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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6화


수련은 앞마당에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는 감나무 밑에서 기대앉아서 한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심심하당. 동천은 수련한다고, 역천 할아버지 따라 산에 기어 올라갔고, 아가씨도 수련하신다고 수련동에 들어가셨고.. 할머니는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도 않고.. 하아암! 에구.. 하품만 나오네.”

수련은 진짜로 할 일이 없는지 풀밭을 딩굴었다.

“아..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햇빛이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도 없었지만 감나무 잎이 어느 정도 가려주자 그런데로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볼 수 있었다. 한참 동안을 눈살을 찌푸리며, 햇빛을 바라보던 수련은 동천과 아가씨가 모두 무공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흐음.. 나도 무공을 배워봐? 아가씨가 동천이 들어올 때 같이 배워도 된다고 그러셨는데.. 까짓거 배워보지 뭐.”

무공이 무슨 애들 장난인 것 마냥 쉽게 생각하는 수련이었다. 우선 무공을 배운다는 생각을 마친 수련은 벌써부터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그런데 누가 나를 가르쳐주지? 할머니한테 가르쳐달라고 해볼까? 안되지? 그러다가 제자가 되라고 하면 어떡해. 나중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으으으… 생각만 해도 싫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수련은 상상 외로 귀찮은 것은 동천보다 더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수련의 무공 수련 계획(計劃)은 이렇게 막이 내리고 말았다.

“아.. 귀찮아. 그냥 편하게 살지 뭐.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가씨께 음식을 날라다 줘야 하는 날이네? 내 정신 좀 봐..”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은 사정화에게 음식을 갖다 줘야 하는 날로 사정화가 잡아놨다. 아가씨에게 음식을 갖다 줘야 한다는 생각이 미친 수련은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메기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흠흠! 햐.. 내가 만드는 거지만 진짜 냄새 좋다.”

메기탕의 냄새에 혼자 도취되어있던 수련은 절로 흥에 겨워 자신도 모르는 박자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메기야 끓어라… 내가 너를 음식으로 썼다고 내 꿈에 나타나지 말고, 너를 먹는 아가씨..께도 나타나지 말고, 누구에게.. 누구에게.. 호호! 동천의 꿈속에.. 동천의 꿈속에 나타나려무나! 호호호호! 재미있다. 알겠지? 꼭, 동천의 꿈속에 나타나야 된다. 나한테 나타나면 안 돼. 호호호!”

시간이 흐르고 메기탕이 다 완성되자 수련은 화려하게 생긴 도자기 그릇에 메기탕을 쏟아부었다.

“호호호! 메기탕. 완성이요. 자.. 메기야. 아가씨께로 가자!”

수련은 메기탕을 쟁반 위에 올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수련동에 도착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였지만 동굴 표면을 반듯하게 잘 깎아서 그런지 반들반들해서 보기가 좋았다. 이리 꺾고, 저리 꺾고, 동굴 안에 깊숙이 들어간 수련은 수천 종류의 책들이 꽂혀있는 서가(書架)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수련은 왜 이렇게 많은 책들을 여기에다 옮겨놨을까.. 하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었다.

“아가씨가 아직까지 연공실(年功室)에서 수련을 계속 하시나?”

잘 정돈된 서가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서탁 위에 쟁반을 올려놓은 수련은 메기탕이 식기 전에 먹어야 맛이 있기 때문에 얼른 사정화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아가씨-! 어디 계세요! 식사하세요!”

사정화는 수련의 예상을 깨고, 금세 찾을 수가 있었다. 수련이 목청을 높여서 부르자 금세 나타났던 것이다. 하얀 무복을 즐겨 입는 사정화는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나타났다.

“먹을 거야?”

“예. 이번에는 메기탕이예요!”

수련의 말에 사정화의 눈이 잠깐 반짝거렸다. 아마 메기탕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사정화는 식탁이 되어버린 서탁에 앉아서 한 숟갈을 떠먹더니 뭔가 생각난 듯 수련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저요? 당연히.. 먹었죠.”

사실은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있다가 점심을 걸렀지만 자신은 이따가 가서 먹으면 된다는 생각에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배가 조금 고프긴 고팠지만, 아가씨가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뻐서 그런 배고픔 따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수련이 자신은 먹었다고 하자 사정화는 다시 메기탕을 떠먹기 시작했다. 탕이 뜨거워서 그런지 호. 호.. 불면서 음식을 떠먹는 사정화의 모습에 수련은 같은 여자가 봐도 깜찍하고, 귀엽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 나는 왜 저렇게 예쁘게 생기지 못했을까? 아가씨가 부럽다..’

수련도 예쁘긴 예뻤지만 사정화의 얼굴에 빛이 바래 자신의 얼굴에 대한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이 예쁘다고 누가 말해주면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수련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정화는 수련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음식을 먹다 말고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며 물어보았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수련은 갑작스러운 아가씨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

“예? 아니에요. 묻기는요..”

“그런데 왜 그렇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

“그게요.. 아가씨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해서요.”

사정화는 피식! 웃었다.

“싱겁기는…”

수련도 따라 웃었다.

“헤헤헤..”

시간이 흐르고 사정화가 메기탕을 다 먹자, 수련은 쟁반을 들고 일어서려 했다. 그런데 사정화가 부르는 바람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수련아, 동천은 역천에게 잘 갔어?”

“동천이요? 걔는 지금쯤 역천 할아버지와 소려산에 올라갔을걸요. 제가 한 당주 아저씨에게 들었거든요. 호호호! 근데요. 한 아저씨가 역천 할아버지에게 또 맞았나 봐요. 한쪽 눈이 시퍼런 거 있죠?”

“그래..?”

“나머지는요. 제가 또 가서 물어볼게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요.”

-….. .

수련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사정화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서며, 천천히 서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수련도 서탁 위에 있던 쟁반은 그대로 놓아두고, 사정화를 따라갔다. 사정화는 서가에서 무슨 책을 찾으려는지 하나둘씩 뺐다.. 넣었다. 하면서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찾기를 반각여.. 사정화는 드디어 자신이 찾던 책을 찾은 듯했다.

“찾았다..”

사정화의 말에 수련은 뭔가 하고, 사정화의 옆에서 사정화가 들고 있던 책의 제목을 읽어보았다.

“옥(玉)..로(露)..무녀(巫女)…검법(劍法)? 이게 무슨 검법이예요?”

수련의 물음에 사정화는 그 무공 비급을 수련에게 넘겨주며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옥로무녀검법(玉露巫女劍法)은 지금으로부터 사백 년 전에 여인 중에 가장 강했다고, 전해지는 소한아(蕭韓衙)라는 여협이 만든 무공이야. 비록, 나의 선대조께 패해서 이 비급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선대조께서 제압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할 만큼 꽤 강한 무공이라고 들었어.”

“와.. 그럼, 이거 굉장한 무공이네요?”

수련의 흥분 섞인 물음에 사정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이걸 제게 보여주는 이유가 뭐예요?”

“네가 익혀.”

“예? 이걸요?”

수련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대단한 무공을 자신더러 익히라니.. 하도 놀라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수련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사정화가 비급을 자신에게 건네주자 수련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저기, 이렇게 귀중한 비급을 제가.. 어떻게 익혀요.”

“괜찮아. 그건 부본(副本)이야. 진본은 지금 내가 익히고 있어.”

수련은 더욱더 황당했다.

“그러니까 제가 더욱 받을 수 없죠. 이렇게 굉장한 무공을 제가 어떻게 익혀요? 아가씨.. 받을 수 없어요.. 그리고 제가 이걸 받는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다구요.”

수련의 말에 사정화는 의문을 가졌다.

“왜지? 받을 수 없다는 말은 그렇다 쳐도 왜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지? 내가 알아듣게 설명을 해봐.”

“왜냐하면요. 이렇게 난해한 무공은 제가 익히기에 너무 어렵다는 말이예요. 이런 걸 익히려면 누가 가르쳐주기 전에는 저한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구요…”

사정화의 입장에서 보면(천재의 입장.)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수련이 혼자 배우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사정화는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하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래..? 음.. 그렇다면, 내가 가르쳐줄게.”

사정화의 말에 수련은 깜짝 놀랐다. 자신을 가르쳐준다는 말은 반가웠지만, 그랬다가는 아가씨의 폐관 수련이 흐지부지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정화의 제안(提案)은 수련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반가운 제안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예? 아가씨가요? 하지만..”

사정화는 수련이 미적거리는 이유를 아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매일마다 가르쳐준다는 얘기가 아니라 네가 음식을 날라다 주는 화, 금요일에만 잠깐 짬을 내서 가르쳐준다는 말이야. 알겠어?”

“그 정도면…”

“승낙(承諾)한 걸로 알겠어.”

사정화의 말에 수련은 더 이상 빼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예. 잘 가르쳐주세요.”

이리하여 수련의 무공 수련은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그전에.. 혈귀옹한테 가서, 내가 부탁해 놓은 검이 언제쯤 완성되는지 경과 좀 보고 와줘.”

“아.. 그 검이요? 난 오래전 일이라 까먹고 있었는데..”

“그리고, 목도 두 자루하고, 네가 쓸 검 한 자루도 부탁해서 목도하고 검은 거기에서 기다렸다가 받아와.”

사정화는 언제나 간단 명료하게 자기가 할 말만 했다. 수련은 옛날에 그런 사정화가 멋있어 보여, 사정화의 어투를 따라 했다가 속 터져서 금방 포기했었다.

“지금 가서 받아올까요?”

“그래.”

사정화의 승낙이 떨어지자 수련은 쟁반을 양손에 쥐면서 일어났다.

“그럼, 갔다 올게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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