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8장 – 천지척사(天地擲柶) (7)
일출은 바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까마득한 바위는 서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위는 다가오는 일출을 무시한 채 저물어가는 밤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바위의 표면에는 무수히 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많은 글 자들이 훼손되어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문자의 침식이 위 풍당당함의 침식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밤을 바라보는 카시다 암각문은 여전히 고집스럽고 장려해 보였다.
밤에서 걸어나오듯 서쪽에서 다가오는 여행자가 있었다.
여행자는 보다 사막에 어울릴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걸 치고 있는 옷은 사막에서 방풍복이라 불리는 옷이었고 머리에는 커다란 두건을 덮어쓰고 있었다. 그래서 밤의 어둠이 아니라도 여행자의 얼굴을 살펴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듯했다. 긴 거리 를 걸어온 듯 여행자의 옷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하지만 여행 자의 발걸음은 규칙적이었다. 걷는 것에는 상당한 경력이 있 는 듯하다. 카시다 암각문은 무관심한 관심으로 여행자를 바라보 았다. 여행자는 카시다 암각문이 새겨진 바위 앞에서 걸음을 멈 추었다. 여행자는 그곳에서 잠시 다리를 쉴 작정인 듯했다. 이리 저리 주위를 둘러보던 여행자는 곧 마음을 정한 듯 암각문 아래 에 떨어져 있는 바위를 골랐다. 여행자는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두건은 그대로였고 신발을 벗지도 않았다. 여행자는 잠깐 동안만 쉴 작정인 듯했다.
여행자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품속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여행자의 손에 대금이 한 자루 들려졌다. 여행자는 그것을 두건 아래로 가져갔다.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여행자는 노래 한 곡조가 끝날 때까지 쉴 모양이다. 대금 연주 는 썩 훌륭했다. 그때 굼실 넘어온 햇살이 암각문이 새겨진 바위 위로 흘러내렸다. 여행자는 대금을 연주하면서 고개를 조금 돌렸 다. 두건에 가려진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행자가 암각문을 바라보고 있음은 분명했다. 암각문을 바라보던 여행자는 다시 고 개를 돌려 대금 연주에 열중했다.
음악이 멎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여행자는 다시 걸을 준비가 되 었다. 마법 같은 동작이었다. 대금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여행자 는 걸음을 뗐다. 하지만 여행자가 다시 여행을 재개할 작정인 것 같지는 않았다. 여행자는 암각문을 향했다. 바위 앞에 선 여행자 는 암각문의 한 구절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 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미움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움이라는 단어는 새로 새겨진 것이 분명했다. 다른 글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악했다. 여행자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갑자기 허리춤을 뒤졌다. 단검을 꺼내든 여행자는 암살자 같은 동작으로 바위에 다가섰다.
다음 순간 카시다 암각문의 고집스러움은 무참하게 유린당했다. 잠깐 동안의 작업을 마친 여행자는 다시 마법 같은 동작으로 단검을 사라지게 했다. 여행자는 바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 저없이 몸을 돌렸다. 이제야말로 정말 여행을 재개하는 것이 분 명했다. 여행자는 한 번 뒤돌아보는 일도 없이 걸어갔다.
여행자가 멀어지는 것에 비례하여 태양은 높이 솟아올랐다. 바 위 위를 미끄러진 햇살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호기심과 안 타까움을 자극해 왔던 암각문을 완벽하게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 암각문의 한 대목은 지난 밤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곳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