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1화
사박.. 사박..!
휘이이이……
바람이 거세게 부는 이른 아침.. 대려산 중턱을 세 사람이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앞서가는 사람은 어린아이였는데, 날카로운 눈매에 살짝 말려 올라간 입술.. 전형적인 왕재수였다.
“그 빌어먹을 항광 때문에 내가 쓸데없이, 독공(毒攻)을 익혔다… 그 하찮은 독공을..”
그 아이는 독공을 매우 하찮게 보는 것 같았다. 그때, 사각 턱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사내가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소교주님.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그런 독공은 환골탈태가 되고 나시면, 간단히 잊어버리시면 됩니다.”
그 사내의 말에 냉현은 잠시 멈춰 섰다.
“철소(鐵召)…”
“예! 소교주님.”
“짜-악!!”
뺨을 얻어맞은 철소는 무표정한 인상으로 고개를 수그렸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 철소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죄송합니다.”
“그따위 소리… 다시는 나불거리지 마라.”
“옛!”
철소의 행동에 만족을 했는지, 냉현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휘이잉….
바람은 냉현의 몸을 감싸며 스쳐 지나갔다..
“야, 알았어?”
“흑흑.. 예.. 훌쩍!”
동천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제 일에 대해, 단단히 일러두었다. 조금 꾸중을 들은 소연은 당연하다는 듯이 징징거렸다.
“알았으면, 내가 말해준 얘기를 종합해서 말해봐!”
“예.. 훌쩍.. 그게, 주인님은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나는 그 어떠한 주인님의 행동에도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 주인님의 취향은 내가 아니니, 나는 안심해도 된다.. 흑흑..”
소연이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지만, 봐줄 동천이 아니었다. 동천은 근엄(?)하게 말했다.
“또!”
“예.. 주인님은 위대한 분이시며, 흑흑.. 그런고로, 여색(女色)을 탐하지 않는 인자하신 분이시다.. 주인님은 머리가 뛰어나시고, 인재 중의 인재시기 때문에.. 앞으로 암흑 마교를 이끌어 나가실 분이시다…..”
비록, 자신이 하라고 소연에게 시킨 거지만, 칭찬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좋아. 좋아.. 그 정도면 됐어.”
“예에.. 훌쩍!”
휘이이이잉….
“덜컹! 덜컹!”
때아닌 거센 바람에 닫아놓은 창문이 심하게 흔들렸다.
“야.. 오늘따라, 바람이 거세게 부는데?”
“그.. 그러게요..”
“시끄러! 내가 한 말을 또 말해봐!”
소연은 또 울었다.
“으흑! 예.. 주인님은.. 주인님은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나는 그 어떠한 주인님의 행동에도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 주인님의 취향은 내가 아니므로…..”
소연은 무려 여섯 번이나 더 말한 다음에, 밥을 가져오라는 동천의 말에 기뻐하며 밥을 가지러 나갔다.
“뭐야…”
“…… .”
“어찌 된 일이냐니까!!”
냉현은 자신이 와야 할 곳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반기는 이가 없자, 이상한 마음에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더 들어갈 것도 없이, 무너져있는 동굴을 보았다. 무너진 동굴의 모습에 냉현뿐이 아니고, 같이 따라온 두 사람도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특히, 붉은 상의를 입은 사내는 어쩔 줄 몰라했다.
“저기.. 저희들.. 억!”
그 사내는 정강이를 채였다.
“산관(汕灌)! 아가리 닥치고 얼른 만독 새끼를 찾아봐!”
“예.. 엣! 존명!”
그는 부리나케 동굴을 빠져나갔다. 냉현은 산관은 항광을 찾으러 얼른 나갔는데, 철소는 안 가고 자신의 뒤에 시립해 있자, 인상을 찡그리며 소릴쳤다.
“이 새끼… 너는 안 가고 뭐해!”
냉현이 극도로 화가 나서 소릴 질렀지만, 철소는 떠날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았다.
“저는 소전주님을 지켜야 할…”
“짜악-! 퍼-벅! 퍽! 퍽!”
“뭐? 안 가? 날 지키겠다고? 개소리 말고, 어서 나가!!”
“알겠습니다…”
철소는 자신의 얼굴에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묵묵히 맞은 다음, 자신의 상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빨리 가서 찾으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한 후에 조용히 나갔다.
“마음에 안 들어… 이 새끼고 저 새끼고.. 다 마음에 안 들어… 설마하니.. 만독이 도망친 건 아니겠지? 그 자존심이 강하고, 약속은 철저히 지킨다는 만독이… 으으으.. 으아악!! 씨발놈!”
“쿵! 쿵쿵!”
냉현은 하도 화가 나서, 동굴 벽을 인정사정없이 후려갈겼다. 그 바람에 자신의 손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여태까지 독공을 익혔는데.. 냉현은 독공을 무척이나, 천시(賤視)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익히게 되었다. 그도 환골탈태의 조건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아버지의 명령이라도 거부했을 정도로 독공을 천시했다. 그런데 오늘 항광이 도망간 게 거의 확실시되자, 무려 5년의 독공 수련이 아까워서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었다.
“으아악! 죽여버려…!!”
“에이.. 씨발! 어떤 새끼가 내 욕을 하나?”
밥을 열심히 먹고 있던 동천은 갑자기 귀가 간지럽자, 누가 자신을 욕하나 했다. 그런 동천의 행동에 맞은편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던 소연이 물어봤다.
“왜 그러세요?”
“으응.. 갑자기 귀가 간지럽잖아.. 그러고 보니까 진짜로 가렵네? 야, 소연아. 이리 와서 내 귀 좀 후벼 봐라.”
그 말에 소연은 좀 꺼려하는 눈치를 보였다.
“예? 왜요? 그런 건 주인님께서 하시면…”
“야, 내가 이렇게 두 손에 먹을 것을 쥐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내 귀를 후벼! 잔말 말고 왼쪽 귀 좀 후벼 봐!”
그러고 보니, 동천은 양손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돼지 족발을 양쪽에 쥐고는 왼쪽 거 한 입. 오른쪽 거 한 입. 이렇게 먹고 있어서 귀를 후빈다는 건 어려워 보였다. 물론, 그 족발 중에 하나를 내려놓고 귀를 후비면 되겠지만, 동천은 그럴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힘이 없는 소연은 체념한 표정으로 동천의 왼쪽으로 다가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기 시작했다.
“으히히히.. 그래.. 거기 거기! 아.. 좋다. 그래. 그래…”
간지러워서 몸을 비비 꼬는 동천의 귀를 파서 손가락을 빼내자, 노란 덩어리(?) 하나가 소연의 손가락 끝에 매달려 나왔다.
‘더.. 더러워..!’
방금 먹었던 음식물이 넘어올 것만 같았다. 소연은 그 덩어리를 보기도 싫다는 듯이 얼른 자신의 치마에다가 문질러 버렸다. 그런 소연의 마음을 모르는 듯 동천은 소연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아.. 시원하다. 야, 반대쪽도 파!”
“씨익.. 씨익… 내가 왜, 독공을 익혔는데.. 크윽, 만도-옥!!”
냉현이 분해서 어쩔 줄을 몰라할 때, 산관이 면목(面目) 없다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이미 결과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어떻게 됐어…”
“죄송합니다. 만독이 사라진 지 꽤 돼서, 그 흔적을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뭐야? 그걸, 지금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냉현은 산관의 대답에 독기에 찬 눈으로 쳐다보며 산관에게 다가갔다. 성질이 더러우니, 또 때리려는 것이었다. 그때, 동굴의 입구에서 철소가 들어왔다.
“소교주님..”
냉현은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됐어!”
산관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냉현의 질문을 받은 철소는 고개를 저었다.
“그자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개새끼들… 비켜!”
냉현은 철소를 거칠게 밀어젖히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철소와 산관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히 냉현의 뒤를 따라 나섰다. 이대로 끝낼 수가 없었던 냉현은 자신이 직접 찾으려는 속셈인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세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꽤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휘이이….
“응?”
“무슨 소리가…”
무공이 높아서 청력도 대단했던 철소와 산관은 갑자기 어떠한 소리가 들리자, 흠칫했다. 철소는 혹시, 항광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어, 얼른 냉현을 안아 들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 소리를 못 들은 냉현은 황당한 마음에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잠시, 안고 가겠습니다.”
그 둘은 냉현을 데리고 얼른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은 고수였기 때문에 굉장한 속도로 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울창한 대나무 숲이었다. 철소는 도착하자마자, 냉현을 조심스레 내려주고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찌 된 일이야!”
냉현의 물음에 산관은 공손히 대답했다.
“소교주님. 방금 이 근처에서 소리가 나서, 저희들이 여기에 온 것입니다.”
“그래서?”
산관은 냉현의 눈치를 살폈다.
“예.. 그런데. 지금은…”
“짜-악!”
“지금은 어떻다고!!”
이번에는 내공을 써서 때렸는지, 입 안에서 어디 한 곳이 터졌지만 뭐라고 내색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몇 대 더 맞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아무런 낌새도 없습니다.”
“병신 새끼들.. 퉤!”
냉현이 자기 수하들을 욕하며 침을 뱉을 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몰아치자, 냉현 일행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휘이이잉….
“냉가는….”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그들은 깜짝 놀라며, 주위를 살폈다. 특히, 철소와 산관이 그랬는데, 그들은 소리는 들리지만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지 못하자, 자신들보다 더한 고수가 분명했기에 진땀을 다 흘렀다.
“어느 고인(高人)이시오?”
주위를 둘러보던 철소가 중후한 목소리로 물어봤으나, 상대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휘이이잉……
바람이 거세게 불자, 수많은 대나무들이 부대끼며 소리를 질렀다.
“재수 없다아….”
또다시 들리는 소리에 철소와 산관은 자신들의 사이에 냉현을 보호하면서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산관이 소리쳤다.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지 않으시오?”
참다못한 산관이 상대를 도발시켜보려 했지만, 상대는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했다.
휘이이이이….
“재수 없는.. 내엥가….”
냉가를 욕하자, 욱! 하는 마음에 냉현이 소리쳤다.
“이익! 뭐라고? 이 자식! 나와라!”
또다시 바람이 불었다.
휘이잉… 휘이이이…..
“죽어라.. 아… 냉가야……”
철소가 소리쳤다.
“산관! 소교주님을 철저히 보호해라!”
“알았어!”
챙-! 채-앵!
그들은 죽어라.. 하는 말에 냉현을 공격하는 줄 알고, 서로들 무기를 꺼내며, 남북으로 방위를 나누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렇게 움직일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