래 봬도 유명인이랍니다. 변변찮습니다만 제 주요한 업적 두어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왕국 아라짓을 멸망시킨 것, 그리고 키탈저 사냥꾼들을 멸망시킨 것 정도가 있습니다.”
그런 건 개에게나 던져 줘라.
그것은 수사법이 아니었다. 케이건은 들고 있던 머리를 개들에게 던졌다. 개들은 갑자기 날아온 머리에 당황하다가 곧 검사를 시작했다. 케이건은 거칠게 말했다.
“제가 당신들을 멸망시켰습니다.”
키탈저 사냥꾼은 멸망하지 않았다. 네가 있으니까. 그리고 네가 있기에 흑사자의 나라도 멸망하지 않았다.
“멸망했습니다.”
멸망하지 않았다. 멸망시키지 마라. 멸망했다고 선언하면 복수의 의무에서도 해방되겠지.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복수는 계속되어야 한다.
케이건은 입을 다문 채 일렁거리는 진홍빛 극광을 바라보았다.
너는 네가 저지른 일에 대한 죄의식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네 문제는 피로다. 너는 지친 것이다. 그래서 너는 나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니 말해 주겠다. 너는 살아 있다. 그리고 네가 살아 있기에 복수 또한 계속되어야 한다.
“꺼져라. 기만하는 기억아.”
극광은 사라졌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케이건은 몸을 일으켰다. 개들은 아직까지도 머리를 검사하고 있었다. 케이건은 거칠게 그들을 불렀다. 개들을 다시 준비시킨 케이건은 썰매를 뒤돌아서게 했다. 그리고 최후의 대장간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