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동천(冬天) – 128화


“랄라랄라~”

수련은 작은 무쇠 솥으로 요리를 하면서 연신 흥얼거렸다. 쥐 때문에 충격을 받았던 것이 바로 어저께였는데, 지금은 마치 오래전 일 마냥 느껴졌다.

“호호호! 쌤통이다! 호호호호! 랄라~~”

절로 어깨가 들썩거렸다. 바로 동천의 일 때문이었다. 어제 동천이 맞을 때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더 맞았어야 했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그때 조금만 더 맞았으면 위험할 정도였기 때문에 수련은 거기에서 끝난 것으로 만족했다. 언제나 그렇듯, 사정화의 식탁은 반찬이 대여섯 개로 한정되어 있었다. 수련은 제법 커다란 쟁반 위에 모든 반찬 그릇들을 올려놓고 익숙한 솜씨로 들어 날랐다.

“지금쯤이면 아가씨께서 목욕을 마치셨겠지?”

사정화는 어제 목욕을 세 번 이상하고 지금이 네 번째였다. 수련은 그게 좀 이상했지만 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마도 동천 때문에 화가 가라앉지 않아서 그런가보다..했다. 수련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욕실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나가.”

수련은 굳이 질문할 필요가 없어지자 웃으면서 식탁으로 돌아왔다. 수저와 젓가락을 양쪽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수련은 자신이 봐도 먹음직스러운 식탁에 흐뭇해했다.

“아가씨! 국 다 식어요!”

방금 끓여온 국이 식을 리 만무했지만 아가씨를 되도록 빨리 나오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수련은 이런 방법을 자주 써먹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사정화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닦아내며 욕실을 나왔다. 그 수건으로 자신의 머리를 몇 번, 휘저었던 사정화는 욕실 안쪽으로 그 수건을 던져 버렸다. 그리곤, 식탁에 앉아서 뜨거운 김이 솟아나는 국을 떠먹었다.

“음..맛있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수련은 두 손을 맞잡고 기뻐하며 말을 늘어놓았다.

“정말 이예요? 예? 어휴..저는 맛이 없으면 어쩌나…했거든요. 그게 오늘 처음 만든 국이라서 내심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요. 근데 아가씨께서 맛있다고 하시니까 아주 기분이 좋네요. 아가씨. 국은 아주 많이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얼른 드세요. 호호!”

잠시 수련을 바라보던 사정화는 곧이어 고개를 끄덕이곤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련은 조용히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 동안 칙칙한 동굴 안에서 생활하기가 불편하셨죠? 저는 아마도 거기에서 하룻 동안 있으라고 해도 무서워서 못 있을 거예요. 그러고 보면 아가씨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문무(文武)를 겸비하셨죠. 게다가 아주 아름답죠..아아~! 내가 아가씨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정화는 밥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쓸데없이 주절거리기만 하는 수련을 잘도 받아줬다. 평소 같으면 이쯤에서 수련의 말을 끊었겠지만 오랜만에 들어보는 잡담이라 별 말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아가씨.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아주 맛있어요. 그리고 이것도 드셔 보시고요. 이것도 드셔보고, 이것도…이것도….”

어느새 사정화의 앞에 모든 반찬이 쏠려버렸다. 덕분에 사정화는 멀리 있었던 음식을 굳이 팔을 뻗어 집어먹지 않아도 되었다. 수련은 아예 밥 먹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음식 평을 듣기로 작정한 듯 사정화가 한입 집어먹을 때마다 맛있냐고 물어보았다.

“맛있어요? 맛있어요?”

“맛있어…”

“꺄아~! 좋아라…!”

위와 같은 대화가 서너 번 더 반복되자 드디어 수련의 입이 전열(戰列)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를 맞춘 듯 사정화가 식사를 마쳤다. 어느 쪽이 때를 맞췄는지는 굳이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잘 먹었어.”

사정화가 간단한 칭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은 싱글거리며 그릇들을 치웠다. 그 사이 사정화는 바람을 쐬려는 듯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휘이이잉…..

시원한 바람이 사정화를 반겼다. 사정화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자신의 시야를 가리자 쓰윽.. 뒤로 넘겼다. 손등이 머릿결과 약간의 마찰을 일으키자 따끔거렸다. 그녀는 말없이 따끔거린 부위를 내려다보았다. 검지와 중지 마디가 가느다랗게 긁혀 있었다. 다른 손으로 긁힌 부위를 문지르자, 그녀의 손가락에 약간의 피가 묻어 나왔다. 사정화는 몸을 움직여 맞바람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입술을 열었다.

“그 녀석….”

그 말 이후로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사정화는 눈을 뜨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몸이 이상했어. 그 사이에 그 정도 경지까지 외공(外功)을 쌓았을 리가 없는데…역천이 무슨 방법으로 그렇게 만든 거지?”

사정화는 아예, 내공 쪽은 생각도 안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몸이 돌처럼 단단해졌다면, 그 누가 한 달 남짓한 시간에 내공 쪽으로 몸을 단련했다고 보겠는가? 처음에 사정화는 몇 대 때리고 주의를 주려고 했었다. 그러나 한 대를 때리자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이 내공을 안 썼다고는 하지만 후려쳤던 그녀의 주먹이 아픔과 동시에, 탄력을 받으며 뒤로 튕겨 나왔던 것이었다. 화가 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어서 삼성의 내공을 주입하고 다시 동천을 때렸지만 역시 처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자 약간의 자존심(自尊心)을 짓밟힌 사정화는 거의 십 성가량의 내공을 끌어올려 동천을 두들겨 팼다.

십 성이면 그녀의 공력이 근 삼십 년.. 그러니까 반 갑자에 해당했다. 아무리 동천이라 해도 내공을 못쓰는 상태에서 반 갑자의 힘이 때리는 것은 오래 견딜 수가 없었다. 지랄 지랄하면서(살려달라고..) 도망치듯 굴러다녔던 동천은 얼마 안 가 기절하고야 말았다. 그때 소연이라는 아이와 나중에 가세한 수련이 말리지 않았으면, 흥분했던 사정화는 계속 동천을 때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리자 동천은 엉망이 되어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잠깐의 흥분에 못 이겨 사람을 인사불성이 되도록 때렸다는 것에 화가 나 그대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동천에게 미안한 생각은 없었다.

사정화는 그쯤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나중에 역천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뒷문으로 다시 들어온 사정화는 주방 구석에서 나무 상자를 보게 되었다. 뒷문을 나갈 때는 보이기 어려운 각도였지만 반대로 들어오는 방향으로는 잘 보이는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들어오는 그녀의 시야에 잡혔던 것이었다. 평소에 못 보던 것이 보이자 궁금증이 일어난 사정화는 상자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상자를 발로 차보았다. 묵직한 것이 들어있는 듯 출렁거림이 그녀의 발로 전해졌다. 그녀는 쭈그리고 앉아서 상자 뚜껑을 열어보았다.

“읍!”

사정화는 화악~! 쏘는 듯한 비린내에 급히 뒤로 물러섰다. 얼마 후 자신의 손에 뚜껑이 들려 있음을 인식한 그녀는 그 뚜껑을 재빨리 바닥으로 내던졌다. 상자 안에는 찐득찐득한 갈색의 액체와 무엇인지 진위(眞僞)조차 구별하기 힘든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지독한 냄새에 방금 먹었던 음식이 넘어올 것 같자 사정화는 코를 부여잡으며 거실로 달려갔다. 마침 걸레로 식탁을 치우고 있던 수련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아가씨가 보이자 하던 일을 멈추었다.

“무슨 일 있어요?”

사정화는 잡고 있던 코를 놓지 않으며 대답했다.

“그랭..”

코맹맹이 소리가 그녀의 음성을 약간 변조했지만 간단한 대답이어서 수련이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수련은 색다른 아가씨의 목소리에 사정화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사정화는 손을 내리고 정상적으로 목소리를 내보냈다.

“주방 벽 구석에 있는 상자를 치워.”

수련은 약간 아쉬운 기색을 내보이며 물었다.

“거기에 뭐가 있어요?”

“가보면 알아.”

맞는 말이기에 수련은 걸레를 놓고 주방으로 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역겨운 비린내가 풍기자, 그제서야 아가씨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구석이란 말에 그곳으로 간 수련은 눈살을 한껏 찌푸리며 다가갔다.

“욱! 이게 다 뭐지? 아휴~ 드러..”

음식을 만들려면 간혹가다 비린내를 맡아야 할 때가 있었으므로 수련은 사정화와는 달리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서 나동그라진 상자 뚜껑을 찾아낸 수련은 얼른 그것을 뒤덮고 들어서 밖에다가 내던져 버렸다. 뚜껑이 열리면서 그 안의 내용물이 무성한 잡초들 사이로 흘러들어갔다. 수련은 집으로 들어가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저게 어디서 난 거지…?”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