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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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3)


키보렌은 나가에 의해 조성된 나가를 위한 땅이며, 난생 처음 야외로 나온 나가조차도 키보렌에서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륜은 약간의 시행착오 후에 자신이 먹은 음식물로써 지탱할 수 있는 나날들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가가 어느 정도의 생물까지 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큰개미핥기를 삼켜야 했을 때 륜은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정찰대에 대한 공포와, 무엇보다도 화리트의 유언 때문에 륜은 잠시도 멈출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큰개미핥기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륜은 큰개미핥기의 조그마한 입을 보며 그것이 크게 위험하지 않은 동물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 거대한 곤충 포식자는 그 식습관과 달리 사나운 동물이다. 륜의 예상대로 큰개미핥기는 륜을 물어뜯지는 않았다. 이빨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미집을 파헤치는 그 앞발의 발톱은 다른 맹수의 이빨만큼이나 무서운 무기다. 륜은 하마터면 허벅지가 찢어질 뻔한 위기를 겪으면서 가까스로 사이커를 휘두를 수 있었다.

큰개미핥기가 죽은 다음 륜은 자신의 두 번째 실수를 알게 되었다. 큰개미핥기는 숲의 동물들 중 그 재미있는 생김새로만이 아니라 지독한 악취로도 유명한 동물이다. 굶주림 때문에 륜은 모진 결심을 했다. 륜은 늘어진 큰개미핥기를 머리부터 삼키기 시작했다. 턱이 찢어질 듯 아팠고 개미핥기의 뻣뻣한 털들은 목구멍을 사정없이 찔렀다. 또한 악취 때문에 거의 질식할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륜은 끝내 큰개미핥기를 삼킬 수 있었다. 엄청나게 늘어난 몸 때문에 잠시 동안 걷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했지만, 그 거대한 동물을 삼킨 덕분에 륜은 엿새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엿새 동안 계속해서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륜은 자신 또한 다른 나가에게 ‘삼켜질’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납득했다.

변온 동물은 주위의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한다. 하지만 변온 동물의 체온이 주위의 온도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격렬한 움직임 후에는 변온 동물도 주위의 온도보다 약간 높은 체온을 띠게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박동하는 심장은 일정한 열을 발산한다. 쉼 없이 걷고 있으며 또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 륜은 나가의 시각으로 볼 때 환할 정도로 빛을 내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릴 때마다 륜은 소스라치며 가슴을 가렸고 물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편향적으로 진흙을 몸에 발랐다. 피와 이끼, 진흙 등이 엉겨 붙은 입 주위로 파리들이 끝없이 날아들었지만 륜은 감히 몸을 씻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습격자는 륜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그를 포착했다.

원숭이들이 따라붙기 시작했을 때 륜은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거의 대부분의 야생 동물은 육식성 맹수라 할 수 있는 나가를 피하게 마련이다. 처음 한두 마리가 나무 위에서 그를 노려볼 때만 해도 륜은 자신이 원숭이의 영역권에 들어왔는가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자 원숭이들은 그를 따라 움직였다. 한두 마리였던 원숭이들은 차츰 불어났고, 몇 시간 후 륜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난 원숭이를 보게 되었다. 나무 위로만 뛰어다니던 원숭이들도 숫자가 불어나자 대담해졌는지 그중 몇몇은 땅으로 내려오기까지 했다. 륜은 사이커를 뽑아 위협적으로 휘둘렀지만 원숭이들은 달아나는 대신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륜이 발걸음을 옮기자 다시 원숭이들은 그 뒤를 뒤따랐다.

마침내 륜은 제자리에 멈춰서서 원숭이들을 향해 난폭하게 고함을 질렀다. 륜이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원숭이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륜은 당황하며 원숭이들을 바라보았다. 원숭이들은 나무 위와 땅 위에서 여전히 차갑고 위협적인 눈초리로 륜을 바라보았다. 그중 도망치거나, 하다못해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는 녀석은 한 마리도 없었다. 륜은 이 황당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잠시 후 수풀을 헤치며 나가 정찰대원들이 나타났을 때 륜은 공포를 느끼긴 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정찰대원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륜은 사이커를 왼손에 바꿔 든 다음 그것을 등 뒤로 돌린 채 정찰대원들을 응시했다. 정찰대원들은 륜을 보며 대단히 놀라는 기색이었다.

<나가잖아? 그런데, 심장이?>

륜은 도망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정찰대원들은 도시에서 보던 나가들과 전혀 다른 존재들처럼 보였다. 그녀들에겐 나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차가움이 많이 결여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눈을 들여다본 륜은 생각을 바꿨다. 정찰대원들에게 냉혹함은 길이 잘 든 도구처럼 소중히 갈무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정찰대원들은 아무런 의사 교환 없이도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원숭이들에 의해 륜의 퇴로가 막혀 있기 때문인지 곧장 달려들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서로 정신을 나눴다.

<비에나가로군. 병신이야.>

<귀엽게 생겼는데.>

<저 꼬락서니가 귀엽다고? 남자면 다 귀엽게 보인다는 것이겠지?>

여자들은 농담을 나누며 한가롭기까지 한 태도로 륜을 관찰했다. 륜은 전력을 기울여 정신을 폐쇄하면서 동시에 필사적으로 누가 원숭이들의 억압자인지를 살폈다. 그동안에도 여자들은 느긋하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때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여자가 귀찮다는 듯이 닐렀다.

<시끄러워, 이것들아. 숲속을 너무 오래 돌아다녔더니 모두 제정신이 아니군. 병신을 가지고 뭐하려고?>

<그래도 가지고 놀 수야 있잖아. 잠깐만. 이봐. 니를 줄 알아?>

륜은 사이커를 꽉 움켜쥐며 조심스럽게 닐렀다.

<할 줄 알아요.>

여자들은 감탄했다.

<와, 닐렀어! 완전히 병신은 아닌가 본데?>

하지만 우두머리는 더 피곤하다는 듯이 닐렀다.

<그럼 미친놈이겠지. 그냥 죽여.>

<아깝잖아. 대장. 허물 세 번 벗을 동안 남자라곤 구경도 못 했어. 좀 미친 거야 어때. 어차피>

그녀는 자기 머리를 가리켜 보였다.

<이건 남자에겐 별 쓸모도 없는 거잖아. 아래쪽에 있는 게 중요하지. 그리고 머리가 빈 남자가 그건 쓸만하다던데?>

여자들은 다시 정신적 홍소를 터뜨렸고 대장이라 불린 여자도 쓴웃음을 지었다. 륜은 참기 어려운 기분을 느끼며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뜻대로 되진 않을 겁니다!>

륜은 위협적으로 사이커를 내뻗었지만 여자들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들은 반항하는 것이 더 귀엽다느니 하며 낄낄거렸다. 하지만 대장은 이를 드러내며 한 여자를 돌아보았다.

<저건 좀 따갑겠는걸. 수디, 저거 치우게 해. 가지고 놀더라도 가시는 제거한 다음에………….>

그 순간 륜은 행동을 개시했다.

왼손에 쥔 사이커에 여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면서, 륜은 뒤로 돌린 오른손으로 배낭 속의 알약을 꺼내어 든 상태였다. 대장이 수디라는 여인을 돌아본 순간 륜은 그녀가 억압자인 것을 직감하며 오른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륜이 알약을 삼킬 때까지도 여인들은 륜이 울음을 터뜨리는 줄 착각하고는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륜이 땅을 박찼을 때 그녀들의 미소는 싹 사라졌다. 그리고 륜 또한 소드락의 효과에 경악했다.

주관 시간이 끔찍하게 가속되는 순간 륜은 대단히 느린 춤을 추는 것 같은 여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정찰대원들은 륜이 너무 빨랐기에, 그리고 그녀들 가운데로 뛰어들었기에 륜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다. 느린 객관 시간 속에 있는 그녀들이 발산하는 기괴한 니름에 전율하면서 륜은 대장의 다리를 벤 다음 수디의 등 뒤로 돌아갔다. 륜이 두 손으로 쥔 사이커의 칼자루로 힘껏 수디의 뒤통수를 때릴 때까지도 수디는 채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리고 륜이 칼을 다시 꽂은 다음 100미터 이상 도망쳤을 때 비로소 수디의 몸이 땅 위에 쓰러졌다.

가속된 움직임으로 있는 힘껏 때렸기 때문에 수디는 곧장 기절했다. 그리고 륜이 기대하던 대로의 일이 일어났다. 정신 억압에서 갑자기 풀려난 원숭이들이 일대 소동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원숭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쳤고 그 뜨거운 체온들의 격류 때문에 정찰대원들은 륜의 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설령 륜의 모습을 포착했다 하더라도 그녀들이 륜을 따라잡긴 어려웠을 것이다. 소드락의 지속 시간 동안 륜은 계속 달렸고, 마침내 17분이 지났을 때는 2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륜은 요란하게 구토했다.

소드락의 후유증과 격렬한 움직임 때문에 륜의 체온은 대단히 상승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륜 주위의 공기들 또한 달궈졌고 그래서 륜의 눈에 들어오는 숲의 모습은 나가의 니름으로서만 표현될 수 있는 묘한 빛깔을 띠게 되었다. 세상은 분홍색에 가까운 번득임, 스며듦, 되튀김, 그리고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나무들은 보랏빛과 주홍색에 가까운 색깔로 타오르고 있었고 그의 토사물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빛깔로 춤추는 소용돌이였다.

개미핥기의 시체가 통째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독한 구토를 한 끝에, 륜은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륜은 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괴이하게 생긴 땅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땅은 검고 평평했으며 대리석처럼 매끈했다. 그리고 대리석만큼이나 딱딱하게 보였다. 하지만 륜은 그 땅이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검은 땅 어디에도 나무는 없었다. 대신 륜은 검은 지표면 아래로 어슴푸레하게 비치는 불꽃들을 보았다. 륜은 일어나 앉아서 그 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검은 땅은 초점을 맞춰 보기 어려웠고 그 아래에서 얼비치는 불빛들은 더욱더 집중하여 보기 어려웠다. 자신이 어떤 알려지지 않은 신의 땅이나 금단의 마법이 남아 있는 땅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억측을 해보며 륜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발걸음을 떼면서 륜은 관절을 타고 흐르는 충격에 신음했다. 소드락의 가속 효과 때문에 륜의 몸은 지독히 혹사당한 상태였다. 다음 발을 더 조심스럽게 내딛고, 그리고 한 발자국 더 걸어갔을 때 륜은 검은 땅 바로 앞에 서게 되었다.

륜은 발 바로 앞에 있는 검은 땅을 바라보았지만 도무지 초점을 맞출 수 없는 것은 여전했다. 륜은 무릎을 꿇은 다음, 멍청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며 그 땅을 만져보았다.

그리고 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룬 강이었다. 륜은 거대한 물과 그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고 있었다. 륜은 미소를 지으며 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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