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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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8)


물론 비형에게는 딱정벌레의 체온이 나가의 눈에 어느 정도로 보일지 짐작할 방도가 없었다. 무익한 추론을 계속하는 대신, 비형은 온갖 온도의 도깨비불을 만들어내었다. 그러자 도깨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비형은 그만 도깨비불을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에 심취해 버린 것이다.

하늘 저쪽에서 딱정벌레, 풍뎅이, 사슴벌레, 그리고 하늘소라 짐작되는, 그러나 상식적으로 존재할 수도 없는 형태의 추상적인 도깨비불을 만들어내며 즐겁게 날아다니던 비형은 티나한의 단말마에 겨우 예술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관심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현실 세계를 직시하게 된 예술가가 흔히 그러하듯 비형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형은 마음속으로 티나한과 케이건에게 사과하며 지금껏 만들어낸 예술품 전부와 함께 사모에게로 돌격했다.

‘오늘 이곳 무룬 강은 상식 파괴의 향연장이로군.’

눈을 부릅뜬 채 하늘을 쏘아보며 케이건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늘 한쪽을 완전히 뒤덮은 채 4미터에서 12미터까지 이르는 온갖 크기의 불꽃의 딱정벌레들이 불꽃의 도깨비 기수들을 태운 채 유성우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현란함에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광경이었지만, 케이건은 어렵지 않게 비형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동시에 케이건은 왕독수리 위의 나가는 절대로 비형을 찾아내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냉철한 이성으로 그것이 도깨비불이라는 것을 어렵잖게 판단했지만, 사모는 그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의 당황은 왕독수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졌고 그러자 왕독수리의 비행이 눈에 띄게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사모에게 더욱 좋지 않았던 것은, 강변에서 멀찍이 떨어진 티나한이 수모를 입은 전사가 당연히 취해야 할 행동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티나한의 보복은 하늘에 숲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티나한은 울분을 그런 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듯이 닥치는 대로 나무를 뽑아서 집어던졌다.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은 둘째 치더라도, 사모는 나무들이 그런 무지한 피해를 당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마침내 사모는 왕독수리의 내면을 향해 강력한 ‘개념’과 ‘의지’를 쏘아 보냈다.

왕독수리는 기류를 타고 높이 솟아올랐다. 지평선이 발아래로 쑥 내려가고 땅이 어떤 무가치한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고도에 도달했을 때 사모는 고개를 돌려 저 아래에 푸른 뱀처럼 꿈틀거리는 무룬 강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강물 위를 방황하는 도깨비불들은 이 까마득한 높이에서 반딧불이들의 군무처럼 보였다.

그리고 사모는 자신이 암살에 실패한 것에 대해 화를 내어야 할지 안도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륜.’

동생의 이름을 불렀을 때 사모는 나가 살육자가 말했던 다른 이름도 떠올렸다. 사모는 그 이름의 소유자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죽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모가 그 자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사모의 감정은 순수한 당혹뿐이었다.

‘요스비. 당신 이름이 왜 자꾸 거론되는 거지?’

차가운 몸에 햇살이 스며들길 한참, 마침내 륜은 온기 속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곧 그 사실을 후회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괴물 같은 세 명의 불신자의 얼굴이었다. 물고기처럼 미끈미끈한 인간의 얼굴과 붉은 과일을 연상시키는 도깨비의 우둘투둘한 얼굴, 그리고 깃털이 부숭부숭 덮인 레콘의 얼굴. 공포에 질린 륜이 눈을 부릅떴을 때 그들 중 도깨비가 입을 여닫았다. 륜은 비명을 질렀다.

<살려줘! 나를 잡아먹지 마!>

륜의 탓할 수 없는 오해였다. 말을 하는 기행을 저지르곤 했던 륜이었지만 그 또한 나가였고 아직 입의 움직임과 소리라는 것의 관계를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는 없었다. 륜은 황급히 자신의 허리를 더듬었다. 하지만 사이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인간이 손을 들어 륜의 주의를 끌었다. 인간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과 귀를 번갈아 가리켰다. 륜은 그 의미를 깨달았다.

청각에 주의를 집중시키자 마침내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리나? 들리면 대답을 해. 니르지 말고 말로.”

“들립니다.”

도깨비가 경탄하며 외쳤다.

“목소리가 참 아름답군요! 왜 그 좋은 목소리를 쓰지 않는 겁니까?”

“우리는 니를 수 있어서…………, 그런데 당신들은 나를 해칠 작정입니까?”

인간과 도깨비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인간이 다시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노래를 부르지 않았나?”

륜은 그제야 화리트가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륜은 안도하며 서서히 일어났다.

“당신들이 그 세 명의 불신자군요. 저를 대사원으로 데려다줄.”

일어나 앉은 륜은 자신이 햇빛이 잘 드는 강변의 바위 위에 눕혀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가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도깨비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허!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멋진 목소리인데요. 나는 비형 스라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니른다는 건 무슨 말이죠?”

“우리들이 의사를 나누는 방식을 니르는, 아니, 말하는 겁니다.”

륜은 힘들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인간이 손에 든 것을 앞으로 내보였다. 륜은 그것이 자신의 사이커임을 알고는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인간은 사이커를 도로 끌어당겼다. 륜이 놀라서 쳐다보자 인간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케이건 드라카다. 그런데 너는 누구냐?”

“예?”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왜 요스비의 사이커를 가지고 있는 거지?”

륜이 깨어나기 전, 양지 바른 곳에 똑바로 누운 륜을 자세히 관찰한 케이건은 그 나가가 요스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아해진 케이건은 륜의 사이커를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그것은 요스비의 사이커가 분명했고, 그래서 케이건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륜 또한 혼란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껏 요스비의 이름을 육성으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저는 륜 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커는 제 아버님의 것인데요? 제 아버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륜은 깨달았다. 륜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요스비, 요스비입니다! 맞아, 그렇게 발음하는군! 이럴 수가. 육성으론 처음 발음해 보는군요.”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육성으로 처음 발음했다는 것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케이건은 륜이 말한 다른 단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버지라고? 나가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무슨 말이냐?”

“당신, 우리에 대해 대단히 많이 아는군요?”

“질문에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버지라는 것은 무슨 뜻이지?”

“저를 만들어 준 남자죠. 당신들이 사용하는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나가는 아버지라는 것을 믿지 않아. 어차피 난혼이라서 아버지가 누군지 알기도 어렵지만, 그보다는 남자가 주는 것은 어머니가 먹고 마신 모든 것들과 같이 재료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너희들은 어머니만 인정해. 내가 말한 것 중 사실과 다른 것이 있나. 륜 페이?”

륜은 놀라움 속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 말이 다 맞습니다.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군요.”

티나한과 비형은 다시 감탄하며 케이건을 바라보았지만 케이건은 우쭐해하거나 미소 한 번도 짓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네가 왜 아버지라는 말을 사용하는 건지 설명해 주겠나?”

“그 전에 당신이 어떻게 요스비를 아시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의 왼팔을 나눠 먹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륜은 경악했다. 티나한과 비형 또한 놀란 눈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륜은 잘 나오지 않는 육성을 억지로 쥐어짰다.

“뭐라고…… 했습니까?”

“요스비의 왼팔을 나눠 먹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잘랐고, 내가 요리했지.”

륜은 괴성을 지른 다음 졸도해 버렸다.

케이건은 탐탁잖은 표정을 한 채 기절한 륜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괴괴한 침묵 후에 비형이 질린 얼굴로 말했다.

“지금 나눈 이야기가 다 무슨 말이죠?”

“이 친구는 내가 알던 나가의 아들인가 보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군. 일반적으로 나가들은 부자 관계를 모르오. 그런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 같은 미개한 불신자들이나 믿는 비논리적인 미신 정도로 취급하지. 그래서 나는 이 친구의 말을 믿기 어렵소.”

“아니, 그것 말고요. 왼팔을…… 나눠 먹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죠?”

케이건은 비형을, 그리고 티나한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비형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다른 말을 꺼내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소. 불을 본 나가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거요. 빨리 갑시다. 티나한. 괜찮다면 이 나가를 좀 업어 주시오.”

비형은 대답을 피하는 케이건에게 불만을 느꼈지만 케이건의 지적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가 하늘에 만들어 보인 딱정벌레들은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였을 것이다. 티나한은 혼절한 륜을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 나서 일행은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 있지 않아 해가 졌다. 하지만 케이건은 멈춰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보름달이 뜨는 것을 확인한 케이건은 밤에도 계속 걸을 것을 요구했다. 케이건은 그들이 쫓아버렸던 정신 억압자가 되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 나가는 쇼자인테쉬크톨이라는 말을 거론했고, 케이건이 아는 바에 따르면 쇼자인테쉬크톨은 절대로 중단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쉬크톨은 반드시 륜이 있는 곳을 찾아낼 것이다. 그래서 케이건은 나가들의 활동이 느려지는 밤 동안 거리를 더 벌려 두길 원했다. 케이건의 설명을 들은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며 동의했다.

기묘한 밤이었다.

응결되어 흘러내리는 수증기는 열대의 밀림이 흘리는 식은땀이었다. 보름달은 그들의 앞길을 밝혀 주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뒤엉킨 가지들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달빛은 질량을 가진 무거운 모래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원근의 사악한 자리바꿈들. 발아래는 때로는 땅이었고 때로는 쌓인 나뭇잎이었고 때론 늪이었다. 늪지대의 허공을 맴도는 광기 어린 불빛들은 일행의 소음 때문에 더욱 괴상한 춤을 추었다. 철벅거리는 소리, 턱에 차는 호흡 소리, 다급한 발소리. 때론 발길에 채인 돌멩이가 나무에 부딪혀 소름 끼칠 정도의 굉음을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보다 단단하고 차가운 북방의 나무라면 낼 리가 없는 소리였건만 이 밀림 속의 어떤 나무들이 내는 소리는 섬뜩하리만큼 생물의 비명을 닮아 있었다.

륜이 깨어난 것은 새벽녘이었다. 잠깐 동안 륜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세상이 너무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자신의 자세나 위치 또한 낯설었다. 자신이 거대한 레콘의 어깨 위에 얹혀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정신을 차리고도 한참 후였다.

륜은 내려 달라고 외쳤지만 티나한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레콘이 자신의 니름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상기해 낸 륜은 말을 했다.

“내려줘요.”

티나한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앞서 걸어가던 비형과 나늬, 케이건도 들었다. 케이건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일행을 멈춰 서게 했다. 땅에 서게 된 륜은 그것만으로도 혼란이 많이 사라진 기분을 느꼈다. 륜은 이제 긴 여정 동안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미소 정도는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륜의 미소는 다가오는 케이건의 모습을 보자마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티나한과 비형은 기대감과 불안이 뒤섞인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케이건 드라카라고 했습니까?”

“그렇다. 륜 페이. 네가 정말 요스비의 아들이냐?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륜은 분노 속에서 말했다.

“제 사이커가 증거입니다. 그 사이커를 가지고 있던 분께서 제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요스비가 직접 닐러 줬다는 거냐?”

“예.”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아는 요스비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논리적인 나가였다. 내가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왼팔을 잘라 먹였을 만큼.”

륜의 눈이 커졌다. 비형과 티나한은 전율하면서도 케이건의 설명에 빠져들었다.

“감수성 예민한 얼간이들이 그 행동을 가리켜 고귀한 자비심이나 위대한 희생 정신이라고 환호를 보내었다면 그것은 요스비를 화나게 했을 것이다. 요스비가 왼팔을 자르기로 결정한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관점에서였다. 세 가지 이유에서 그는 그렇게 했다. 그가 오른손잡이였고, 두 다리는 걷기 위해 필요했고, 나가의 팔은 언젠가는 재생된다는 것. 요스비에겐 그것으로 충분했고 그래서 주저 없이 왼팔을 잘랐다. 요스비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팔이 재생된다 하더라도 내가 그럴 수 있을지 의문스럽군.”

륜은 자신도 의문스럽다고 생각했다. 케이건은 준엄하게 말했다.

“그래서 요스비가 그런 미신을 닐렀을 리는 없는 것 같다. 륜 페이. 나가에게 아버지라는 것은 미신이야.”

“하지만 당신께서 그렇게 니르셨습니다. 저도 그 니름을 믿고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륜은 노하여 외쳤다.

“그렇다면 그렇게 논리적이셨던 아버님께서 왜 인간 따위에게 당신의 왼팔을 잘라 주셨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거야말로 미신적이고 비논리적인 일 아닙니까? 도대체 제 아버님과 당신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당신은 우리 아버님에게 있어 무엇이었습니까?”

케이건은 이맛살을 찌푸린 채 륜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은 꽉 닫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케이건은 허리춤에 꽂아 두었던 사이커를 뽑아 들었다. 케이건은 그것을 륜에게 내밀었고 륜은 받아들었다. 케이건은 지친 어조로 말했다.

“말할 의무가 없다.”

“예?”

“말할 의무가 없어. 내가 한 말은 다 잊어라. 너도 내게 말해 줄 필요 없다. 나는 여전히 요스비가 부자 관계라는 것을 인정했다고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네가 요스비의 아들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일이겠지.”

“잠깐만요! 당신은 그렇게 그만두고 싶더라도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과 아버님은 무슨 관계였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

케이건은 몸을 돌렸다. 륜은 다급하게 외쳤다.

“다른 사람 같은 건 없어요! 당신이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 이외에 아버님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저를 죽이기 위해…”

륜의 말을 무시하며 걷던 케이건은 문득 이상한 것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그리고 케이건은 놀랐다. 륜은 무서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륜! 왜 그러나?”

비형과 티나한도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하지만 륜은 몸을 떨 뿐 대답하지 못했다. 케이건은 그의 어깨를 힘껏 붙잡아 누른 채 잠자코 기다렸다. 비형과 티나한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을 때까지도 륜은 입을 열지 못했다. 사실 그는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지만.

<제 누님이 저를 죽이려 합니다! 제 누님이 저를 죽이려 합니다!>

륜은 격렬하게 외쳤다. 하지만 케이건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다가선 도깨비와 레콘 역시 바보처럼 어리둥절해했다. 륜은 분노를 삼키며 외쳤지만 그들, 그 괴물 같은 세 개의 얼굴은 아무런 반응도 보여 주지 않았다. 미칠 것 같은 분노 속에서 륜은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가 저를 죽이려 합니……”

“죽이려 한다? 그 정신 억압자? 아아. 그렇잖아도 그것을 물어볼까 했었다. 남자에게 무슨 쇼자인테쉬크톨이라는 거지? 무슨 오해가 생긴 건가?”

륜은 정신적 비명을 질렀다.

<맙소사, 그런 문제가 아냐! 사소한 오해,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거나 짜증스러워할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사모 페이가 나를 죽이려 하는 거란 니름이야!>

하지만 그의 맹렬한 니름은 케이건과 비형, 티나한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그들 세 사람은 설명을 기다린다는 듯이 륜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더 참을 수 없었던 륜은 거칠게 몸부림치며 그의 니름을 듣지 못하는 인간을 왈칵 떠밀었다. 밀려난 케이건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이러는 거야?”

기가 막힌다는 듯이 케이건을 바라보던 륜의 입이 가까스로 열렸다.

“그 여자는 제 누님입니다!”

“엑? 누나가 당신을 죽이려 한 겁니까?”

비형이 깜짝 놀라서 외쳤고 티나한 역시 놀란 듯이 어깨 깃털을 불쑥 세워 보였다. 하지만 케이건은 놀라지 않았다.

“쇼자인테쉬크톨이라면 그 쉬크톨의 암살자는 네 친족이겠지. 하지만 너는 남자잖아. 적출식을 끝냈다면 그 여자는 네 누나가 아냐. 아니, 방문할 수도 없으니 남보다 더한 남이지. 도대체 어떤 오해가…….”

“적출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륜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심장 부위를 덮듯이 하며 말했다.

“적출하지 않았어요. 저는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케이건도 다른 두 사람과 놀라움을 공유할 수 있었다. 케이건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경악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적출하지 않았다고?”

“예. 적출식에서 도망쳤습니다. 도망치기 전에 저는………….”

그리고 륜은 화리트의 이야기를 하려 했다. 하지만 케이건은 거칠게 손을 내저어 륜의 말을 막았다.

“적출하지 않았다는 거냐?”

륜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가도 아닌 케이건이 왜 적출하지 않았다는 말에 신경 쓰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곧 설명했다.

“나는 당연히 네가 적출했을 줄 알고 마음 놓고 물에 던진 거란 말이다. 설마 익사할 리는 없을 테니까.”

“예……. 그러고 보니 죽을 뻔했군요.”

케이건은 고개를 돌려 비형을 바라보았다.

“비형. 륜을 데리고 곧장 대사원으로 날아가시오.”

“예?”

“당신 딱정벌레에 이 친구를 태워서 날아가시오. 천천히 걸어 돌아갈 여유가 없소. 나는 이 친구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고 있지 않았소. 최악의 경우 머리와 몸 정도만 가져가도 임무가 성공한 거라 생각하고 있었소. 보호 대상이 잘 죽지도 않는 나가였을 때의 장점이지.”

비형은 소름 끼친다는 표정을 지었고 티나한은 부리를 쩍 벌렸다. 케이건은 계속 설명했다.

“하지만 심장을 적출하지 않았다면 그런 식은 안 되오. 게다가 땅끝까지라도 이 친구를 추적하기로 맹세한 암살자까지 붙어 있소. 도저히 여유를 부릴 수 없소.”

“하지만 당신은 어쩌실 겁니까? 그리고 티나한은?”

“우리 둘은 천천히 따라가면 되오.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은 륜이지 우리가 아니오.”

비형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곤란합니다. 셋만이 하나를 상대한다고 하잖습니까?”

“지금 그런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오. 비형.”

“하지만 대사원의 스님들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우리들을 선택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정확했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요. 그러니 돌아갈 때도 셋이 함께여야 될 거라 생각되는데요. 만약 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딱정벌레에 저를 태워 이곳으로 보냈을 겁니다. 그렇잖습니까? 그냥 날아와서 륜을 태운 다음 돌아가면 훨씬 간단명료하지 않습니까?”

케이건은 비형의 반론을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곧 비형은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계획은 위험합니다. 왕독수리를 정신 억압할 수 있는 나가가 한 명뿐일 리는 없잖습니까? 하늘을 날아가는 저와 륜을 보고 참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찬사를 보낼 또 다른 정신 억압자가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케이건은 비형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케이건은 륜에게 질문했고 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누님처럼 약한 능력으로도 할 수 있으니, 좀 더 강한 정신 억압력을 가진 나가라면 쉽게 왕독수리를 억압할 수 있겠지요.”

“약한!”

티나한이 비명처럼 외쳤다.

“이런, 얼어 죽을. 그 큰 왕독수리를 마음대로 다루는 걸 약하다고 말하는 거야?”

“왕독수리를 타는 건 균형 감각이나 힘 같은 것의 문제입니다. 당신이 그런 육체적 능력들에 놀란 것이라면, 예. 누님은 화로를 식힐 만한 역량을 보여 주셨지요. 하지만 정신 억압의 경우엔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독수리는 그다지 지혜로운 생물이 못 되니까요. 원숭이를 억압한다면 대단한 일이겠지만 왕독수리라면 쥐나 마찬가지입니다.”

“쥐?”

“누님은 보통 식탁에 올릴 쥐를 마비시키는 데 그 능력을 사용하곤 했지요. 약한 능력이지만, 우아하게 사용하신 거죠.”

사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륜은 다시 가슴이 저릿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쥐의 힘줄을 끊어 식탁에 올리는 다른 가문의 사육사들과 달리 사모는 가벼운 정신 억압으로 깔끔한 식사를 가능하게 했다. 사모의 정갈한 솜씨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는 바람에 륜은 비형과 티나한이 속이 거북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런 거부 반응이 없는 케이건은 다른 것에 관심을 느꼈다.

“누나를 좋아하는가 보군.”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진심이라.”

“네?”

케이건은 고개를 돌려 륜을 외면했다.

“네 아버지는 진심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심장이 없는 나가가 진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습다는 것이 요스비의 설명이었지.”

륜이 당황하여 얼굴을 일그러뜨렸을 때 케이건은 덧붙이듯 말했다.

“하지만 심장을 가진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색할 것이 없는 것 같군.”

륜은 자신의 가슴을 쓸어 만지며 다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밀림을 휙 둘러본 다음 말했다.

“날 수 없다면 걸어야지. 어젯밤엔 많이 걸었으니 잠시 쉬었다가 출발하도록 합시다. 내가 먼저 불침번을 서겠소.”

륜이 다시 말하려 했을 때 케이건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이상 묻지 마. 나는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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