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동천(冬天) – 351화


형산파로 가는 길.

다음날이 되었다. 도연에게 제갈세가를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 중소구는 동천이 자신과의 상의도 없이 결단을 내렸다며 화를 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이미 결정된 사항을 번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혼자 궁시렁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를 지나치던 사람들이 ‘어디, 아파요?’라고 물었을까. 그 상황이 지속되자 급기야는 정신이 어떻게 됐다고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그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혼잣말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 풍수지리상으로는 흉(凶)이거늘, 감히 생긴 것도 보잘것없는 놈이 지 마음대로 결정을 내려? 아아, 도 소형제만 아니었더라도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도 소형제는 그놈의 본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단 말인가.”

미래의 흉함을 내다봄에 있어 왜 풍수지리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풍수지리를 사용하겠다는 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하리요.

“도저히 이러고 있을 수 없다. 가서, 다시 한번 그놈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는 수밖에.”

곧바로 동천에게 찾아간 중소구는 거만하게 의자에 기댄 어린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어린놈은 말했다.

“또 무슨 일입니까? 떠나는 것에 관해서는 이틀 전에 끝낸 걸로 아는데.”

중소구가 혼잣말을 하고 다닌 지 이틀이 지났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는 탁자가 부서지도록 주먹을 내려친 뒤 본론에 들어갔다.

“그것이 네놈의 말 한마디로 끝낼 일이더냐? 적어도 네놈이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소수의 의견도 들어줘야 할 것이 아니냐!”

동천은 이제 상대를 문전박대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악화된 관계를 지속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서로의 범위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소수라면 중 대인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내심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중소구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답했다.

“흐흐, 소수가 어찌 본 대인뿐이겠느냐.”

짝짝!

그가 두 번의 단발성 박수를 치자 문정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동천은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너도 반대냐? 그놈의 꿈 때문에?”

문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부님. 저도 그곳에는 가기 싫습니다. 정 안되겠다 싶으시면 이 제자만 남겨놓고 다녀오실 수는 없겠습니까?”

동천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흐음, 그러니까 네 말은…. 제자 놈을 위해 사부라는 분께서 왔다 갔다 고생을 하시라는 그런 개소리냐?”

중소구가 재빨리 받아쳤다.

“사부가 제자를 사랑한다면 어찌 그 정도쯤이야 못해줄까!”

맞받아 치지 못할 동천이 아니었다.

“제자가 사부를 공경하고 존경한다면 어찌 믿고 따르지 못하겠습니까!”

“무릇 사부란 제자가 따라오기를 바라지 말고 사부 된 도리로서 제자의 마음을 헤아려주어야 진정한 사부이거늘, 보아하니 네놈은 사부의 도량이 실개천이로구나!”

“제자라 함은 사부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거늘, 자신의 예감이 안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부를 따르길 꺼린다면 그것이 어찌 제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법 멀리 떨어진 밖에서 방안의 상황을 지켜보던 장노삼은 상황이 점점 개판으로 치달아가자 어쩔 수 없이 나서야만 했다.

“모두 그쯤에서 그만하시게. 떠나는 것은 확정된 것이니 다른 말들은 말고. 그리고 중 대인은 도연이 찾는 듯하니 자주 만난다는 그쪽으로 가보도록 하시게나.”

“도 소형제가? 그렇다면 어서 가봐야지.”

중소구가 나가고 의자를 빼내 앉은 장노삼은 동천과 문정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할애비가 많이 생각해보았다.”

“뭘요?”

동천의 웃음에 장노삼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녀석도 급하긴. 다름이 아니라 만년오행한철을 녹이는데 있어, 그 방법을 알고있는 자에게 떠나기로 말이다.”

동천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문정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예? 형산에 떠나기로 한 것은 이미 결론이 났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장노삼은 아이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재빨리 대답해주었다.

“내 말은 형산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그것을 아는 자가 있다는 소리란다.”

동천은 눈을 똥그랗게 떴다.

“그게 정말이세요?”

“허허, 이 할애비가 무슨 할 일 이 없어 우리 천아를 속이겠느냐.”

만년오행한철을 녹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함은 만년오행한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렇듯 만년오행한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벌써 네 명이자, 치우철경을 생각하는 동천의 마음이 점점 무뎌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년오행한철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신비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그 사람은 어디에서 살고 있어요? 음, 황룡세가인가요?”

동천과 마주보고 있는 장노삼은 묘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아니란다. 좀 더 먼 곳에서 살고있지.”

동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 곳?”

“그래…, 먼 곳이지. 그래서 이 할애비가 그곳을 다녀옴에 있어 문정이를 데리고 갔으면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하느냐.”

깜짝 놀란 문정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장노삼을 바라보았다.

“저, 저하고요?”

“그렇단다. 싫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동천이 해주었다.

“저 쓸모없는 녀석을 데려가셔서 뭐하시려고요? 더군다나 형산으로 가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는데 굳이 할아버지가 그곳으로 가실 필요는 있나요?”

장노삼은 차근차근 대답해주었다.

“이 할애비가 문정을 데려가려는 이유는 그 쓸모 없음을 다소나마 쓸모 있게 만들기 위해서란다. 즉, 오고가는 동안 기본기를 시작해 몇 가지 무공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지. 언제까지 짐이 되게 놓아둘 수는 없지 않으냐. 그리고 형산이 있음에도 따로 찾아가려는 이유는 형산파에 있다던 사람이 장기간 볼일을 보러 나갔을 수도 있고, 운이 없다면 아예 떠났을 수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안전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마음에서란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문정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어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이, 입이 굳어서…….’

이번 또한 동천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문정을 데려가는 문제는 할아버지 좋으실 대로 하세요. 할아버지는 적적하지 않아서 좋고, 형산에 가기 싫어했던 저 놈은 덤으로 무공까지 배우니 좋고. 히히, 완전히 누이 좋고 매부 좋고네요?”

장노삼은 문정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얼굴의 근육이 굳어있는 것으로 보아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로구나. 따르겠다면 고개를 끄덕이고, 싫다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보거라.”

당연히 끄덕여지는 문정의 고개였다. 이에 장노삼이 말했다.

“잘 알겠다. 떠나게 될 때 나와 같이 가게 될 것이니 이만 나가보거라.”

끄덕끄덕 고개만 끄덕인 문정은 감격에 겨운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쳇, 기쁘긴 기쁜 모양이네?”

장노삼은 동천의 빈정거림에 넉넉한 웃음을 머금었다.

“허허, 샘 나느냐? 그렇다면 이 할애비가 한 가지 무공을 가르쳐주마.”

눈동자를 반짝인 동천은 장 할아버지에게 바짝 다가들었다.

“정말이세요? 상승의 어마어마한 무공을 가르쳐주신다는 게?”

동천이 무공의 급수를 지 마음대로 조정해버리자 장노삼은 짐짓 한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이쿠, 천아가 그렇게 단정을 지었으니 어쩔 수 없이 상승의 무공을 가르쳐줘야겠구나.”

그 말에 좋아라 히히거리던 동천은 갑자기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를 보였다.

“다 좋은데요. 그거 혹시 따로 내공 심법을 익혀야만 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이었다. 만일 또 다른 내공 심법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무공이고 뭐고, 낮잠이나 즐겨야하는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허허, 천아가 그것이 걱정되었나 보구나. 새로운 심법을 익혔다가 기존의 것과 충돌할 것을 염려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이 할애비가 가르쳐주는 것은 그저 내공만 뒷받침되면 충분한 것이니까 말이다.”

동천은 다시 생기 있는 목소리로 재촉했다.

“그래요? 그럼, 빨리 가르쳐주세요. 경공은 되었고요, 검법은 흥미가 없고요, 도법은 익히고 있으니 더 이상 필요가 없고요, 장법이나, 수공(手攻). 혹은 각법을 가르쳐주세요. 전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요. 그래주실 거죠?”

장노삼은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 정도야 쉽지. 으음, 우리 천아에게 무엇을 가르쳐줄꼬? 옳거니, 수공을 가르쳐줘야겠구나.”

동천은 열정 어린 눈빛으로 장노삼을 응시했다.

“우와! 그때 그 소구자식…. 아니, 중 대인을 상대했을 때 사용했던 그거 말이에요?”

“허허, 그렇단다. 하지만 그때의 수법은 그저 응용만을 했을 뿐 진정한 위력은 보이지도 않았던 거란다.”

“진짜요?”

“우리 천아에게 가르쳐주면 다 탄로 날 것을 이 할애비가 거짓말을 하겠느냐.”

딴엔 그렇다고 생각하여 지금 당장에 가르쳐달라고 졸라댄 동천은 결국 승낙을 받고야 말았다.

“네가 이 무공을 배우고 익힘에 있어 한 가지 약속해야만 할 것이 있단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자 동천도 덩달아 흥분을 감추고 대답했다.

“그게 뭔데요?”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는지 장노삼이 미약하나마 웃음을 일으켰다. 아마도 동천을 배려하는 마음에서인 듯 싶었다.

“그것은 생사의 갈림길이 아니라면 치우도법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천은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예? 그럼, 전 그때까지 무엇으로 방어해요? 도망 다니기만 해야 하나요?”

“허허, 녀석. 그래서 이 할애비가 수공을 가르쳐주겠다는 것이 아니더냐. 어떠냐, 약조를 하겠느냐?”

요리조리 눈알을 굴려가며 수지타산을 맞춰가던 동천은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기로 했다. 치우도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때에 가서 생각해도 아무 손해 볼 것이 없었던 것이다.

“약조하기는 하겠는데, 제가 그토록 치우도법을 자제해야하는 이유가 뭐예요?”

그럴만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지만 장노삼은 대충 얼버무렸다.

“그것은 그 위력이 너무도 가공할 뿐만이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마공으로 치부될 수도 있기 때문에 다 너를 위해 그러는 것이란다. 생각해 보거라.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공을 익혔다는 눈치를 받으며 살아갈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또한, 여인들이란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남자를 꺼려한단다. 그렇게 되면 장래에 천하제일미녀와 혼례를 치르겠다던 네 소망도 물거품으로 변할지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겠느냐?”

앞부분에서 꼼짝도 않던 동천의 마음은 천하제일미녀와의 혼례 문제가 거론되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 물론 그래서는 안 되죠! 후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알았어요. 꼭 생사의 위기가 아니라면 재주껏 대처할게요. 이제 됐죠?”

장노삼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그래. 허허, 천아가 용케도 결단을 내렸구나. 모든 것은 차후에 밝혀질 것이니 지금은 맡은 일에만 충실하면 될 것이야.”

동천은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곧이어 장 할아버지가 무공을 가르쳐준다고 하자 언제 그것을 생각했냐는 듯 할아버지에게 정신을 쏟아부었다. 동천은 일주일에 걸쳐 차근차근 무공 구결과 초식들을 익혀나갔다. 그는 이례적으로 너무도 진지한 자세를 보였는데, 이유는 이제 장 할아버지와 떨어져 있으면 혼자서 익혀나가야 했기 때문에 건성으로 익혔다간 큰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부님이나 한 노사의 경우처럼 몇 년을 두고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는, 가르치는 장노삼조차 ‘얘가 이처럼 집중력이 높았던가?’하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였다. 연습과 더불어 초식의 결을 교정해주느라 삼 일을 더 소비한 장노삼은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고 생각했는지, 마침내 동천을 가르친 열흘 만에 그만하면 됐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힘들다.”

동천이 땀을 흘리며 방문을 나서자 어느새 준비했는지 문정이 다가와 물을 대령했다.

“갈증나시죠? 드세요.”

동천은 지극히 만족하여 물을 받아먹고 말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지만 이제 정말로 떠나야 할 것 같은데, 짐은 다 챙겨놓았냐?”

문정은 얼른 허리를 숙였다.

“예, 감히 사부님께서 명하신 것을 제가 어찌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잘했어. 그럼, 내일 당장 떠나기로 하지 뭐.”

언뜻 보기엔 너무 급하게 떠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열흘 전부터 떠날 거라는 언질을 준 마당이니 그렇게 서둘러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 저녁, 부진한의 초대로 저녁 식사를 마친 그들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잠이 부족해 피곤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시간에 깨어난 동천은 운기조식의 습관이 이렇게 무서웠나 새삼 감탄해야만 했다. 운기를 끝내고 가뿐해진 정신으로 모두와 함께 아침 식사를 끝낸 그는 각자 맡은 바 짐을 챙겨 들고 정운각을 나섰다.

“아아, 이제야 정말로 떠나는구나.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던 곳이었는데 말야.”

도연은 주군의 중얼거림을 듣고 동조했다.

“그렇습니다. 아마도 이곳에 계신 여러 분들이 그리울 겁니다”

동천은 하나도 그립지 않을 것 같았지만 체면상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중 대인은 어째서 코빼기도 안 비치냐? 여기에 머물겠다던?”

“아닙니다. 아마도 출입구 쪽에서 몇몇 안면이 계신 분들과 미리 기다리시고 계실 겁니다.”

동천은 아깝다는 표정을 지은 뒤 묵묵히 사람들을 따라갔다. 출입구 쪽에 다다르자 도연의 말대로 중소구를 비롯한 부진한과 그의 부인. 그리고 예의상 한자리를 차지한 제갈일위의 하인과 덤덤한 얼굴로 서있는 한 노사가 보였다.

“이제야 오는군.”

한 노사가 입을 열자 재빨리 다가간 동천이 마지못해 웃는 낯으로 인사했다.

“안 나오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배웅을 나오셔서 감사드립니다.”

“그것 때문이 아니다.”

동천은 의아함에 웃음을 지웠다.

“예? 그럼 왜 나오셨어요?”

한 노사는 간단하게 대꾸했다.

“지금은 말해줄 수 없구나.”

동천은 짜증이 일었지만 용케도 인내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곧 그의 시선에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부진한의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많은 가르침을 받고 떠납니다. 잠시 떠났다가 일로 인하여 다시 들릴 것이니 그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부진한은 동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꼭 다시 들르게나. 내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반길 터이니.”

‘안 그러기만 해봐라.’

같잖은 생각을 하고 난 동천은 그의 부인과도 인사를 나눈 뒤 제갈일위의 하인을 돌아보았다.

“제갈 형께서 근신 중이라 네가 대신 나온 모양이로구나. 가서 돌아가거든 힘드시는데 너라도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전하거라.”

“예, 공자님. 그리고 공자님께서 떠나신다고 하자, 가주님께서 마중 나오시지 못하는 대신 약간의 여비를 마련해주셨습니다.”

“그으래? 하하, 뭘 이런 걸 다.”

묵직한 전낭을 받고 난 동천은 입이 찢어져라 헤벌쭉거렸다. 그리고 가만히 동천을 지켜보던 한 노사는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는 동천을 구석진 곳까지 끌고 간 뒤에야 차분히 입을 열었다.

“내 너를 이곳까지 와서 보자고 한 이유는 아무래도 그 철경을 본 노사가 맡아두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

구석진 곳까지 끌고 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철경을 내놓으라는 것이자, 기가 막혀진 동천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그를 보여주었다.

“혹시, 이게 몇 개로 보이세요?”

정신이 어떻게 됐냐는 뜻이었다. 눈살을 찌푸린 한 노사는 싸늘하게 말했다.

“네놈 손가락은 네놈이 세거라.”

그러자 동천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노사님께서 왜 이제 와 맡겠다고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그걸 노사님에게 맡겨야 할 책임이나 의무감은 못 느끼겠습니다.”

한 노사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가 강제로 실력을 과시할 명분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에게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켜야 할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었다. 어차피 녹여질 것이지만 그때까지라도 학자의 욕심 상 자신이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칠칠치 못한 동천의 덤벙댐이 일조를 했지만 말이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네가 형산파에 가서 녹이는 방법을 알아낸다고 해도 장 형을 만나러 이곳에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결코 짧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장노삼과 동천은 서로들 녹이는 방법을 알아낸 뒤 제갈세가로 돌아와 기다리기로 했는데 한 노사는 지금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