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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31화


“으하암∼. 소연, 나 지루해.”

하릴없이 기다리게 된 화정이가 터트린 불평이었다. 소연은 주인님을 찾는다고 나선 도연을 기다리다가 그 소리를 듣고 화정이의 어깨를 다독거려주었다.

“조금만 참아. 도연이 주인님을 찾아오면 분명히 지루해지지 않을 거야.”

화정이는 조금 풀어진 얼굴로 물었다.

“올 때 동천이 먹을 거 사올까?”

지금 먹을게 문제가 아니었지만 화정이가 뭘 알겠는가. 한숨을 내쉰 소연이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물었다.

“아참? 화정이 너 주인님이 계신 곳을 알 수 있지 않니?”

강시는 기본적으로 주인과의 심령이 연결된 상태이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멀리 떨어진 곳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 선에서는 찾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그것을 집어낸 소연이 기대감에 찬 눈으로 묻는 것이고 말이다. 허나, 소연의 기대는 도리질을 치는 화정이의 행동으로 무너져 버렸다.

“우웅, 예전에는 그래도 가능했는데 한참을 무기력했을 때가 지나가니까 이제는 아주 가까운 곳 아니면 나도 몰라.”

화정이가 말한 무기력했을 때는 그녀가 삼 년 가까이 잠들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했을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일로 인해 화정이의 기능에 여러 가지 것들이 변화된 듯 싶었다.

“그래? 에휴, 그렇구나. 그렇다면 그냥 계속 기다려야지 어쩌겠니…….”

화정이는 실망하는 소연에게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소연, 그냥 내가 찾아볼까?”

“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주인님을 지금의 네가 찾는다고?”

화정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응! 까짓 거 어렵지도 않다 뭐. 헤헤!”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화정이를 바라본 소연. 그러나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지금의 화정이가 어떠한 존재인가. 인면지주의 힘을 지니고 있어서 소위들 말하는 막가파(莫加派 : 전설의 신검 간장(干將)과 비견되는 막사(莫邪)의 첫 글자를 따 막사라는 검에 그것을 더 했다는 뜻으로,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하오문의 대표적인 파벌. 그러나 설립의 취지가 무색하게 고수만 보면 허리를 굽힌다고들 말한다. 여기에서 소연은 막가파의 본뜻만 떠올린 것임) 부럽지 않은 대단한 초고수가 아닌가! 비록 생각하는 것이 딸리긴 했지만 그것이 그녀의 능력까지는 가려주지 못했다. 그래서 소연은 희망을 가졌다.

‘그, 그래! 어쩌면 화정이가 주인님을 찾는다고 한 말이 마냥 허풍선이는 아닐 거야!’

일단 도연이 실패했을 때의 뒷일을 해결해 낸 그녀가 화정이에게 말했다.

“화정아, 네가 정말 자신 있다면 이따가 도연이 주인님을 못 찾고 돌아왔을 때 그때 찾아보도록 하자. 알았지?”

그러자 화정이가 그 고운 얼굴을 찌푸렸다.

“으잉,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싫어싫어! 나 지금 동천 찾을래! 지금 찾을래!”

만약 이곳에 동천이 있었다면 ‘니가 애새끼냐?’ 라고 소리치며 한 대 쥐어박았겠지만 주위의 눈들을 의식한 소연은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단둘이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그저 화정이를 타이를 뿐이었다.

“화, 화정아. 이러면 안 돼. 남들이 이런 널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니.”

뭐라고 생각하든 화정이가 알 바인가? 그녀가 그런 것에 눈치를 볼 정도였다면 간간이 동천에게 구박받고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몰라몰라! 나 동천 찾을래. 지금 찾을래. 자신 있단 말야.”

떼쓰는 화정이의 행동과 주위의 수많은 시선들. 그리고 자신 있다는 화정이의 말이 결정타가 되었는지 마침내 소연이 무너지고야 말았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잠깐만 있어봐.”

그녀는 바로 옆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는 주근깨 가득한 아줌마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저기 아주머니. 아까 저희들과 같이 있었던 제 또래의 소년, 아시죠?”

그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알지. 그 잘생긴 청년 말이지?”

“예, 아주머니 맞아요. 혹시, 그 애가 일행과 같이 오거나 혼자 오거든 그것과 상관없이 ‘소연은 화정이와 함께 주인님을 찾으러 갔으니 여기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으면 조금 있다가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말씀해주시겠어요?”

두어 번 입 속으로 중얼거린 아줌마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그러지 뭐.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소연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화정아 뭐해. 너도 인사 들려야지.”

화정이는 재빠르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줌마는 한가득 웃으며 감사를 받았다.

“아휴, 감사는 뭘. 인사치레는 나중에 하고 볼일이 급해 보이니 빨리 가기나 하려무나.”

“예, 아주머니.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사치 아줌마는 생각했다.

‘그렇게 감사하면 뭐 좀 하나 사가지고 가지…….’

다행이 속 좁은 성격이 아니었던 아줌마는 화정이와 멀어져 가는 소연을 바라보며 부러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곱다, 고와. 나도 그 옛날 저 나이 때에는 한 미모 했었는데.”

그녀의 헛소리에 물건을 사려던 손님 하나가 헛구역질을 하며 서둘러 떠나갔다. 나중에야 옛 생각에서 벗어난 그 아줌마는 방금 전까지 물건을 고르던 손님이 어디로 갔나 싶어 한참을 두리번거렸다고 한다.

“이곳에도 없는가?”

좀처럼 굳어진 안색을 펴지 못하고 있는 도연이 다소 허탈해진 목소리로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뭐 평소에도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이니 그거나 이거나이지만 아마도 도연의 일행들이었다면 그의 달라진 표정을 구분해 낼 수 있었으리라. 문득 그가 고개를 들어 중천에 걸린 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시간도 꽤 지체되었군. 일단 소연과 합류하여 같이 움직이는 것이 낫겠어.”

그동안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지만 처음에 동천이 뛰어갔던 그 길목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이렇게 돌아다닌 것도 거의 반 시진에 가까워가자 애태우며 기다리고 있을 소연이 생각나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웬걸? 그녀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그가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지 재차 살펴보았으나 틀림없이 식사를 마쳤던 음식점의 옆이었다.

“이런! 도대체 어디를 간 거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난데없이 옆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년아! 내가 어제 여기 내 자리라고 그렸어, 안 그렸어?”

마르게 생긴 억척스런 아줌마가 주근깨 아줌마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근깨 아줌마는 악악거리며 소리쳤다.

“먼저 자리잡은 사람이 임자지! 네가 여기 전세 냈냐? 아악! 이년이 사람 죽인다!”

그녀들이 서로 뒤엉키며 싸웠지만 그런 싸움구경이 흥미로웠는지 누구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의 도연이었다면 말렸겠지만 워낙 중요한 사태였고 싸워서 살인이 날만한 일도 아니었기에 곧 그녀들의 싸움에서 관심을 끊어버렸다. 오도가도 못하고 그렇게 일각 여를 기다리던 그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곳으로 가보는 수밖에.”

단체의 힘을 빌리고자 제갈세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빨리 움직이는 그의 등뒤로 한 사내가 조용히 뒤따랐다.


“다시 한번 묻겠다! 무슨 연유로 본 공자를 노렸느냐!”

정체불명의 사내를 발로 천천히 내리 누른 제갈일위는 상대가 도통 입을 열 생각을 않자 밟고있던 상대의 다리 부분에 부러트릴 듯한 힘을 가했다.

“크흡? 으윽!”

사내가 고통에 찬 신음을 발했다. 제갈일위는 힘을 줄이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물었다.

“이번이 마지막 질문이라 생각해라. 아니면 평생을 불구자로 살아가야 할 테니까. 자아, 무엇 때문에 본 공자를 노렸느냐. 내가 제갈세가의 소문주임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

동천을 피해 친구의 집으로 찾아가던 제갈일위는 뜻밖의 기습을 받았다. 생에 처음 받아보는 기습이어서 당황하기는 했지만 다행이 그가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상대들이었다. 처음에는 제갈세가와 남모르는 원한관계의 무리들인 줄 알고 단단히 혼을 내준 뒤 목숨만은 부지시켜 주었는데 어디에서 급조를 한 것인지 더욱 강하고 새로운 자들을 이용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로가 아니어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로 인해 그가 즐겨 입던 옷이 엉망이 되어 지금 그의 심기는 영 말이 아니었다.

“큭큭, 이 정도에 말할 거였다면……. 고, 공격하지도 않았다.”

왠지 모를 비웃음 같아 보이자 제갈일위의 분노가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이자가 대화로서는 지속시킬 수 없는 저속한 자로구나!”

우둑!

“끄아아! 차라리 날 죽여라!”

만일 동천이었다면 ‘네 스스로 죽어봐.’ 라고 약이라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점잖은 제갈일위로서는 묵직하게 나아갈 뿐이었다.

“말해라! 말하지 않으면 네 다리의 힘줄이 끊어져 버리게 된다!”

“악! 아악! 끄으으으! 으윽…….”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한 상대가 혼절해버렸다. 독단을 물고 죽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를 공격한 자들은 살수집단이 아닌 것으로 일단 예측되었다. 다른 자들에게는 인정사정 없이 손을 쓰고 지금의 혼절한 자는 그나마 술술 불게 생긴 얼굴이라 가볍게 제압했던 것이었는데 알아낸 것이 하나도 없자 제갈일위는 심히 불쾌할 따름이었다.

“끄응,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별 의미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린 그는 친구의 집안도 무가의 집안이긴 했지만 괜히 그곳으로 갔다가 피해를 끼치지나 않을까, 하는 꺼림직 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그곳으로 가려던 생각도 싹 가셔버렸다. 그는 길가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있는 한 청년에게 다가가 은자를 쥐어주며 말했다.

“나는 제갈세가의 제갈일위라고 하네. 여기 근처에 황지도장(荒地道場)이 있을 것이네. 일단 이자들을 구금하고 있으면 곧 제갈세가에서 찾아와 인계를 받을 것이니 잘 지키고만 있으라고 전해주게나.”

청년은 제갈일위의 신분을 알고 있는 듯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에, 첫째 도련님.”

“그래그래. 수고 좀 하게나.”

볼일이 끝났다고 생각한 제갈일위는 늦어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 하에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모르는 누가 보면, 일 저지르고 목격자를 매수한 뒤에 나 몰라라 도망치는 잡놈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일단 본가로 돌아가 정보망을 동원해 또 다른 수상한 자들이 없나 찾아봐야겠다.’

다소 뭉개졌다고도 할 수 있는 제갈일위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기회를 벼르고 있을 때였다.

“화정아, 찾기는 하는 거니?”

“그러엄, 당연히 찾고 있지. 근데 소연, 저거 맛있겠다. 나 하나만 사줘. 응?”

스치고 지나가던 제갈일위는 유난히 곱고 섬세한 목소리가 들려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좀더 세밀히 말하자면 곱고 불안해하는 목소리였다. 여하튼, 무언가에 이끌리듯 바라본 그곳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미녀들이 다과점(茶菓店)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평소 같으면 말이라도 한번 건네 봤을 정도의 미녀들이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움직임을 멈춘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으응? 저 여인들은 그 골칫덩이와 같이 있던 여인들이 아닌가! 헌데, 어찌하여 저들만 따로 있는 것이지?’

일단 그런 의문이 떠오르긴 했으나 생각해보니까 서로들 같이 있으란 법이 없었다. 일이 있어 잠시 떨어졌다가 예정된 곳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제갈일위는 한꺼번에 혼란스러운 일을 겪은 터라 생각하는 것도 무뎌진 것이라고 여겼다. 안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 자리에서 멈춘 뒤 눈을 감고 차분한 자세를 유지했다. 금새 마음을 진정시킨 그가 눈을 뜨자 약간 떨어진 곳의 그녀들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들 중 좀더 성숙해 보이는 여인이 옆의 여인에게 말했다.

“소연, 생긴 건 괜찮은데 하는 짓은 이상하다. 그치?”

화정이의 목소리가 너무도 크자 당황한 소연이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화정아, 들리잖아. 얼마나 상심이 크겠어.”

그녀도 부정은 안 한다는 뜻이다.

‘으윽?’

제갈일위는 그가 이러한 일을 당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던 듯 미약하나마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의 경우가 아까 전 기습을 당했을 때보다 더욱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무가(武家)에서 자라나 기습이야 언젠가는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니 나름대로 살아오며 인식은 하고있었다. 헌데, 남들에게 우러러 보는 위치에 놓인 나 제갈일위가 한 순간에 이상한 인간으로 치부되다니! 이는 나의 자존심상 그대로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다!’

그는 재빨리 멀어져 가는 그녀들을 뒤쫓았다.

“이보시오, 아가씨들! 거기 잠깐 멈추어 보시오!”

제갈일위가 그녀들을 부르자 소연은 분명 화정이의 말이 불씨가 되었다고 난감해했다. 결정타는 그녀였음을 그녀 자신은 모르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멈춘 그녀는 제갈일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공자님. 여기 이 친구가 정신적으로 좀 모자라거든요? 그래서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오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아, 예. 아니 그러니까…….”

“아아,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해해주셨으리라 믿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자, 화정아. 빨리 와!”

순간적으로 멍청해진 제갈일위는 중얼거렸다.

“아니 이게 아닌데.”

상황이 참 묘했다. 사과는 받았는데 실질적으로 자신이 이상한 놈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소연의 말인즉슨, 모자란 아이가 속으로 생각해야 할 것을 내뱉었으니 죄송하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 참! 결론적으로 나는 계속 이상한 사람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제갈일위. 그는 다시 한번 소연 일행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그녀들을 멈춰 세운 그가 단호히 말했다.

“소저의 사과는 잘 받았으나 한가지 집고 넘어갈 것이 있소. 나는 아가씨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 아니외다!”

이런 제갈일위의 행동을 잘못 이해한 소연은 마음을 굳게 먹고 얼굴을 굳혔다.

“무, 무례하군요! 얼굴이 반반하다고 해서 모든 여자들이 넘어갈 것이라 착각하지 말아요!”

‘헉?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졸지에 여자나 꼬시는 인간으로 치부되어버린 제갈일위는 사람들 많은 곳에서 터진 이 상황에 그저 난감할 따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의 신분을 알고있는 듯한 사람들이 서로들 자신의 눈치를 보며 소곤거렸기 때문이다.

‘이, 이 여인은 어찌하여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인가! 당황스럽기가 그지없구나!’

마냥 침묵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그가 재빨리 해명했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듯 한데… 나는 그저 형식적인 사과만을 받았을 뿐, 나를 이상하게 본 것에 관한 사과는 받지 못했기에 다시 찾았던 것이오. 그러니까 그 부분에 관해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지 않고서는 꺼림직 할 것만 같아 찾아왔다는 말이외다.”

제갈일위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진심이 깔려있었지만 소연이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화정이가 있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처리해보고자 다소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진 뒤 은자 서너 냥을 건네주었다.

“가, 가진 게 이게 전부예요. 제발 그냥 보내주세요.”

웅성웅성! 마침내 반신반의하던 주위 사람들이 저런 인간이었을 줄은 몰랐다며 제갈일위를 대놓고 씹기 시작했다. 그에 혹 떼려다 혹 붙인 제갈일위는 억울한 마음에 언성을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내가 언제 이런 걸 바란다고 했소이까? 나는 그저 사과만을 받고 싶었을 따름이오! 대 제갈세가의 첫째인 내가 이런 하찮은 푼돈이나 노리는 불한당으로 보였다니……. 불쾌하기가 그지없구려!”

분개한 제갈일위가 소리치자 소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갈세가의 첫째라면 주인님이 만나려고 했던 그 제갈일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호, 혹시 제갈일위 되십니까?”

“음? 그건…….”

뜨끔해진 제갈일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뜻 대답을 못했다. 자신을 제갈일위라고 밝히게되면 어쩔 수 없이 동천을 만나야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오늘 받았던 기습이 다 자신의 주위를 얼쩡거린 동천의 영향 탓이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직접 만나기까지 해보라. 어떻게 되겠는가.

‘분명 그 녀석을 만나게 되는 것이 껄끄럽기는 하지만 천하의 내가 그것이 무서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후우, 어쩔 수 없는가?’

일단 그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자네들은 무엇이 구경났다고 쳐다보는가! 어서 각자의 볼일들이나 보시게!”

과연 제갈세가의 위명이 대단하기는 했던지 주춤거리며 구경했던 사람들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심지어는 장사를 하던 사람들까지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

한참을 침묵하던 그는 말없는 자신의 행동에 다소 당황해하는 듯 보이는 소연에게 말했다.

“내가 제갈일위 맞소. 아마도 동철 때문에 알아본 것 같은데 자리가 자리니 만큼 이곳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니 따라오시오. 본가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아참. 이렇게 가면 소저들의 일행과 떨어지게 될 테니 그들과 만난 후 같이 가기로 합시다. 어디로 가면 되오?”

제갈일위인 것이 확실해지자 소연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마, 말씀을 낮추십시오. 저는 주인님의 한낱 시녀에 불과합니다.”

흠칫! 눈을 동그랗게 뜬 제갈일위는 그 인간에게 이런 시녀가 있다는 것에 놀라하며 자연스레 말을 낮추었다.

“으음, 그런가? 그렇다면 앞장서거라.”

제갈일위가 한 옆으로 물러나 길을 내어주자 소연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며 말했다.

“저기, 저기. 제가 이곳은 처음인지라 거기가 어딘지 잘…….”

어처구니가 없어진 제갈일위는 말했다.

“아니, 가는 길도 못 찾아갈 정도로 일행과 떨어졌단 말이냐?”

소연은 이리저리 쑤시고 다닌 화정이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뭐 하자 그저 말없이 고개만을 조아렸다. 그것을 본 제갈일위는 기죽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됐다. 녀석을 찾는 것이 대수겠느냐. 아랫것들을 풀면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갈 공자님.”

다소 우쭐해진 제갈일위가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감사는 무슨. 그보다 경공을 사용할 줄 아느냐? 내 급히 본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소연은 조심스레 대답했다.

“조금은… 합니다. 아마도 방해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호오? 그래?”

뜻밖이었던 듯 제갈일위가 새로운 시각으로 소연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느낀 그녀는 마땅히 시선을 놓아둘 곳이 없자 하릴없이 바닥만을 쳐다보며 말했다.

“예에, 공자님.”

잠시 소연의 이모저모를 살펴본 제갈일위는 더 볼 것도 없이 신형을 틀었다.

“가자꾸나.”

“예, 알겠습니다. 화정아, 가자.”

“응? 으응, 알았어.”

여태껏 다른 곳을 보고있느라 말이 없었던 화정이는 소연이 잡아끌자 하는 수 없이 보조를 맞춰주었다. 그녀는 아까 전부터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던 거였지만 묻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곧 신경을 끊었다. 금새 쾌활해진 그녀는 방긋 웃으며 소연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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