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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71화


“이히히! 만세! 하늘님 만세!”

만세를 부르던 동천의 신형은 어느새 인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도연은 그런 주군의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 천천히 따라갔다. 갑자기 증발하지 않는 이상 못 찾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미리 앞서 달려간 동천은 밭을 갈고있는 늙은 노인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손을 맞잡았다.

“할아범! 반가워!”

영문을 모르지만 노인도 반가웠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놈의 어투였다.

“떽끼! 쪼그만 놈이 무슨 말버릇이더냐! 할아범? 이노옴!”

동천은 눈을 똥그랗게 떴다. 할멈도 아니고 할아범을 할아범이라 불렀는데 마주선 노인이 갑작스레 화를 냈던 것이다.

‘노망났나?’

노망난 늙은이에게 노망났냐고 물으면 그 누가 옳다구나 시인을 하리오. 동천도 그쯤은 알기에 우회해서 질문했다.

“할아범, 혹시 요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 않아?”

노인은 촌부임에도 불구하고 동천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이런 못된 놈을 봤나!”

따끔한 훈계를 내려줘야겠다고 생각한 이(李) 노인은 흥분을 추스리지 못하고 동천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나 고스란히 맞아 줄 동천이겠는가?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재빨리 피했다. 그리고 이 노인의 허리에서 뚜둑, 거리는 뼈 어긋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헉?”

이 노인은 그대로 고꾸라져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나이는 59세로 일년만 더 지나면 환갑이었다. 이만하면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었다. 잠자듯 편히 죽는 게 소원인 그는 갑자기 눈앞이 깜깜한 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리의 통증은 둘째였다. 다른 무엇보다 앞으로가 문제였던 것이다. 허리를 다쳐 방 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똥오줌을 누는데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까지 했다.

“어이구, 어이구.”

고개를 약간 뒤로 뺀 죄밖에 없는 동천은 허리를 다쳐 쓰러진 할아범과 눈을 맞추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할아범. 아퍼?”

“이놈아! 다, 당연한걸 가지고……. 크으, 아이고 나 죽네!”

그사이 다가온 도연은 동천의 뒤에 서서 물었다.

“이 할아버님은 왜 이러고 계십니까?”

동천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후우, 얘기를 들어보니까 아들놈은 놀고먹고 집안 일은 이 할아범이 다 한데나 봐.”

이 노인은 아픈 와중에도 들을 건 다 들었다.

“뭐야? 이놈! 어디서 그런, 아이고 아파라. 내, 내 아들이 뭐?”

동천은 늙은이가 귀도 밝다고 생각했다.

“거참 되게 그러네. 농담도 못하냐?”

주군의 말이 진짜인줄 알았던 도연은 곧 아님을 알고 재차 물었다.

“제대로 말씀해 주시지요.”

동천은 순순히 대답했다.

“내가 이 할아범을 부르니까 갑자기 화를 내더라고. 그래서 노망났나싶어 요새 기억이 가물거리냐고 물으니까 갑자기 내 따귀를 때리려는 게 아니겠어? 어쩌겠어. 이 몸이 미쳤다고 그걸 맞겠어? 맞을 수 없어서 피한 건데 불쌍하게도 허리를 다쳤나봐.”

이야기를 듣고 난 도연은 우선 약간 비틀어진 이 노인의 상체를 바로잡아 눕혀주었다. 이 노인은 고통이 수그러든 듯 인상을 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넌 착한 아이구나. 저놈은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못된 놈이지만 말이다.”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도연은 동천에게 말했다.

“주군의 잘못도 있으니 어떠한 방도가 있으시면 이 할아버님을 고쳐 주시지요.”

동천은 콧방귀를 꼈다.

“흥! 이 몸이 무얼 잘못했는데?”

자세가 바로잡혀 허리가 편안해진 이 노인은 대뜸 소리쳤다.

“저, 저런 고얀 놈을 봤나!”

동천은 노인의 어투를 따라했다.

“이, 이런 고얀 노친네를 봤나!”

이 노인은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린놈이 너무도 까졌던 것이다. 노인 못지 않게 당황한 도연은 동천을 끌고 이장 여를 벗어났다.

“주군, 어쩌자고 그러십니까.”

괜히 기세가 등등해진 동천은 자신에게 향한 노친네의 눈초리를 마주보며 말했다.

“저게 열 받게 하잖아. 내가 늙었다고 봐줄 줄 알아? 콱, 밟아버릴 까보다.”

도연은 그런 주군을 진정시켰다.

“며칠 전까지는 이러셔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안 그렇습니다. 여기는 암흑마교가 아닙니다. 주군의 권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란 말입니다.”

동천은 생각지도 못했던 듯 주춤거렸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암흑마교가 아니면 어때, 까불면 패버리면 되는 거야. 지들이 얻어맞고 배겨나겠어?”

도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소동이 벌어지면 본교에서 파견된 자들에게 그만큼 걸릴 확률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이곳에 머물다 지나가도 흔적을 남기는 건 당연한데 거기다가 난리를 피워보십시오. 어떻게 되겠습니까.”

동천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언제나 그랬지만 도연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던 것이다. 잠시 후 동천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 임마. 내가 약왕전의 소 전주라는 걸 인식하지 말고 보통 아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지?”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저 할아버님께 가셔서 사과를 하시지요. 그리고 방금 말했지만 주군의 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거라면 저분의 허리도 고쳐주시고요.”

도연에게는 투덜대며 씨부렁거렸지만 이 노인에게 돌아선 동천의 얼굴은 해맑은(?) 어린아이의 미소를 짓고있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많이 아프시죠?”

이 노인은 지들끼리 한참을 소곤거리다 그 중 싸가지 없는 아이가 돌변해 다가오자 당연히 경계를 했다.

“그, 그렇다 이놈아. 네놈이 고쳐주기라도 할 테냐?”

동천은 이놈네놈 하는 소리에 성질이 났지만 한번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가까스로 참았다.

“헤헤, 저 때문에 허리를 다치셨는데 당연히 고쳐드려야죠. 제가 이래봐도 한 의술 하거든요. 이번에 사부님의 명으로 약초를 구하러 산을 헤매다가 이곳에 잠깐 들린건데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어 심심한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아무리 말해도 재수 없게 본 녀석에게 허리를 맞기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 노인의 경우는 좀 달랐다. 예전에 한 의원이 제자를 이끌고 이곳에 온 적이 있었는데 나이만 다를 뿐이지 그 제자도 눈앞의 꼬마처럼 상당히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제자가 실수로 동네 꼬마를 다치게 한 적이 있었다. 이 노인이 바로 앞에서 보았으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헌데, 예상외로 기겁을 하고는 정성을 다해 그 꼬마를 고쳐주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제자의 스승은 의원의 신분으로서 고쳐주지는 못할망정 병을 되려 주는 것은 의원의 본분이 아니라 하여 그런 일이 벌어질 시에는 가차 없이 제자를 쫓아내는 바람직한 사고관을 가진 의원이었다. 동천이 의원의 제자라고 하자 그때의 일이 떠오른 이 노인은 아마도 두 아이가 서로 중얼거린 게 앞서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이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의 사부에게 쫓겨날 까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안면을 바꾸고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보면 확실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 노인의 생각에는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너무 어리긴 해도 밑져야 본전 식으로 허리를 맡겼다.

“잘해 이놈아.”

동천은 이 노인의 허리를 돌려놓고 씨부렁거렸다.

‘씨발, 아주 뿌려트릴까보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찬찬히 이 노인의 허리를 집어가고 있었다. 때론 강렬히 때론 부드럽게 엄지손가락을 눌러가며 이 노인의 반응을 살핀 동천은 다행히 뼈만 약간 상했다는 결론을 지었다.

“할아버지. 허리가 작살난 건 아니고요. 좀 상했어요. 제가 운 좋게도 그에 따른 처방전을 알고 있거든요? 약재를 불러드릴 테니 기억해 두셨다가 푹 달여 드세요. 알았죠?”

이 노인은 엎어진 상태에서 버럭 화를 냈다.

“이놈아!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약재를 달여먹어! 잔말 말고 당장 고쳐 놔!”

기도 안 차는 노인네의 요구에 동천의 눈 꼬리가 위로 치켜졌다. 진찰해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로 알아야 할 것을 거기다가 약재 값까지 전가시키다니. 화가 치솟은 동천은 자신도 모르게 노친네의 대갈통을 후려칠 뻔했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도연의 손이 내려치려는 동천의 팔목을 잡았다. 이러면 안 된다고 고개를 젓는 도연의 모습에 동천도 가까스로 화를 억눌렀다.

“헤헤,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아무에게나 안 보여주는 필살의 비법인 기공술(氣攻術)로 할아버님을 고쳐드릴게요.”

이 노인의 고개가 약간 위로 치켜졌다. 덕분에 허리가 뻐지근 했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기공술?”

흥미로워하는 눈길이 아니었다. 이상한 짓 말고 정석으로 고치라는 눈길이었다. 띠꺼워하는 이 노인의 눈빛을 제대로 해석해낸 동천은 내심 이를 갈았다. 동천은 대놓고 성질을 낼 수 없어 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잡고 으스러트렸다. 한 손에 꽉 찰 정도의 크기가 잘도 부서졌다. 그러나 이 노인은 귀가 먹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놈아, 니놈이 노려보면 어쩔겨?”

마침내 동천이 폭발하려는 찰나 어느새 도연이 나서서 이 노인에게 말했다.

“할아버님. 이분의 기공술은 그 어떠한 한약이나 침술보다 효과가 탁월하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기공술로 고쳐주지 않았던 것은 효과가 탁월한 만큼 엄청난 심력을 소비하기 때문에 이분께서 극히 꺼리시는 거죠.”

이 노인은 잠자코 들었다. 보아하니 도연의 말을 믿는 듯 했다. 허나, 한번 삐딱선을 탄만큼 그도 똥고집을 부렸다.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행동으로는 그렇게 안됐던 것이다.

“그려? 그럼, 내가 한번 믿어보마. 빨리 혀!”

내심 이를 갈며 내공을 일으킨 동천은 허리가 어긋난 부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귀의흡수신공을 운용했다. 각기 다섯 손가락에서 줄기찬 기운이 쏟아졌다. 이 노인은 허리가 무척 시원함을 느꼈다. 앓던 이가 쏙쏙 빠지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허리가 낫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동천은 귀의흡수신공을 노인의 다친 허리에 침투시켜 그곳을 자신의 몸 한 부분이라 여기고 치료를 하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의 몸이라면 그렇게 효과가 없을 테지만 자신의 몸이라 생각하면 신공의 특성상 몸을 이롭게 만들기 때문에 급속도로 다친 부위를 치료하는 것이었다. 동천의 머리로는 절대로 생각해 낼 수 없는 무공 묘리상의 편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놀랍게도 동천이 생각해낸 것이었다. 역천조차 생각해내지 못한 것. 역천은 내공으로 상대의 내상을 치료하는 보편 된 기공술을 가르쳐주었지만 동천은 그것을 뛰어넘어 귀의흡수신공을 이용해 무공으로 인한 내상이 아닌 외상과 다른 모든 것을 그것에 적용한 것이었다. 하긴……, 동천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내겠는가. 정작 당사자인 동천은 귀의흡수신공으로 당연히 이렇게 치료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후우, 다 됐으니까 한번 일어나 봐. ……요.”

여섯 차례나 같은 방법으로 연이어 신공을 운용한 동천은 다소 피로한 얼굴로 말했다. 이 노인은 어린놈의 말투가 약간 눈에 거슬렸지만 그보다 확인을 하는 것이 먼저인지라 엎어져있던 몸을 돌려 슬그머니 일어났다. 곧이어 그의 눈이 커졌다.

“오오, 나았다! 다 나았어!”

이 노인은 그렇다 치고, 가만히 지켜보던 도연도 저 정도로 낫게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듯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동천은 기분 나쁘지 않은 따가운 시선을 느끼곤 어깨를 으쓱했다.

“흐응, 이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지.”

허리병신이 되는 줄 알고 있다가 완치된 이 노인은 흥분을 머금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동천에게 가지고있던 악감정을 싹 씻어버렸다.

“얘야. 네 이름이 뭐냐?”

순간 동천의 눈이 반짝였다.

“이름? 바로 저것이니라.”

동천은 득의의 웃음을 짓고 말없이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이 노인은 무심코 동천의 집게손가락을 따라가다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그에 따라 동천과 도연은 어리둥절해했다. 노친네가 왜 갑자기 놀라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저 혹시……. 하늘에서 내려오신…….”

황당한 소리에 도연이 입을 열려는 순간 동천이 잽싸게 소리쳤다.

“어허! 어린것이 감히 천기를 희롱하려하는구나!”

이 노인은 바들바들 떨며 넙죽 엎드렸다.

“어이쿠! 옥동자 님들 살려줍쇼!”

어린놈이 할아버지보고 어린것이라 하니 참으로 웃기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 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안았다. 침도 안 놔주고 맛이 간 허리를 고쳐주는 능력은 신의(神醫)라도 할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그에게 암시(?)까지 주지 않았던가. 그제야 자신을 처음 대할 때 옥동자 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분이니 당연히 하대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철썩 같이 믿었다.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혼자 넘겨집길 대단히 좋아하는 노인네 같았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도연은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쩌겠는가. 그는 되도록 조용히 넘어가고픈 심정이었다.

“할아버님. 저희는 이곳에서 조용히 머물다 가고싶은 생각밖에 없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받기 싫으니 어서 일어나시지요.”

이 노인이 보기에 지금 말하는 옥동자는 하늘나라 시종인 것 같았다. 그러나 시종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법. 그는 엉거주춤 일어났다.

“마을이라고 할 것 까진 없지만 제가 이 마을에서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놈입니다. 그런 건 걱정 붙들어매시지요.”

내키지 않은 존댓말로 입안이 껄끄러웠던 동천은 막말해도 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히히……가 아니라. 흠! 네 이름이 무어냐.”

이 노인은 감히 마주보지 못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이청(李淸)이라는 보잘것없는 이름을 가지고있습니다요.”

아무리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라도 비정상이 아니고서야 어린 동천보다 키가 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사실이 그랬다. 하찮은 것을 대하듯 거만하게 눈을 내리깔던 동천은 자신의 시선이 노친네의 허리부근에서 놀고있는 것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곳 산신령님을 스승으로 모시고있는 이 몸이 하계로 내려오니 심히 시장기를 느끼는구나. 네 집으로 가자.”

“물론입죠. 어서 따라오시지요.”

이청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어린애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동천일행은 허름하고 스러질 듯한 작은 모옥으로 안내되었다.

“다행히 방은 두 개입니다요. 원래 아들 내외가 있었는데 한 5년 전에 돈 번다고 도심지로 나갔다가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에휴, 그나마 의지하던 마누라도 2년 전 먼저 떠나고 지금은 저 혼자랍니다. 다행인 것은 제 소유의 밭이 있어서 먹고살기에는 그다지 무리가 없다는 것이죠.”

이청의 노안에 쓸쓸한 그늘이 졌다. 동천은 말없이 이청을 바라보기만 했다.

‘거참, 말많네.’

못마땅한 눈으로 이청의 위아래를 꼴아 본(눈치 못 채게) 동천은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자기 맘대로 부엌을 휘젓고 들어가 찐 감자를 들고 나왔다.

“냠냠, 이거 나 먹어도 되는가?”

이미 먹고 있으면서 물어보는 동천이었다.

“허허, 물론이지요.”

여섯 개의 감자를 가지고 나온 동천은 옥동자의 체면상 품위 없게 먹을 수 없어 천천히 씹어먹었다. 네 개째가 동천의 입 속으로 들어갈 무렵 도연이 다가왔다.

“저도 한 개만 주십시오.”

동천은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은 ‘내 것도 모자라.’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입증하듯 감자를 씹어 삼키는 동천의 속도가 빨라졌고, 그나마 남아있던 감자들은 눈깜짝할 새에 동천의 입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동천은 이빨에 낀 것도 없으면서 츱츱거렸다.

“으응?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느냐?”

도연은 불만을 표시할 수 없어 시선을 돌렸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심 킬킬거리던 동천은 곧이어 자기 방이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 내부는 홀아비가 혼자 산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찌든 냄새와 더불어 지저분하기까지 했다. 동천은 얼른 코를 막았다.

“크으. 이게 사람 사는 곳이야?”

동천의 뒤에서 이청이 쩔쩔매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죄송합니다. 혼자 산지가 좀 되는지라…….”

“알면 됐어.”

무성의하게 대꾸한 동천은 문득 그 동안 쌓인 피곤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절로 하품이 나왔다.

“이보게, 이 몸이 주무실 거거든? 저녁때 밥되면 그때 깨워. 알았지?”

앞뒤가 안 맞는 어투였음에도 이청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얼른 허리를 숙였다.

“예예, 물론입죠. 편히 주무십시오.”

밖에 서있던 도연은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오는 이청에게 말했다.

“할아버님, 아까도 말했지만 저희들은 조용히 머물다 가고싶습니다. 내일 이른 아침에 떠날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아주십시오.”

도연의 당부에 이청은 걱정 말라는 듯 자신있게 대답했다.

“저도 아까도 말했지만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놈입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터이니 작은 옥동자님도 쉬시지요.”

도연은 호칭문제에 관해 언급하려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어차피 내일 떠날 것이니 그냥 부르고싶은 대로 놔두어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내일 아침에 떠난다고?”

안에서 다 들었던지 동천이 안으로 들어온 도연에게 물었다. 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추적대가 어디까지 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곳에서 오랫동안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피곤함 탓에 그새 까먹고 있었던 동천은 퍼득 경각심을 돋구었다.

“으음.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언제동안 이래야 하지?”

어린 도연이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주군의 성격을 아는 지라 대충 기간을 잡았다.

“적어도 한 달은 이런 생활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뭐? 한달?”

“예.”

뭐라고 다그치려던 동천은 입술을 깨물며 그만 두었다. 그리고 다른 생각에 잠겼다.

‘그래. 독한 년의 수하니까 그놈들도 분명 독한 놈들 일거야. 충분히 그때까지 쫓아올 가능성이 있어. 쳇, 까짓거 한 달을 못 버틸쏘냐?’

동천은 너무도 순진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정말로 동천이 생각하는 자들이 추적해 오는 거라면 그들은 동천을 찾을 때까지 평생이고 쫓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천이 생각하는 마장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스므레한 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행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으음.”

3명의 사내들 중 선두의 사내가 무언가를 보면서 낮은 신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이미 조사를 마친 뒤였다.

“대주 님. 납치된 흔적은 없습니다. 아마 스스로 나가신 것 같습니다.”

대주라 불린 사내는 굳은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소 전주님께서 생각보다 고 단수이시군.”

대주의 오른쪽 뒤에 서있던 사내가 끼여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가 어리시다 생각하여 너무 방심했다 봅니다. 마차를 그대로 보내고 다른 곳으로 빠지시다니…….”

사내는 ‘듣던 대로 영악하다’는 말을 하고싶었으나 애써 삼켜야만했다. 그의 대주는 공과 사가 매우 뚜렸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의 앞에서 윗분을 욕보이는 발언을 했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하리라.

“결국 중간에서 빠지셨다는 말인데.”

대주는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흘간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와서 모두들 피로가 극심한 상태인데 되돌아가면서 흔적을 찾느라 심력까지 낭비한다는 것은 무인의 생명에도 지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심에 고심을 했다.

‘시간을 가지고 찾느냐, 아니면 전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단시일 내로 찾느냐.’

그는 자신의 수하들을 흘낏 보았다. 그들은 모두 쉬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쉬는 만큼 소 전주의 흔적이 지워질 것은 자명한 일. 쉬이 결단을 못 내리던 그는 마침내 전자를 택하기로 했다.

“운기조식을 취한 후 반 시진 뒤 소 전주님의 흔적을 찾는다.”

이청이 깨워주는 시간에 맞춰 일어난 동천은 볼품없는 식사를 마치고 때를 벗겨내기 위해 자그마한 욕통 안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씨팔. 그것도 식사라고 가져오다니. 그게 소여물이지 사람 반찬이야?”

저녁식사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으으, 겨우 두 그릇밖에 못 먹다니. 적어도 세 그릇은 비워야하는 건데.”

……따로 적을 말이 없다.

“그나저나 이놈의 때는 밀어도 밀어도 왜 계속 나오는 거야? 지가 국수 가락도 아니면서.”

동천의 투덜거림처럼 지금 욕통 안의 상황은 어느 것이 물이고 어느 것이 때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물 반 때 반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런데 그때 동천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다. 이를 놓칠 동천인가? 그는 까먹기 전에 재빨리 시(?)를 읊었다.

막국수의 정(情)이란 무엇이냐.

출출할 때 먹고픈 이 마음을 너는

아느냐. 국수라고 다 국수가 아니듯

막국수라고 다 막국수가 아니니라.

내 무지한 너에게 막국수의 정의를

내려주노니.

그냥 국수도 아니고 막가는 국수가

바로 막국수니라.

“푸헤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끝내주는 시라니까?”

웃느라고 동천의 동체가 흔들릴 때마다 국수 가락 같은 때들이 넘쳐 흘러나왔다. 동천은 자신의 때라서 그런지 전혀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잘 가거라 나의 때들아. 아아, 길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비의 심정이 이러할까.”

오히려 한술 더 뜨는 동천이었다. 두 손으로 둥둥 떠있는 때들을 모아 내다 버리던 동천은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 재미가 없어져 그만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서는 도연이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히히, 이젠 니가 들어가서 해.”

“알겠습니다.”

도연은 이미 준비해 놓은 뜨거운 물통을 양손에 각각 쥐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물통의 물은 욕통을 씻는데 다 소비해야만 했다. 한편, 그런 세세한 것까지 관심을 둘 리 없었던 동천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기분 좋게 운기 행공을 마쳤다. 헌데 눈을 떠보니 이청이 쓰러져있는 게 아닌가?

“어? 저 영감이 왜 문가에서 자빠져 있지?”

얼른 다가가 안색을 살폈다. 그의 안색은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동천은 단번에 상황 파악을 마쳤다.

“에이 씨! 내가 운기조식을 하는데 들어왔다가 독무를 마셨구만? 내가 오늘 밥만 안 줬어도 그냥 죽게 내버려두는 건데……. 하여튼 운 좋은 할아방구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치료는 욕이 튀어나올 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다행히 운기조식 막바지에 들어왔는지라 독무를 마신 것은 극소량인 것 같았다. 그나마 2년간 독무를 순화시켜 안으로 갈무리해서 그렇지 처음의 동천 수준에서 이청이 독무를 마셨다만 아마도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 분명했다.

짝! 쫘작!

“어이, 영감! 일어나 봐!”

동천은 싸가지 없게도 노인의 따귀를 스스럼없이 후려갈겼다. 그 영향 덕인지 이청이 미약한 신음소리를 동반하며 의식을 회복했다.

“끄응!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이청이 눈을 뜨자마자 동천의 거친 말투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으음. 자네는 신선무(神仙霧)를 들이 마셨다네. 아아, 범인이 신선무를 마시면 적어도 30년의 수명이 늘어나거늘……. 나의 실수로 정해진 수명을 늘려주었구나.”

동천의 헛소리에 잠시 어리벙벙해있던 이청은 곧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저, 정말입니까? 제 수명이 30년이나 늘어난 것이?”

동천은 애써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작전상 이청을 외면했다.

“그렇다. 이는 천기를 거역하는 것이지만 이왕 이렇게 벌어진 일. 너는 앞으로 굳게 입을 다물고 다른 사람들에게 오늘의 일을 퍼트려서는 안될 것이다.”

혼자 쓸쓸히 살면서도 의외로 오래 살고 싶어했던 이청은 입이 귀에 걸리는 것을 참아가며 동천에게 엎드려 연신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그럼요! 절대로 오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요!”

어느새 눈을 감은 동천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가식적인 어투가 이미 몸에 밴 탓인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능숙한 솜씨였다. 잠시의 침묵을 고수하던 동천은 슬슬 짜증이 일어나 본론에 들어갔다.

“이곳엔 왜 들어왔느냐.”

이청은 좀 머쓱했던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 그게. 요 옆집에 제가 친아들처럼 아끼는 아이가 있는 뎁쇼.”

“그런데?”

“예, 그런데 그 아이가 지금 무척 아프답니다.”

“그래서?”

“고쳐주십사하고…….”

순간 동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노인네가 너무 많은걸 바라고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말하자면 동천이 해준 것도 없지만 말이다. 동천의 낌새를 느낀 이청은 한껏 긴장된 얼굴로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바쁘시면 안 해주셔도 됩니다. 허허! 그냥 늙은이의 헛된 소리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런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동천이 손을 저었다.

“아니야. 고쳐 줘야지. 아픈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고쳐줘야 할게 아닌가?”

기대도 안 했던 이청은 감복한 얼굴을 했다.

“감사합니다, 옥동자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동천은 인자한 미소를 띄며 내심 중얼거렸다.

‘히히히! 아마 니 말대로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 사이 목욕을 마치고 나온 도연은 주군에게 다소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예?”

동천은 한말을 또 하게 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눈알을 부라렸다.

“못 들었어? 이 몸께서 환자를 치료하러 가니까 채비를 하라고.”

듣긴 들었는데 절로 인상을 찌푸릴만한 이야기인지라 차분히 반박했다.

“아직 주군께서는 그럴만한 의술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천은 콧방귀를 꼈다.

“흥! 니가 봤냐? 이 몸께서 밤이면 밤마다 얼매나 의서(醫書)를 붙잡고 노력을 해왔는지 니가 봤냐고.”

“못 봤습니다.”

솔직히 시인하는 도연의 대답에 부라렸던 동천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짐 챙기고 따라와.”

“짐은 왜 챙깁니까?”

동천은 손을 들어 때리는 척을 했다.

“너 자꾸 토달래? 한번만 더 아구리 놀려봐. 그때는 ‘절 때려주세요.’ 라고 말하는 걸로 간주하고 쌔려버릴 테니까.”

고개를 절래 내두른 도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주군의 말에 따랐다. 너무도 자신 있어하는 얼굴인데 더 이상 막을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또 오늘 낮의 일도 있고 해서 더욱 그랬다. 문제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선뜻 환자를 치료해주겠다고 나서냐는 것이었다.

“주군,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좋지만 소문이 나돌면 저희들의 행로에 상당한 지장을 줄 겁니다. 다시 생각하시지요.”

동천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치료하고 곧장 뜨려고 짐을 챙기라는 거 아냐.”

뜻밖의 대답에 도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의문의 연속이지만 다른걸 다 제쳐두더라도 주군이 무슨 생각으로 귀찮은 밤길을 택하면서까지 환자를 치료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동천은 그런 도연의 생각을 단번에 읽었다.

“짜샤. 이 몸이 괜히 약왕전 소문주인 줄 알아?”

도연에게는 그 말이면 충분했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띄우고 말없이 주군의 명을 따랐다. 앞서 나가는 동천 또한 옅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엄연히 다른 의미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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