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14화
아침 일찍 일어나 운기조식을 마치고 간단한 근육운동을 시작한 동천은 어느덧 이런 생활도 열흘 가까이 흘렀음을 깨달았다.
이제 동천의 외상은 거의 다 나은 상태였는데 의원은 한달 정도를 요양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귀의흡수신공을 염두 하지 않았을 때의 기간이었다.
치유를 접목시킨 동천만의 치료법이 있었기에 이렇듯 빠르게 아물었던 것이다.
“이리 움직여보고, 윽! 저리도 움직여보고, 으윽!”
동천은 근육운동을 하는 중간 중간에 근육이 약간씩 당기자 그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는 중이었다.
“주인님, 일어나셨어요?”
대충 이맘때면 일어나 계시는 것을 알고 있었던 소연이 문밖에서 형식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동천도 형식적으로 대답해주었다.
“어,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소연은 들고 온 세숫대야를 조용히 탁자에 올려놓았다.
동천은 조금 더 운동을 하다가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아프신 곳은 없으세요?”
동천은 세수를 끝마친 뒤 소연이 건네주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다 나았는데, 아직 두어 군데가 아파.”
소연은 걱정스런 눈길로 물었다.
“어머, 어디가요?”
동천은 가슴 섶을 벌려 한곳 가르쳐주고 바지 한쪽을 걷어올려 허벅지의 한 부분을 가르쳐주었다.
“여기하고, 여기가 아직도 당기지 뭐냐?”
주인님의 속살을 보게 되어 부끄러워진 소연이었지만 그래도 볼 건 다 보고 나서 말했다.
“와아, 그래도 다 나으셨네요? 정말 그만하시길 다행이에요.”
칭찬 받는 기분이어서 기분이 좋아진 동천은 으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몸의 회복능력이 이리도 대단한 것에 관하여 너는 놀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타고난 몸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하하!”
자신의 회복능력은 타고났으니 새삼 놀랄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소연은 늘상 듣는 소리였던지 크게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주인님의 회복이 빨라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다.
“호호, 아무래도 그런 가봐요. 역시, 주인님은 대단해요.”
“하하, 그저 기본일 뿐이다!”
웃는 소연과 같이 웃어댄 동천은 모두 모여 아침식사를 마친 후 가볍게 신법을 발휘해 호연화와 함께 마당을 뛰어 다녔다.
그동안 다친 탓에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이렇게 라도 몸을 풀어주어야 했던 것이다.
일각 정도를 천천히 뛰어다닌 그는 그만두려는 찰나에 누군가 대문 쪽에서 걸어오자 마치 운동 중에 방해를 받은 듯한 얼굴로 다가오는 시녀를 바라보았다.
“뭐냐?”
두려움에 고개를 숙인 시녀는 말했다.
“전주님의 직속시녀인 보, 보영(菩永)입니다.”
역천의 직속시녀라 하더라도 서열 1, 2위가 아닌 이상 감히 전주전의 근처에 배속될 수는 없었고, 그저 그녀들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물러날 때까지 선배들의 수족노릇을 해야만 하는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물러나게 되면 바로 그 자리를 밑의 시녀가 꿰어차게 되므로 인내의 생활을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빛을 보게되기 때문에 서열이 낮은 시녀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는 셈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잠시 이야기가 빗나간 듯 싶은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동천은 그녀가 사부의 직속시녀라기에 초향과 매향만을 생각하다가 잠시 위의 내용을 기억해낸 것이다.
“보영? 음, 그래. 예전에 한번 본적이 있는 것 같아. 응? 아니네? 한번이 아니라 이 몸을 위한 연회 때 잠깐 왔었고, 다른 한번은 길 안내를 맡다가 엉덩이를 맞았던 아이지?”
보영은 그걸 다 기억해주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때 두어 번 뵈었을 뿐인데 아직까지 기억해주시고 계시다니. 소녀는 실로…….”
누가 들으면 사모하는 여인이 심중을 고백하는 줄 착각할만한 상황이자 동천은 알아서 잘라 들어갔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왜 왔어? 사부님께서 부르셔?”
퍼득 정신을 차린 보영은 머리를 조아리며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예, 그동안 바쁘신 관계로 소전주님의 부상을 아시고도 몇 번 들르지 못해 마음이 아프시다며 하실 말씀도 있고 해서 반 시진 후에 뵙기를 청하셨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몇 번 들르지 못했다고는 하나, 다친 그의 소식을 듣고 냉큼 달려와 손수 치료를 해주었을 때의 감동이 새삼 떠오르자 동천은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꺼운 마음이 된 그는 보영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
“수고했다. 잘 알았다고 말씀드리거라.”
보영은 외간남자가 자신의 어깨를 건드려서인지 얼굴을 붉혔다.
“그,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소녀는 이만.”
동천은 총총걸음으로 뛰어나가는 보영을 잠깐 바라보다가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하여 발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전면에는 약간 창백하게 질려있는 소연이 서 있었다.
“얼레? 너 왜 그러고 서 있냐?”
소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전, 다 봤어요!”
동천은 쟤가 뭘 잘못 처먹었나 싶어 눈살을 찌푸렸다.
“뭐? 보긴 뭘 봐?”
소연은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던지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 아까 시녀하고 이상한 과, 관계 맞죠? 그렇죠? 흑흑, 처음부터 다 봤어요! 정신 차리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흑! 사 아가씨께 이를 거예요! 흑흑흑!”
동천은 자기 할말만 다 하고 냅다 뛰쳐나가는 소연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던지 일순간 그녀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사정화에게 고해바치러 간다던 말이 떠오르자 깜짝 놀라 뒤쫓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야! 야 이년아! 내가 뭘 어쨌다고 일러바쳐! 너 거기 안 서?”
“흑흑, 몰라요! 쫓아오지 마세요!”
“이런 씨! 어떻게 안 쫓아가!”
그들 둘의 쫓고 쫓기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그걸 본 하인들은 사랑싸움도 참 가지가지라며 속으로 혀를 찼다.
어쨌든 겨우 소연을 잡아채고 크게 혼을 낸 동천은 무리하게 움직였더니 힘이 빠지는지라 잠시 쉬고 나서야 사부에게 찾아갈 수 있었다.
“오오, 어서 오너라 제자야!”
동천은 재빨리 인사를 올렸다.
“사부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음, 이 몸이야 언제나 강녕하고 계시지. 헌데 얼굴을 보아하니 거의 다 나은 듯 구나. 실로 대단한 회복력이 아닐 수 없어. 응? 혹시, 이 몸 몰래 영약이나 그런 거 먹었냐?”
동천은 그 무슨 말씀이시냐는 듯 양손을 크게 저었다.
“실로 당치도 않습니다. 이 제자는 그저 사부님의 따듯한 관심과 배려 속에서 한달 만에 나을 것이 보름으로 단축되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역천은 제자가 기특하게도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자 이런 맛에 제자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기분이 좋아졌다.
“푸헤헤!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래도 듣기에는 좋구나!”
동천은 사부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는지 아닌지를 자세히 살피다가 아직은 덜 흥분하셨자 안심하고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인 일로 부르셨습니까? 요새 본교의 중대사로 바쁘실 텐데.”
그제야 표정을 가다듬은 역천은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에 제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음, 다름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너를 부른 것이다.”
동천은 눈을 크게 떴다.
“예? 그것 때문에요?”
“그렇단다. 자세한 내용은 네 사형이 도착하면 같이 거론할 것이니 그 사이에 간단하게 과자나 먹고 있거라.”
동천은 이사형이 온다는 소리에 절로 눈썹을 찌푸렸다.
그에게 있어서 사형이란 덧없는 것이었고 불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 병신도 온다고? 헌데, 무슨 깡으로 이 몸보다 늦게 오는 거지? 병신이면 병신답게 좀더 서둘렀어야 하는 거 아냐? 하여튼 빠져 가지고는……. 에잉!’
대놓고 그대로 읊었다간 맞아 죽기에 딱 좋은 말만 골라서 생각하던 동천은 그러면서도 과자를 집어들어 우물우물 씹어먹었다.
그는 이후로 그저 농담 따먹기 식으로 사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침내 사형이 의자를 끌고 들어오자 자리를 약간 옮겨 빈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역천은 역시 사형을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제자라며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고, 동천은 당연한 칭찬을 하신다고 생각하며 본론으로 들어가기를 바랬다.
“사부님, 이제 사형도 오셨으니 저희들을 부르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역천도 미룰 이유가 없었으므로 흔쾌히 동천의 궁금증을 받아들였다.
“헤헤, 네가 참으로 궁금했었나 보구나. 그래, 이제 이 사부가 너희들을 부른 이유를 이야기해주마. 어쩌면 네 사형인 영수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떠냐. 너는 이 사부가 너희들을 부른 이유를 알고 있느냐?”
동천은 사부가 사형을 바라보며 묻자 과연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철수라는 이름이 떠올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와중에 공영수는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 아무래도 이 모자란 제자를 너무 높게 보신 듯 합니다.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더라도 심중에 있다면 대답해드려야 기만하지 않는 것이기에 미욱하나마 한가지 생각해두었던 것을 말해보겠습니다. 혹시, 사부님께서는 인원차출의 일로 저희를 부르신 것은 아닌지요.”
정답이었던지 역천이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바로 그렇다. 저번의 암흑대전회의 때 전 기관의 수뇌들은 의무적으로 3할의 인력을 추려서 보고해야만 한다는 명령을 하달 받았느니라. 그리고 내일이 그 기한 일이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너희들을 부른 것이고.”
동천은 그거하고 자신들하고 무슨 관계인지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확실하지 않아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
역천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답은 공영수가 했다.
“사제, 아마도 사부님께서는 본전의 인력을 3할 가량 추려내시면서 우리들 중에 한 명을 통솔자로 임명하시고 싶으신 모양이네.”
바로 그 말이자 역천이 크게 웃었다.
“푸헤헤! 그렇다! 역시, 이 몸이 뛰어나니 제자들 또한 뛰어나구나. 말이 3할이지 생각 없이 인력을 빼냈다가는 본전의 업무가 마비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결정은 모두 내렸는데 그들을 이끌 만한 재목을 정하느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정해진 기한의 전날까지 이렇듯 고민하지 않을 수 없구나. 알다시피 천아는 통솔력이 떨어지나 활동적이고, 영수는 통솔력이 뛰어나나 활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동천은 궁금한 것이 있자 지체 없이 물어보았다.
“아니, 그럼 사부님께서는 이곳에 남아계시는 겁니까?”
“물론이다. 왜냐하면 본교에서 유사시에 가장 필요한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사부이고, 또한 이 사부가 사천으로 간다면 중요한 환자들이 그곳으로 몰리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색에 방해가 될만한 요소는 애초에 제거해야겠기에 나는 본교에 남는 것이고.”
그런 깊은 뜻이 있자 동천은 수긍하는 동시에 다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