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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64화


“휴우, 뭘 만들어야 할까?”

사고의 방을 나선 소연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약왕전에 있을 때 주방에서 나오는 것만 대령해주었던 그녀로서는 요리의 요 자도 모르게 지내왔던 것이다. 한껏 풀이 죽은 얼굴로 부엌에 당도한 그녀는 사고가 말씀한 왼쪽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까까지는 보이지도 않던 것이 지금은 어느 정도 구분을 할 정도가 되었다. 단색의 검은 계열이라 그때는 뒤쪽에 꺾인 부분을 간과했던 것이다.

“진짜 있긴 있었구나.”

그곳에서 바구니 별로 담겨있는 야채와 고기 덩어리를 꺼내왔다. 잠깐 스치듯 의아한 것이 ‘이런 것들은 다 어디에서 구비한 것일까?’였지만 아까 전 마을로 내려간다는 이야기가 떠오르자 금세 그 의문을 지워버렸다. 그런데 또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렇게 생활하려면 돈이 넉넉해야 할 텐데 그것은 어떻게 버는 것일까?”

막상 그러한 궁금증을 일으켰지만 왜 그런 것에까지 궁금해했던 것인지 그게 또 궁금해지자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는 가지고 온 것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쓸데없는 잡생각들을 떨쳐냈다.

“대충 가지고 오긴 했는데 뭘 만들어야 할지…….”

재료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부터 나왔다. 그러나 만들어보겠다고 한 이상 간단한 것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맞아. 이곳은 춥고 냉한 곳이니까 따뜻하게 국물이 들어간 것을 만들어줘야 할 거야.”

재빨리 불을 지핀 그녀는 가지고 온 재료들을 먹기 좋게 썰어서 솥에 부었다. 그런데 솥이 끓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뭔가 빠진 것만 같았다. 아니, 같았다가 아니라 향신료들이 빠져있었다. 재빨리 재료 보관장소로 달려가 마구잡이로 집어온 그녀는 손질도 안 한 그것들을 퐁당퐁당 빠트린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기본 재료가 다 들어갔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훗, 나도 하면 할 수 있구나.”

그녀는 솥 안의 내용물이 익을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그러나 자신의 첫 작품이라고 생각하자 기다린다는 것이 너무도 길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는 살짝 맛을 보았다.

“푸웃-!”

그것이 그녀의 첫 작품이었다.

“우웁! 너, 너무도 싱겁구나. 뭐가 빠져서 그런 것일까? 파, 마늘, 양파, 고추 같은 것들은 충분히 넣었는데…. 아? 소금이 빠졌구나.”

찬장을 뒤져 굵은소금을 찾아낸 그녀는 여섯 명이니까 수저로 여섯 번만 퍼 나르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섯 번. 다 됐다. 참, 후추도 빠트렸네?”

그것 역시 같은 방법으로 간을 맞추었다. 음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흙탕물 색깔로 변해갔지만 그녀는 분명 맛있게 되었을 것이라 추호도 의심치 아니하였다. 그러면서도 간을 보지 않은 것이 좀 수상하지만 말이다.

“아아, 만일 이 자리에 주인님께서 계셨더라면 제일 먼저 시식시켜드렸을 텐데….”

그녀는 지금 맞아 죽을 소릴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 익었나? 어서 갖다주어야겠구나. 그릇들이…. 아, 저기 있다.”

쟁반을 들고 조심스레 부엌을 나선 소연은 쟁반이 떨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었다.

“진정해 소연아.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분들은 나쁜 분들이 아냐. 한순간의 실수로 이곳에 들어왔다가 잡혀온 분들일 뿐이야.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만큼 분하기도 하겠지만 널 어찌하지는 않을 거야. 화가 나셔서 욕을 좀 하실 수도 있지만 널 어찌하지는 않을 거야. 갇힌 지 오래여서 이성을 잃고 계실 수도 있지만……. 이, 이게 아닌데.”

그녀는 자신이 뭔 소리를 하나했다. 정신이 불안정하다보니 나오는 말 또한 제멋대로인 것이다. 잠깐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하고 나자, 어느 정도 평온함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갇혀있다기에 철창 사이를 두고 살려줘요, 라는 말들이 오고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구나. 철창 같은 것들도 없고.”

조용하긴 했지만 그것 때문인지 주위가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들어가기에 앞서 철문의 수를 세어본 그녀는 막다른 곳의 철문까지 합쳐 총 여섯 개이자 하나에 한 명씩 들어가 있는 줄 착각했다.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난 그녀는 조심스레 첫 번째 철문을 두들겼다.

똑똑.

두들기긴 했지만 당연히 들려오는 소리가 없었다. 그곳에는 사람이 없거니와 설사 있다고 해도 방음의 효과가 뛰어나 웬만큼 소리를 지르지 않는 한 들리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소연으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이상하네. 몇 번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다니. 혹시, 방 하나에 한 명씩 있는 게 아니라 몇 명씩 나뉘어져있는 건가?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자리를 옮겨 두 번째 철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안에서 기척을 느낀 동천이 대답했다.

“빨리 들어와요. 배고파 죽을 뻔했다고요.”

문밖의 소연은 이곳 또한 잠잠하자 세 번째 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동천은 배고파 환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야 이년아! 누굴 놀리냐? 엉?”

소연은 어디선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출처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여섯 번째까지 문을 두들겨본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 열어봐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그래서 여섯 번째 문을 열어 본 그녀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겨있어서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재차 확인해 본 그녀는 혼란스러움을 딛고 다섯 번째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이번 것은 조심스레 열렸다. 촤르륵, 거리는 쇠사슬 소리가 들려왔다. 소연은 고개를 빠끔 내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저어…. 휴우, 없구나.”

사람을 찾아 안도해야 했으나 이건 거꾸로였다. 이렇게 야물지 못해서야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어쨌든 네 번째 철문을 열자 드디어 세 명의 사내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의 전경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구질구질한 옷차림에 스산한 분위기로 그녀를 노려보는 사내들이 아니라 상당히 거북스러운 역한 냄새였다.

‘웁! 어, 어떻게 이러한 곳에서 생활할 수가 있었을까? 나 같으면 단 하루도 못 버틸 텐데. 후우후우. 어쨌든 저분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게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해야겠다.’

“저, 저기요. 우웁! 그, 그러니…, 욱! 우욱! 자, 잠시만요.”

소연은 쟁반을 내려놓고 밖으로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그리곤 이미 열려져 있는 철문을 열 수 있는 데까지 힘껏 열어놓았다. 가능한 환기를 시키려는 것이다.

‘아아, 내 이리도 참을성이 없었다니. 저분들이 얼마나 무안해하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얼굴이 화끈거려졌다. 침착하게 마음을 추스린 그녀는 용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 전 일도 있고 해서 수줍은 새색시 마냥, 행동 하나하나가 소극적이었다.

“세 분 뿐이세요?”

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처음 보는 아이구나. 아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 한데…….”

그 말에 조심스레 대주의 얼굴을 살펴본 소연은 상대의 얼굴이 하도 엉망인지라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차마 상대의 면전에다 ‘얼굴이 더러워서 모르겠어요.’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저와 비슷한 아이였나 보죠.”

대주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예쁘장한 여아들은 간혹 비슷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니까.

“내가 알고 있기로는 민낭이 혼자 지내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오늘 너를 대하니 당황스럽구나.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겠느냐?”

어려운 것이 아니자 의외로 가벼운 그녀의 입이 열려졌다.

“전 그분의 사질로서 어제 왔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제가 온 것이고요. 아? 음식이 식겠어요. 어서 드세…….”

말을 채 잇지 못한 소연은 당황함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묶여진 그들의 손이 모두 치켜 올려져 도저히 그녀의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하지요? 여러분들의 손이, 손이.”

너무도 순진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부대주가 나직이 웃음 지었다.

“하하, 걱정 말거라. 우리의 머리 위쪽을 보면 벽의 구멍이 보이지? 그 구멍에 우리를 제압하고 있는 쇠사슬이 이어져 있고.”

소연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보여요.”

부대주는 다시 말했다.

“모르는 네가 보기엔, 우리가 계속 이러고 있는 줄 알겠지만 사실은 아니란다. 저 철문을 한번 열었다 닫으면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간 쇠사슬들이 일정 분량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행동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 그러다 다시 한번 열었다 닫으면 지금의 우리 모습이 되는 것이고. 그러니 네가 문을 닫고 나간다면 우리는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란다.”

그제야 그녀는 문이 열릴 때 들렸던 쇠사슬 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아, 그러니까 제가 나가기만 하면 되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그녀가 그들의 앞에 그릇들을 내려놓고 돌아서자 아직 물어볼 말이 있었던 대주가 그녀를 불렀다.

“뭐가 그리도 급하지? 적어도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소연은 주춤했다. 말해줘도 될지 고민스러웠던 것이다. 헌데, 바로 그때 민묘희의 당부가 떠올랐다.

“사, 사고님께서 사적인 대화는 금하시라 명했습니다. 그럼 이만!”

쾅 소리 나게 그녀가 나가버리자 세 사람은 황당했다. 여지껏 지 할 말 다 해놓고, 갈 때 되니까 사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니…….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로군.”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황당한 일은 따로 있었다. 대주는 심각한 얼굴로 옆의 부대주에게 말했다.

“혹시, 저 아이. 한 번만 열었다 닫았는가?”

부대주는 딱딱한 얼굴로 수긍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제일 우측의 군영은 발치의 음식들을 바라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그, 그렇다면 다음 식사가 올 때까지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까?”

“으음, 그렇게 되는 셈이지.”

무슨 소리냐 하면 처음에 들어올 때 한 번을 닫고 나갈 때 다시 한 번을 닫아야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는데, 소연의 경우에는 열고 들어왔다가 나갈 때 한 번만 닫았기 때문에 계속 매달려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그때 무엇을 보았는지 군영이 흥분을 금치 못했다.

“대주님! 고, 고기가!”

“뭐라?”

대주와 부대주의 고개가 동시에 아래로 향했다. 누가 보면 채신머리없게 요란을 떤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몇 달 동안 괴상한 것들만 먹게 된다면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오죽했으면 대주와 부대주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겠는가.

“그 계집년이 이상한 재료를 먹여대는 통에 식사다운 식사 한번 해보지 못했는데, 막상 기회가 찾아오니 일이 또 이렇게 꼬이는가?”

“아아, 그러게 말입니다. 간혹 먹을만한 것을 줘도 밥 한 끼와 나물 한 가지뿐이었거늘. 바로 진수성찬이 눈앞에 있거늘…….”

그들은 먹으면 더욱 큰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슬픔에 빠져있었던 민묘희는 어느덧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인식했다. 만독문을 나서면서 두 번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어제에 이어 오늘 또 눈물을 흘린 것이다.

“냉철한 다짐도 핏줄 앞에서는 이렇게 되고야 마는구나.”

요즘 들어 마음이 흔들리던 차에 언니의 죽음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눈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물을 닦고 난 그녀는 의외로 침착함을 유지했다. 마음은 아프지만 연륜이라는 무기가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느니 죽는 것이 나으리라.”

그것이 그녀의 신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간단하게 옷을 갈아입고 동굴을 벗어났다. 이미 비가 그친 형운곡은 평소보다 더욱 진한 운무가 뿌려져 있었다. 그러나 사십 년을 넘게 이곳에서 생활해온 그녀에게는 운무 따위가 지장이 될 수 없었다. 그녀는 설치해둔 진법을 고려하여 다른 길로 신형을 틀었지만 곧 그것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때 당시 사정상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던 그곳은 쓰러진 초목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곳은 이미 스멀거리는 독물들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그 자…. 확실히 대단하군.”

사실 단 한 수에 진법이 파괴된 장면을 보았을 땐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물러서는 태도를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신념이 용서치 않는 행동이었다. 다행이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조정광이란 이름 석 자가 단단히 박혀버렸다. 그때 문득 생각에 미치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들을 생각 못 했군.”

동천과 도연을 말하는 것인데, 어린 소연이 갇혀있는 그들을 본다면 일이 시끄러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심약한 아이가 그 녀석들의 꾐에 넘어가 풀어줄 수도 있으니 아무래도 돌아가야겠구나.”

특히, 그녀가 보기에 동철(동천은 가명을 사용했다)이라는 녀석이 위험해 보였다. 뚫린 입이라고 쉴 새 없이 하소연을 하면 소연 정도는 그냥 넘어갈 것만 같았던 것이다. 신형을 돌려 재빨리 신법을 전개한 그녀는 때마침 이 호실 문을 열려고 하는 소연을 발견했다. 마찬가지로 민묘희를 발견한 소연은 놀라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한 얼굴로 물었다.

“아? 사, 민낭께서 여기엔 어쩐 일이세요? 벌써 다녀오셨어요?”

민묘희는 소연의 쟁반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째서 세 그릇뿐이냐. 여섯 그릇이어야 하거늘.”

소연은 뒷머리를 살짝 긁어댔다.

“그게, 사정이 있어서 저기 네 번째 방의 분들께 먼저 드렸습니다. 어디에 계신 줄 몰랐기 때문에 끝 방부터 찾다 보니…….”

민묘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개 처음부터 찾아보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끝에서부터 찾았단 말인가? 역시 좀 이상한 아이로구나.’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명했다.

“됐다, 이곳은 내가 맡을 터이니 너는 그만 네 방으로 가 있거라.”

반색을 한 소연은 기꺼이 따랐다.

“예, 민낭.”

어지간히도 하기 싫었나보다. 그런 그녀가 계단 위로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민묘희는 이 호실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눈물을 짓고 있는 동천이 반기고 있었다.

“흑흑, 왜 이제야 오셨어요. 아주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어찌나 불쌍하게 구는지 민묘희가 다 미안하다고 말해줄 뻔할 정도였다. 그녀는 이곳의 일을 소연에게 맡기지 않은 것을 참으로 다행으로 여겼다. 만일 지금의 상황을 그녀가 겪었다면 불 보듯 뻔한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제일 먼저 점혈에 들어간 민묘희는 혈도를 풀려 했던 노력한 흔적이 보이자(동천만 빼고) 마음껏 비웃어주었다.

“거북이가 기어가 봤자 거기에서 거기라는 것을 모르고 있나 보구나.”

중소구는 이를 갈았다.

“흥! 바다 속의 거북이는 굉장히 빠르지.”

“물론이다. 하지만 이곳은 육지다. 혹시 바다와 육지도 구분 못하는 바보는 아니겠지?”

언변으로 밀리자 중소구는 급히 동천을 찾았다.

“이놈아, 이렇게 당하고 살 수만은 없지 않느냐! 한마디 쏘아 붙여봐!”

동천은 소리쳤다.

“밥 줘요!”

화딱지가 난 중소구는 분노에 찬 얼굴을 했다.

“그게 아니라 한방 멋지게 쏘아 붙여 보라고!”

“밥 줘요!”

중소구가 하도 기가 막혀 동천을 노려보자 이미 동천의 눈은 뒤집혀 있었다. 먹을 것이 눈앞에서 오락가락하자 이성을 상실한 것이었다. 피식 웃고 난 민묘희는 그릇들을 발치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사슬에 제약이 풀린 동천은 누가 빼앗을 새라 재빨리 들이마셨다.

“꿀꺽꿀꺽, 꿀…커헉?”

잘 먹던 동천이 갑자기 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자 도연은 본능적으로 그릇을 내려놓았다.

“주군, 왜 그러십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되찾은 동천은 헐떡거리며 말했다.

“저, 저건…. 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이……. 꼬르륵.”

중소구가 급히 물었다.

“죽었는가?”

도연은 무섭게 중소구를 노려보았다.

“행여라도 그런 소리 마십시오.”

“아, 알겠네.”

중소구가 움찔하는 사이, 급히 동천의 상태를 살핀 도연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맥박이 안정되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별일은 아닌 듯 합니다. 그리고 방금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중소구는 손을 내저었다.

“됐네.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한 본 대인의 잘못도 있으니 자네는 잊어버리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헌데, 경이적인 소화력을 자랑하시던 주군께서 기절까지 한 것으로 보아 이번 음식에는 강력한 성분의 독초가 배합되어 있었나 봅니다.”

“으음, 거의 이틀 동안을 굶겨놓고 이것을 마셨을 때의 신체 반응을 조사하려는 것인가? 이젠 별의별 실험을 다하는군.”

중소구는 자신의 손에 쥐어져있는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색깔이 좀 수상했지만 그렇다고 못 먹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약지로 살짝 찍어서 맛을 본 그는 대뜸 헛구역질을 하고 나서야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욱, 이러한 것을 단숨에 들이켰다는 말인가? 실로 저놈이 아니라면 도저히 흉내낼 수도 없는 일이로다.’

그는 진저리를 치며 그릇을 한쪽 옆에다 치워놨다. 먹는 것을 포기하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자리에 눕던 그는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연을 바라보자 그는 멀쩡했다. 이에 기절한 동천을 바라보자 그의 목 울대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척 봐도 넘어오고 있는 것을 다시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허어! 몸은 먹을 게 아니라며 토해내려 하는데, 본능은 먹은 게 아까워서 그걸 저지하고 있는 것인가?’

할 말을 잃게 된 중소구는 뭐 저따위 자식이 다 있나 싶어 한동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반면, 떨떠름히 그런 주군을 바라보던 도연은 고개를 돌려 자신이 먹을 뻔한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한 사람이 먼저 맛을 보면 다 들통날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어째서 강제로 먹이지 않았을까? 이상하구나.’

내심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대소변을 가리는 곳에 그 내용물을 버리려고 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손이 그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그, 그거 버릴 거냐?”

동천이었다. 도연은 기쁜 신색으로 반겼다.

“깨어나셨습니까? 속은 어떠십니까.”

그 사이 눈 밑이 퀭하니 죽어버린 동천은 뭔가 집착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거, 헉헉. 그거 버릴 거냐고.”

“예, 그렇긴 합니다만.”

동천은 도연이 말릴 사이도 없이 그것을 빼앗아 먹었다.

“꿀꺽꿀꺽…, 컥? 꼴까닥!”

그가 그렇게 다시 기절하자, 어처구니가 없어진 도연과 중소구는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찌 깨어나자마자 그걸 다시 먹는단 말인가. 특히, 살짝이나마 맛을 보았던 중소구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저놈이 얼마나 배고픈 것을 못 참는지는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런 것을 네 끼에서 다섯 끼 정도 굶었으니 눈이 뒤집힐 만도 하리라. 하지만, 하지만 이건 아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 해도 저 정도까지 집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 실로 저놈은…….’

중소구는 동천이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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