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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28화


아둔한 놈(凡人)이었다면 어느 정도만 알아보고 끝내려했다. 머리가 조금 굴러가는 녀석(奇才)이었다면 잠시 놀아주기만 하고, 천재(天才)였다면 회유 내지 죽음을 선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동천의 경우는 조금 특이했다. 처음 대면할 당시에는 생각 없는 놈으로 보였는데, 조금씩 머리를 굴리는 듯 싶더니 결정적일 때 천재 뺨칠 정도의 두뇌회전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금문은 시시각각 갈등하는 와중에 회유보다는 싹을 잘라야겠다는 쪽으로 심경이 기울어져갔다. 그는 시치미 뚝 떼고 말했다.

“으응? 어찌하여 그렇게 생각했느냐.”

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힌 동천은 쩌릿쩌릿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돌자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알았다고 눈치챘다.

‘실수다. 흥분한 나머지 너무 쉽게 대꾸해버렸다. 저자의 경각심이 극도로 달한 것 같은데…….’

그는 금문의 표정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저 혼자 턱주가리를 끄덕이며 말을 내뱉었다.

“너무 지나친 생각이었나 보군요. 하긴,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 대단한 삼대마교에서 어찌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을까. 으음! 어려운데요? 정답이 무엇입니까?”

동천의 능청스런 대답에 금문이 무섭게 노려보았다. 계산된 행동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또한 저놈의 머리에서 나온 계책이라면 참으로 무서운 아이다. 소속된 곳이 없었더라면 건져낼 인재이나 암흑마교의 사람이라면 확고한 충성을 다짐받았을 터! 다시 한번 떠보지 않을 수 없구나.’

“허허, 모른다면 네 영향력이 거기까지였다 생각하고 포기하거라. 그런데, 항간에 현 암흑마교 교주의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너는 그를 어떠한 인물이라고 평가하느냐.”

“평가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 그분은 패웅(覇雄)일지언정 효웅(梟雄)은 되지 아니합니다. 영웅은 더더욱 아니지요.”

그가 자신의 교주를 대놓고 깎아 내리자 금문이 자못 놀라 물었다. 이렇게 대담한 답변이 나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자신이 모시는 주인을 그렇게 밖에 보지 않는 것이냐. 또한, 지금의 말이 바깥으로 새어나간다면 네 목이 성치 않을 수도 있다.”

동천은 희미하게 웃었다.

“안 보이는 곳에서는 나라님 욕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또한, 그것이 맞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르신께서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신다면 바깥으로 새어나갈 염려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금문만 수다가 아니라면 입막음은 충분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동천의 기세에 눌려있으면서도 호기심어린 눈으로 자신을 살펴보는 화정이가 시야에 들어오자 절로 미소가 흘러나옴을 느꼈다. 그의 심중(心中) 살기는 그도 모르게 스르르 풀려버렸다.

“그래 좋다. 이 또한 어딘가에서 들린 소문이니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보내주마. 자아,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가 소속된 곳은 어디이며 네 직함은 무엇이더냐.”

동천은 짐짓 인상을 찌푸렸다.

“어르신, 너무 세세히 파고드시니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매정한 인간은 되기 싫고……. 저는 암흑마교 아수마전에 소속된 자로서 본명은 이연세(李硏世)입니다. 그 이상은 알려주기가 곤란하니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깨달은 듯 금문이 소리쳤다.

“엇? 그렇다면 이 여아가?”

금문은 아수마전의 이야기가 나오자 대번에 화정이의 존재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는 진지한 시선으로 화정이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놀랍군, 놀라워! 아수마전이 이 정도까지의 강시를 만들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단 말인가?”

동천은 금문의 놀람이 잦아드는 시점에서 불쾌하다는 인상을 내뿜었다.

“강시가 아니라 활강시입니다. 그리고 이 녀석만이 특별히 제조된 것으로서 본 아수마전의 전부를 투자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는 말하는 와중에 일부러 자부심과 오만함을 드러냈다. 앞서 금문이 판단했던 자신의 기준을 흐트러트리려고 했던 것이다. 운이 좋았던지 금문은 동천의 계책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놀라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동천의 오만함이 발견되자 그대로 믿어버린 것이었다.

‘허어! 내 공연히 걱정을 했구나. 머리는 뛰어나되 오만하여 일을 그르칠 상이로다. 이대로 놔두어도 훗날 자멸할 것이 분명하니, 차후 필요할 때 연줄을 빌미로 연락하여 암흑마교의 공략 시 사용해도 될성싶다!’

금문은 살기가 일었을 때 곧바로 죽이지 않았던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유로워진 마음이 되어 동천에게 말했다.

“내 보아도 그렇게 보이는구나. 음, 이렇게 시간을 보낸 것도 인연이니 한 가지 정보를 가르쳐주마. 이제 곧 이 마을은 살육에 휩싸일 것이다. 이명호월과는 관계없이 너를 이 자리에서 보내줄 터이니, 네 일행들과 지금 당장 이 마을을 빠져나가거라. 이것을 머리에 두른다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금문이 건네준 것은 구름 문양이 새겨진 푸른 띠 세 장이었다. 동천은 그것을 받아들며 한 장을 더 요구했다.

“외람 된 말씀이오나 이 마을 끝에 또 다른 제 일행이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한 장 더 주실 수 없는지요.”

금문은 의심하지 않고 서슴없이 건네주었다.

“어렵지 않지. 가능하면 빨리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곧 붉은 폭죽이 터지면 그 머리띠를 두르고 있어도 혼란한 와중이라 곤혹스러운 일에 처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말씀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가슴 깊이 담아두겠습니다.”

금문은 흡족하여 물었다.

“허허, 내 그 말을 기억해두어도 되겠느냐?”

‘백 날을 기억해도 허탕을 칠 것이오.’

내심 비웃은 동천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사내대장부가 일구이언을 하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지! 그렇고 말고. 그럼 노부는 이만 가야겠다. 화정이라고 했던가? 너도 잘 지내거라. 다음에 봤을 때 더욱 성장한 모습이었으면 좋겠구나. 허허, 강시로 만들어진 이상 성장이란 있을 수 없을 테지만.”

금문의 웃음이 통했는지 동천의 눈치만 보던 화정이가 ‘잘가∼.’ 하고, 슬며시 손을 흔들어주었다. 금문을 보내고 지체 없이 돌아선 동천은 문틈사이로 보이는 소연에게 명했다.

“어서 짐을 챙기거라. 갈 길이 바쁠 것 같구나.”

소연은 재빨리 대꾸했다.

“네, 주인님.”

그녀는 화섭자로 등잔에 불을 켜고 짐을 챙기며 혀를 내둘렀다.

‘후아,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까? 역심무극결을 운용하신 듯 보이는데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정말이지 다른 사람 같구나.’

차마 나설 자리가 아니라서 문틈을 사용해 엿들었으나 상황파악은 다 되었다. 그녀는 긴급한 상황이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오로지 짐을 챙기는 데에만 전심전력을 다했다.

“이건 빨아서 눅눅한데 같이 넣어도 될라나? 우웅, 이건 날카로운 물건이라 따로 보관해서 한번 더 쌓아야 하는데……. 아참, 준비해둔 건량을 내가 어디에다 놓았더라? 앗? 무리하게 집어넣다 머리빗이 상했잖아? 히잉! 내가 아끼는 건데…….”

“…….”

소연이 하는 짓을 말 없이 지켜보던 동천은 저걸 한소리 해야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약간의 갈등을 겪었다. 결국 그는 한마디했다.

“바쁘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 예예.”

그럴듯한 다그침이 떠오르지 않자 괜시리 평소의 성격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동천이었다.

툭, 투툭!

“헉? 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침대 바닥에 숨어서 오들오들 떨고있던 고씨가 맞은 편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도연에게 물었다. 도연은 힘겹게 일어서며 말했다.

“누군가 창문을 두들겼습니다. 열어볼까요?”

“됐네, 됐어. 어이구, 수일아 순애야. 아버지 이렇게 죽는가보다.”

그때 창문 밖의 동천이 차분하게 말했다.

“도연, 어서 창문을 열어라.”

눈을 번뜩인 도연은 재빨리 창문을 열어주었다. 밖에는 약간 수줍은 듯 고개를 모로 돌리고 있는 소연과 어쩐지 기죽어있는 듯한 화정이가 같이 서있었다. 화정이는 그렇다 치고 소연의 경우 기척을 죽인다는 명목 하에 주인님의 품에 안겨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녀들을 한번 훑어본 도연이 물었다.

“떠나는 겁니까?”

동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는구나. 시간이 없으니 조용히 창문을 넘어오너라. 이제 곧 이곳은 피바다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려던 도연은 피바다라는 마지막 말에 주춤 멈추었다. 그는 절로 고씨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자 사색이 된 고씨가 기다렸다는 듯 처량한 눈으로 매달렸다.

“이보게. 제발 나를 버리지 말……, 윽?”

도연은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주군이 고씨의 혈도를 제압해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동천이 명령했다.

“시간이 없다 하지 않았느냐. 이자를 도와줄 여력이 없으니 조용히 따라오너라. 주점 안의 이명호월이 눈치챈다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에 도연이 안타깝게 말했다.

“주군, 불쌍한 분입니다. 이렇게 돌아가신다면…….”

“네가 지금 나에게 인정을 바라는 것이냐?”

싸늘해진 동천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는 얼음장같은 눈으로 도연의 전신을 옭아맸다.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친 도연은 차마 고씨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창문을 넘었다. 그제야 안색을 푼 동천이 도연을 비롯해 각자 푸른색 띠를 건네주었다. 소연은 영문을 몰라하는 도연에게 살짝 일러주었다.

“그걸 머리에 쓰면 적들이 공격하지 않는대.”

결국 궁금증만 증폭된 도연이 물었다.

“이런 걸 어떻게?”

“자세한 것은 차후에 일러주겠다. 소연아, 다음 마을로 가는 길이 어디더냐.”

소연은 재빨리 손을 들어 한 방향을 지목했다.

“저곳이에요. 가다가 길이 끊기는 듯 보이지만 아니고요. 계속 가시면 길이 다시 이어져요.”

“좋다. 가자.”

그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제일 뒤쳐지는 소연의 보조를 맞추며 달려가기를 중간쯤 갔을까? 우려했던 도연이 마침내 우뚝 멈추어버렸다. 동천은 무감각해진 눈동자로 도연의 눈을 마주보았다.

“너어…….”

도연은 괴로운 듯 이를 악물고 말했다.

“주군, 제게 잠깐의 시간을 허락해주십시오!”

동천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 물었다.

“어째서냐.”

도연은 이마에 매고있던 머리띠를 풀고 오른손에 꽉 쥐었다.

“이것을… 그분께 드리고 돌아오겠습니다.”

순간 동천의 손이 휘둘러졌다.

철썩!

도연의 몸은 휘청거렸다.

“어리석은 놈! 그럴 순 없다. 그것을 주방장에게 주었을 시 너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됨은 물론 우리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너 하나로 끝난다면 상관없으나, 그로 인해 우리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면 너는 무엇으로 그 죄를 갚을 것이냐!”

난데없이 맞은 뺨에 큰 충격을 받아 비칠 물러섰던 도연은 결연한 의지가 담긴 얼굴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남아 저 하나로 끝내겠습니다!”

그런 도연이 불쌍해 보였는지 소연이 은근슬쩍 말했다.

“주인님, 저렇게 원하는데 허락해주세요.”

동천은 그녀를 꾸짖듯 차분하게 말했다.

“너는 나서지 말아라.”

“예? 예, 예에…….”

찔끔한 소연이 물러섰지만 마냥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듯 동천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뜬 동천이 입을 열었다.

“지금의 나는 반대라는 것을 알아두거라.”

그리곤 역심무극결을 풀어버렸다. 사실 하릴없이 역심무극결을 계속 운용하기에는 커다란 부담이 작용하는데, 때마침 이 같은 일이 벌어지자 자신의 의견에 한 표를 던지고 평상시의 그로 되돌린 것이다. 원래대로 돌아온 동천은 말했다.

“아 씨팔, 빨랑빨랑 갔다와! 열 셀 때까지 안 돌아오면 그놈하고 살림 차린 줄 알 꺼다? 하나, 둘, 여섯, 여덟!”

“감사합니다, 주군!”

득달같이 사라지는 도연을 바라보며 동천이 무게를 잡고 중얼거렸다.

“음, 원래는 이 몸도 반대였으나 그렇게 줏대가 쌨던 저 녀석이 집나갔던 여편네 마냥 눈치를 살피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대로 돌아온 동천 덕에 덩달아 활발해진 화정이가 싱글거리며 물었다.

“동천, 그거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신경에 거슬렸는지 동천이 대뜸 그녀의 귀를 잡고 흔들어댔다.

“누구 긴 누구야? 너! 너! 너 들으라고 한 소리지! 알겠냐? 앙?”

“아야야! 아파! 아, 아파, 동천∼!”

옆에서 어설픈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소연은 주인님이 예전의 성격으로 되돌아와 기쁜 한편, 방금 전의 멋진 모습이 날아가자 섭섭하기도 했다.

‘아아, 아까도 지금도 주인님인데 적당히 섞인 성격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일까?’

이래저래 심란한 소연이었다.


동천과의 일을 끝마치고 되돌아온 금문은 술잔이 돌고있는 상황이자 한잔을 추가하여 가뿐히 들이마시고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명호월에게 말했다.

“그 아이는 먼저 보냈으니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그 말에 이명호월이 언짢은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깐일 뿐이었다. 그런 사소한 문제로 이들과 대적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헐헐, 그놈은 명줄이 긴 듯 보였는데 역시나 제 살길을 찾아 나가는구려. 으적으적.”

희미하게 웃은 금문은 장문에게 눈짓을 보냈다. 고개를 끄덕인 장문이 품에서 두 개의 죽간을 꺼내 각각 이명호월과 고승척에게 나눠주었다. 혹시 모를 암수에 대비하고 있던 그들은 죽간에 적인 내용을 확인한 순간 놀람을 넘어 경악했다.

“헉?”

“이럴 수가! 이것은?”

“…….”

그 놀람의 강도는 고승척이 씹기를 중단한 것으로서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들 중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강두월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 이것은 천마도해가 아닙니까!”

“에엑? 이게 바로 천마도해의……, 우웁?”

뒤늦게 놀라 소리쳤던 진창남이 친구들에 의해 입이 봉해졌다. 그것을 보며 피식, 웃어버린 금문이 말했다.

“그렇다. 만일 너희들이 그것의 출처와 너희들에게 넘겨준 이유를 묻는다면 가차없이 회수해갈 터이니 그것은 알아서 각자 판단하길 바란다.”

잠시 입을 다물고 그들을 둘러보자 역시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만족한 금문이 이어 말했다.

“이제 곧 이 마을은 지도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단 이 푸른 머리띠를 하고 있으면 안전하게된다. 원래는 준비한 일곱 장이 남아날 줄 알았는데 벌써 네 장이 쓰여졌다. 여기 남은 세 장을 줄 터이니 받지 못한 이들은 알아서 대처하길 바란다.”

당연히 금문이 건네준 푸른 띠는 이명호월과 고승척이 가져갔다. 새파랗게 질린 천소평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 그러면 저희들은…….”

인상을 찌푸린 금문이 고승척을 바라보았다.

“네가 보기에 이놈들의 명줄은 어떠해 보이느냐.”

동천의 관상을 보았듯 이들도 한번 봐줘 보라는 이야기였다. 다시금 으적거리며 씹던 고승척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내 보기엔 영 소질이 없어 보이오. 헐헐, 여기 이월 선배들께서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모를까.”

그것이 도화선이었는지 응창삼황 일동이 이명호월의 발치에 엎드려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살려달라는 둥 믿는다는 둥 머리까지 쾅쾅 처박아가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또다시 머리가 깨진 천소평은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슬슬 박을걸…….’ 하고 후회하며 더욱 처절하게 머리를 박았다.

“그만하면 되었느니라. 설마하니 우리 형제가 아랫것들을 외면할까.”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들!”

장문은 때아닌 신파극을 바라보며 구경나온 애들을 쫓아내듯 그들을 향해 손을 저어댔다.

“자자, 볼일이 다 끝났거든 이만 물러가거라. 우리도 마냥 시간이 남아돌아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그럼…….”

고개를 끄덕인 이명호월은 가벼이 포권을 취한 뒤 응창삼황들과 함께 사라졌고, 홀로 남게 된 고승척은 너스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헐헐! 이 후배는, 으적으적. 송금과의 볼일이 아직 남아있기에 잠시 들렸다 가겠소이다.”

고승척까지 통로로 사라지고 같은 일행끼리 남게 된 금문과 장문은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주점의 지붕 위로 홀연히 다시 등장했다. 그들은 주변의 경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산문(産門) 아우가 온몸이 근질거려 아주 애들을 달달 볶고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소이다.”

금문이 장문의 말을 받았다.

“음, 그런가? 그렇다면 어서 움직이게 해주어야지. 가만 있자. 내가 가지고 있었는가?”

그는 형식적으로 몸을 더듬다가 팔 소매에서 작은 화통을 꺼내들었다.

“허허, 여기에 있었군.”

퍼엉―!

그가 작은 줄을 당기자 붉은 줄기가 청명한 밤하늘을 타고 휘감아 올라갔다. 금문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야 겨우 마교 통일의 대업에 한발 내딛은 꼴이로군.”

“허허, 그렇지요. 주군이 깨어나신다면 그까짓 것이 대수일까 만은 그 전에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 우리 수하 된 자들의 도리가 아니겠소이까.”

때맞춰 어디에선가 우렁찬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그 함성의 주인들이야 보나마나 뻔한 것. 금문은 아직도 남아있는 하늘 위 한줄기 붉은 선을 바라보며 감회가 서린 듯 천천히 눈을 감고 말했다.

“이제……, 피의 축제는 시작이다.”

<3부 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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