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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16화


다음날, 누가 깨워주지 않아도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난 동천은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고 목이 마르자 먼저 물을 마신 후 침대에 앉아 잠시 정신이 맑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정신이 맑아지기는커녕 지끈거리기에 여념이 없는지라 그는 은근히 신경질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아 젠장! 술은 도대체 어떤 새끼가 만든 거야? 마시고 이렇게 지끈거리게 할거면 아예 만들지나 말던지!”

좋다고 받아 마실 때엔 정말이지 누가 만들었는지 술이란 참으로 오묘하다며 극찬했던 그였으면서 상황이 바뀌자 어제의 극찬을 바로 바꿔버리는 동천이었다.

그때 소연이 조심스레 들어오며 동천의 안색을 살폈다.

“주인님, 속 괜찮으세요? 어제 아주 인사불성이 되어서 오셨던데.”

그런 기억이 전혀 없었던 동천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 몸이?”

그 모습이 재미있었던 듯 소연은 웃으며 농담까지 했다.

“네, 그 몸이요. 호호호!”

하나도 안 웃겼던 동천은 때릴 까도 하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웃는 애 건드려봤자 골 아픈 일이 하나 더 가중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에 그는 소연이 들고 온 그릇을 가리켰다.

“그건 뭐냐?”

그제야 생각이 미친 듯 소연은 급히 그릇을 주인님에게 내밀었다.

“꿀하고 삼(蔘)을 잘라 끓인 물이에요. 숙취에 좋다고 해서 가져왔으니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쭈욱 드세요.”

몸에 좋다는데 동천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릇을 받아들고 혀끝으로 살짝 맛을 본 동천은 ‘뜨겁네…….’ 라고, 저 혼자 중얼거리다가 한참을 찔끔찔끔 넘겨 마셨다.

“크아! 잘 먹었다!”

누가 보면 단번에 들이킨 사람처럼 행동한 그는 운기조식을 위해 잠시 나가라고 명을 내린 뒤 그것을 끝마치고 아침을 먹었다.

소연은 평소 습관대로 식탁 아래의 호연화에게 고기를 찢어주며 음식을 먹었는데 문득 어제 일이 생각나 씹던 음식을 모두 삼킨 후 물어보았다.

“그런데요, 어제 돌아오시면서 방 마부 아저씨는 왜 때리신 거예요?”

그 역시 기억에 없었던 동천은 무슨 소리인가 했다.

“때려? 이 몸이 왜 말 잘 듣는 걔를 때리냐?”

소연은 아무래도 술에 만취한 상태이셔서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시는구나 생각했다.

“정말 기억이 안 나시는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방 마부 아저씨가 암한문 앞까지 와서는, 쓰러지시며 하얗게 불태웠대나 뭐라나 그러시면서 혼절을 하셨대요.”

동천은 별 웃긴 놈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 태워?”

소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저도 모르죠. 그냥 하얗게 불태웠다고만 했대요.”

당시의 상황이 기억날 리 없었던 동천은 운기조식을 취해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려서 그따위 중요하지도 않은 생각은 그만 두기로 했다.

이어 그는 예전에 배고팠던 시절의 자신을 보는 듯한 화정이를 바라보며 작작 좀 먹으라고 핀잔을 준 뒤 그녀 못지 않게 음식을 먹어댔다.

“꺼윽! 입맛이 별로 없긴 했어도 그럭저럭 잘 먹었네.”

화정이는 그런 동천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아무래도 트림을 따라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별 지저분한 것까지 다 따라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모자라긴 모자라다고 해야할 듯 싶다.

“그나저나 떠나는 것은 언제인지 안 물어봤네?”

사천성으로 떠나는 문제를 상기시킨 동천이 중얼거리자 소연이 물어보았다.

“뭐가요? 누가 떠나요?”

동천은 힐끗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몸이 얘기 안 했던가? 이번에 천마동의 소재지를 찾으려고 본교의 3할이 움직이게 되는데 그 중에서 본전의 대표로 이 몸이 선정되었다는 것을.”

“어머? 정말이세요? 와아, 주인님 대단하시다.”

으쓱해진 동천은 씨익 웃었다.

“후후, 기본일 뿐이다.”

아니라며 재차 축하해주던 소연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닫고는 조심스러운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저기 주인님.”

“응? 왜?”

“에에, 그러면 전 어떻게 되요?”

동천은 질문의 요지가 확실하지 않아 반문했다.

“뭘?”

소연은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요. 이번에도 여기에 남아있어야 해요? 전 주인님을 따라가 수발을 들고 싶은데…….”

그제야 무슨 말인지 깨닫게 된 동천은 이미 화정이를 데리고 나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방해요소가 되는 소연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그녀를 데리고 간다면 화정이와 이것도(?) 할 수 없고 저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번에 자원한 주 목적이 정화년 눈을 피해 그 놀이를 하면서 지내려고 했던 것인데 너를 데려갈 수야 없지 않겠느냐.’

그도 사람인지라 자신을 생각해주는 소연을 생각하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미안함이 욕망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그건 안 돼. 이번 일은 위험하고 극비에 속하는 일이어서 가능한 인원을 추려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그 대신, 다음에 나갈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행을 허락해줄 테니까 집에서 조용히 가사실력을 쌓던지 무공수련이나 열심히 하고있어. 알았지?”

순간 소연은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암흑대전회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주인님의 불타는 욕망을 알지도 못한 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후우, 어쩔 수 없죠 뭐. 알았어요.”

무사히 위기를 넘긴 동천은 내심 한숨을 돌렸다.

“착하구나, 우리 소연이. 하하, 그럼 출발은 언제인지 사부님께 여쭈어보러 갈까나?”

괜히 과장된 행동을 보이며 밖으로 나간 그는 방삼이 어제 혼절한 뒤로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는 중이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새로 급조한 마부를 앞세워 역천에게 갔다.

다행이 아침 일찍 이어서 역천은 거처에 있었고 동천은 사부에게서 출발은 빠를수록 좋아 아마도 이틀 뒤가 될 것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동천으로서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기분이 좋아져서 암한문으로 돌아왔다.

“주인님, 방금 전에 수련이 못 보셨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온 동천은 갑자기 수련이 거론되자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뭐? 걔 또 왔었어? 참나, 여긴 또 왜 왔다디?”

소연은 주인님이 기분 나빠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걔도 모르겠다고 했는데요, 중요한 것은 사 아가씨께서 주인님을 부르셔서 심부름 차 왔었대요.”

지레 놀란 동천은 나직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왜, 왜?”

소연은 자신이 분명 말했는데도 주인님께서 이유를 묻자 아가씨를 무서워하기는 확실히 무서워하는구나 생각했다.

“왜라니요. 그건 심부름 온 수련도 모른다고 방금 말씀 드렸잖아요.”

그제야 동천이 정신을 차렸다.

“응? 그, 그랬나?”

“네. 여하튼 빨리 가보세요. 저번 일도 있고 하니까 늦지 않게 가셔야 아가씨께서 덜 못마땅하게 생각하실지 모르잖아요.”

솔직히 소연은 그 당시에 동천이 왜 죽도록 맞았는지 몰랐다.

동천에게 물어봐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화정이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아가씨께서 주인님을 훈계하시는 와중에 주인님께서 말실수를 하여 격분한 나머지 그렇게 때린 것이라고 예측할 따름이었다.

‘이런 젠장! 그렇게 때려놓고도 부족해서 다 나았다 싶으니까 또 불러서 때리려는 거 아냐?’

충분히 그럴만한 년이라고 생각한 동천은 안절부절 못하고 방안을 왔다갔다하다가 결국 소연에게 떠밀려 사정화를 찾아가게 되었다.

이번에 그녀는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찾아와 굽실거리는 동천을 힐끔 보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앉아.”

동천은 행여 늦게 앉았다는 것을 핑계로 자신을 때릴까봐 신법을 발휘해 재빠르게 마주 앉았다.

사정화는 내려놓은 찻잔을 들다가 신법을 발휘한 동천을 보고 움찔했는데 그 이유는 저번에 자신을 어떻게 하려고 다가왔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동천은 트집을 잡힐까봐 전전긍긍했고 사정화는 그때 받은 충격의 잔재 때문에 놀랐던 것이었으니, 실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낸 셈이라고나 할까?

“헤헤, 부르셨다고요?”

사정화는 아직도 그때의 여운이 남아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공연히 불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웃지마.”

“예? 아, 예에…….”

그녀의 목소리가 어찌나 서릿발같던지 동천은 감히 허튼 수작을 부릴 수 없었다.

그것을 본 사정화는 자신이 너무 예민했음을 책망하고 평상시로 돌아가 동천에게 말했다.

“소식 들었어. 이번 수색작업에 약왕전의 통솔을 맡았다고?”

동천은 별 차이가 안 났지만 어쩐지 누그러진 목소리처럼 들려서인지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직 턱없이 모자라지만 사부님께서 특별히 경험을 쌓으라고 배려해주신 듯 합니다. 하지만 실제 의술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는 부전주께서 도맡게 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동천은 이번에 자신이 약왕전의 통솔을 맡게되자 못 미더워서 그녀가 자신을 부른 줄 착각했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던 사정화는 수련을 시켜 동천에게 물이라도 갖다 주라고 명한 뒤 입을 열었다.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그런 의미에서 나도 이번에 지원하기로 했어.”

“푸웁―!”

동천은 입으로 들어가던 물이 그대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도저히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물세례를 당하게 된 사정화는 보통 여자아이들처럼 꺅꺅거리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얼굴과 옷에 적셔진 물을 닦아낼 생각조차 안 했는데 동천은 되려 그것이 더 무서웠다.

“꺄악!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아가씨, 괜찮아요? 아아, 더러운 동천의 입에서 뱉어진 물을 뒤집어쓰시다니……. 이를 어째!”

사정화가 보여줬어야 할 호들갑을 대신 보여준 수련은 재빨리 아가씨의 이곳저곳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허나, 바로 그것을 제지한 사정화는 스스로 젖은 부위를 다 닦아냈고 그것을 끝낸 뒤에 ‘철썩!’ 소리가 날 정도로 동천의 뺨을 후려쳤다.

“너. 앞으로 뱉을 거면 물 같은 거 마시지마.”

머리가 울릴 정도의 충격을 받은 동천은 그나마 뺨 한 대로 끝난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말했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아가씨 앞에서 절대로 물 종류도 마시지 않을 것이며, 입안에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진짜예요!”

사정화는 대답대신 고요한 눈으로 동천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르자 꿀꺽 마른침을 삼킨 동천은 답답함에 속이 다 탈 지경이었다.

‘아 답답해! 뭐라고 말 좀 해봐, 이년아! 누구 숨막혀서 죽는 꼴 보고 싶어?’

그런 생각이 들자, 저년은 충분히 자신의 숨막혀 죽는 꼴을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려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평정을 되찾고자 노력했다.

그때 사정화가 말문을 열었다.

“아까 끊겨진 부분에 이어서 계속 말할게. 그래서 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행동할 거야.”

동천은 참으로 잘하는 짓이라며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너도 나하고 같이 다녀봐야 못마땅해서 혈압이 오르고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을 거야. 그럴 바에야 따로 행동하겠다는 그 선택이 백 번 천 번 옳은 일이라구.’

괜히 쫄았다고 생각한 동천은 밝게 웃었다.

“하하, 참으로 용기 있는 결단이십니다. 저는 무조건 아가씨 편이니까 누가 뭐라 해도 절대 흔들리지 마십시오.”

사정화는 그런 동천의 생각을 읽었는지 비웃는 듯 한쪽 입술을 미세하게 말아 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너도 진정한 경험을 쌓고자 한다면 호위 없이 혼자 행동하도록 해. 바로 그 말을 하려고 오늘 부른 거야.”

하마터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한 동천은 ‘헉!’ 하고 헛바람을 들이킨 뒤 서둘러 말했다.

“예에? 하, 하지만 화정이는 보통 호위가 아니라 저와 한 몸 같은 존재인데 그럴 순 없습니다!”

사정화는 동천의 저항이 완강하자 눈살을 찌푸렸는데, 그것은 실로 그 어떤 협박보다도 무서운 것이어서 동천은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천. 난 두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해. 넌 분명 경험을 쌓고자 이번 일을 지원했다고 말했고, 그러자면 스스로 세상의 벽에 부딪혀보는 것이 제일이야. 그러나 화정이가 곁에 있다면 너는 결코 성장할 수 없어. 왜냐하면 그 어떤 위험이라도 화정이만 있으면 해결된다는 안이함이 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야. 틀렸어?”

동천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구구절절 다 옳은 소리만 하자 감히 섣불리 반박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속으로 독한 년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말에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닙니다. 에휴, 외부로 나갈 때마다 꼭 한 명은 제 곁에서 호위를 맡아주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소 생소하기는 하지만 아가씨의 말씀이 다 맞는 듯하여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번의 대답만큼은 만족스러웠던지 사정화가 미소라고 할 수 있을만한 것을 보여주었다.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숨이 막힐 듯한 충격을 받게 된 동천은 쟤가 왜 소연이 아니고 소연이 왜 쟤가 아닌 것인지, 그것이 다 억울해질 정도였다.

‘젠장, 젠장! 소연이 저렇게 아름다웠으면 매일 사랑해주고 예뻐해 줬을 텐데!’

그렇다고 소연이 아름답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녀 정도면 보기 드문 순수함과 내재된 아름다움이 풍부한 빼어난 미녀에 속했다.

하지만 하늘 위에 하늘이라는 말이 존재하듯 사정화가 지닌 매력에는 도저히 소연이 따라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동천. 입 닫아.”

깜짝 놀란 동천은 자신도 모르게 벌렸던 입을 다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언제부터인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는 버릇이 생겼는데 잘 안 고쳐지네요.”

“놀고있네.”

수련의 중얼거림에 동천이 화를 냈다.

“윽! 너, 말 함부로 할래?”

사정화는 그들 사이에서 벌어질 언쟁을 바로 차단했다.

“조용. 잡담은 나중에 따로 하도록.”

누구 명이라고 감히 그들이 거역하겠는가.

사정화는 그들이 알겠다고 대답하자 다시 동천에게 말을 건넸다.

“네가 그렇다고 말했으니 믿겠어. 그리고 도연도 이번에는 널 뒤따르지 않을 거야. 내가 어제 따로 불러서 알아듣게 잘 말했어. 그런 실력으로는 해가될 따름이니 그동안 수련이나 열심히 하라고 말야.”

동천은 상당히 치밀한 사정화의 발빠른 대처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잘하셨습니다. 녀석도 느끼는 바가 클 것이니 열심히 수련하리라 여겨집니다.”

고개를 끄덕인 사정화는 동천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본 후 말했다.

“내가 너무 일방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동천은 속으로 대답했다.

‘알면서도 묻는 건 무슨 심보냐?’

그는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내심 입맛을 다셨다.

“아니에요. 다 저 잘되라고 하신 말씀인데 일방적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사정화는 말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됐어. 대신 나도 수련을 놓고 갈 거니까 너무 원망하지마.”

지금의 말은 동천의 가슴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년아! 할 줄 아는 게 수다 뿐인 계집하고, 호위로서 제격인 화정이하고 비중이 똑같냐? 어휴, 저걸 상전이라고. 어이구, 속 터져―!’

생각 같아서는 여태까지 약조한 것들을 다 번복하고만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힘이 없음에 탁자 밑의 손가락만 빠드득거리게 꼼지락거린 동천은 억지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폈다.

“하하, 전 원망할 성격도 못 되니까 염려 푹 놓으십시오.”

사정화는 특별한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네가 그렇다니 믿어줄게. 이제 가봐.”

더 있으라고 잡아도 그럴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던 동천은 옳다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예, 아가씨! 출정은 이틀 뒤일 거라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 두시면 나중에 편하실 겁니다.”

“그래, 생각해줘서 고마워.”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럼, 소신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천천히 걸어나왔다가 문밖을 벗어나자마자 나 살려라 마차로 뛰어간 그는 서둘러 떠나라고 마부를 닦달했다.

마부는 소전주가 벼랑으로 마차를 돌리라고 해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기에 재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그제야 안심이 된 동천은 앞으로 화정이나 도연도 없이 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자 심한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으으, 그년이 혼자 죽기 싫어서 나까지 죽음의 동반자로 삼으려고 작정을 한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잘 나가는 이 몸의 발목을 잡았겠냐구! 으악, 으아아악!’

미친 듯이 마차 안을 뒹굴며 바닥을 긁어댄 동천은 지칠 때까지 그 지랄을 하다가 힘이 빠져 결국은 그만두고야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 잠깐 급조된 마부는 저렇게 미친 소전주를 여태까지 잘 모신 방삼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여기는 한편, 마차 내부의 상황을 주시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개판이었지만 마차 안에서는 더욱 지랄발광을 하는구나. 도대체 어디에서 저런 종자가 태어난 것일까?’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지는지 몸을 부르르 떤 마부는 서둘러 동천을 약왕전에 데려다 준 뒤에 방삼이 쾌차하기나 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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