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4장 – 혈루(血淚) (2)
차가운 밤하늘을 향해 열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곁눈으로 보았을 때 사모는 그것을 바위산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후, 사모는 그것이 아마도 화산일 거라 여겼다. 그러나 사모는 그 결론에 만족할 수 없었다. 결국 사모는 그것이 산더미 같은 크기로 치솟아 오르고 있는 뜨거운 공기라는 판단을 내려야 했고, 그 판단에 놀랐다.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밀림에서 하늘을 향해 치뻗은 열기는 차가운 암흑과 뒤섞이며 희미해졌지만 터무니없이 높은 곳에서도 미약하나마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하게 꿈틀거리는 열류의 가느다란 가지마저 몇 백 미터는 넘을 듯하다.
잠깐 고민하던 사모는 마루나래의 목을 살짝 두드리며 몇 마디 단어를 중얼거렸다. 마루나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길 비슷한 것을 찾아내었다. 대호는 그곳으로 접어들었고 그 뒤를 따라 스물두 명의 두억시니가 쿵쾅거리며 걸었다.
사모는 숲 속을 흐르는 열기를 보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열기는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사모는 그 열이 불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시우쇠에게 가까이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점점 가능성을 잃었다. 하지만 사모는 시우쇠 이외에 무엇이 그토록 놀라운 열기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가의 시력을 가지지 못한 자라도 피부로 그 열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때 사모는 누군가가 등을 툭 치는 것을 느꼈다. 사모는 뒤를 돌아보았다.
“갈바마리?”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모는 갈바마리가 왜 등을 쳤는지 깨달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갈바마리는 왕에게 청력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었다. 사모는 그렇게 했다.
“뜨겁다.”
“안 좋다.”
“잘 모르겠어. 한 번 더 말해 봐.”
갈바마리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 고민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양팔의 길다란 뿔이 돋아나와 각자 양쪽의 턱을 긁적거렸다. 갈바마리는 잠시 후 자신 있게 말했다.
“뜨겁다. 안 좋다.”
“안 좋다. 좋게 하다.”
“미안하지만 이게 내 최선이야. 뜨거우니 접근하지 말자는 거야?”
그녀의 해석은 틀린 듯했다. 갈바마리는 두 팔의 뿔을 모두 꺼내어 진행 방향을 다급하게 가리켜보였다. 사모는 다시 해석했다.
“뜨거운 것은 좋지 않으니 저기로 가서 좋게, 그러니까 뜨겁지 않게 만들자?”
갈바마리는 만족했다. 사모는 마루나래에게 걸음을 재촉하게 하며 왜 뜨거운 것이 좋지 않은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어떤 해답이 떠오를 무렵, 숲이 사라지며 후끈한 열기가 그들을 엄습했다.
사모가 말하기도 전에 마루나래는 걸음을 멈췄다.
사모가 느낀 첫 번째 인상은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껏 ‘뜨거운’ 건물을 본 적이 없었다. 온돌이 설치된 북부의 건물들의 경우 방 안에서는 그 열을 볼 수 있었지만 건물 밖에서 열기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녀의 눈 앞에는 불타는 직선과 뜨거운 면들이 건물을 이루고 있었다. 먼 곳에서도 하늘까지 치솟는 열기를 볼 수 있었지만, 정면에 나타난 그 건물은 어둠 속에서 찬란할 정도였다. 건물 전체에서 아지랑이처럼, 혹은 번민처럼 피어오르는 열기는 그것을 마치 알려지지 않은 심해의 괴수처럼 보이게 했다.
꽤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모는 그것의 인상이 눈에 익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모는 다시금 당황했다. 그것은 유해의 폭포가 흐르던 피라미드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사모는 니르던 것을 도중에 말로 바꿨다. 두억시니들 역시 당황한 듯 규칙 없이 놀라움을 표시했다. 놀라움 속에서 사모는 왜 갈바마리가 ‘뜨거우니 좋지 않다’고 한 것인지 이해했다. 갈바마리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고 피라미드가 그토록 뜨겁다는 사실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사모는 손을 가볍게 들어올린 다음 피라미드를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깨닫지 못했지만 피라미드까지의 거리는 꽤 멀었다. 거리가 줄어들수록 사모의 불안은 커졌다. 사모는 그 열기가 건물 내부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거대한 피라미드 전체가 뜨겁게 달구어져 있다면 그 내부의 온도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준일 것이다. 사모는 유해의 폭포가 무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사모는 두억시니들과 함께 체념한 심정으로 피라미드 앞에 섰다. 더 이상 다가가기도 어려웠다. 고통을 각오한다면 피라미드 내부까지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무의미한 고통일 뿐이었다. 사모는 열을 보지 못하는 두억시니들에게 말했다.
“햇빛이나 외부의 열로 달궈진 것이 아냐. 열은 내부에서 나오고 있어. 두려운 상상이지만, 저 안쪽 가장 깊은 곳에서는 돌이 녹아내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갈바마리는 신중한 태도로 사모의 말을 경청했다. 다른 두억시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난처함을 표시하기 위해 각종 부속지들을 기웃거렸다. 사모는 갈바마리를 도와주었다.
“유해의 폭포는 죽었을 거야.”
“죽을 수 없다.”
“살아 있지 않으니.”
갈바마리의 대답에 사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하긴 그렇구나. 그런데 너는 슬프지 않은 거야?”
갈바마리는 다시 한참 동안 고민했다.
“슬픈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상하다.”
“좋지 않다.”
사모 또한 갈바마리의 기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본체라고 해야 할까? 그녀가 기억하던 유해의 폭포는 다른 두억시니들을 항상 1인칭으로 지칭했다. 사모는 자신이 유해의 폭포와 여전히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갈바마리는 두 개의 머리로 피라미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시우쇠 님은”
“가르쳐주었을까?”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는지.”
사모는 놀란 표정으로 갈바마리를 바라보았다. 갈바마리는 그녀가 알면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피라미드가 통째로 달궈질 정도의 고온은 시우쇠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시우쇠는 이곳에, 피라미드에 왔던 것이다.
“그래. 시우쇠 님이 저렇게 하셨겠지. 하지만 왜 그러셨을까? 그리고 저런 일을 하시기 전에 시우쇠 님은 두억시니가 신을 잃은 이유를 가르쳐주셨을까? 아무것도 짐작되지 않는군.”
갈바마리는 뿔 달린 두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다른 두억시니들이 모두 돌아보았다. 갈바마리는 크게 외쳤다.
“물어보자.”
“물어보자.”
두억시니들은 민첩하게 움직였다. 사모는 고개를 갸웃한 채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두억시니들은 그녀를 중심으로 둔 채 원진을 형성했다. 그리고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사모는 그들이 유해의 폭포와 연결할 때의 자세를 취한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무사하기 힘들 텐데.’
사모는 두억시니들을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녀 또한 혹시나 하는 마음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모는 마루나래에게서 내려왔다.
“마루나래. 좀 기다려야겠구나. 배 고프지? 사냥하고 와. 그리고 기회가 되면 내 것도 좀 가져다줘.”
마루나래는 빙글빙글 돌고 있는 두억시니들을 바라보다가 몸을 훌쩍 날렸다. 단숨에 두억시니들을 뛰어넘은 마루나래는 어두운 밀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모는 쉬크톨을 뽑아들고는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왼팔 위에 쉬크톨을 얹었다.
소임을 다하지 못한 쉬크톨은 여전히 예리했다. 암살자로서, 그리고 왕으로서 사모는 수도 없이 쉬크톨을 휘둘러야 했지만 완전무결한 칼날은 그녀가 처음 그것을 쥐었을 때와 똑같았다. 칼을 잡아당겼을 때 사모는 거의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칼날에 피가 묻은 것을 확인한 사모는 그것을 들어 한 방향을 겨냥했다. 곧 손잡이가 따스해졌다.
사모는 칼날 위에 시선을 얹어 손잡이가 따스해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사모는 쉬크톨을 닦아낸 다음 다시 칼집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두억시니의 원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