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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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17)


그 눈 속에서 빛이 번득였다고 생각한 순간 케이건은 모든 것 이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다. 케이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신 질환자를 미치게 할 수 있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광선으로 구성된 세계였다. 질량은커녕 면적조차 존재하지 않 았다. 직선, 곡선, 꺾인 선, 꿈틀거리는 선, 진저리치는 선, 유 쾌한 선, 우울한 선, 가인의 고요한 한숨에 흔들리는 난초 같은 선. 보이는 것은 오로지 선밖에 없었다. 가없는 암흑을 배경으로 선으로 만들어진 면적과 선으로 만들어진 질량이 그곳에 있었다. 케이건은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며 그 선들을 하텐그라쥬와 연 관지었다.

응축되었다가 위쪽으로 거대하게 폭발하는 저 선의 무더기는 시우쇠인 듯하다. 선은 시우쇠의 분노인지 시우쇠의 몸에서 뿜어 져 상승하는 열기인지 뚜렷이 구분지을 수 없는 것을 시우쇠의 머리 위에 구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편에 덩어리진 선들은 티 나한인지 마루나래인지 뚜렷하지 않았다. 아마도 두억시니들일 거라 생각되는 선의 기괴함은 똑바로 바라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케이건은 시선을 보다 먼 곳에 던졌다. 선들이 미쳐 날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억시니들의 선과 달리 그 선들은, 정신없이 춤 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담백함을 담고 있었다. 간단한 목적 하나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죽 둘러본 케이건은 그 광분한 선들이 하텐그라쥬를 삼키기 위해 몰려드는 회오리라고 판단했다.

먼 곳을 바라보던 케이건은 시선을 가까이 끌어당겨 품 속을 내려다보았다. 나가의 아이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선으로 구 성된 다른 모든 사물과 달리 케이건처럼 면적과 질량을 제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몇 살이나 되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아이 의 비늘은 아직 유연했고 케이건은 팔뚝을 통해 아이의 작은 심 장이 그 몸 속에서 통탕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케이건을 바라보던 아이가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

케이건은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아이를 내려놓았다. 아이 는 어린 생물 특유의 불안하면서도 용케 쓰러지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되는 동작으로 잠시 자신의 균형을 회복하려 애썼다. 겨우 똑바로 서게 된 나가의 아이는 케이건을 올려다보았다. 케이건은 바라기를 들어올렸다. 아이는 감식하는 듯한 눈으로 그 동작을 바라볼 뿐 두려움이나 증오는 보이지 않았다. 케이건은 어쩐지 그 얼굴이 낯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케이건조차도 그 긴 사냥 의 세월 동안 어린 나가를 잡아먹은 적은 단 두 번뿐이었다. 나 가 아이의 얼굴이 낯익을 리가 없었다. 케이건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아이의 목을 뎅겅 잘랐다.

아이의 목에서 분리된 머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바닥에 부딪힌 다음 데굴데굴 굴러갔다. 케이건은 무관심한 시선으로 그 머리를 잠시 바라보았다.

먼 곳을 바라보던 케이건은 시선을 가까이 끌어당겨 품 속을 내려다보았다. 나가의 아이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선으로 구 성된 다른 모든 사물과 달리 케이건처럼 면적과 질량을 제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몇 살이나 되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아이 의 비늘은 아직 유연했고 케이건은 팔뚝을 통해 아이의 작은 심 장이 그 몸 속에서 통탕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케이건을 바라보던 아이가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

케이건은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아이를 내려놓았다. 아이 는 어린 생물 특유의 불안하면서도 용케 쓰러지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되는 동작으로 잠시 자신의 균형을 회복하려 애썼다. 겨우 똑바로 서게 된 나가의 아이는 케이건을 올려다보았다. 케이건은 바라기를 들어올렸다. 아이는 감식하는 듯한 눈으로 그 동작을 바라볼 뿐 두려움이나 증오는 보이지 않았다. 케이건은 어쩐지 그 얼굴이 낯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케이건조차도 그 긴 사냥의 세월 동안 어린 나가를 잡아먹은 적은 단 두 번뿐이었다. 나 가 아이의 얼굴이 낯익을 리가 없었다. 케이건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아이의 목을 뎅겅 잘랐다.

아이의 목에서 분리된 머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바닥에 부딪힌 다음 데굴데굴 굴러갔다. 케이건은 무관심한 시선으로 그 머리를 잠시 바라보았다.

먼 곳을 바라보던 케이건은 시선을 가까이 끌어당겨 품 속을 내려다보았다. 나가의 아이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케이건은 이제 이 짓 을 그만두기로, 최소한 보류해 두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아이다 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영원히 다시 시작할 건가.”

”그래. 그러니 목을 자르는 짓은 이제 그만두지. 아이고 어른 이고 상관하지 않는군.”

”상관해 본 적은 없어. 너는 도대체 누구지?”

아이는 커다란 웃음을 대답 삼아 케이건에게 보내주었다. 그리 고 아이는 두 팔을 기이하게 흔들며 뛰어갔다. 케이건은 그 모습 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달려가던 아이는 고개를 돌려 그를 하니 바라보았다. 어린애가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의 반응을 탓하 기라도 하듯 쳐다보는, 그런 눈빛이었다. 어떤 선 위에 멈춰선 아이가 말했다.

”뭐해?”

”아무것도.”

”바보야, 아저씨?”

”취미는 아니지만.”

”바보가 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은 없어. 필요해서 그러기는 하 지만.”

케이건은 모호한 기분 속에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이 가 말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케이건은 다시 아이의 얼굴을 들 여보았다. 기시감이 더욱 짙어졌고 그것은 케이건에게 알 수 없 는 불안을 선사했다. 결국 케이건은 질문했다.

”너는 누구지?”

”그건 아직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그러면 중요 사항부터 논의해 보지.”

”몇 개나?”

”식후에 처리하기 적당한 만큼.”

”아저씨 식후? 내 식후?”

”별 차이는 없겠군.”

아이는 의표를 찔렸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나가의 식사 간격 은 인간의 그것보다 월등히 길어질 수 있다. 아이는 그것을 자랑 하려 했지만 케이건은 아이가 어른처럼 큰 생물을 삼키지는 못할 거라고 지적했다. 나가 아이는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러면 두어 개만 시험해 볼까?”

”거기에 어떻게 하면 너를 죽일 수 있는가 하는 것도 포함되나.”

”나?”

”원한다면 그것도 포함시킬게.”

”좋아. 그럼 동의해.”

”이리와.”

케이건은 바라기를 등 뒤의 고리에 걸고는 아이에게 걸어갔다. 바닥은 없었고 선들뿐이었지만 케이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갔 다. 케이건은 자신의 발 아래에서 선들이 파문처럼 번져가는 모 습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케이건은 아이의 옆에 섰다. 그 러자 아이가 다시 걸었다. 케이건은 어쩔까 하다가, 아이의 보조 를 맞추며 걸었다. 주위를 흐르는 선에 손을 집어넣어 선들의 흐 름에 동요를 만들던 아이가 말했다.

”용의 수호는 했어?”

”아니. 사모가 거부했어.”

대답을 완전히 끝낸 후에야 케이건은 멈칫했다. 케이건은 충격 과 격분에 싸인 눈으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선들을 흔들리게 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던 아이는 조금 후에야 걸음을 멈추고는 케이건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돌아보았다. 케이건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요스비?”

”요스비는 죽었어. 알고 있잖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죽은 자가 보내는 사어를 보았어.”

”그럼 그 사이의 반대편에 누가 있었는지 몰랐던 거야?”

”모호해.”

아이는 손을 위로 쭉 뻗고는 그것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바람 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같은 모습의 팔 위에 손이 나뭇잎처럼 흔 들렸다. 광선들이 아이의 손을 흔드는 바람을 대신하고 있는 듯 했다. 아이는 그렇게 나무 놀이를 하며 말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어떤 가능성도 없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남을까?”

아이의 말은 케이건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케이건은 불만스러운 듯이 말했다.

”내일을 계속 오늘로 만들면 돼.”

”오늘이 솟아나오는 샘은 내일이야. 키다리 아저씨. 샘물이 샘 으로 환유될 수 있는 건가? 논점을 회피하지 마.”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을 속이는 방법도 있지.”

”나쁘진 않군. 실제로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 하는 사람도 많지. 하지만 아저씨는 그보다는 더 똑똑할 텐데?”

”케이건 드라카라고 불러.”

”무뚝뚝하기는. 그런 말은 세수할 때 물 속에 비친 사람에게나 해줘. ‘안녕하시오. 나는 케이건 드라카요. 그렇게 인상 쓰는 이 유가 뭐요? 내게 불만 있으면 말해 보시지.’ 라고. 그러고 있으면 정말 어울릴 것 같아.”

”너 계집아이니?”

”흐응.”

아이는 신음인지 긍정의 대답인지 구분짓기 어려운 소리를 내 며 계속 팔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이에 대한 관심을 잃은 케이건 은 광란하는 광선들을 바라보았다. 광선으로만 표현되고 있음 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진 끔찍한 파괴력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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