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8장 – 천지척사(天地擲柶) (2)
라수는 한동안 침묵한 채 대수호자를 바라보았다. 가까스로 그의 입이 다시 열렸을 때 그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 리고 있었다.
”내전입니까? 지도그라쥬와 시모그라쥬의?”
”내전은 내전입니다만 형태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칸비야 고소리 의장은 영민한 사람입니다. 의장은 시모그라쥬 의 중립성을 시모그라쥬의 무기로 바꿔놓았습니다. 아마도 향후 삼대까지의 의장이 모두 금과옥조로 삼을 것이 뻔한 그녀의 방침 덕분에 지도그라쥬가 시모그라쥬를 향해 돌멩이 하나라도 던진다 면 무시무시한 반향이 일어날 겁니다. 하지만 시모그라쥬를 곤경 에 빠트리는 방법이 직접적인 공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수는 이해했다. 한계선 이남과 이북의 유일한 소통 장소가 된 시모그라쥬는 그 중개 이익만으로도 감당키 어려울 정도의 치 부를 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한계선 이북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시모그라쥬는 분명히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공격 목표는 신 아라짓이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라수는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도그라쥬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그들은 키보렌의 대수호자를 데리고 있습니다. 하텐그라쥬가 사라진 지금 그들의 권위는 누구에게도 도전받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시모그라쥬의 머리를 눌러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황금은 만능의 사다리입니다. 시모그라쥬는 너무 많은 황금을 쌓고 있습니다. 정복보다는 상업이 훨씬 확실한 돈벌이지요.”
”세금을 거두십시오. 세금이라는 명목이 곤란하다면 대수호자 에게 바치는 선물이나 공물이라고 하면 됩니다. 명목이야 아무래 도 좋습니다. 시모그라쥬의 부를 지도그라쥬로 나눠주십시오. 시 모그라쥬는 안전 보장을 위해 어느 정도의 지출을 할 수 있을 겁 니다.”
키베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내가 시모그라쥬로부터 금편 한 닢만 받는다면 나도 당장 시모그라쥬와 똑같은 대접을 받게 될 겁니다. 대수호자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거야 상관이 없지만 당신들을 위해선 내가 있 는 편이 좋을 텐데요. 만약 내가 물러나고 강성 대수호자가 대두 하게 된다면 전쟁은 반드시 일어날 겁니다. 그들은 하텐그라쥬의 몰락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페로그라쥬와 악타그라쥬의 일 또한 있지요.”
라수는 분에 못 이겨 말했다.
”그들이 그 세 도시를 이야기한다면 저는 북부에서 사라진 도 시를 서른 개라도 댈 수 있습니다.”
”사도 라. 마음의 천칭은 언제나 천칭 주인을 향해 기울게 마련입니다. 그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북부의 완전 정 복 직전에 하텐그라쥬에 일격을 당해 전쟁을 끝내야 했으니 그들 에겐 분한 기억만이 남아 있을 겁니다. 대수호자라는 지위가 종신직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암묵적인 합의 때문입니다. 수호자 의 지위가 종신직이니 대수호자 또한 그러하다는 식이지요. 하지 만 그들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것이 종신직이 아니라고 주장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라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기어코 시모그라쥬를 약올리기 위해, 단지 그런 이유로 우리를 도륙할 거란 말씀입니까?”
”그래서 나는 당신을 만나려고 했던 겁니다. 제안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키베인은 모호하게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문제는 그들이 아직도 여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있 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지는 분명하잖습니까?”
라수는 방어적인 태도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하는 대신, 라수는 다시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키베인은 약간 초조한 기색 을 띄며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날, 하텐그라쥬에서의 그 끔찍했 던 날 이후로 5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수호자들은 여신의 힘을 자유로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카린돌 마케 로우의 몸을 가지고 있지요. 그 몸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리고 거기에 깃들어 있던 여신은?”
라수는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거리의 소음이 조금 전과 전 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