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7장 – 여신의 신랑 (11)
새벽녘, 철혈암의 마당에서 가볍게 몸을 움직이던 티나한은 방에서 걸어나오는 케이건을 보고는 공포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티나한은 케이건이 분명히 방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케이건은 조용히 그 말이 맞다고 대답한 다음 세수하러 걸어 가버렸다. 티나한은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생각하지 말자. 운동이나 하자.’
결국 티나한은 비형이 술이 덜 깬 얼굴로 기어나와 항의할 때까지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넘었다. 쿵, 쿵, 쿵. 차라리 하마가 공중제비를 넘는 편이 훨씬 고요했을 것이다. 비형은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북 삼아 두드리고 있는 듯한 그 소음을 견딜 수 없었다. 티나한이 그 짓을 그만두자마자 비형은 마루에 엎어진 채 다시 잠들었다. 가장 늦게 일어난 륜은 마루로 나오다가 비형에 걸려 넘어졌다.
산사의 음식다운 음식으로 아침 공양을 마친 일행 앞에서 티나한은 자신이 대사원에 체류할 것임을 선언했다.
“일은 끝났지만, 아무래도 이 일이 레콘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만큼 사태의 추이를 봐야겠다. 케이건 너는?”
“남을 거요. 그 암살자를 잡아주기로 약속했으니.”
티나한은 비형에게 거취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비형은 그때까지도 마루에 엎어진 채 가사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오가 지난 다음에야 겨우 일어난 비형은 티나한과 케이건이 남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자신은 즈믄누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운신이 비교적 자유로운 두 사람과 달리 비형은 바우 성주의 아랫사람이었다.
오레놀이 군불을 때어 방 안을 훈훈하게 만든 다음 비형은 륜의 몸에 걸려 있던 도깨비불을 제거했다. 엄습하는 싸늘함에 비늘을 부딪쳤지만 륜은 짐짓 허리를 펴며 말했다.
“아무래도 문 밖까지 전송하지는 못하겠군요.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비형. 편히 돌아가길 바랍니다.”
“항상 좋은 꿈 꾸길 바라요. 륜.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
그리고 비형은 일어났다. 하지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전 비형은 몸을 돌려 륜을 바라보았다. 비형은 무릎을 구부려 륜의 앞에 앉은 다음 커다란 두 팔로 륜을 끌어안았다. 륜은 당황하여 말했다.
“비형?”
비형은 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은 사람이에요. 그렇죠?”
“비형, 도대체 무슨 말을……”
“그렇죠?”
륜은 대답하지 않았다. 비형이 대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신 륜은 자신이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기를 바라며 비형을 마주 안았다. 한 번 더 힘주어 륜을 포옹한 다음, 비형은 일어나 방을 나갔다.
마당에는 나늬와 케이건, 티나한, 그리고 오레놀이 기다리고 있었다. 티나한은 불쑥 손을 내밀었고 비형은 두 손으로 그 손을 마주 쥐었다.
“사과하겠습니다. 티나한.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두억시니들의 피라미드를 빠져나온 이후로 비형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큰 실망도 느끼지 않았던 티나한은 가슴 한 구석이 약간 켕기는 기분을 느꼈다. 티나한은 그 기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 대답할 순간을 놓쳤다. 비형은 그의 손을 놓아주며 오레놀에게 걸어갔다.
오레놀은 무거워 보이는 금편 주머니를 내밀었다.
“수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주님께도 안부 인사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비형은 그것을 받아 품 속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비형은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짤막하게 말했다.
“잘 가시오.”
비형은 심호흡 하듯 숨을 크게 쉰 다음 낮게 말했다.
“케이건.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제게 당신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다면 죽이려 시도하라고 말했지요. 기억합니까?”
“기억하오.”
오레놀은 평안히 오가는 대화의 험악한 내용에 놀랐다. 티나한은 두 사람을 동시에 바라보며 부리를 꽉 다물었다. 비형은 차분하게 말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함께 여행하면서 저는 당신을 용납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 방법은 뭔지 고민해 봤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당신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실망하셨나요?”
“아니오.”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아마도 납득하든 납득하지 않든 상관없을 것 같은데, 맞나요?”
“맞소.”
비형은 빙긋 웃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요. 케이건. 세상에서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해도 되나요?”
오레놀은 소리 없이 웃었고 티나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이건은 비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게 뭐요?”
“저는 당신을 죽이지 않겠어요. 저 대신 당신이 당신을 죽여줄 수 있겠어요?”
“……확실히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군.”
비형은 씩 웃었다. 그러고는 케이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나늬에 올라탔다. 케이건은 뒤로 슬쩍 물러났고 티나한과 오레놀도 당황하여 날갯짓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거리까지 뒷걸음질 쳤다. 비형은 그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마당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딱정벌레는 눈이 아프도록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즈믄누리를 향해 날아갔다.
마루나래의 줄무늬가 보호색 효과를 발휘하길 바라며 그 배아래에 숨어 있던 사모는 딱정벌레가 완전히 지나간 것을 확인한 후 머리를 내밀었다. 근처의 억새밭 속에서 두억시니들도 서서히 일어났다. 그들은 말없이 딱정벌레가 작아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딱정벌레가 지평선 저편으로 사라진 다음 사모는 고개를 돌렸다.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도깨비.”
“갔다.”
“그래. 도깨비가 떠난 것 같군.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겠군.”
“레콘.”
“인간.”
사모는 턱을 감싸쥔 채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사모는 내키지 않는 투로 말했다.
“인간으로 하자. 아무래도 레콘은 물로 협박하면 도망쳐버릴 테니 뭘 물어볼 수는 없을 것 같아. 레콘을 쫓아내고 나서 그 케이건에게 물어보자. 도깨비만큼 입이 가볍지는 않겠지만.”
“대답.”
“안 하면?”
“그러면 승려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그 자들도 모르지는 않을 테니. 어쨌든, 너의 의심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해치지 않기로 한 약속은 지켜야 해.”
“약속.”
“지킨다.”
사모는 두억시니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곤 다시 마루나래에 뛰어올랐다. 마루나래가 파름 산을 향해 달리자 두억시니들도 그 뒤를 따라 성큼성큼 달렸다.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달리던 무리는, 그러나 파름 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소에 도달하자 난감함을 느끼며 멈춰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사모 페이는 별 이유 없이 하인샤 대사원이 심장탑처럼 높지 않을까 하고 추측했다. 그리고 두억시니는 건물들이 모여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하인샤 대사원은 위로 솟지도 않았고 삼각뿔을 이루고 있지도 않았다. 대신 파름 산의 중턱 곳곳에 산재하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넓은 사원을 목격한 사모와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는 난처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언덕 뒤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은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사모는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는 두 배로 머리가 아프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말했다.
“어디에 있을지 도무지 짐작이 안 되는군. 저건 거의 도시처럼 보이는데.”
“돌격.”
“하자.”
사모는 반사적으로 반대하려 했지만 곧 그 말을 삼켰다. 두억시니가 내놓은 의견은 단순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조금 고민하던 사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승려들은 그렇게 위험한 상대가 아닐 거야. 그렇다면 레콘과 케이건뿐일 테니 우리 인원이 훨씬 많아. 하지만 그 전에 약속 하나 더 해줘야겠어. 내 지휘를 따라줘.”
“지휘.”
“따른다.”
“좋아.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너희들 중 특별히 밤눈이 안 좋은 자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