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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1화


“아.. 여기가 좋겠다. 사방으로 나무가 막아주고 있기 때문에 가운데로 내가 들어가면 아무도 못 찾을 것 같은데?”

커다란 다섯 그루의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반 장 정도의 빈 공간을 만들어 놓은 곳을 찾은 동천은 순간적으로 ‘이거다.’라고 생각을 했다.

생각을 마친 동천은 얼른 그곳에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한참 동안 운기조식을 하자 내공의 운용법(運用法)을 어느 정도 익힐 수가 있었다.

‘아.. 내공을 운용할 때 하단전 따로, 상단전 따로.. 이렇게 운기 할 수도 있구나? 다만 구태여 따로 운기하는 것은 시간상으로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하니까 안 하는 거 같은데?’

동천이 때려 맞춘 게 대충 맞기는 했지만 하단전만 운기한 후 나중에 상단전만 운기하는 방식은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이유 외에도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이 뭐냐하면, 따로 운기조식을 한다면 자연의 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히 동시에 운기조식을 해야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세 번 이상의 십이주천을 마친 동천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네 번째 운기조식을 마쳤다.

“휴-우..! 기분이 상쾌하긴 한데 한자리에서 계속 앉아 있는 게 좀이 쑤시네? 이제는 모든 기운을 내 것으로 만든 것 같으니까 동굴로 돌아가야겠다. 날도 어두워졌고..”

일단 생각을 마친 동천은 앉아있던 자리에서 엉덩이를 툭툭! 털고는 일어났다. 나무 사이를 빠져나온 동천은 나무들을 하나둘씩 살펴보자 사선(斜線)으로 길게 그어진 자국을 보고 나서 희번덕거렸다.

“어디 보자..! 내가 표시(表示)해 뒀던 곳이… 아! 여기 있다! 히히히! 역시, 나는 똑똑하다니까?”

사실 동천은 자신이 방향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한 방향으로만 걸어온 후 이곳을 발견한 다음, 안쪽으로 들어오기 전에 자신이 걸어왔던 방향에 서있던 나무를 날카로운 돌로 길게 그어 놓았던 것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동천은 자신의 앞길을 무성한 나뭇잎들로 막아놓은 가지들을 걷어내며 소리쳤다.

“자아! 길을 비켜라..! 천재가 나가신다! 으하하하하!”

이만하면 중증(重症)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나무의 표시를 보고 무난히 동굴 쪽으로 돌아온 동천은 항광이 동굴 입구 밖에서 불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 할아버지! 왜 바깥에 나와 있어요?”

항광은 지금 자신의 신세가 비참(悲慘)하다고 생각했다. 아까 이성의 끈을 놓친 다음, 잠시 후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동굴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항광은 허겁지겁! 나오느라고 그 안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생명만큼이나 귀중한 비급들을 어쩔 수 없이 놓고 나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무너져 내린 동굴 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겨우겨우 비급들을 찾아내어 밖에서 쉬고 있었던 것이었다.

동천은 항광이 자신의 물음에도 말이 없자 잠시 바깥바람 좀 쐬려고 나와있는 거겠지.. 하는 생각에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 이런.. 무너져버렸잖아?”

동굴 안을 들여다보고 황당해하던 동천의 머릿속에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저 늙은이 진짜로 미친 거 아냐? 내가 동굴 안에 있을 때는 밖에 나가서 닥치는 대로 부숴놓더니, 이번에는 내가 동굴 밖으로 잠시 나가있는 사이에 동굴을 폐허(廢墟)로 만들어? 음.. 이거 꽤 심각한 문제인데?’

항광이 미쳤다고 결론을 내린 동천의 마음속은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런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밖으로 나온 동천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항광의 앞자리에 앉았다. 항광이 미쳤다고 생각한 동천은 괜히 말을 걸었다가 자신에게 피해가 갈까 봐 아무 말도 없이 모닥불만 바라보았다. 마침 항광도 자신에게는 말할 기미도 안 보였기 때문에 그런대로 조용히 견딜만했다.

동천은 딴청 피우는 척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미친 늙은이..’

항광도 무심한 척하고 있었지만 내심(內心)은 가만히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재수 없는 애새끼…’

서로와 서로를 욕하며 불신과 불신이 싹트는 이곳에.. 과연 빛나는 내일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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