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6)
바닥 끄트머리에 있던 시우쇠는 몸을 일으켰다. 화염의 화신은 케이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케이건은 여전히 바라기의 두 칼날을 바라보았다. 화신은 분노 하여 외쳤다.
”그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케이건은 바라기를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는 냉동 장치와 수탐자들, 아기를 차례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케이건은 시우쇠를 향해 말했다.
”나는 최후의 아라짓 전사이며 마지막 키탈저 사냥꾼이다. 그 다지 사교적이지 못하다는 사실 이외에 그들의 공통점을 하나 들 어본다면, 양자 모두가 나가들에 대해 받아낼 것이 있다는 사실 이 그것이다.”
케이건은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스스 로에게 보내는 듯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가들의 절멸이다. 그것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발자국 없는 여신의 아이들이다! 네가 어떻게 우리를 이곳으로 모이게 한 그녀를 실망시킬 생각인가! 그것이 그녀의 은혜에 대한 네 보답인가?”
”나가의 보답은 무엇이었나!”
케이건의 목에서 핏대가 부풀어올랐다. 케이건은 끓어오르는 격분을 가눌 수 없다는 듯 광포하게 외쳤다.
”내 희망에 대한 나가의 보답은 무엇이었나! 그들은 내 조국을 멸망시켰다. 그들은 내 아내를 찢어 죽였다. 그들은 내 희망을 가장 잔인한 형태로 짓밟았다! 이 몸! 이 추한 몸뚱이를 제외한 내 모든 것을 파괴했다! 나는 이 몸을 나가의 제삿날에 올릴 번 제물로 바쳐도 좋아. 몸을 불사르는 그 불꽃 속에서 나는 웃을 것이다! 입술을 놀릴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가의 죽음에 대 해 기쁨의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케이건의 무자비한 분노는 화염의 화신마저 주춤하게 했다. 시 우쇠는 낮게 으르릉거리며 말했다.
”그것은 지금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너의 일도 아니다. 너는 어디에도 없는 신이지 복수심에 미친 케이건 드라카가 아니―.”
”내가 곧 케이건 드라카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이상 어떤 나가도 그것이 옛날 일이었다고,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 이라고 말할 수 없어! 그들이 나라는 것을 만들어내었으니까!”
맞불이 부딪치는 것처럼 시우쇠 또한 분노했다. 시우쇠는 냉동 장치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래서 모든 나가를 죽이겠다고? 그녀를 종족 잃은 신으로 만 들겠다고?”
케이건은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다시 바라기를 높이 들어올렸다. 비형이 비명을 질렀지만 케이건은 억 제할 수 없는 분노를 담아 하텐그라쥬를 또다시 도륙했다. 그 모 습을 본 시우쇠는 노호하며 두 팔을 들어올렸다.
키보렌 가운데를 걸어가는 세 명의 나가가 있었다. 주위를 둘 러싼 풍경은 나가에게 한없는 만족감을 주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좌우의 두 나가는 마음 편한 산책이라도 나서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지만, 가운데서 걸어가는 나가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더군다나 가운데 있는 나가는 꽤나 나가답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어색한 기분을 느끼 며 입 주위를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좌우에 있는 두 나가들이 멍하니 바라보는 것을 무시하며 입을 열어 고함을 질렀다.
”달비 부위! 달비 부위이이이!”
좀 처절하기까지 하다. 키보렌의 대수호자 키베인은 갑자기 달려가버린 데오닉 달비 를 찾아 대나무 군단을 잠시 떠난 상황이었다. 대장군 갈로텍이 안전하게 허물벗기를 마치고 대나무 군단에 복귀한 이후, 원래부 터 데오늬에 대한 특별한 경계심을 품고 있지 않았던 대나무 군 단의 군단병들은 이제 데오늬가 무슨 짓을 하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키베인은 데오늬가 또 어딘가로 달려 가버 렸다는 니름을 좀 늦게 전해 들었다. 키베인은 걱정 때문에 그녀 를 찾아나서려 했고 그러자 군단병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 때 되면 돌아올 것이다.’라는 둥의, 도무지 포로를 대상으로 하는 니름이라고 생각되기 어려운 니름들로 키베인을 만류했다. 키베 인은 그 상황이 꽤나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장수들은 고집을 부 리며 데오늬를 찾아나서는 그에게 두 명의 호위를 붙여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대수호자에 대한 예우의 표현이 었지만 키베인은 키보렌에서 호위가 필요한 것은 오히려 불신자 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호위 중 한 명이 대 수호자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니름을 꺼내었다.
<대수호자님. 그냥 군단으로 돌아가셔서 기다리시면 돌아올 텐 데요. 지금쯤 이미 돌아왔을지도 모르지요.>
키베인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보기로 했다.
<코노리. 어쩐지 당신은 나보다 데오늬에 대해 덜 걱정하는 것 같군요?>
<네? 그야 대수호자님께서는…>
<아니, 아니. 그런 니름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리고 다른 사 람들도 그런 것 같은데, 모두들 내가 더 중요한 인물이라서 나를 더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요. 맞습니까?>
코노리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키베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닐렀을 때 그 니름은 정직했다.
<어, 솔직히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키베인은 그녀를 위해 미소를 지으며 닐렀다.
<예. 나도 그렇습니다.>
대수호자의 니름에 코노리와 또 한 명의 병사 가이쥬도 미소 지으며 훨씬 정직한 태도로 닐렀다.
<이상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저희들은 대수호자님이 길을 잃거 나 물에 빠지거나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됩니다만 데오늬 달비 가 그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데오늬 달비는………………>
<기다리고 있으면 뛰어올 것 같지요?>
코노리와 가이쥬는 정신적 웃음을 터뜨렸다. 키베인은 부드럽 게 닐렀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키보렌에서 더 위험한 쪽은 불신자여야 하 지 않겠습니까. 음. 나는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무슨 니름이신지 알겠습니다.>
코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이쥬는 먼 곳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으로 닐렀다.
<하지만 정말 그녀가 위험에 처해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 는군요. 대수호자님.>
<가이쥬. 이곳에는 그녀가 북부에서 보지 못한 위험한 동식물 들이 많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무지 때문에 위험에 처할 가능성 이 전혀 없다고는 니르기 어렵습니다.>
<하긴 위험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녀 때문에 키보렌이 위험할지 도 모르겠습니다.>
<예?>
가이쥬는 말 없이 손을 들어 바라보고 있던 방향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키베인은 신음을 흘렸다. 저편에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 데오늬 달비였다. 그녀는 꽃을 한 무더기 무릎에 얹어둔 채 그것 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민첩하게 움직이는 데오늬의 손이 무엇 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것은 나가의 사회에 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었기에 키베인은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 하지 못했다. 하지만 키베인은 그것이 데오늬의 머리 위에 있는 물건과 같은 것이리라 짐작했다.
그때 꽃줄기를 휘던 데오늬가 그들의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 었다. 반가운 표정을 떠올리던 데오늬는 갑자기 자신의 손에 든 것을 떠올리고는 그것을 등 뒤로 와락 숨겼다. 그러고는 다시 고 개를 돌려, 그제야 그들을 발견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머? 안녕하세요. 대수호자님?”
가이쥬와 코노리는 데오늬가 듣지 못하는 폭소를 터뜨렸다. 키 베인은 한숨을 내쉬고 싶은 것을 참으며 데오늬에게 다가갔다.
”예. 달비 부위. 뭐하고 있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수호자님.”
”등 뒤에 뭔가를 감추는 일만 제외하고 말이죠.”
데오늬는 어떻게 그토록 부당한 의심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말 했다.
”제 등 뒤에 뭔가가 있다고 의심하십니까, 대수호자님?”
”예. 아마도 당신 머리 위에 있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 다.”
자신의 머리 위를 만져본 데오늬는 한숨을 내쉬고는 순순히 등 뒤에 숨긴 것을 내놓았다. 그것은 데오늬의 머리 위에 있는 것, 그러니까 ‘가지가 달린 꽃들을 서로 얽어매어 만들어진 둥그스름 한 고리’의 만들다 만 물건이었다. 키베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뭡니까?”
”아스화리탈은 무겁습니다. 대수호자님.”
키베인은 놀라거나 당황하는 대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 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데오늬의 말을 되짚어갔고 두 병사는 숙 련가의 솜씨가 펼쳐지는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 결과로 그들은 아스화리탈이 무겁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알게 되었 다. 데오늬의 말이 ‘이것은 화관이다. 꽃으로 만드는 머리장 식이다.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당신들을 약올리려고 일부러 꺾은 것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무신경한 사람으로 보이 나? 꽃은 원래 꺾여 있던 것들이다. 이렇게 많은 꽃이 한꺼 번에 꺾인 것은 무거운 것이 짓밟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코끼 리보다도 훨씬 큰 것. 나는 그것이 아스화리탈이라고 생각한 다. 아스화리탈은 크고 무겁다.’는 의미임을 알게 된 두 병사 는 긴장하여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 중 가이쥬가 재빨리 닐렀다.
<대수호자님. 아마 정찰병들이 확인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일 단은 빨리 군단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달비 부위. 빨리 군단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 습니다. 아스화리탈이 근처에 있다면 곧 전투가 시작될지도 모릅 니다.”
”알겠습니다. 대수호자님. 그런데… “예?” 데오늬는 미완성의 화관을 들어올렸다.
”아직 완성하지 않았는데요. 대수호자님.”
”당신에겐 머리가 하나잖습니까. 달비 부위. 두 번째 것도 필 요한가요?”
”이건 허물벗기를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드리는 의미로 대장군 께 드릴 것입니다. 대수호자님.”
키베인은 그 생각이 대단히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키보렌의 대수호자는 갈로텍을 곤경의 늪으로 빠트리는 것이 그 다지 점잖지 못하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대나무 군단으로 돌아온 키베인은 데오늬를 만류한 것이 옳은 결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갈로텍은 대단히 분노한 상태였 고 화관 같은 나가에게는 모욕이 될 수도 있는─물건을 점 잖게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기대할 만한 상태는 분명 아니었다. 갈로텍은 대수호자를 보자마자 닐렀다.
<대수호자님. 지금 하텐그라쥬와 북부군 사이에 무슨 일이 일 어나고 있는지 아십니까?>
키베인은 걱정스럽게 닐렀다.
<전투가 벌써 시작되었습니까?>
<그건 분명히 아닙니다. 그걸 전투라고 할 수는 없지요. 하지 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갈로텍의 니름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던 키베인은 대장군의 설명을 기다렸다. 대장군은 무의식 중에 비늘을 부딪치며 닐렀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금 하텐 그라쥬 외곽에는 하늘치가 머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부군은,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허공을 밟으며 차근 차근 하늘치의 등 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예? 하늘치의 등 위라고요? 허공을 밟으며?>
<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정찰병들은 그들이 귀하다 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걸고 그 보고가 사실이라고 맹세하더군 요. 저는 뇌룡공이 하늘치를 정신 억압한 것이 아닌가 하는 황당 한 생각마저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하텐그라쥬에서도 뭔가 심상 찮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찰병들은 하텐그라쥬 방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열폭풍을 보았다고 닐렀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기에 그쪽에서 일어나는 일 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뇌룡공 륜 페이의 가공할 감지 능력 때문에 정찰병들은 어느 정도 이상 북부군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오래 전에 깨달 은 상태였다. 키베인은 갈로텍의 니름을 이해했다. 그는 무서운 기분을 느끼며 닐렀다.
<그들이 설마 하텐그라쥬에 하늘치를 떨어뜨리려는………….>
<그렇다면 그 등 위에 타지는 않을 겁니다.>
대답이 빨랐기 때문에 키베인은 갈로텍 또한 그런 가설을 생각해보았음을 알 수 있었다. 키베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들은 하늘치의 높이를 이용할 생각 인 걸까요?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갈로텍은 무슨 황당한 니름이냐고 되물으려다가 겨우 키베인 이 전쟁 초기부터 참전한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을 떠올렸다.
<대수호자님. 북부군은 투사 무기를 별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 다. 소드락을 복용한 우리가 눈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히는 것 을 목격한 북부군은 이 전쟁 초기에 투사 무기를 이미 포기했습 니다. 따라서 그들 자신의 몸을 던질 작정이 아닌 바에야 그들이 높이를 이용할 생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글쎄요. 왜 올라가는 걸까요?>
갈로텍은 관자놀이 주변의 비늘을 조금 세우며 닐렀다.
<정말 이상한 생각입니다만, 저는 그들이 북부로 돌아갈 아주 기이한 귀환 수단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부로 돌아간다고요? 그렇다면 그들이 벌써 여신을………….>
<아니요. 저는 아직 수력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여신은 그대 로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전쟁을 포기하고 돌아간다는 니름입니까? 여 기까지 와서?>
갈로텍은 잠시 니름을 멈춘 채 키베인을 마주보았다. 그는 내 키지 않는 투로 닐렀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갈로텍의 침중한 니름에 키베인은 덩달아 침중해졌다. 그때 키 베인은 이 대화가 좀 이상한 것임을 깨달았다. 갈로텍에게는 주 퀘도 사르마크라는 짝을 찾기 어려운 참모도 있거니와 대나무 군단의 다른 수호 장군들 또한 갈로텍의 고민에 동참해 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어쨌든 갈로텍은 신명을 봉인당한 수호 장 군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지 않아도 무방하다. 키베인은 갈로 텍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장군님. 그런데 왜 제게 그런 니름을 하는 겁니까? 니르신 내용에 관심이 없다는 니름은 아닙니다만, 사르마크 상장군이나 다른 수호 장군들과 의논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갈로텍은 침울하게 닐렀다.
<대수호자님. 당신은 제 제안에 아직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대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나가들의 목숨을 통제하 는 절대 지도자가 될 용의가 있습니까?>
<그 질문을 지금 하시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기 두렵군요.>
<예.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만약 그럴 용의가 있으시다면 대 나무 군단의 하텐그라쥬 입성은 당신의 지휘 하에 일어나는 일이 어야 합니다. 그 즉시 대수호자님께서는 지도그라쥬와의 인연을 잃게 될 겁니다. 대신 하텐그라쥬의 구원자가 되실 수 있겠지요. 그럴 용의가 없으시다면 하텐그라쥬 입성은 제 지휘 하에 이루어 지는 일입니다. 그 경우 다음 번의 기회를 얻기는 어려울 겁니 다. 제 생각대로 북부군이 귀환하는 거라면 그들은 다시는 똑같 은 일을 재현할 수 없을 겁니다. 물론 그들이 하늘치를 완전히 통제한 것이라면 두 번째 키보렌 침략을 시도할 수 있을지 모르 겠습니다만, 그들은 더 이상 병력을 모을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군대에 의한 하텐그라쥬 공격은 재현되지 않을 거라 판단합니다. 따라서 하텐그라쥬의 구원자가 될 기회는 이것이 마 지막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키베인은 거부감이 자신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감정에 의해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키베인은 갈로텍의 니름 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그때 키베인은 갈로텍의 니름에서 한 사 람의 처신이 축소되거나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베 인은 갈로텍을 바라보며 자신의 귀를 가리켜보였다. 그리고 대수 호자는 육성으로 말했다.
”만약 제가 대나무 군단을 이끌고 위기에 빠진 하텐그라쥬를 구하러 가는 것이라면, 저 뇌룡공에 맞먹는 위대한 수호자 갈로 텍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겁니까?”
갈로텍은 약간 지체한 다음에 대답했다.
”보다 훌륭한 지도자를 인정하고 따르는, 보다 못한 자에게는 쓸모 있는 것임이 분명한 미덕을 발휘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도 대수호자를 잘 보필하는 것이겠지요.”
”그 다음에는? 당신은 전쟁이 이곳에서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 각하는 모양이군요. 당신의 입장은 뭐지요? 이것이 제가 하텐그 라쥬의 구원자가 될 마지막 기회라면, 동시에 당신이 발을 뺄 마 지막 기회이기도 하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것이 전후의 영웅이 되는 것을 모면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까?”
갈로텍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키베인을 바라보았다. 키베인은 그의 판단과는 좀 다른 인물이었다. 갈로텍은 새로운 존경심과 새로운 경계심을 동시에 느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씀하신대로 오늘 이 전쟁이 끝난다면, 전쟁 동안 형성된 나 가 사회의 권력 구조는 그대로 고정되겠지요. 그것을 변화시킬 기회는 오늘이 마지막일 겁니다. 예. 영웅은 몹시 바쁜 존재지요.”
그 자신이 다른 자들에게 이용당하는 영웅이기에 키베인은 갈로텍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전쟁이 갈로텍의 지휘 하에 오늘 끝난다면 또 다른 눈부신 전과를 올려 갈로텍의 위치에 도 전할 만한 경쟁자 같은 것은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갈 로텍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자들의 이용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모든 야심가들이 전후의 나가 사회 재편에서 자신의 유용한 도구로 갈로텍을 노릴 테니까. 키베인은 갈로텍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계획을,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군요.”
”무슨 말씀입니까?”
”이 전쟁 때문에 당신 자신의 계획을 방해받고 있지만, 이왕 맡은 전쟁은 다른 사람을 앞에 내세워서라도 훌륭히 끝낼 생각인 것이군요.”
”저는 대장군입니다.”
”당신의 계획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일입니다. 다만, 대수호자 님. 제 제안을 받아들이실 경우를 가정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경우 저를 북부의 총독으로 임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총독?”
”점령지 사령관, 식민지 총독, 뺏은 땅 지키는 사람입니다. 북 부를 제 관할 하에 둘 수 있도록 해주십사 부탁드리는 겁니다. 저는 북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분명 당신은 이 모든 일을 시작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지 요. 당신은 혹시 북부에서 뭔가를 찾기 위해 이 전쟁을 일으킨 겁니까?”
갈로텍은 키베인을 외면하며 말했다.
”개인적인 일입니다. 제 질문에 대해 대답해 주시는 것에 그것 이 필요하십니까?”
키베인은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별로 고민할 필요는 없는 문제였다. 그의 입장은 극단적인 선택밖에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갈로텍이 자신의 계획 때문에 전후에 벌어질 권력 경 쟁에 참가할 뜻이 별로 없다면 키베인으로서는 갈로텍의 지지를 받는 편이 잔여 수명을 보존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그런 지지를 거부할 경우 그는 야심가들의 사냥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 고 나가 전체의 입장을 보더라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전후의 권력 공백 사태는 무서운 내전을 부를지도 모른다. 나가들에게는 지금 너무도 강력한 힘이 허락되어 있다. 물론 갈로텍은 그런 내 전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키베인의 경우도 그에 못지 않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하텐그 라쥬와 지도그라쥬 양자의 지지를 받는 대수호자이므로. 키베인 은 결정했다.
”제안을 따르겠습니다.”
그것은 미묘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갈로텍은 그 미묘함을 깨달 을 수 있었다. 키베인은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말하는 대신 따 르겠다’고 말했다. 갈로텍은 적절한 대답을 고를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별말씀을. 제가 당장 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만?”
”그렇습니다. 돌아가서 쉬십시오.”
키베인은 갈로텍에게 인사하고 그의 곁을 떠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보라크 군단장과 수호 장군들이 갈로텍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갈로텍이 그들을 어떻게 하여 대수호자의 군대로 만들지 상상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맛이 있기 는 했지만 커다란 흥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키베인은 그보다는 데오늬에 대한 걱정을 느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는 데오늬 는 주위의 어떤 자제력 부족한 나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농후했 다. 그래서 키베인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무수한 나가의 도시들 과 강력한 군대와 유사 이래 어떤 지도자들에게도 주어진 적이 없는 완벽한 지배력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북부군 부위 대나무 군단 포로’인 한 소녀를 걱정하며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