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11)
젖은 머리카락을 머리 뒤로 쓸어 넘기며 케이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케이건의 하얀 숨결이 빠르게 흩어져 갔다. 볼을 타고 내려와 턱에 망울졌다가 가슴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시리도록 서늘했다.
케이건은 세 사람이 기다릴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바위 위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케이건은 자신이 왜 움직이지 않는지 알고 있었다.
케이건은 피에 젖은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기억이 나질 않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케이건의 두 손바닥에서 진득한 핏물이 맴돌이를 일으키다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눈앞에서 대롱거리는 젖은 머리카락에서도 붉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케이건은 오른발로 돌멩이를 걷어찼다. 핏물을 튕겨 올리며 굴러간 돌멩이는 앞쪽의 머리를 때렸다. 머리는 비늘을 곤두세우며 성을 내었지만 케이건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머리가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이 더 케이건의 관심을 끌었다. 그 머리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희들은 항상 그러더군.”
머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케이건을 올려다보았다.
“목이 잘리면 소리를 낼 수 없어. 입이나 성대가 있어도 공기를 밀어내는 폐가 없으면 소용없지.”
머리는 실망과 분노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끄러미 세 개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빨간 물웅덩이 가운데 똑바로 놓여 있는 세 개의 머리는, 마치 붉은 호수에 잠겨 머리를 내밀고 있는 세 명의 나가처럼 보였다. 케이건은 입술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귀찮은 머리카락을 끄집어내며 말했다.
“입 모양을 읽을 수는 있겠지. 말해 봐.”
왜 우리를 죽인 거냐.
케이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머리가 말한 ‘우리’는 케이건이 생각했던 ‘우리’와는 조금 달랐다.
내 아이, 왜 내 아이를.
“아이를 가지고 있었나.”
타오르는 눈빛이 케이건을 쏘아보았다. 케이건은 그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의 공터에는 나가를 이루고 있던 몸의 여러 부분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진 채 내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 케이건은 자신의 업적에 영웅적인 면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 때문에 차갑게 식어 있던 세 명의 나가는 거의 반항다운 반항도 못 했고 케이건은 손쉽게 그녀들을 도륙할 수 있었다.
냉혹한 학살의 증거를 자세히 관찰하던 케이건은 곧 찾던 것을 발견했다. 잘린 허리에서 비어져 나온 둥근 알이 핏물 속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케이건은 몸을 무겁게 일으켰다. 그리고 나가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머리는 묵직했다. 핏물에 젖은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어 들어 올린 케이건은 그것을 하늘을 보게 눕혔다. 잘린 목의 단면을 들여다보며 케이건은 나직이 말했다.
“말해라.”
그리고 케이건은 잘린 목에 입을 가져가 힘껏 숨을 불어넣었다.
“……이게 무슨 짓……!”
나가의 미성(聲)이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가 스스로의 놀라움에 의해 잦아들었다. 케이건은 입을 다시 뗐다. 입 주위는 온통 피범벅이었다.
“내가 잠시 네 폐가 되어주지. 할 말 있으면 해라. 나가.”
케이건은 다시 잘린 목에 입술을 가져갔다. 땅에 놓여 있던 두 개의 머리는 눈을 흡뜬 채 그 기괴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의 입에서 흘러나온 바람이 다시 나가의 목을 통과하며 나가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바뀌었다. 젖은 숲이 풍기는 향은 비릿한 피 내음과 뒤섞여 주위를 맴돌았고 나가의 아름답고 애절한 목소리는 비의 씨실에 짜 넣어진 구슬픈 날실이 되었다.
“이렇게 죽을 수 없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며칠만 있으면, 며칠만 있으면 시모그라쥬에 도착하는 거였는데……. 겨우 며칠 후에. 그리고 내 가족들 품에서……. 아기를 낳는 거야. 내 아기를……. 그런데 어떻게!”
케이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도 없었고, 입을 떼지 않고서는 대답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케이건은 계속 나가의 기도 속으로 호흡을 불어넣었다.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가는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왜? 왜 내가 죽어야 하는 거지? 이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나는 적출을 했어! 수호자들의 가호 아래 심장을 뽑았어! 그런 내가 왜 죽어야 하지? 왜 저 불쌍한 것이 알껍질도 벗어나지도 못 한 채……. 여신이여, 도대체 왜!”
나가의 눈에서 흘러나온 은루가 볼을 타고 흘러내려 그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케이건의 손을 적시고 있었다. 핏물에 젖어 있던 케이건의 붉은 손에 차가운 은빛 광택이 더해졌다. 아름답고 애절하고 무서운, 세상에 하나뿐인 피리.
그 연주자가 취구에서 입을 뗐다.
케이건은 나가의 귀를 자신의 입가로 가져왔다. 피범벅이 된 입술을 나가의 귀로 가져간 케이건은 나직이 속삭였다.
“내 호흡을 빌렸으니, 나도 네 머리를 좀 빌리겠다. 나가.”
나가는 무슨 말인지 되물었지만 케이건이 호흡을 빌려주지 않았기에 그 말은 침묵이 되고 말았다. 케이건은 머리를 바위 위에 올려놓은 다음 유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나가의 허리에 손을 집어넣어 알을 꺼내었다.
큼직한 알은 껍질까지 완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케이건은 그 알을 조심스럽게 다루어 바위 위, 나가의 머리 옆에 세워놓았다. 둥근 알은 잘 서지 않았고, 그래서 케이건은 젖은 흙덩이를 한 움큼 집어들어 알을 고정시켰다. 쏟아지는 비가 알껍질 위의 피를 씻어내었고 바위 위의 알은 하얀 보석처럼 빛났다. 케이건은 나가의 머리를 다시 집어들었다.
“알 속에 있는 네 자식을 만나고 싶겠지.”
케이건은 나가의 머리를 높이 치켜들었다. 케이건이 무슨 짓을 할 작정인지 깨달은 나가는 비명을 내질렀다. 물론 침묵의 비명이었다. 하지만 땅 위에 남아 있던 두 개의 머리는 공포에 질린 니름을 들을 수 있었다. 차마 볼 수 없었던 두 머리는 눈을 감았다.
케이건은 알 위에 나가의 머리를 내려쳤다.
알이 박살나며 피와 난황, 그리고 살점이 빗줄기 속으로 비산했다. 케이건은 다시 머리를 들어 바위를 강타했다.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물과 핏물의 분출이 계속되었다. 쾅, 쾅, 쾅.
세 번 더 내려친 다음 케이건은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가의 두개골이 으스러져 그 얼굴은 괴이하게 일그러졌고 깨진 코로는 뇌수와 피가 흘러나왔다. 케이건은 으깨진 머리를 무심히 집어던진 다음 얼굴에 튄 오물들을 훔쳐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머리로부터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대답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케이건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흥미로운 사색거리가 될 것 같지 않나? 서로 부딪히는 순간에 저 여자는 자기 머리가 깨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을까, 알이 깨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을까.”
무도한 질문에 빗줄기마저 움츠러드는 듯했다. 나가의 머리들은 두 눈 가득 증오를 담은 채 케이건을 노려보았다. 케이건은 엷은 한숨을 내쉬고선 다시 바위에 걸터앉았다.
케이건은 이제껏 길잡이였다. 그리고 길잡이 아닌 다른 것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륜이 요스비에 대한 질문을 하며 ‘친구의 아들, 아버지의 친구’라는 관계를 요구해 왔을 때 케이건은 그것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길잡이라는 역할에 혼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세 명의 나가를 도륙한 지금, 케이건은 더 이상 길잡이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일행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나가 살육자가 된 지금, 케이건은 륜을 보자마자 살해할 것이 분명했다. 케이건은 자신이 그렇게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새벽녘, 비가 그친 고요 속을 날카롭게 가르는 비명을 듣자마자 대피소 밖으로 달려나간 비형과 티나한의 행동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케이건의 부재 때문에 야기된 불안감일 것이다. 놀란 륜이 그들을 따라 나왔을 때 티나한이 그 소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륜은 긴장하며 청력에 주의를 기울였고 바로 그때 또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소리에 대한 반응이 빠른 비형과 티나한이 먼저 달려갔다. 나늬와 함께 조금 늦게 달려가며 륜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케이건일까요?”
“나가라면 소리를 낼 리가 없고, 동물들이 내는 소리는 아냐. 케이건뿐이잖아. 틀림없이 우리 도움이 필요한 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한 것이고.”
티나한은 단호하게 선언했다. 비는 그쳤고 그래서 티나한은 닷새 동안 꼼짝도 못한 것에 대한 분노라도 터뜨리듯이 빠르게 달렸다. 그 뒤를 따라 비형과 나늬가 달려갔고 륜이 제일 뒤처졌다. 묘하게도 비명은 계속 멀어지고 있었다. 불안에 빠진 일행은 체온을 높이지 말라는 케이건의 경고도 잊어버린 채 마구 달렸다. 갑자기 숲이 사라졌다.
일행은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도시가 달빛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비형은 당황했다.
“나, 나가의 도시입니까?”
“잠깐만. 무슨 도시가 이래? 불이 없잖아.”
“나가들의 도시엔 불이 없어요! 밤에도 볼 수 있으니까. 몰라요?”
비형과 티나한이 그런 식으로 당황하여 떠들어 댈 때 조금 늦게 도착한 륜이 말했다.
“우리들의 도시에 불이 별로 없긴 하지만 이건 우리 도시가 아닙니다. 심장탑이 없군요.”
“심장탑?”
“예. 나가의 도시라면 반드시 심장탑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나가의 도시였다면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심장탑을 볼 수 있어야 했을 겁니다. 이건 폐허 같은데요.”
티나한과 비형은 다시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륜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넓은 도시였다. 세 사람 모두 자신들이 도시의 일부밖에 보지 못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모두 무너지거나 금이 가 있었다. 땅에는 원래 포석이 깔려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것들은 지금 국냄비 속을 떠다니는 건더기들처럼 질서 없이 땅 위로 비죽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곳곳에 자라난 잡초들은 늙은 도시의 볼품없는 수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위용만은 대단했다. 이 도시의 건설자들은 자신들의 도시가 경의의 대상이 되길 원했던 것 같다. 거대한 건물들과 피라미드, 늘어선 기둥들, 기념비들, 그 뒤편의 건물이 무너져 마치 하늘로 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계단들. 그 모든 것들이 달빛 속에서 육중한 그림자로 드러나고 있었다.
모두들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티나한이 거대한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티나한이 고함을 지르며 손짓했고 그러자 륜도 긴장하여 외쳤다.
“더운 생물입니다!”
륜이 본 것은 뜨거운 체온을 가진 사람 모양의 모습이었다. 더 자세히 보려 했을 때 그 체온은 피라미드 안으로 사라졌다. 세 사람은 다급히 피라미드를 향해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비형이 말했다.
“자세히 봤어요? 케이건입니까?”
“사람 모양이었고 더운 생물이었습니다. 뜨거웠으니 절대로 나가는 아니에요. 케이건이 확실합니다.”
가까이 다가섰을 때 일행은 피라미드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돌이 아닌 건물을 쌓아 만든 피라미드였다. 구단짜리 피라미드의 높이는 거의 100미터에 가까웠지만 워낙 넓은 면적 때문에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다. 각 단의 수평면은 그대로 도로였고 수직면은 줄줄이 늘어선 문과 창문들이었다. 그리고 각 단과 단을 연결하는 계단이나 경사 도로들이 곳곳에 있었다. 마치 산의 경사면들을 따라 건설된 도시처럼 보였지만, 엄연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였다. 도시 속의 또 다른 도시처럼 보이는 그 피라미드를 보며 일행은 기막혀 했다.
계단이나 경사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판단을 내린 비형은 륜을 나늬에 태웠다. 티나한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한 단의 높이가 10미터나 되는 피라미드를 계단이나 되는 것처럼 뛰어올랐다. 티나한은 여덟 번의 도약 만에 최상층에 도달했고 그 뒤를 이어 딱정벌레에 탄 비형과 륜도 도달했다.
피라미드의 최상층은 대규모의 저택이었다. 보랏빛 밤하늘과 달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는 저택의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기분을 느꼈고, 주춤거리는 일행을 보며 다른 사람들도 그런 기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티나한이 언짢은 표정으로 외쳤다.
“케이건!”
어두운 저택은 티나한의 고함 소리를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은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저택 안에서 다시 비명 같은 것이 들려왔다.
세 사람은 저택 안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