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12화
동천은 들뜬 마음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며 시간을 때우다가 유시 초(酉時初: 오후 5시)가 되서야 요림으로 향했다. 시간상으로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 요림까지는 반 시진 이상이나 걸리므로 초저녁에 도착해서 얼른 먹고 돌아오려는 생각에서 지금 떠나는 것이었다.
‘맛있는 게 없기만 해봐라. 림주고 누님이고 그냥, 다 엎어버릴 테다. 킬킬킬!’
지 혼자 생각하고 지 혼자 웃어댄 동천은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스쳐 지나가는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다 잠이 들어버렸다. 덕분에 깨우는 입장인 마부만 고달픈 셈이었다. 잠시 후, 동천은 마부가 깨워줘서 입가에 흘린 침을 닦으며 일어났다. 잠을 잤으므로 동천이 체감한 시간은 고작 일각 정도였다.
“음냐, 다 왔어?”
마부는 시선을 내리깔며 대답해주었다.
“예, 소전주님.”
“히히히! 그래?”
재빨리 마차에서 내린 동천은 문 앞에 서있던 문지기 중 한 사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뒤, 기다리고 있던 다른 여인에게 또 다시 안내를 받았다. 동천이 안내된 곳은 정갈한 내실이 아니라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 동천이 보고 놀라했던 거대한 누각의 제일 위층이었다. 겉으로 볼 때에는 5층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으나 동천이 실지로 올라가며 층수를 세어본 결과 제일 위층은 7층이었다. 12쪽 병풍을 등지고 자리에 앉은 동천은 생각보다 수수하고 은근함을 풍기는 주위의 묘한 매력에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동천의 관심사는 정작 다른 곳에 가있었다.
“이야! 이렇게 높게 지으려고 꽤나 고생 좀 했겠는걸?”
안내해준 여인마저 나가고 조용한 내실에 혼자 있었으므로 동천은 생각나는 데로 지껄였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 후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동천은 창가로 다가가 밑의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우와, 년 놈들이 쪼따만하게 보이잖아? 끝내주는데?”
동천은 견학을 나온 어린애처럼 감탄을 섞어가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순금으로 세공 된 공작새를 발견한 동천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 교묘하게 가려진 각도를 찾아 꼬리털 하나를 뽑아서 품안으로 갈무리했다.
‘히히히, 돈 벌었다.’
동천은 완전범죄를 끝마치고 슬며시 걸어가 처음에 앉았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기다리는데 짜증이 날만도 했으나 한 가지 물건을 은근히 챙겨 넣었던 동천은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금요랑을 기다렸다. 그리고 금요랑은 일각 여의 시간을 뒤로하고 나타났다.
“동생. 오래 기다렸어?”
생각해보니 좀 기다린 셈이지만 동천은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요. 괜찮아요.”
금요랑은 살풋이 웃었다.
“동생은 정말 마음이 넓은 것 같아. 호호.”
그녀의 웃음이 신호였는지 아리따운 여인들이 양손에 음식들을 들고 속속히 날라 왔다. 동천은 끝도 없이 상위에 올려지는 진수성찬을 대하고 오직 꿀떡꿀떡 침을 삼킬 뿐이었다. 마침내 긴 행렬이 끝나고 여덟 명의 무희들이 올라와 마련된 공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신기한 눈으로 춤추는 무희들을 바라보던 동천은 갑자기 나긋나긋한 무언가가 자신의 손을 잡아채는 바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머, 놀라기는? 저 애들은 이따가 실컷 봐도 되니까 우선 한잔 마셔보도록 해.”
금요랑은 동천의 손에 비취색 술잔을 쥐어주고, 그 안에 붉은 빛 감도는 술을 따라주었다.
“그러죠. 헤헤.”
색깔을 보고 과일 주라 생각한 동천은 한번에 들이켰지만 그게 아니었다.
“크읍! 이게 뭐예요? 과일 주가 아니네요?”
금요랑은 안주를 입에다 쳐 넣고있는 동천을 보며 눈을 흘겼다.
“동생도 참 순진하구나? 호호. 이 술은 과일 주가 아니라 적련사(赤憐巳)로 만든 뱀술이야. 이 술의 이름은 뱀의 이름을 따서 적련홍(赤憐紅)이고.”
동천은 적련사에 관해서 감송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피부에 독기를 가진 세상에 몇 안 되는 뱀이면서도 그리 드믄 종류는 아니었다. 적련사는 뱀술을 만드는데 있어서 좋은 재료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사육이 불가능하고 만드는 방법이 복잡한 관계로 적련홍이란 술은 재료에 비해 무척이나 비싼 술이라 할 수 있었다.
“예? 재료가 적련사라고요? 이거 혹시 정력에 좋다는 뱀술 아니에요?”
금요랑은 정력이란 소리에 부끄럽지도 않으면서 몸을 살며시 꼬았다.
“아이, 동생은 못하는 말이 없어.”
동천은 마음속으로 금요랑에게 욕을 해댔다.
‘지랄하고 있네. 내가 못할 말을 했다면 넌 지금 못할 짓을 하는 거야 이년아. 나처럼 어린애한테 정력에 좋은 술을 먹여서 어쩌겠다는 거야!’
사실 정력 어찌구는 그냥 지껄인 말이었고, 동천이 금요랑을 비꼬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술이 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동천은 벌써부터 어질 거리는 신형을 바로잡으며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다.
“헤헤헤. 제가 생각해도 좀 그러네요. 참? 누님도 드셔야죠.”
금요랑은 마다 않고 동천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동천에게 또 술을 권했다. 동천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끈질기게 주시하는 금요랑의 시선에 어쩔 수 없이 낼름 집어삼켰다.
‘크으! 거 더럽게도 쓰네. 어지럽기도 하고.’
금요랑은 안주를 동천의 입에 손수 넣어주며 말했다.
“어머, 듬직하기도 해라. 어쩌면 어린 나이에 그렇게 술을 잘하지?”
추켜세우는 소리에 신이 난 동천은 무리인 줄 알면서도 스스로 한잔 더 따라마신 후 약간 혀를 꼬아가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거요? 히히! 제가 월래 수리 쎄요. 인제 알았어요?”
슬슬 술에 취한 조짐이 보이자 금요랑은 야릇하게 눈을 반짝이며 동천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동생 알고 봤더니 대단하구나? 자자, 그런 의미에서 한잔 쭈욱 들이켜봐.”
술이 목구멍까지 차 오르지 않는 한 술 취한 놈에게 한잔이나 몇 잔이나 그게 그거라 할 수 있었다. 동천은 눈앞이 어질 거리고 세상이 빙글거리는 상황에서도 추켜세워 주는 소리는 용케도 알아듣고 연거푸 마셔댔다.
“누님. 누니믄 안 마서요? 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동천은 감기려는 눈꺼풀을 애써 치켜 뜨며, 금요랑에게 자신이 마시고 난 술잔을 디밀었다.
“마셔야지. 호호, 누가 권해주는 술인데.”
동천은 흐느적거리는 손으로 술을 따랐는데 최종 목표지점은 술잔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이었다. 금요랑은 술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게 아까웠는지 동천의 손을 잡고 방향을 약간 비틀어 술을 받았다. 그 다음 거침없이 술을 마셔버린 금요랑은 동천이 입을 대었던 부분을 혀로 낼름 핥았다. 자극적인 모습이었다. 허나 동천은 이미 맛이 간 상태여서 금요랑의 행동은 눈에 뵈지도 않았다.
“마셔, 마셔! 으헤헤!”
사실 내공을 사용하면 동천이 이렇게 취할 이유가 없었으나 아쉽게도 허리띠의 제약이 있어서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동천 자신이 내공으로 술기운을 날려보내는 방법을 모른다는 데에 있었다.
“어, 치한다. 꺽! 누님. 나 오짐 매려.”
처음에 무슨 소리인지 몰라하던 금요랑은 비칠거리며 일어선 동천이 바지를 까 내리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오줌을 갈기려는 동천을 얼른 제지시켰다.
“자, 잠깐만! 동생 잠깐만 참아!”
동천은 그를 제지시키며 무언가를 바삐 찾아대는 금요랑에게 대뜸 화를 냈다.
“씨이, 나 매려. 매리다니깐?”
이곳의 바닥에는 서역(西域)에서 들여온 융단이라는 엄청 비싼 물건이 깔려 있었다. 그러니 거기에다 오줌을 싸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빠진 금요랑은 오줌통 대용을 찾다 못해 동천을 안아 들고 창가에 올려놓았다. 술에 취한 동천은 신형을 건들거리면서도 허리를 잡아주는 금요랑의 손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동천은 고개를 획 돌렸다.
“돼? 응?”
오줌을 싸도 되냐는 의미인 것 같았다. 위험한 상황을 벗어난 금요랑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럼! 되고 말고. 호호호. 마음껏 싸도록 해.”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동천의 자그마한 고추에서 오줌이 쏟아져 나왔다. 오래 참았던지 그것의 크기에 비해 나오는 양은 엄청났다. 금요랑은 폭포수처럼 내리 쏟아내는 동천의 그곳을 보며 안타까운 눈을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표정과 달리 활발했다.
“동생 시원하게 다 쌌어?”
동천은 히죽 웃은 후 대답도 못하고 골아 떨어졌다.
“쿠울…….”
금요랑은 동천의 몸이 축 늘어지자 얼른 안아들고 무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녀의 눈짓에 무희들은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금요랑은 모두 나가는 것을 본 후, 살며시 눈웃음을 쳤다.
“동생. 여기에서 자면 안돼. 자칫 잘못하면 감기에 걸려. 호호! 그러니까 오늘은 이 누나가 같이 자줄게. 좋지?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