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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408화


도연은 주군의 호언장담을 듣고 중소구에게 양해를 구했다.

“황룡세가까지 도련님께 맡기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중소구는 굳이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단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

“도 소형제는 언제부터 이놈의 하인이 되었기에 이곳에 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겐가?”

뜻밖의 물음이었는지 대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2년하고도 좀 됐습니다.”

대답을 듣고 난 중소구는 동천과 도연의 얼굴을 몇 번 번갈아보다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했다.

“겨우 고것밖에 안 됐는데 뭘 그렇게 잘 해줘? 그냥, 이 기회에 확 뒤엎어 버리고 관계를 청산하지 않겠나? 정 뭣하면 본 대인이 도와줄 테니까.”

그 소릴 듣고 가만히 있을 동천이 아니었다.

“뭐요? 아니, 대인이라는 분이 그따위 망발을 해도 되는 겁니까?”

동천은 중소구에게 눈을 부릅떴다. 지가 아무리 강하고 잘났다 해도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그런 사태가 벌어질까 봐 중소구에게 눈깔을 치켜뜬 거지만 말이다. 다행인지 몰라도 도연까지 화를 냈다.

“대인께 정말로 실망했습니다! 그 말씀은 제 신념을 무너뜨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중소구는 도연의 딱한 처지를 생각해서 잘 해준다고 나섰다가 쌍으로 공격을 받자 엄청 당황해했다. 한쪽은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도연까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 아니. 그런 뜻으로 한 게 아니고…….”

도연은 신형을 매몰차게 돌렸다.

“됐습니다. 그 말씀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동천은 찡한 그 무언가를 가슴이 떨리도록 느끼곤 살며시 도연의 어깨를 집었다. 도연이 고개를 돌리자 감동에 젖어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는 주군이 보였다.

“짜식.”

동천의 한마디에 도연은 그저 말없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흑흑, 내가 그동안 이런 도연이를 몰라주고 참으로 구박을 많이 했구나. 이제부터는 잘 대해줘야겠다.’

나중엔 뭐라고 욕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사나이의 의리를 실감하고 있는 동천이었다.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중소구도 끼어들지 못하는 가운데 지나가던 거지가 손을 내밀며 ‘한 푼 줍쇼.’ 라고 말하자 동천은 그 답례로 거지의 손가락을 비틀어주었다.

“끄에에에!”

동천은 거지의 비명을 무시하고 힘차게 한 걸음 내디뎠다.

“사나이의 의리가 바로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자, 나를 따르라! 목표는 황룡세가니라! 으헤헤헤!”

동천은 알고 있을까? 의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의 웃음소리가 점점 역천을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 나온 김에 역천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감송이 떠나고 뒤이어 떠난 민소희. 그들이 떠났다 하여 역천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교주 측에서 만독문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감송이 떠날 당시 살각에 운을 띄워줬으니 그는 은밀히 잡혀오거나 제거되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소연과 화정이었다. 그녀들이 민소희를 따라갈 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의문의 사나이와 손속을 겨루고 돌아온 살각주 신휘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사나이와의 접전 중에 싸움에 휘말린 소연이 즉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체에 관해 묻자 신휘는 그 사나이가 소연의 시체와 기능이 정지된 강시를 데리고 갔다는 말만 해주었을 뿐이었다. 역천은 어째서 그것을 보고만 있었는지 다그쳐보고 싶었으나 그가 본 신휘의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으므로 분기를 억누른 채 되돌아와야만 했다.

“아아, 이 몸의 사랑스런 제자의 얼굴을 나중에 어떻게 대할 꼬?”

만독문과 암흑마교의 적대적 관계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참으로 많았다. 그 대표적인 부분이 밀사의 파견과 되돌아온 밀사의 시체. 처음에는 어째서 만독문과의 사이가 그렇게나 틀어졌는지 전주의 권한으로 파고들려 했으나, 교주가 전면으로 나서 더 이상 거론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물러서야만 했다. 많은 것들이 역천의 궁금증을 배가시켰지만 그 모든 것들은 소연의 죽음으로 그의 머릿속에서 떠난 지 오래였다.

“혼천부에서 성심을 다해 유해(遺骸)라도 찾아주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깜깜무소식이니 답답하기 이를 때가 없구나.”

그답지 않게 풀이 죽어있을 때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매향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역천을 불렀다.

“전주님, 한 당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역천의 고개가 약간 들려졌다.

“한 당주가? 들어오라고 해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한심이 흥분한 모습을 하고는 냉큼 뛰어들었다.

“전주우니임! 대! 대발견입니다!”

한심. 성까지 부르면 혈한심. 혈귀옹의 외아들인 그는 어렸을 적 당돌하게도 역천에게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지 않겠다고 소리치며 자신의 성을 과감하게 버린 자였다. 더군다나 약왕전에 들어와 밑바닥부터 시작한다고 호언장담까지 했지만 의생에게 한 대 맞고 그대로 자신의 신분을 까발린 줏대 없는 놈이기도 했다. 그러니 역천이 어찌 한심을 좋게 보겠는가. 한심의 쌍판을 보게 된 역천은 안 그래도 울적한 기분이 더러워지기까지 하려고 했다.

“대발견? 무슨 발견인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한심은 뚱한 역천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바로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던 이것의 또 다른 효능입니다!”

역천은 한심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얼굴에 들이민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마늘?”

마늘 한 쪽이 한심의 손에 들려있던 것이다. 전주님이 제대로 알아보자 한심은 어린애가 된 양 좋아라 낄낄거렸다.

“푸하하! 바로 그렇습니다. 바로 이 마늘의 효능입니다.”

역천은 의원이라는 신분답게 소연을 잃은 슬픔을 잠시 접어두고 흥미로운 눈길을 보냈다. 그는 한심의 손에서 마늘을 빼와 요리조리 만지작거렸다.

“마늘의 또 다른 효능이라. 그래, 그것이 무엇이더냐.”

“놀라지 마십시오. 바로 정력에 좋다는 겁니다! 하하하, 저 맵고 자그마한 것에 그러한 효능이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셨죠?”

역천은 눈동자를 반짝였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좌측에 비치된 도서들 중 얇고 다른 것들보다 비교적 자그마한 책을 꺼내들었다. 역천은 그 책을 휘리릭 넘겨가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옳지, 여기 있구나. 한심아 이것 좀 보겠느냐?”

한심은 의아한 얼굴로 다가갔다.

“거기에 뭐 볼 게 있습니까?”

역천이 친절하게도 손을 집어 준 곳은 마늘에 관해서 자세한 설명이 되어있는 곳이었다. 그것을 차근차근 읽어보던 한심은 돌연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럴 수가! 나보다 먼저 선수를 친 놈이 있다니!”

한심이 정력에 관한 부분을 읽고 나자 역천은 들고 있던 책을 매몰차게 내던지고는 한심을 씹어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300년 전에 발견된 효능을 가지고 뭐? 고작 한다는 소리가 언놈이 선수를 쳐?”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한 한심은 결정적으로 얻어맞을 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그럴 리가요. 부, 분명히 순찰을 돌던 녀석이 자기만 아는 거라고 가르쳐 줬……끄악! 사, 살려!”

“죽어! 죽어 이 자식아!”

역천은 그러고 있었다.


“아아, 여기는 예전에 내가 자주 놀았던 공터야. 내가 살아서 다시 이곳을 와 보게 될 줄이야. 흑흑흑!”

길 옆 자그마한 공터를 보고 있는 동천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였다. 누가 들으면 죽을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온 사람으로 보겠지만 그 대사와 일치하기엔 너무도 어린놈이라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많이 그리우셨나 봅니다.”

동천은 도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곳은 아주 추억이 많은 곳이었어.”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고 있던 중소구는 황룡세가가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무슨 말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아까의 일 때문에 근질거리는 입술을 꾹 닫았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천하의 중소구가 입을 다물고 있다니. 참나.’

중소구가 조용히 뒤따라와서 기분이 좋아진 동천은 한참을 가다가 커다란 느티나무 곁에서 멈추었다.

“이 느티나무도 여전하구나. 예전에 하천과 춘천, 추연을 비롯해 다른 애들과 말뚝박기를 하면서 놀았었지.”

아련한 눈빛으로 느티나무를 만지작거리던 동천은 다시 황룡세가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한 식경이 지나서 동천이 멈춘 곳은 어느 이름 모를 산길이었다.

“어라? 여기가 어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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