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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88화


“이런 씨, 애 버릇 고쳐준다고 연기 좀 해서 나오긴 했는데 어디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온다지?”

즉석에서 심사가 뒤틀려 즉석에서 일을 꾸민 뒤 즉석에서 나왔으니 딱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정오가 지나 끼니를 때운 뒤 사부님께 훈련을 받으러 갈 수는 있었지만 아직 두 시진(4시간) 정도나 남아 있었다. 심심할라치면 잠시도 가만히 못 있는 인간이 동천인지라 그는 약왕전을 나서서 시간 때울만한 곳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화 년한테 가자니 미친 짓이고, 수련 그 계집애에게 가자니 정화 년 때문에 미친 짓이고, 도연 그 자식에게 가자니 짜증나는 짓이고. 으악! 도대체 어딜 가야 하는 거지?”

드디어 짜증이 솟구친 동천이 성깔을 드러내는데 차분한 목소리가 옆쪽에서 들려왔다.

“주군, 이곳에서 뭐하고 계십니까?”

흠칫하여 고개를 돌리자 약간 떨어진 곳에서 도연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동천은 혹시나 도연이 정화 년이라고 욕했던 것을 들었을까 싶어 가늘어진 눈으로 취조하듯 물어보았다.

“너 솔직히 말해. 어디까지 들었지?”

도연은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다니요?”

동천은 바로 손을 내저었다.

“아아, 못 들었으면 됐어. 진실은 언제나 네가 모르는 곳에서 존재하고 있으니까.”

잠시 침묵한 도연은 더 이상의 토를 달지 않았다. 그는 주군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지 않아야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말씀하신 파양호의 살수에 관해서 확실치는 않지만 알아온 바가 있습니다. 주군께서 달리 수집하신 정보가 없으시다면 제가 알아온 것을 말씀드려도 되겠는지요.”

두 눈에 이채를 띈 동천은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험! 네가 이 몸의 숨은 추종자들을 무시하나본데, 이미 정보는 모였고 실행만 하면 되는 단계까지 왔느니라!”

추종자라 봐야 도연하고 소연 밖에 없는 인간이 거짓말은 잘했다. 이는 도연도 알고있는 부분이었지만 속아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 그는 표정의 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그 정도까지 진행되어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상대가 누구입니까?”

동천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했다.

“그 전에 네가 알아온 것을 먼저 들어보자. 그동안 네 나름대로 수고한 것 같은데 그냥 썩혀서야 되겠느냐.”

도연은 바로 명을 받들었다.

“예,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육 장로님께서 은퇴한 살수들 중에 일년 전 파양호에서 작업에 들어간 살수들을 혼천부(混天府)의 보고내용에서 얼핏 보셨던 기억이 있답니다.”

동천은 아는 척 끼어들어 주둥이를 놀렸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머리만 조금 굴려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고급살수들은 단체보다는 개인위주의 일을 도맡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처리해야하는 상황에서 둘 이상이 잠입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미쳤다고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자신들의 위치를 드러낼 일이 있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애초에 살수란 직업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리라.

“과연 주군이십니다. 셋이라고 합니다. 환영혈(幻影血)이라 불리는 자들로 강호에서 이름난 살수단체인 은중각(隱中閣)의 최고 살수들이었다고 합니다. 각기 환살(幻殺), 영살(影殺), 혈살(血殺)이라고 불리는데 은중각 대대로 최고의 살수들에게만 내려지는 호칭이랍니다. 듣기로는 환영혈이 의뢰를 접수하면 실패란 없다고 소문이날 정도로 살인기예에 관해서는 최고봉에 도달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틀 전 도연이 찾아왔기에 얼른 쫓아보내려고 은밀히 지시한 것이 이렇게 결실을 맺을 줄 몰랐던 동천은 역시 자신은 뭘 해도 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속으로 낄낄거리다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역시 이 몸이 알아낸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군. 어쨌든 수고했다. 이곳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라고 하면 섭섭할 터이니 가서 소연한테 밥 한끼나 얻어먹고 가거라.”

도연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배는 고프지 않습니다. 출타를 하시는 듯한데 오랜만에 제가 보좌해드리겠습니다.”

같잖은 소리이자 동천은 어디에서 개가 짖는 줄 착각할 뻔했다.

“뭐? 포차? 어디에서 장기 두냐?”

도연은 다시 정정해 말했다.

“보좌입니다.”

“포차?”

“…….”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말해봤자 헛수고라는 것을 알기에 도연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시다면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가 돌아가겠습니다. 살펴 다녀오십시오.”

동천은 의외로 쉽게 단념하는 도연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막상 떼어놓는데 성공하자 무언가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 자식이 혹시 이 몸 없을 때 소연한테 집적거리려고 그러는 거 아냐?’

마땅한 의심거리가 없어서 그냥 생각했던 것인데 갖다 붙이고 보니까 아주 없으리란 법도 없었다. 도연의 성격을 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동천이라는 인간은 그 성격을 알아도 있을 법하다고 생각하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그 즉시 떼어놓고 나가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음! 네가 이리도 고분고분 하는 것을 보니 장로님들께서 예전의 그 더럽던 성격을 어느 정도 잘 다스려 주셨나보구나. 내 언제 짬을 내어 한 번쯤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라도 올려야겠는걸? 하하, 그건 그렇고 너는 가서 마차를 준비하거라. 급히 나가보아야 할 듯 싶구나.”

도연은 주군이 갑자기 생각을 바꾼 것에 대하여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명을 받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천히 나오십시오.”

천천히 나가는 것은 그의 전공이었으므로 동천은 주위를 둘러보며 휘파람까지 휘휘 불었다.

“랄라, 휘파람, 휘파람∼. 마파람, 마파람∼. 춤바람, 춤바람∼. 결국엔 패가 망신∼!”

휘파람을 부른 김에 자·작곡의 노래를 부른 동천은 주위에 지나가던 하인이 고개를 조아리고만 있자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하인은 저 소악마가 왜 또 저러나 하다가 무언가 깨달았던지 급히 박수를 쳐주며 아부를 했다.

“으아, 노랫말 하나 하나가 살아 숨쉬는 듯한 대단한 노래입니다. 어느 위대한 풍류시인이 즐겨 부르던 노래입니까?”

그제야 만족한 동천은 껄껄 웃었다.

“하하, 자네가 음률에 대해 뭘 좀 아는군! 방금 그 노래는 어느 위대한 풍류시인이 부르던 것은 맞으나 아직은 밝힐 단계가 아니므로 이해해주길 바라네. 알겠는가?”

하인은 어이가 없었지만 힘이 없는 관계로 무조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 예에…….”

“음, 그래그래. 하하하!”

기분이 좋아진 동천은 아무런 해코지도 없이 그곳을 벗어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하인은 품속에서 생사비록(生死秘錄)이라는 책을 꺼내들었다. 휘리릭, 책자를 넘긴 그는 찾고자 하는 곳에서 손을 멈춘 뒤 눈으로 읽어내렸다.

-제 31항.

소전주는 가끔 기분이 좋을 때 음정, 박자, 가사를 무시한 말도 안 되는 자작곡을 부른다. 이는 극히 귀하게 접하게 되는 경우지만 대처를 잘한다면 소전주의 폭력에서 해방될 수 있음이다.

대처방안 :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문이지만 부른 소전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은 소전주의 노래솜씨를 띄워주는 동시에 누구의 노래인지 모른 척 하며 노래의 대단함을 찬양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너무 띄워줬을 시, 소전주와의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으므로(이야기가 길어지면 어떤 변수가 등장할지 아무도 모른다) 맺고 끊음을 잘 간파해내야 한다.

역시, 자신이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고 생각한 하인은 이마에 솟아난 진땀을 닦아냈다.

‘이것의 내용만 숙지하면 소악마의 손에서 최소한의 피해만을 입을 것이라는 매향이의 말에 큰마음 먹고 은자 두 냥이나 주고 샀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겪어보니 그 효과가 대단하구나! 초반부만 조금 읽다가 돈만 날렸다는 생각에 덮어두었는데 오늘부터라도 완전히 외우고 살아야지 안되겠다!’

바야흐로 역천 휘하 시녀들의 땀과 노력의 결정체가 빛을 발하기 시작할 무렵, 비위를 잘 맞추어준 하인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동천은 걸어오는 도연과 보조를 맞춰 마차를 끌고 오는 방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서둘러 마부석에서 내려와 마차의 문을 열어주는 방삼에게 말했다.

“험, 조금 늦었긴 하지만 봐주도록 하마.”

동천이 늑장을 부리고 늦게 나오는 것과 마부가 늦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관계로 평소보다 늦게 도착했던 방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감사합니다, 소전주님. 갑작스레 생리현상이 찾아와 측간엘 좀 다녀오느라 늦었던 겁니다.”

동천은 마차에 올라타며 대꾸했다.

“누가 뭐래? 아 씨팔! 더럽게 똥싼 이야기나 하고 지랄이야!”

“그, 그게 아니라 작은 거였습니다!”

지레 겁먹은 방삼이 말했지만 동천은 아무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인상을 찌푸리기만 했다.

“알았으니까 마부석에나 올라가, 새꺄.”

명령대로 허겁지겁 올라간 방삼은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요?”

“에에, 그게 그러니까…….”

선뜻 목적지를 말하지 못한 동천은 자신이 왜 말끝을 흐리는지 곧 알 수 있었다. 원래는 마차를 기다리면서 생각할 작정이었는데, 자신의 노래가 좋다는 소리에 흐뭇해하느라 미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잠시 턱을 쓰다듬는 척하던 그는 마주 앉아있는 도연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야, 장로님들 중 한 분이 그 살수자식들과 붙게 되면 어느 쪽이 이길 것 같냐?”

전혀 이야기가 나올 상황이 아닌데 그런 질문을 받게 되자 한순간 도연이 움찔했다. 그러나 그는 냉정을 되찾고 대답했다.

“암중에서 공격한다는 것은 대단한 이점입니다. 자신이 공격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의 차이점이 바로 그 이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은중각의 대외명성과 장로님들의 실력을 놓고 보았을 때 그들이 장로 한 분을 목표로 했을 경우 성공하기가 지극히 어렵습니다. 최선을 다해야 어쩌다가 양패구상 정도?”

잠시 헷갈린 동천은 속으로 씨부렁거렸다.

‘아따, 이 자식 말 어렵게 하네? 그러니까 그놈들이 강하다는 거야, 약하다는 거야?’

인상을 찌푸린 그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거…… 살수자식들이 강하다는 소리지?”

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결과는 아니지만 제 예상은 그렇습니다. 장로님들 개개인 정도라면 한 문파의 문주와 대등하다고 보시면 되니까 말입니다. 사대전주님들 중 한 분이시라면 5할 이상의 양패구상을 생각해 두셔야하고, 외각팔당의 당주님들이라면 장로님들의 경우와 반대로 그분들이 어쩌다가 양패구상을 시킬 정도가 되리라 봅니다.”

도연의 말이 끝나고 다시 잠잠해진 동천은 지나치듯 물었다.

“그래? 그럼 꽤 강하네? 그러면 만독문의 소문주님과 호위로 따라온 만독문의 육당 중 음혼당의 당주 숭의겸과 그놈들을 비교하면?”

도연은 자신이 무슨 대단한 지략가도 아닌데 자꾸만 어려운 부분을 물어보자 건성으로 대답해 줄 수도 없고 해서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그러나 대답은 빨랐다.

“두 분을 합쳐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따로따로 싸웠을 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동천은 말했다.

“따로따로 하고 개개인하고 각기 다 이야기 해봐.”

고개를 끄덕인 도연은 두 가지의 경우 중 한가지만 생각했었던 듯 약간의 여유를 가진 후에야 입을 열었다.

“먼저 두 분이 같이 계실 경우라면 침입을 알고있건 없건 두분 다 돌아가실 겁니다.”

이번에는 그 살수 자식들이 강하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음, 그럼 각기 떨어져있는 상황은 두말할 필요도 없잖아?”

도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이곳에서만큼은 상황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만독문의 소문주님은 엄중한 호위를 받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는 건 좋아도 머리회전이 느렸던 동천은 이미 그 엄중한 호위를 뚫고 들어왔는데 여기에서 그게 왜 거론되나 했다. 체면상 뭔 소리냐고 할 수도 없었던 그는 비장의 방법인 그저 깨달았다는 표정만 지었다.

“아하? 그렇군! 계속 이야기해봐.”

도연은 역시 총명한 주군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네, 분명 두 분만 계신다면 최악의 경우가 아닌 이상 수십합 정도는 너끈히 넘기실 수 있겠지만 결국엔 살해를 당하시게 될 겁니다. 그러나 밖이든 어디든 호위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 수십합을 겨룰 동안 상당한 소란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니 그 짧은 사이에 호위가 몰려들어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심 감탄한 동천은 신기한 눈으로 도연을 바라보았다.

‘히야∼. 이놈이 이런 쪽으로 머리를 굴릴 줄도 알았단 말야?’

그러나 그 감탄은 곧 질투심으로 이어졌고 그는 삐딱해진 고개를 만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너 솔직히 말해봐. 그거 니 머리에서 나온 거 아니지? 그치?”

도연은 굳어진 얼굴로 대꾸했다.

“제 나름대로 추론하여 내린 결론일 뿐입니다. 깊게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같잖아진 동천은 새끼손가락으로 코를 파며 말했다.

“그래 너 잘났다, 쨔샤.”

다른 놈들 같았으면 벌써 주먹이 날아갔을 거라고 내심 중얼거린 그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따지고 들었다.

“가만, 그런데 장로나 사대전주님들은 그놈들과 개개인으로 대결했을 때를 예상했으면서 어째서 방금 전에는 호위들까지 싸잡아 결과를 예상한 거지? 참나, 자식이 이제는 묻지도 않은 것까지 주절거리고 말야. 너 많이 컸다?”

도연은 비꼬는 듯한 말투임에도 표정의 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주군께서 그들의 정체를 살펴보라고 지시한 것이 만독문의 소문주님과 깊은 관계가 있을 듯하여 감히 주제넘게 앞서 나갔던 것입니다.”

‘헉? 이놈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동천은 침을 꿀꺽 삼킨 뒤 진지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느냐.”

눈가를 꿈틀한 도연은 침음을 하며 대답했다.

“음, 사실이었군요. 주군께서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염려하시나본데 소용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알고 계셨던 육 장로님께서 환영혈에 관하여 알려주실 때 같이 언급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동천은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육장로님께서 그걸 어떻게 아셨단 말이냐!”

도연은 차분히 말했다.

“언제 누구에 의해 퍼졌는지는 몰라도 이 혼사를 막기 위한 암중의 세력이 살수를 고용해서 만독문의 소문주님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널리 퍼진 상태입니다. 물론 상층부의 극소수만 알고 있는 상태이지만 말입니다.”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었던 동천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누가 계획한 것인지 빤히 알고있는 자신인데 암중의 세력은 무슨 암중의 세력이란 말인가.

‘참나, 질투에 눈이 먼 년이 살수를 고용해도 암중의 세력이 되는 건가 벼?’

동천이 잘하는 어거지를 쓰자면 암중의 세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그가 문제시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일년 전에 파양호에서 무림인들의 이목을 끌만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살수들이 소홍이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 몸과 십 장로의 손녀인 은혜도 모르는 년하고 소홍이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은혜도 모르는 년은 죽일 생각이었으니 입 단속을 철저히 시켰을 것이고, 소홍이는 소문을 내봤자……, 헉? 그러네?’

더 놀랄 것도 없었던 동천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소문이 나면 진위조사차 본교의 비밀기관들이 움직일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경비강화는 물론 환영혈의 색출작업이 시작될 것이니 이는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 아닌가!’

자신을 노리는 자들을 끌어내기 위해 역공작(逆工作)을 폈을 거라고 생각한 동천은 강소홍의 배짱에 대하여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살수가 의뢰를 받은 이상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임무를 이행해야한다는 피의 율법을 놓고 보았을 때 자신들의 목이 조여지기 전에 필시 강소홍을 공격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대담해서 좋은데 말야. 걔는 궁지에 몰린 맹수가 더 무섭다는 것도 모르나보네?”

저 혼자 중얼거린 동천은 그런 방법을 쓸 바엔 차라리 소교주의 집에 얹혀 사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암흑마교에서 소교주의 거처만큼 안전한 곳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악의적인 구설수에 오를 것이 뻔하지만 어차피 올해 안으로 혼인을 할 사이니 그것은 혼인만 하면 사라질 구설수였다. 또한 살수들이 노린다는 정당한 이유를 대고 그녀를 아끼는 마음에 소교주 자신이 불러들인 것이라고 입만 벙긋해주면 애초에 구설수를 막을 수도 있고 말이다. 환영혈 같은 대살수들의 경우는 난공불락에 가까울수록 의욕이 불타오를지도 모르기 때문에 괜히 자극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긴,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 이 몸의 여인이라고…….”

급히 입을 다문 동천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도연에게 살짝 물었다.

“……들었냐?”

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들었습니다. 하지만 누굴 말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동천과 항광과의 약조를 모르는 그가 어찌 주군이 언급한 여인이 강소홍임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런 도연을 잠깐 노려본 동천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음! 어쨌든 경비가 강화되었을 것이고 수색 척결작업이 이루어진다 하니 강 소문주께서 한시름 놓으시겠는걸?”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우리측에서 환영혈의 목을 조이면 조일수록 그들의 독기는 점점 더 강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동천은 방금 자신이 염려했던 것을 도연도 같이 염려하고 있자 소름이 끼치는 동시에 수하로 들이지 않고 그냥 놔두었더라면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도연과 같은 부류는 한 번 끌어들이면 배반이란 있을 수 없지만 적이 되었을 경우 상당한 골칫거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앞을 내다보는 이 몸의 혜안이 없었다면 차후 속을 좀 썩을 뻔했군. 아아, 난 너무 잘나도 고민이라니까? 하긴 이러니 여자들이 따르지만……. 하하하!’

“헌데, 외출하려던 것 아니셨습니까?”

자아에 도취되어 있던 동천은 도연의 차가운 물음에 정신이 확 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마차에 탔을 뿐 움직이지는 않은 상태였다. 이제와 갈곳이 없다고 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한 동천은 방삼에게 소리쳤다.

“야! 왜 그때 정자 딸린 호숫가 있지? 거기로 마차 몰아!”

자기는 마부석에 앉혀놓고 지들끼리만 떠들어대서 심심했던 방삼은 졸려서 꾸벅거리다가 깜짝 놀라 마차를 몰았다. 반면 동천은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을 알기에 길게 드러누운 뒤 도착하면 깨워달라 말하고 신나게 꿈나라를 뛰놀았다.

흔들흔들.

“주군, 다 왔습니다.”

너무 꿀맛같이 잤던 것일까? 잠자려고 누웠는데 바로 깨운 것만 같아 짜증이 난 동천은 오만가지 인상을 찌푸리며 도연을 노려보았다.

“이씨, 누운 지가 언젠데 벌써 왔다는 거야?”

한 대 칠 것만 같은 눈초리였지만 도연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나가보시면 알 것 아닙니까.”

그제야 헛소리가 아님을 깨달은 동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정말이야?”

“그렇습니다. 헌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제야 동천이 피식 웃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개뻥이지, 이 자식아?”

잘 걸렸다고 생각한 동천은 주먹을 휘두르려다 그만두었다. 바로 창문 밖으로 힐끗 보이는 광경 때문이었다.

“어? 저 무장한 시키들은 뭐냐?”

살벌한 분위기로 호숫가에 늘어선 자들을 말하는 것인데, 도연은 동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했다.

“문제가 있다함은 바로 저들 때문입니다. 이 일대의 움직임을 통제하여 물어봤더니 놀랍게도 환영혈을 포위했답니다.”

놀란 동천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 진짜야? 어떻게?”

도연은 마차의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그 의문을 해결하시려면 내리셔서 직접 물어보셔야 할 듯 싶습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아무에게나 가르쳐 줄 수는 없었기에 도연으로서는 방금 전에 대답한 것 이상을 알아낼 수 없었다. 이럴 때는 또 머리가 돌아가서 대충 이해한 동천은 잠이 확 달아남을 느끼며 마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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