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11화
“설마 운성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겠지?”
찔끔한 소연은 누가 봐도 수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 그럴 리가 요. 아주 잘 있어요. 것보다 우선 이쪽으로 와보시겠어요?”
대꾸 없이 소연을 뒤따라가던 민묘희는 앞쪽에서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무서운 눈으로 소연을 쏘아본 뒤 신형을 날려 그곳으로 달려갔다. 제일 먼저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운성현의 관이었고, 그 위로 시선을 들어올리자 동천과 도연이 서있는 것이 보였지만 그것보다 더욱 그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화정이가 깨어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더없이 서늘한 어조로 간단하게 지금의 상황을 물었다.
“설명해라.”
동천은 그녀를 따라하려는 듯 민묘희의 뒤를 다급히 따라온 소연에게 명했다.
“설명해라.”
민묘희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으나 살짝 옆으로 물러나 소연을 바라보았다. 소연은 왜 하필이면 자신인지 정말 죽고만 싶은 심정으로, 가능한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하며 그간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만일 화정이라는 간접적인 증인이 없었더라면 민묘희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화정이가 동천을 주인 따르듯 따르는 것과 거짓말에 능하지 못한 소연까지도 흔들림이 없었기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걸리는 것이 있었던 민묘희는 주먹을 말아 쥐고 난 뒤 동천에게 물었다.
“본녀는 오래 전에, 그러니까 처음 소연에게 그간의 일들을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 동천이라는 녀석이 어째서 만독문의 소문주가 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본녀가 이곳에서만 머문다고 세상사에 어두울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지금 만독문의 소문주는 여인으로서 나이는 17세이며 성함은 강소홍(姜小紅). 넌 분명 만독문의 소문주가 아니다. 설명을 못한다면 본녀는 물론 언니와 형부까지 농락한 죄를 물어 사생결단을 내겠다.”
사고의 눈에서 한기가 흘러나오자 바로 곁의 소연은 벌벌 떨었다. 동천도 움찔하긴 했지만 여유까지 잃진 않았다.
“훗, 뭘 모르고있네. 당신의 말처럼 내가 만독문의 소문주가 아니라고 쳐. 그럼 그 똑똑하고 당신보다 냉철한 독살단묘 부부가 아무 생각도 없이 속아넘어갔다고 생각하는 거야?”
“…….”
그녀는 당장에 반박할 내용을 못 찾겠자 입가를 씰룩였다. 소문주가 아니라며 계속 캐묻자니 언니와 형부를 모독하는 것이고, 말을 뒤집자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천은 말장난으로 해결하고싶은 생각이 없었는지 그 머리를 굴려 태연하게 말했다.
“만독문을 떠난 당신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확신하는 거지? 좋아, 그 증거를 알고싶다면 보여주지. 난 항광 사부님의 숨겨진 첫째 제자이고, 강소홍은 본인의 사매가 된다.”
민묘희는 도저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그런 무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동천은 철저하게 속아 넘기기 위해 역심무극결을 운용했다. 순간적으로 민묘희 못지 않은 위엄을 발산한 그는 민묘희가 당황할 정도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성격이 급하시군. 민낭, 당신은 대대로 만독문이 혈난에 휩싸인 것을 알고있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전대 문주님의 때가 되어서야 모든 혈난은 진화되었지.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 아직도 세력은 나뉘어져있다. 사부님 또한 초기시절부터 그런 자들과 함께 세력 전을 벌이셨고 말이다. 헌데, 그렇게 해서 문주가 되신 사부님께서 여인에게 다음 문주 자리를 물려주실 것 같은가? 실질적으로 이제와 자리를 잡아가는 만독문에게?”
“으음!”
크게 깨달은 민묘희는 신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여인이 문주자리에 오르면 그 위상이 흔들릴 위험이 크고, 기회를 노리고만 있던 자들에게는 좋은 반목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그녀에게 잠시 생각할 기회를 준 동천은 주위 사람들에게 물러나라고 지시한 뒤 심법을 바꿔가며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이건 말야. 무지한 당신에게 보여주는 그 확실한 증거야.”
슈우우우.
손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 푸른 운무는 회오리처럼 휘돌아 퍼지더니 완전한 고리 모양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만독혼원공(萬毒混元攻)!”
만독혼원공은 심법인 동시에 그 힘을 빌어 살상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진 보기 드문 신공이었다. 퍼지는 모양은 발생된 시발점에서부터 고리 모양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그것은 직접보고 확인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가 없는 심법이었다. 모든 것을 둘째 치고라도 정말로 만독혼원공이었으니 믿지 않을 수 없게되는 것이다. 그 권위 앞에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꿇을 뻔했던 민묘희는 힘겹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만독문을 등졌다고는 하나 배신과는 그 의미가 달랐다. 그 옛날, 사형이었던 형부를 언니에게 빼앗기고 좌절과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새로운 마음을 다잡고 집을 보수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서까래 밑에 숨겨진 연구일지를 발견하고 무작정 이곳으로 달려온 것뿐이고 말이다. 연구일지가 어떻게 그곳에 숨겨져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만독문이 끊임없는 혈난의 역사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문제는 만독문이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 스스로 인연을 끊었다고 다짐했다는 것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만독문을 그리워했고, 그녀의 다짐은 만독문의 권위가 실현되자 그 앞에서 다시 무너지려고 하는 것이다.
“뭐, 이 정도라면 충분하겠지? 아직 충분한 내공을 살리지 못해서 말야.”
거짓말은 아닌 듯 동천의 안색이 보기 좋게 창백해졌다. 주먹이 으스러져라 쥐어짠 민묘희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말투를 바꾸었다.
“좋습니다. 그간의 무례는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전 만독문을 등진 지 이미 오래 전입니다. 지금의 제 태도는 당신을 만독문의 소문주로 인정하여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 뿐으로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적어도 수긍하는 정도만을 기대했던 동천은 의외의 성과를 거두게 되자 적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다면 좀더 진보적인 협상 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동천은 장난기 어린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사실 동천은 화정이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그녀라면 충분히 민묘희를 제압하고도 남았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성격상 죽으면 죽었지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있었기에, 운성현을 인질로 삼아 그녀 스스로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 처해져있는지를 깨닫게 해주고만 싶었다. 헌데 자세히 보아하니, 아직도 만독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동천은 생각을 바꾸었다.
“좋아! 결정했어! 어찌 보면 화정이가 무사하게된 것도 다 민낭의 덕택이었다고 할 수 있으니 내 그간의 일들은 다 잊고, 내 밑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겠어!”
화정이만 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모두들 놀라하는 가운데 민묘희는 이를 악물었다. 몸의 떨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날 다시 만독문의 사람으로…….’
동천이 그녀를 주시하자 흔들리고는 있지만 아직도 뭔가 부족한 것만 같았다. 결국 동천은 자존심이 강한 그녀조차 순순히 인정할만한 계기를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훗, 그 정도로는 명분이 좀 모자라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 민낭이 내 대리인과 싸워서 이긴다면 난 아무 조건도 없이 운성현을 넘겨주고 이곳의 일을 깨끗이 잊어주겠어. 하지만 반대로 진다면 다시 만독문의 문도로서 내 수하가 되는 거야. 물론 운성현도 그대에게 되돌려주고.”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 동천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게 되는 제법 머리를 굴린 제안이었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민묘희는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에서 물었다.
“대리인은 누구입니까?”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동천은 씨익 웃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화정이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바로 얘야.”
화정이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있었는지 두 손을 맞잡고 깡충깡충 뛰었다.
“와아와아! 죽이는 거야?”
따악!
“아야야. 히힝, 왜 때려.”
동천은 실로 가슴이 아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화정아, 죽인다는 말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돼. 사람의 생명은 고귀한 거라고. 이럴 때는 **비무(比武)**를 한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죽여서도 안되고. 알았어?”
“으응, 비무.”
화정이의 교육을 끝마친 동천은 민묘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쩌겠어?”
민묘희는 바로 대답했다.
“시작하죠.”
민묘희의 응수에 신이 난 동천은 화정이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앞으로 내보냈다.
“좋았어, 한판 멋지게 붙어보라고!”
화정이는 야무진 얼굴로 대답했다.
“응! 꼭 멋지게 멋지게!”
민묘희는 자리를 옮길 까도 했지만 돌아보니 그런 대로 움직일 공간은 충분했다. 그녀는 외부에서 현철 한 덩이와 맞바꿔온 보검을 만지작거리며 동천에게 물었다.
“검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동천은 허락했다. 제일 자신 있는 무공을 사용하게끔 한 뒤에 패배를 시켜야 그만큼 받아들이는 것도 수월할 테니까. 그러자 화정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손을 들었다.
“나도나도!”
동천은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뭐? 너도?”
“응! 나도 검 쓸래. 화정이도 검술 배웠어.”
그때 소연이 나서서 말렸다.
“허락하시면 안돼요. 쟤가 어떻게된 일인지는 몰라도 **옥로무녀검법(玉露巫女劍法)**을 익히고 있단 말예요. 그리고 그걸로 사, 사람까지 죽였다고요.”
동천과 민묘희는 동시에 소리쳤다.
“옥로무녀검법?”
소연이 다시 대답할 틈도 없이 화정이가 적극적으로 나서 말했다
“내가 따라하니까 수련이 가르쳐줬어. 그러다가 나중에는 알아서 배우라고 책을 줬어. 그거 읽고 외워서 틈틈이 배운 거야.”
동천은 화정이가 그것을 익히고있다는 대견함에 앞서 수련의 멍청함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무공을 가르쳐준 상대가 강시라지만 함부로 무공을 유출시켜줘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자면 동천도 먹을 거 가지고 치우도법을 넘겨주긴 했었지만, 그 내부적으로는 자신 외에 아무도 익힐 수 없다는 한 노사의 말을 믿었던 특수한 경우였다.
“하긴, 그 수다쟁이 같으면 충분히 떠벌리고도 남았겠지. 이쯤 되면 나도 그 옥로무녀검법을 견식하고 싶지만 가능하면 피를 흘리지 않고 해결하고싶으니까 그냥 맨손으로 싸워.”
민묘희는 자신의 유리함이 싫었는지 동천에게 말했다.
“피는 제가 검을 사용하는 이상 부득이하게 보여질 것입니다. 화정이가 원하면 허락해주시지요.”
“봐! 봐! 쟤도 원하잖아!”
동천은 흥분해하는 화정이를 진정시키고 일부러 민묘희를 도발시켰다.
“괜찮아. 넌 그거 없어도 이긴다고. 정 불리하면 그때 줄 테니까 검이 날아오면 피한 다음 한방 먹여. 죽지 않을 정도만 말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화정이는 싸늘해진 민묘희를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응, 알겠어. 한방한방.”
무기의 사용문제가 다 해결되자 동천이 드디어 비무 개시를 알렸다.
“시작!”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미 준비를 하고있었던 민묘희가 전심전력을 다해 거리를 좁혀왔다. 화정이는 그에 못지 않은 몸놀림으로 좌측을 점했다. 눈을 반짝인 민묘희는 상체를 약간 비튼 뒤 발검을 시전 했다. 순간 하나의 선이 일어나고 그것은 공격지점과 발검의 위치를 잇는 최단 거리인 직선을 따라 쏘아져갔다.
“아?”
도연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뿜었다. 그것은 미세한 **은사(銀絲)**처럼 빛을 머금고 아름답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빛줄기가 일어난 것은 그녀의 공격이 이미 실현되고 나서였다.
‘대단한 쾌검법(快劍法)이다!’
그는, 과연 자신이 저 검법을 대했다면 어떻게 막아냈거나 피했을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막아내지 못한다면 화정이의 복부에 찍힌 작은 점처럼 되는 것이다.
“화정아, 좀더 빨리 움직여! 뭐 또 배운 거 없어? 아무거나 사용해서 가까이 다가간 다음 한방만 먹이면 되는 거야!”
민묘희의 공격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주인님의 이야기를 듣고 난 그녀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또 배운 거 있어! 소연이 가르쳐줬어!”
소연은 눈을 똥그랗게 떴다.
“내, 내가?”
그도 그럴 것이 민소희에게 무공을 처음 배울 당시. 복습하고 예습한다는 차원에서 화정이를 옆에 두고 구결을 외운다거나 동작을 취했다거나, 그렇게 했다는 것을 지금의 그녀로서는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화정이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스르르 움직여 예비동작도 없이 민묘희에게 튀어나갔다. 깜짝 놀란 민묘희는 소리쳤다.
“선형무회신법(線形無廻身法)?”
그것은 언니의 신법이었던 것이다. 뒤늦게 소연이 언니의 제자였다는 것을 상기시킨 민묘희는 귀찮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형무회신법의 가장 무서운 점은 예비동작이 없다는 점이었고, 그것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상대를 현혹시키는 **선점(先占)**방식에 있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 상대가 나아갈 방향을 먼저 빼앗아낸 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수십 가지의 공격방법들을 적당히 섞어 가면 실초와 허초를 분간하지 못하게 된 상대편은 수세에 몰리게되고 풀어나가는데 상당한 고초를 겪게되는 신법이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그 화정이의 신법에 제대로 걸려버린 것이다.
뒤로 신형을 물린 민묘희는 생글거리는 화정이가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다가와 있자 검광을 뿌려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옷자락이 찢긴 화정이는 개의치 않다는 듯 양손을 움직여 검광을 뚫고 그녀의 손목들을 잡아 챘다. 민묘희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단금영엽(短禁影葉)까지!”
그녀는 팔목을 비틀고 찰나의 순간 반탄지기를 뿌려 화정이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내공의 소모가 너무도 컸다. 팔목이 화끈거려 살펴보자 어찌나 강력하게 붙잡혔었던지 살결이 검게 죽어있었다.
‘나, 나보다 잘해….’
소연은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잠깐 팔목의 상태를 확인한 대가로 다시 한번 선형무회신법에 걸려든 민묘희는 찰나간 독술을 사용할까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화정이가 살아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인면지주의 음기를 어느 정도 흡수한 것이므로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내공을 끌어올린 그녀는 오직 화정이의 복부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곳에는 한번 노렸던 흔적이 보였다. 그녀는 다른 곳은 무시하기로 했다. 오로지 그녀가 노리는 곳은 처음에 성공했던 똑같은 위치의 재공격이었으니까.
“하압!”
공교롭게도 똑같은 순간에 화정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민묘희의 검과 화정이의 주먹이 서로를 향해 스쳐지나가고 검의 길이와 쾌검술의 이점으로 먼저 찔러버린 민묘희는 검 끝에서 전해지는 느낌으로서 이미 승패를 예측해버렸다. 그녀는 이내 허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아이…. 초혼강시를 넘어섰구나.’
이어 오른쪽 안면부위가 화끈해지는 가운데 보기 좋게 굴러 넘어졌다. 화정이는 승리를 자축하려는 듯 왼손을 들어 검지와 중지를 펴들었다.
“한방! 한방!”
동천은 환호라도 터트리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그는 소연이 쓰러진 민묘희를 일으켜주자 천천히 다가갔다.
“어때, 승복하지 못하겠다면 한번 더 기회를 줄 수도 있어.”
“…….”
아무 말 않고 소연의 부축을 사양한 민묘희는 한참을 갈등하는 듯 하다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동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 민묘희, 소문주님과 만독문에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좋았어! 하하, 탁월한 선택이야!”
이로서 동천은 먼저간 이들을 뒤로하고 또 한 명의 만독문도를 속여 충성을 얻게되었다.
“랄라~! 오솔길, 오솔길 오솔길을 따라서 오솔길을 걸어가면은 흥흥, 오솔길을 걸어가면은 어여쁜 소녀가…, 응? 가만있어보자. 내가 이 노래를 언젠가 한번 불러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언제지?”
동천은 형운곡을 나서며 ‘걸어서 오솔길을 걸어가면은’ 이라는 자 작곡의 노래를 부르다가 옛날이기는 하지만 어디선가 이 노래를 불러봤던 것만 같았다. 그의 자 작곡의 특성상 같은 노래는 두 번 다시 부르지 않는다는 하나의 법칙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느끼는 의문은 특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주군, 중 대인을 정말 그렇게 놔둬도 될까요?”
동천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나 참, 걱정 말라니까? 내가 너 보는 앞에서 확실하게 일러줬잖아. 그 인간은 어차피 우리와 인연이 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옛정이 있으니 치료해주고 보내주라고.”
그렇게는 말했었다. 그러나 도연이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전음으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저거 인간 되기는 틀린 놈이니까 니가 알아서 사람 만들어 놔. 무슨 방법을 동원해도 상관없으니까.
‘킥킥킥, 내 그놈의 소구자식을 떼어놓으려고 민묘희를 제압한 것도 있는데 이제와 데리고 간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 이놈아.’
그렇다. 처음에는 갖은 수단을 동원해 중소구를 떼어놓으려고 도망가다시피 일찍 생필품들을 챙겨든 것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그녀가 나타나고 대화가 오고가자 민묘희를 제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된 것이었다. 중소구가 깨어나면 큰일인지라 지금도 민묘희의 배웅을 받으며 곧장 형운곡을 빠져 나온 것이고 말이다.
“전 아무래도 역마대원 아저씨들이 걱정 되요.”
동천은 소연을 바라보며 걱정할 것도 참 많다고 생각했다.
“걔들은 아직도 골골거려서 따라오는데 무리가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민낭한테 잘 보살피라고 명령했고. 넌 그거 걱정할 틈이 있으면 무공이나 익혀. 넌 어떻게된 게 너한테 배운 우리 화정이보다 못하냐?”
찔끔한 소연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에, 그럴 게요.”
동천의 옆에 착 붙어 달려있던 화정이는 애교스럽게 말했다.
“동천동천, 그 노래 참 좋다. 계속 불러 줘.”
“호오? 우리 화정이가 뭘 좀 아는데? 험! 좋아, 잘 들어!”
숨결을 가다듬어 심호흡을 하고 난 동천은 어느 누구에게 잘 들으라는 듯 목청을 높여 낭랑하게 불렀다.
랄라~, 오솔길, 오솔길 오솔길을 따라서 오솔길을 걸어가면은 흥흥, 오솔길을 걸어가면은 어여쁜 소녀가 나를 반기네.
랄라~, 오솔길, 오솔길 오솔길을 따라서 그 오솔길을 걸어가면은 흥흥, 오솔길을 걸어가면은 그 어여쁜 소녀가 나를 다시 반기네.
랄라, 그 오솔길에는 어여쁜 소녀가 있고 흥흥, 그 오솔길에는 언제나 나를 반기는 그 소녀가 살고있다네.
랄라라, 오솔길, 오솔길 오솔길을 따라서 오솔길을 걸어가면은 흥흥, 그리운 얼굴의 그 어여쁜 소녀가 나를 기다리고있겠지.
걸어서 오솔길을 걸어가면은…….
동천일행은 그렇게 수풀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흥겨워하는 동천과 따라 좋아하는 화정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쭈았어! 출발이다!”
“와아, 출발이다!”
그들의 목적지는 암흑마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