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4)
케이건이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여신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비형 또한 이미 곯아떨어져 있었다. 불침번을 서던 티나한에게 목례한 다음 케이건은 죽을 데웠고 아기가 깨어나면 먹이기로 하고 솥을 불 옆에 내려놓았다. 도깨비불 옆에 앉은 케이건은, 티나한이 자신을 훔쳐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비형이 잠들었기에 홀로 생각에 잠겨 있던 티나한은 케이건에게 물어봐야 확인될 수 있는 질문을 하나 떠올려 놓고 있었다. 그 질문은 케이건에게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티나한이라도 꺼내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티나한은 한동안 케이건의 눈치를 살폈다.
실눈을 뜬 채 도깨비불을 바라보던 케이건이 나직이 말했다.
“질문하시오.”
“독심술이냐!”
“당신이 풍부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거요.”
“그런가? 으음. 여기 앉아 있다 보니 별 생각을 다했어. 그러다가 좀 이상한 사실 하나를 떠올렸어. 어, 기분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네 아내에 대한 이야기야. 괜찮을까?”
케이건은 고개를 들었다. 티나한은 긴장했지만 케이건의 얼굴은 평온했다.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소만.”
“말을 잘못했다. 그러니까 네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너에 대한 질문인데.”
“해보시오.”
“음, 음. 너는 아라짓 전사라고 했지? 그것 때문에 나가들에게 복수하지. 그리고 너는 키탈저 사냥꾼이기도 하다고 했지. 그것도 네 복수의 이유고. 그리고, 어, 음. 네 아내가…….”
티나한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허둥거렸다. 케이건이 짧게 말했다.
“다 맞소. 그런데?”
“아라짓 전사인 네가 어떻게 아내를 얻은 거지?”
케이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티나한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라짓 전사는 왕의 허락 없이 자식을 얻을 수 없다고 했잖아. 젠장, 최후의 대장장이께서는 결혼하지 않고도 자식을 얻었지. 좋아. 그런 경우는 인정하겠어. 그렇지만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자식을 얻지 않으면서 결혼하는 것은? 그건 불가능하겠지.”
“결혼하고도 자식을 얻지 못하는 부부도 많소.”
“그야 그렇지. 하지만 결혼하기 전부터 그런 일이 있을 거라 예상할 수는 없는 거 아냐. 그렇다면 아라짓 전사는 왕의 허락 없이 자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아라짓 전사는 왕의 허락 없이 결혼할 수 없다는 말도 되는 거지. 맞지?”
“맞소.”
“그래. 그런데, 대호왕이 즉위한 건 4년 전의 일이야. 그전에는 왕이 없었지. 그렇다면, 네가 800살이 넘지 않은 바에야 왕의 허락을 받을 수는 없어. 그렇지? 그러면 너는 상처한 다음에 아라짓 전사가 된 거야?”
잠깐 침묵하던 케이건은 어둠 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티나한.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소.”
“아, 괜찮아. 그냥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 의아해진 거야. 대답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그 질문 하다 보니 떠오른 것이 있어. 아라짓 전사의 전통은 어떻게 이어진 거야?”
“전통?”
“그래. 인간들은 부모가 자식에게 직업이나 재산 같은 것을 물려주곤 하지. 어, 비웃는 것은 아냐. 너희들은 약하니까 혼자서 뭔가를 시작하는 것이 어려울 거야. 그러니까 부모가 만들어 놓은 걸 자식이 이어받으면 좀 편하겠지. 너희들이 약하다는 것은 불가항력에 해당하는 거니까 비웃을 필요는 없지. 하지만 아라짓 전사들은 그럴 수 없을 텐데? 800년 동안 왕이 없었으니까 아라짓 전사들은 전사의 지위를 물려줄 자식을 만들 수 없었을 거 아냐. 그런데 너에게까지 전통이 이어졌잖아.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거야? 도제야?”
“역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오. 티나한.”
“그러냐? 이거 오늘은 내가 곤란한 질문만 떠올리는 날인 모양이군.”
티나한은 머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타고난 개인주의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레콘일 가능성이 높으며, 평범한 레콘인 티나한은 상대방이 말하기 싫어하는 것을 캐묻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티나한은 케이건이 불침번을 서겠다고 말했을 때 별 반대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도깨비불을 바라보며 케이건은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그중에 이름 모를 소년에 대한 것은 없었다.
케이건에게 그 소년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았다.
아기가 깨어난 것은 한밤중이었다. 케이건은 죽을 데웠고 아기는 그것을 바라보지 않았다. 케이건이 끓인 죽을 숟가락으로 떠 후후 불어 가며 아기에게 먹일 때도 아기는 숟가락을 바라보지 않았다. 결국 케이건은 마음속에 있던 의심을 질문했다.
“혹 앞이 보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시선을 맞추시는 것을 본 적이 없군요.”
아기는 죽을 삼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 다 보이니까 시선을 맞출 필요가 없는 거지. 나는 모든 이보다 낮아. 내게는 다 보이지. 너도 네 어깨와 팔과 손가락들을 모두 보면서 그 죽을 뜨지는 않잖아?”
“숟가락과 솥은 봅니다. 당신 부리도 보아야 하고.”
“네가 말한 것들은 너보다 낮아질 수 있는 것들이지. 그러면 내려다봐야겠지. 하지만 나는 모든 이보다 낮아. 굳이 애쓰지 않아도 내게는 다 보여.”
케이건은 입을 다문 채 그 말에 대해 생각했다. 죽이 바닥났을 때 케이건은 아기의 말을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솥을 치운 케이건은 아기의 요청에 따라 그녀를 앉혔다. 그리고 그 등을 두드리며 궁금해하던 것을 질문했다. 그는 자신들의 여행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빨라져 있음을 설명하고 그 현상의 원인이 여신인지를 질문했다.
여신은 간단히 긍정했다. 아기의 등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케이건은 말했다.
“당신은 느린 쪽을 선호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음? 아아, 나는 움직이지 않았어.”
케이건은 잠깐 고민했다.
“그렇군요. 최후의 대장간도, 카시다도 모두 땅 위에 있는 것이군요. 움직이지 않으신 것이군요.”
“그래.”
“덕분에 저희는 놀라운 속도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제 개썰매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개들은 전 주인에게 돌아갔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시우쇠 님을 찾아내려면 즈믄누리로 가야 합니다. 북부군의 현재 위치를 아는 것은 도깨비들이니까요.”
“그리고 시우쇠가 딛고 있는 땅이 아마 알겠지. 시우쇠가 어디 있는지.”
케이건은 졌다는 심정이 되었다. 아기가 트림을 하자 케이건은 아기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강보를 매만진 케이건은 확인했다.
“그러면 저희는 그냥 걸어 가면 되겠습니까?”
“그냥 걸어가.”
“알겠습니다.”
“뭐가 불만인 거지?”
“불만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이제 길잡이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걸어 가기만 하는 거라면 길잡이의 일은 없지요.”
“그렇게 확신하지 마. 너는 여전히 길잡이야. 그 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아이?”
“카시다에서 아이를 만났지?”
케이건의 반응은 조금 늦었다. 기억을 떠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예. 그러고 보니 그건 땅 위에서 일어난 일이군요.”
“훔치고 속이고 죽이라고 했었지?”
“그렇게 말했습니다.”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훔치고 속이고 죽이기 시작하게 되는 것을 원하니?”
“그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 준 것은 그런 방법들이 먹거리를 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만인에 대해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모두 보신다면, 땅 위에서 일어난 제 모든 과거도 아시겠군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나는 오래 전의 너를 안다.”
“제 발 아래엔 항상 당신이 있었겠군요.”
“그래. 그때 너에겐 만인에 대해 원하는 것이 있었어.”
“……그런 기억이 납니다.”
“너에겐 신념과 소망이 있었다. 케이건.”
“그만하십시오. 당신은 자부심을 소중히 여기는 어떤 전사를 지나치게 괴롭히고 계십니다.”
아기는 티나한을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케이건은 그렇게 했고, 잠자리에 누워 있는 티나한이 움찔하는 것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당신의 목소리는 너무 큽니다. 누군가로 하여금 잠든 척하며 이야기를 엿들을 것인지, 그렇잖으면 깨어났음을 정직하게 고백할 것인지 고민하게 할 정도로.”
“젠장, 미안하다. 미안해! 그런 생각 좀 했었다! 하지만 나를 엿듣는 놈으로 몰아붙이려는 거라면! 엉? 만약 그러려는 거라면!”
“안 그러겠소. 주무시오, 티나한.”
티나한은 투덜거리며 다시 누웠다. 케이건은 아기를 돌아보았다. 아기는 눈을 감은 채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길잡이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의 일은 대충 알아 두고 싶습니다. 저희들은 얼마쯤 후에 목적지에 도달하겠습니까?”
“내일이라고 불러야 할 시간쯤에는 너희들이 시구리아트라고 부르는 산맥에 도달할 거다. 그리고 이틀 정도가 지나면 너희들이 엔거라고 부르는 평원에 도달하게 될 거다.”
거리를 가늠해 본 케이건은 그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번개 같은 속도였다. 그때 여신이 다시 말했다.
“시구리아트에 너를 찾는 사람이 있구나. 거기서 잠시 머물러야겠다.”
“저를 찾는 사람이오?”
대답은 없었다. 아기답게 여신은 다시 잠들었다. 케이건은 강보를 한 번 더 매만진 다음 도깨비불 옆의 자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