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동천(冬天) – 236화


쏴아아아.

비가 내렸다. 그리고 그 빗속을 뚫고 마차 한 대가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달렸는가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마차를 몰고 가는 말들의 상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도연은 빗줄기로 인해 뿌연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어울리지도 않게 삿갓을 쓰고 있었다. 그는 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마차를 멈추었다.

“워, 워!”

신나게 퍼질러 자고 있었던 동천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뭐야.”

빗줄기가 마차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중얼거리는 듯한 동천의 목소리는 쉽게 흩어져 버렸다. 동천은 그것도 모르고 도연이 반항한다고 생각했다. 재빨리 마부석과 연결된 작은 창틀을 열어 제낀 동천은 빽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아! 이 몸이 뭐냐고 물었잖아!”

도연은 힐끔 돌아보았다.

“말들이 너무 지쳐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동천의 얼굴이 약간 풀어졌다. 그러나 아직 미진한 듯싶었는지 계속 다그쳤다.

“그러면 그렇다고 할 것이지 왜 이 몸의 말을 씹어! 너 죽을래?”

“안 들렸습니다.”

너무도 담담한 도연의 대답은 동천의 속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마차 안에서 방방 뜬 동천은 삿대질을 해가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죽으려고 용을 쓰네? 너 이리 들어와! 아주 죽었어.”

도연은 별말 없이 마부석에서 내렸다. 동천은 이를 갈면서 주먹을 다부지게 쥐었다. 곧이어 마차 문이 열렸다. 그리고 도연이 마차 안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였다.

“잠깐!”

도연은 멈칫하고는 삿갓 너머로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동천은 빗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도연의 몰골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이내 손사래를 쳤다.

“됐어. 그만 네 자리로 돌아가. 네가 들어왔다가는 이 깨끗한 마차 안이 물바다가 되겠다. 훠이, 물러가라.”

도연은 왔던 것처럼 말없이 마부석으로 돌아갔다. 도연은 머리 부분만 빼고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였다. 초여름의 비라서 그런지 봄에 내리는 빗줄기보다는 따스했다. 암흑마교에서 나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이제 그는 이 마차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주군의 가출 소식이 접해졌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쯤이면 추적대가 편성되어 쫓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차의 흔적을 찾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다. 한 가지 도연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빗속에서 주군을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인가?’였다. 이대로 주군이 잡혀도 도연이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어차피 돌아갈 시간을 좀 더 당기는 거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미래의 실전에 대비해 어설프지만 도망가는 경험을 이렇게나마 겪어보고픈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주군께 죄송하지만 나중에 주군도 어떠한 상황에 놓일지 모르는 관계로 이 기회에 연습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도연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곧 뒤쪽 창문을 열고 말했다.

“주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짖어봐.”

“…….”

도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을 꺼내면 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에서 한방 먹였다고 생각한 동천은 실실거리며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히히, 자식이 그런 것 가지고 삐지냐? 알았어 제대로 말해줄게. 어서 말해봐. 이렇게 말하면 됐지?”

마침내 도연이 입을 열었다.

“지금쯤이면 본교에서 주군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쫓아오고 있을 겁니다.”

동천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에 얼굴이 찌그러질 정도로 들이밀었다.

“뭐? 애새끼들이 쫓아와? 그게 무슨 소리야?”

아마 동천은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끝인 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도연은 그런 동천에게 일침을 놓아주었다.

“약왕전의 소전주가 없어졌는데 전주님을 위시해 다른 분들께서 가만히 손 놓고 계실 줄 알았습니까?”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던 동천은 갑자기 안면을 몰수했다.

“흐응……. 내가 그것도 모르고 있었을 줄 아냐? 천재의 피가 흐르는 나의 원대한 계획 속에는 당연히 그런 것까지 모두 대비돼 있어.”

도연이 곧바로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동천은 당황하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매달았다.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살며시 앉았다.

“도연아, 이 몸이 계획한 것이 있지만 먼저 네 생각부터 들어보련다. 그러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부터 말해보거라.”

보아하니 쥐뿔도 생각해 놓은 게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도연은 수하 된 도리로서 모른 척 넘어갔다.

“우선 제일 처음에 생각해야 할 것은 마차의 효용가치입니다.”

이해하기 약간(?) 어려운 말에 동천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즉, 이 마차가 추적대에게 어느 정도까지 도망쳐줄 수 있냐는 겁니다. 제가 보기로는 지금 시점까지입니다. 이미 본교에서 무사들이 급파되었을 것이고 못해도 지금껏 우리가 지나온 길의 반 이상을 좁혀왔을 겁니다.”

동천은 다급함을 느꼈다.

‘으으! 정화 년의 추격대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제길, 어떻게 하지?’

반 이상 좁혀왔다는 도연의 말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동천도 1년 전 우연히 알았던 거지만 사비혼에게 사혼대라는 직속 호위대가 있듯 사정화에게도 마장대(魔壯隊)라는 호위대가 있었다. 마장이라는 장원에서 차출된 부대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었다. 그들의 인원까지는 몰랐고 다만 그들이 사혼대만은 못해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마장대는 충분히 빛을 볼 수 있는 자들이었다. 허나 아쉽게도 사정화의 성격 탓에 호위대이면서도 사정화의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는 비운의 부대였다. 추격대라면 당연히 사정화의 추격대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꼭꼭 심어져있던 동천은 울 듯 말 듯한 어색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용케 목소리만은 변화 없이 낮게 깔았다.

“그럴 듯해. 그래서?”

도연은 동천의 표정에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 마차를 주인 없이 이 길 그대로 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주군과 저는 산을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거죠.”

갑자기 동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오, 이 몸이 생각하고 있던 바와 이렇게 똑같다니! 역시, 내 수하로다!”

동천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재빨리 짐을 챙겨들었다. 가슴에는 금 100냥의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고 그의 양쪽 어깨에는 생필품이 들어간 간소한 보따리와 혈천도가 각각 걸쳐져 있었다. 올 때 워낙 간소하게 왔는지라 챙길 게 그다지 없었다. 그 사이 마부석에서 내려온 도연은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뭐 잊어먹은 게 없나 재차 살펴보던 동천은 밖으로 나가려다 뚝 멈추었다.

“왜 그러십니까?”

동천은 대뜸 얼굴부터 구겼다.

“이 몸께서 꼭 저따위 비를 맞으며 가셔야겠냐?”

도연은 고개를 약간 들었다. 삿갓 너머로 무심한 한쪽 눈이 드러났다.

“다른 고견이 있으십니까?”

“없는데.”

“나오시지요.”

예의상 버팅겨 보았던 동천은 불평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마차에서 내렸다. 곧이어 차가운 빗방울이 동천의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에이, 찝찝해.”

찝찝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찝찝한 게 잡혀서 맞아죽는 것보다 몇백 배 나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수하된 입장에서 주군이 우두커니 비를 맞게 할 순 없는 법. 채찍을 들고 있던 도연은 말들의 엉덩이에 가차 없이 채찍질을 가했다.

쫘자작!

“이히히힝!”

두 마리의 말들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 외의 고통을 느끼곤 있는 힘을 다해 전력 질주를 감행했다. 마차는 금세 그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모든 일을 끝마치고 난 도연은 조심조심 걸어가며 동천에게 말했다.

“산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길에 흔적이 남지 않게 조심해주십시오.”

생각 없이 물컹한 땅을 밟아대던 동천은 곧이어 도연과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래도 입은 살아있었다. 그런 동천의 입은 이틀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 고개. 두 고개……. 세 고개.”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동천은 비가 그친지도 모르고 머리 위에 얹어놓은 보따리를 그대로 놔둔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섯 고개. 여섯 고개.”

옆에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도연은 그의 주군이 왜 중얼거리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입을 열었다.

“정확히 아홉 고개입니다.”

동천의 고개가 살며시 도연 쪽으로 돌아갔다.

“그래?”

도연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은근히 짜증 나 있던 동천은 도연에게 걸고넘어지려 했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아홉 고개나 넘었는데 어째서 인가가 안 나오지?”

“저도 모릅니다.”

깔끔한 대답이었다. 어딘지도 모르고 산부터 오르는 중인데 도연이 무슨 재주로 인가를 찾아낸다는 말인가. 이를 잘 알고 있던 동천은 따로 화풀이할 데가 없어 괜히 애꿎은 나무를 걷어차기만 했다.

“아우, 열받어! 익! 익!”

일부러 만만한 나무들을 골라서 그런지 잘도 꺾여 넘어갔다. 서너 개의 나무를 분질러먹은 동천은 깊은 숨을 들이 내쉬고 안정을 취했다.

‘아서라 동천. 네가 이러면 도연 저 자식이 얼마나 불안해하겠느냐. 그래. 많이 배운 네가 참아라.’

동천은 혼자 발광하다 마무리까지 혼자 끝마쳤다. 그리고 그는 하늘이 우중충하기는 했지만 이제 비가 그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따리는 아직까지 동천의 머리 위에서 호강하고 있었다. 발차기와 이단 옆차기까지 병행했음에도 말이다. 용감하게 인력의 법칙을 무시하던 보따리는 마침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도연은 그 보따리를 받아들고 말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산세를 보아하니 곧 사람이 사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자칭 평범한 천재라 생각하는 동천은 자신도 알고 있는 걸 가지고 더럽게 잘난 체를 한다고 생각했다. 허나, 결과적으로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소리에 험한 욕을 잠재웠다.

“좋아, 좋아. 앞장서.”

언제나 그렇듯 도연이 길을 텄다. 길을 찾는데 수하가 앞서 나가는 것은 결코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앞서길 좋아하는 동천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싸가지 없는 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천은 가만히 있었다. 이유는 무슨 일을 당해도 도연이 먼저 당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뱀 새끼라도 튀어나와서 콱 물어버려라. 히히!’

치기 어린 생각인지 정말로 사악한 생각인지 알 수 없지만 동천을 알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후자 쪽으로 생각하리라. 동천에게는 아쉽겠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허나 동천은 실망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자신에게 득 될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

갑작스러운 도연의 의문성에 천천히 뒤따라오던 동천은 신속하게 달려왔다.

“뭐야, 뭐가 보여?”

도연은 급히 달려온 동천에게 다소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소매가 나뭇가지에 걸린 것뿐입니다.”

“윽! 소매?”

동천의 신형이 절로 휘청거렸다.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동천은 자세를 바로잡고 도연에게 고함을 질렀다.

“앞장서기나 해!”

앞서 사과를 했기 때문에 도연은 추가로 사과하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주군을 위해 얼른 인가를 찾아주려고 노력했다. 주군이라는 애새끼는 알아주지도 않지만 말이다.

“주군, 보입니다.”

마차를 버린 지 사흘째 되던 날 오후, 도연은 마침내 십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촌민 부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씻지도 못해 더벅머리를 하고 있던 동천은 머리의 비듬을 털어내다가 희열에 찬 도연의 목소릴 듣고 재빨리 튕겨 나갔다.

“뭐? 어디, 어디야!”

도연이 따로 가리킬 것도 없었다. 도연 쪽으로만 오면 자연히 눈앞의 전경이 보였으니까. 해질 무렵이라 그런지 열에 아홉 가구의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