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5장 – 셋은 부족하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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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5장 – 셋은 부족하다 (9)


“나가의 도시에 들—어─간—다—고─요-!”

티나한은 절규하듯 외쳤다. 두억시니들은 긴장하여 티나한을 바라보았고 마루나래도 어깨털을 빳빳하게 세웠다. 사모 페이는 마루나래의 다리를 쓰다듬어주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기의, 역시 만만치 않게 커다란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래. 티나한. 우리는 저 도시에 들어간다.”

“왜 그래야 합니까! 저기에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가 있습니까?”

티나한의 상상에 동요하는 사람은 비형뿐이었다. 케이건은 우울한 눈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기는 말했다.

“아니.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저 도시에 들어가면 시체가 되어 나올 텐데요?”

“걱정 마. 저 도시는 중립을 선언했다.”

케이건은 흠칫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놀란 표정으로 아기를 바라보았고 그냥 분위기를 맞춰보려는 것에 불과했지만 갈바마리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기는 웃었다.

“시모그라쥬는 이 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했다. 그래서 시모그라쥬를 지키던 나가의 군대는 모두 하텐그라쥬로 이동했어. 그리고 북부군 또한 저곳을 우회하여 남진했다. 그러니 우리는 저기에 들어가도 돼.”

모두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서로를 관찰하는 가운데 케이건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나가를 믿지 않습니다. 여신이여.”

“너는 그렇지. 하지만 이번에는 믿어봐.”

“아니요. 그들이 약한 척, 아픈 척, 죽은 척한다고 해서 칼을 칼집에 꽂아넣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저는 그런 속임수에 너무 많이 당했습니다.”

사모는 팔짱을 낀 채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분명히 알아차렸지만 케이건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모는 결국 입을 열어 말했다.

“케이건 드라카. 네 왕도 나가인데.”

“폐하. 저는 당신에게 충성합니다만,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이상한 말이군.”

“나가들이 저를 이상하게 만듭니다.”

케이건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사모는 다시 대꾸하려 했다. 하지만 아기가 끼어들 듯이 말했다.

“그만 둘 다 그만해. 그래서 케이건. 어쩔 테야? 들어가지 않을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저기에 들어가야 해.”

케이건은 한참 동안 말없이 아기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왜 그런지 설명해 주십시오.”

“조금 전 북부군이 저곳을 통과했다고 말했지. 그들이 저곳을 통과할 때, 시우쇠는 내게 남기는 말을 나가 중 하나에게 전했어. 나는 그 나가를 만나서 시우쇠의 말을 들어야 해.”

티나한과 비형, 사모는 이해했다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시우쇠 님은 그냥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땅에 대고 말씀하셔도 될 겁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왜 나가를 통해 말씀을 전한다는 겁니까?”

케이건의 지적에 다른 세 사람은 또다시 당황하여 아기를 바라보았다. 마루나래와 두억시니들만은 더 이상 긴장하지 않은 채 한가로운 대호나 두억시니들이 할 법한 일을 하고 있었다. 아기는 고개를 숙이고 땅을 향해 외치는 화신의 모습을 떠올렸는지 빙긋 웃었다.

“케이건. 미안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할 수 없어. 생각해 봐. 너희들은 나를 찾아서 긴 시간 동안 수탐을 했어. 왜 그래야 했을까? 너희들도 그냥 고개를 숙이고 나를 불렀어도 될 텐데. 아니, 그러지 않았더라도 나는 너희들이 나를 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러면 왜 내가 너희들을 찾아오지 않았을까?”

케이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당신은 최후의 대장장이의 태내에 있었으니까……… 아니, 그렇지 않군요. 우리가 수탐을 시작한 것은 4년 전이니까. 그때는 다른 레콘의 안에 계셨겠군요.”

“정확해.”

“그렇다면 왜 저희들이 수탐하도록 내버려두신 겁니까?”

“그렇게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야. 그리고 시우쇠 또한 그런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나가를 통해 나에게 말을 전하는 것이고. 자, 이제 내게 신들의 모든 일을 고백하라고 강요할 거니? 그렇잖으면 내 말대로 저곳으로 들어가겠어?”

케이건은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티나한과 비형은 걱정스러운 듯이 아기와 케이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결국 케이건은 등에 맨 바라기를 꺼내었다. 그것을 손에 쥔 케이건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 칼은 무슨 의미지?”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는 나가를 믿지 않습니다. 제 판단에 의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영웅왕의 검은 휘둘러질 겁니다.”

아기는 고개를 흔들었다.

“들고 다니면 무거울 텐데. 좋을대로.”

아기가 허락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케이건은 비형에게 수백 개의 도깨비불을 만들라고 요구했지만 아기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케이건은 신음을 흘린 다음 티나한에게 아기가 시우쇠의 말을 전달받을 동안 심장탑을 점거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했지만 아기는 그것도 거부했다. 케이건은 굽히지 않고 새로운 제안들을 꺼내어놓았고, 그동안 티나한은 비형과 케이건이 바뀐 것 같다는 착각에 계속 시달려야 했다. 결국 모든 제안을 거부당한 케이건은 얼음장 같은 얼굴로 주위 사람들을 거북하게 만들며 말없이 걸어갔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평온한 심정은 아니었다. 열대의 태양이 습지를 비추는 오후를 걸어가며, 그들의 심정은 점점 시각적으로 드러났다. 시모그라쥬가 가까워질수록 티나한은 점점 부풀어올라 아기를 거북하게 만들었고 비형의 등 뒤에는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도깨비불 비형들이 행진을 하고 있었다. 사모 페이 또한 긴장을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했다. 나가의 도시로 돌아가는 보통의 나가가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사모 페이에게는 허락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북부의 왕이었다.

시모그라쥬의 지척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정신적인 피로감에 탈진해 버렸고, 그들의 모습에 당황한 나가들이 왔던 길로 되돌아 뛰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될대로 되라는 식의 무덤덤한 반응만 보였다. 다만 케이건은 도망치는 나가들을 뒤쫓아갈 듯 험악하게 바라기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아기가 제때에 그를 제지했다.

“케이건. 그만둬.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 필요하다면 나는 너희들과 함께 이 도시를 순식간에 떠날 수 있어. 이제 안심할 수 있겠나?”

케이건은 여신에게 사과했다. 누구에게도 그건 진심 어린 사과로 보이지 않았지만 아기는 화를 내지 않았다. 케이건은 주위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냥 걸어가자.”

케이건은 울부짖듯이 반문했다.

“그냥 걸어갑니까?”

“응.”

케이건은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건물들에서 나가들이 몰려나올 때까지만 그렇게 했다. 나가들의 모습을 본 순간 케이건은 발작적으로 바라기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온 나가들은 바라보기만 할 뿐 그들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시모그라쥬의 시민들이 그 도시가 생긴 이래 가장 놀라운 방문자들의 모습에 경악한 것은 분명했다. 자꾸만 서로를 쳐다보고 눈을 비비고 비늘을 부딪치는 그 모습은 다른 감정으로 해석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뿐, 모두들 제자리에 선 채 아무도 감히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비형은 반갑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좋은 꿈들 꾸셨습니까?”

도깨비의 호의 어린 인사는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 다만 사모가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격하지 말라는 니름들이 들리는군.”

수탐자들은 왕을 돌아보았다. 사모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희들에겐 고요한 군중으로 보이겠지만, 나가에게 이곳은 엄청난 소란의 한가운데야.”

수탐자들은 왕의 설명과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 풍경에 난처해했다. 그들에게 그 풍경은 산사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모는 정신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소란스럽군. 니름을 알아듣기 힘들 정도야. 하지만 몇 마디는 알아들을 수 있어. 공격하지 마. 중립이야. 누가 올 거야. 기다려. 대충 그런 니름들이야. 여신의 말씀처럼, 누군가가 그분께 들려줄 말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잠깐. 의장이 올 거라는 니름이 들리는군.”

주위의 모든 나가들을 향해 거리낌 없이 공격 의사를 표현하고 있던 케이건이 사모를 휙 돌아보았다.

“병사도 옵니까, 폐하?”

“아냐. 그런 니름은 없어. 니름을 걸어보고 싶은데, 이 자들은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군. 일단 기다려보자.”

그들은 제법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비형은 나가들과 친해지려 애썼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에게서 환호를 받고야 말겠다는 별 가치 없는 소망을 품게 된 비형은, 도깨비불로 온갖 형체를 만들어 그들의 하늘 위를 날게 했다. 하지만 사모는 곧 다급하게 비형을 제지했다. 그들을 화나게 하고 있음을 전해들은 비형은 의기소침하여 나가들에게 목례했다.

그때 케이건은 기다리던 자가 오고 있음을 발견했다.

대로 반대편에서 한 명의 늙은 나가가 달려왔다. 그녀의 뒤편으로 몇몇 젊은 나가들이 사이커를 든 채 달려오는 것을 발견한 케이건은 이를 부드득 갈며 바라기를 높이 들어올렸다. 아기와 사모가 동시에 외쳤다.

“의장의 호위자야!”

케이건은 아기를, 그리고 사모를 쳐다본 다음, 서서히 바라기를 내렸다. 하지만 그의 근육들은 잔뜩 긴장하여 옷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여전히 잔뜩 부풀어 있던 티나한 역시 철창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보통 육성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에겐 대화하기 적당치 않다고 판단될 먼 거리에서 걸음을 멈춘 늙은 나가는 일행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인간과 도깨비, 그리고 스물두 명의 두억시니와 대호를 본 그녀는 비늘을 마구 부딪쳤다. 대호의 등 위에서 익숙한 나가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가까스로 평상심을 되찾은 듯이 닐렀다.

<그 대호를 보니 당신은 정신 억압자군요. 그런데 이 이상한 일행은…… 아니, 관두지요. 아무 설명도 듣지 않겠습니다.>

자신이 대호왕이라는 것을 밝힐 필요가 없게 된 사모는 안도했다. 여인은 입을 열어 육성으로 말했다.

“시모그라쥬 평의회 의장 칸비야 고소리입니다. 여러분들은 제게 자신을 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다리고 있기는 했습니다만, 이제 저는 이 일이 빨리 끝나기만을 소망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칸비야는 티나한을 향해 말했다.

“시우쇠 님의 전갈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티나한은 당황하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칸비야는 거의 기절할 뻔했고 그녀를 호위하던 나가들은 사이커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케이건 또한 야수 같은 함성을 지르며 바라기를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티나한은 황급하게 말했다.

“잠깐 잠깐! 모두들 잠깐만 참아. 이봐, 의장. 전할 말이 있다고?”

“그, 그, 그렇습니다.”

“전할 대상을 착각한 것 같다. 잠깐만.”

그리고 티나한은 몸을 돌려 칸비야에게 등을 보였다. 칸비야는 티나한의 등에 있는 안장과 그 속에 있는 털뭉치 같은 머리에 놀랐다. 아기가 부리를 열었다.

“내게 전할 말이 있겠지?”

<아기라고!>

칸비야는 실수를 저지르게 한 시우쇠를 원망하고 싶었다. 시우쇠가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을 떠올린 칸비야는 간신히 부끄러움에서 벗어났다. 칸비야는 자신의 당황과 공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눈 앞에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 형언키 어려우리만큼 괴이하긴 했지만, 그녀는 불과 얼마 전 북부군의 진지에 단신으로 찾아갔던 자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불가해한 공포에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문득 케이건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순간 그녀는 꽤나 비이성적인 결론을 내렸다.

케이건은 칸비야의 시선에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칸비야는 비늘을 세우며 황급히 아기를 돌아보았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십니까?”

“그렇다.”

“알겠습니다. 시우쇠 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빛이 탄로났다.”

아기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칸비야는, 다른 사람들이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짓눌릴 것 같은 압박감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두려워하며 말했다.

“제가 올바로 한 것입니까?”

“그렇다. 칸비야. 수고에 감사한다.”

“제 무례를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씀도 감사합니다만, 이곳에서 떠나주셔서 저희들을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제발 저 남자를 데리고’라는 의사는 말로도, 니름으로도 표현되지 않았다. 비형을 제외한 사람들 모두가 그 말에 찬성했다. 비형은 끝내 환호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모든 핑계를 댔다. 그리고 그 핑계들은 무시되었다. 아기는 웃으며 칸비야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그들은 왔던 길을 통해 조심스럽게 시모그라쥬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다른 시민들이 그렇게 한 것처럼 칸비야 의장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살기등등한 북부군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도, 그리고 화염의 화신과 직면했을 때도 그녀는 자신의 침착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그녀는 긴 시간 동안 갈고 닦은 모든 침착을 잃고 본능적 두려움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녀는 조금 전 얻었던 비이성적인 결론을 다시 반추하며 혼란을 느꼈다.

<맙소사. 한 인간의 눈이 나를 어쩔 줄 모르게 만들다니. 이해할 수 없어. >

설명을 요구하는 무수한 시선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계속해서 그 눈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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