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28화
뜻하지 않은 횡재(?).
“그게 사실이야?”
직시한 눈으로 물어보는 사정화의 기도에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한심은 가뜩이나 움츠러든 어깨를 더욱 움츠렸다.
“예에,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요.”
동천이 귀신에 홀렸다고 떠드는 바람에 산채에 주둔한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으게 된 한심은 수백 쌍의 시선을 사방에서 받게 되자 눈을 어디에다 둬야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결정적으로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사정화가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니 어찌 주눅이 들지 않겠는가.
“평호!”
아수전의 2당주 평호는 싸늘한 아가씨의 물음에 즉각 대답했다.
“예, 아가씨!”
“현재 동천의 뒤를 추적한 수하들은 어떻게 됐지?”
“총 5명으로 구성된 추적대가 움직이고 있으며 일정한 거리가 되면 전서구를 띄워주게 되어있습니다!”
그 말인즉, 아직 소식이 당도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눈살을 찌푸린 사정화는 물었다.
“지금쯤이면 소식을 전했어야 하지 않아?”
“그, 그게…….”
난감해진 평호가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길이 열리며 깡마른 사내가 급히 당도했다. 그 사내는 사정화의 앞에서 넙죽 엎드린 뒤 보고를 올렸다.
“혼천부 집법당의 사추(邪推)라고 합니다! 현재 약소전주님께서는 향원산 서쪽으로 질주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향원산의 지세(地勢)를 떠올린 사정화는 서쪽의 지형을 모두 숙지한 뒤 입을 열었다.
“그 근처라면 석추양인가 하는 자의 소굴로 알려진 계곡이 있지 않느냐.”
“아직 그곳으로 가시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5할 이상은 그쪽으로 가실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미미하게 아미를 찌푸린 사정화는 시선을 돌려 평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평호는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즉시, 인원을 추려 약소전주님의 안위를 지켜드리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주도권을 잡고 인원을 추스르게된 평호는 사정화에게 자신의 능력을 각인시키고자 했던지 일사천리로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고 각 기관의 전담자들을 포함시켰다. 빠르게 준비작업을 마친 그는 사정화에게 보고를 올렸다.
“아수전은 제 2당주인 소신을 비롯하여 10인. 혈각은 철혈단주(鐵血團主) 황절(黃浙)님 외 19인. 살각은…….”
“자세한 보고는 필요 없어.”
“예? 옛! 총 37명의 인원이 구성된 관계로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좋아. 차질이 없도록 처리해. 그리고 너희는 석추양과 대적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도 잊지 말고.”
“존명,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마치고 썰물 빠지듯 산채를 벗어나는 교도(敎徒)들을 바라보던 사정화는 아직도 멀거니 서 있는 한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당시에 네게 무공을 가르쳐주고 있었다고?”
생각 없이 있다가 정신을 차린 한심은 있는 그대로 말해주었다.
“예, 아가씨. 그게 그러니까 절정금강신공이라는 외공이었는데 그 외공의 뛰어남과 조화로움을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갑자기 말이 없어지시더니 소신의 주위를 귀신처럼 맴돌다가 휙! 사라지셨습니다요. 아아, 이 모자란 놈을 염려하시어 무공을 전수시켜주시고자 솔선수범을 하셨던 것인데 아무래도 그 구결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휴우! 제가 안 익히길 천만다행이지, 하마터면 소전주님 꼴이 될 뻔했지 뭡니까요?”
“…….”
사정화는 한심이 역천에게 얻어맞고 사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자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말끔히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그녀는 대신에 그때 동천이 불러주었던 구결들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한심은 자랑스러워하는 얼굴로 모르겠다고 말해서 사정화의 살기를 받았지만 다행이 손찌검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그녀도 한심이 바보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상대하기도 싫어서 그를 무시한 사정화는 잠시 동천에게 일어났던 상황을 유추해보았다.
‘아무래도 구결을 알려주다가 정작 자신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보이는데 그 경지를 시전 할 정도로 녀석의 정신력이 강했던가?’
보통은 깨달음의 순간이 흔들릴까봐 제자리에 앉아 명상을 고수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외부적인 충격을 받으면 정신이 흔들려서 도로아미타불이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물론, 순간적인 깨달음이 끝난 뒤 그 능력을 시험해보고자 무공을 시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동천의 경우는 산채를 벗어나는 순간에도 깨달음이 진행중인 상황이었다. 그것은 곧 정신력이 뛰어남을 반증하는 것이니 사정화로서도 쉬이 믿기 어려운 부분인 것이다.
“사추라고 했지?”
동천의 소식을 전해준 집법당원 사추는 긴장된 표정을 짓고 신속하게 대답했다.
“예, 아가씨!”
사정화는 말했다.
“동천이 어떠한 상태로 경공을 시전 했는지 알 수 있을까?”
사추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송구하오나 추적대도 약소전주님의 흔적만을 쫓아 겨우 놓치지 않고 있는 상황인지라 그것까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동천의 주특기가 신법인 만큼, 깨달음으로 인해 예전보다 실력이 늘었을 테니 흔적만을 쫓는 상황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정화는 역천의 제자라는 감투가 때로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어쩐지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녀는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초철산!”
그녀의 외침에 근처에 시립해있던 아수전의 1당주 초철산이 바로 튀어나왔다.
“하명하시옵소서!”
“앞선 선발대로는 불안한 듯 싶구나. 추가적인 모집 후 내가 직접 나서겠다.”
눈을 크게 뜬 초철산은 고개를 쳐들었다.
“예? 하지만 앞으로 본교를 이끌어나가시게 될 아가씨께서 이런 일에 나서신다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큽니다. 차라리 소신이 추가 지원대를 이끌고 나가 선발대와 보조를 맞추겠사오니 부디 헤아려주십시오!”
사정화는 초철산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찌 이런 위험도 겪지 않고 높은 자리에서 수하들을 이끌 수 있겠느냐! 항명(抗命)은 용납하지 않겠으니 어서 준비를 갖춰라!”
그녀에게서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흘러나오자 초철산은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다.
“존명!”
얼마나 달렸는지 동천은 몰랐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달리고 또 달렸을 뿐이었다.
머리는 상쾌했고 가슴은 따듯했다.
흘러들어 오는 자연의 기운은 그의 몸을 더없이 가볍게 해주었다.
마치 세상의 한가운데에 놓여진 존재처럼 모든 것이 그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그가 한 발 움직이면 세상의 중심이 한 발 움직였고, 그가 한 발 물러서면 세상의 중심 또한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만일 그런 그가 제자리에서 멈춘다면?
“…….”
모든 사고(思考)가
‘멈춘다.’
에 맞춰지는 순간 동천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어라?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좀더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자 대충 자신이 있는 곳은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 혹시 계곡의 내부인가?”
그의 양쪽으로는 높이를 측정하기 어려운 절벽이 솟아나 있었고 그 절벽들은 동천의 앞뒤로 계속 이어져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구불구불한 계곡 사이로 희미하게 트여져 있는 길이 보였다. 아마도 계곡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린 듯 싶었다.
“훗, 이것들이 이 몸의 길 찾기 실력을 의심하는 모양이로군.”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움직일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에 앞서 신법을 사용해 몸을 움직여 본 동천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볍고 빠른 몸놀림을 확인하곤 입이 귀에 걸리는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크윽! 타향살이 5개월만에 무(武)의 끝에 도달했으니 어찌 이렇게 기쁘지 않겠는가! 내 오늘의 기연을 발판 삼아 꼭 정화년의 싸가지 없는 버릇을 고쳐주고야 말리라! 으하하하! 으히히히히!”
사탕으로 비유하자면 혀로 한 번 핥아 본걸 가지고 무의 끝에 도달했으니 어쩌느니 주절거린 동천은 자신의 연설이 마음에 들었던지 한참을 저 혼자 킬킬거리다가 갑자기 진지해진 얼굴로 돌아와 전방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나 그의 안색은 바로 풀렸다.
“뭐야, 족제비였잖아? 저걸 확! 밟아 쥑일 까보다.”
갑자기 감지된 생명체 때문에 긴장했던 그는 별것도 아니자 괜히 죄 없는 미물에게 뭐라 했다. 족제비도 낯선 존재를 꺼렸는지 바로 절벽 틈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동천은 별게 다 궁금해져서 족제비가 들어간 틈 사이를 살펴보다가 별것 없자 이내 손을 털고 숙였던 허리를 폈다.
“까불고 있어∼.”
산채에서 난리가 난 줄도 모르고 허튼 짓이나 하고 있던 동천은 어서 돌아가 한심에게 존재하지도 않는 절정금강신공을 전수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절정금강신공을 핑계로 외공의 속성을 도와주겠다며 흠씬 두들겨 패려고 했던 것인데 뜻하지 않게 기연을 얻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돌아가긴 가는 건데…….”
어쩐지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계곡의 안쪽에서 그를 잡아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기 좋게 한쪽 눈썹을 찡그린 그는 기연도 얻고 해서 늘어난 실력에 겁을 상실했는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계곡의 바깥이 아닌 안쪽으로 신형을 옮기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이 몸이 가시는 길에 장애물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있다고 해도 지들이 어쩌겠어? 다름 아닌 이 몸이 가시는 길인데? 큭큭큭!”
그는 유람하듯 신형을 띄워 앞으로 나아갔다. 발이 지면에 닿은 듯 했지만 신기하게도 이렇다할 소리는 없었다. 어쩔 때는 빠르게. 어쩔 때는 느리게……. 빠름과 느림을 반복하며 점차 좁아지는 계곡 내부로 막힘 없이 스며들어가던 동천은 계곡이 끝나는 동시에 확 뚫린 곡내(谷內)의 전경이 눈 안 가득히 들어오자 신법을 사용하는 것도 잊고는 긴 휘파람을 소리 죽여 불었다.
“휘유∼. 대단한걸? 좌측엔 폭포. 우측엔 수림(樹林). 정면엔……, 엥? 저거 집인가?”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와 아담한 듯 보이면서도 울창한 수림의 조화에 감탄하던 동천은 무심코 곡의 정면을 바라보다가 약간 솟아오른 둔턱의 끝에서 보일 듯 말 듯한 목조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수풀이 건물을 호위하듯 둘러쌓고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쳐갈 정도였다.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동천은 문득 살인마왕 석추양에게 생각이 미쳤다.
“헉? 혹시 여기가 지랄마왕 석추양이 머문다던 그 계곡인 거 아냐?”
소름이 쭈뼛 돋아난 동천은 어서 되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들어왔던 인간들치고는 무사히 빠져나와 소식을 전한 인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산채에서야 느긋하게 사라진 혼천부원들을 병신이라고 욕할 수 있었지만 막상 자신이 그들과 같은 현장에 놓이게 되자 불안해진 것이다.
“이 몸이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돌아가서 유일한 생환자가 되어 축하 꽃다발을 받으며……, 가만.”
신형을 돌리던 동천이 갑자기 주춤했다. 이것은 어쩌면 공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만일 저곳에 몰래 들어가서 사라진 혼천부원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모두들 이 몸을 찬양하지 않을까? 으흐흐, 아무래도 그렇겠지? 정말 그렇겠지? 진짜로 그렇겠지?”
그동안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무언가 자극적인 상황을 바랬던 동천은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진정한 위험을 겪어보지 못한 그는
‘큰일이 벌어져도 설마하니 내가 죽겠어?’
라는 안이함이 지배적이자 쉽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좋았어! 이 몸이 아니면 그 누가 공을 세우리! 가자! 아자!”
기세 좋게 자신감을 고양(高揚)시킨 동천은 먼저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린 후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의 감각에 잡히는 것이 없자 별것 아닌 걸로 더욱 기세가 오른 그는 자연지물들을 이용해서 요리 숨고 조리 숨으며 목조건물에 점점 다가갔다.
‘음, 역시 이 몸의 실력이 뛰어나다보니 지랄마왕도 기척을 감지해내지 못 하는구나. 으하하!’
목조건물까지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건만 동천은 다 도착한 사람처럼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동천을 너무 한심하게 볼 것만은 아닌 것이 방심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지만 이렇듯 자신 있어하는 모습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사삭! 스슥!
“응?”
긴장이 풀려 과대망상에 빠져있던 동천은 갑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사방에서 무엇인가가 몰려드는 것을 감지하곤 눈을 번뜩였다. 아울러 그는 언제든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자세를 살짝 낮추었다.
‘사람 같지는 않은데 뭐가 이렇게 많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듯 동천 또한 빠르게 다가오는 존재들을 경계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별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숨기에 적당한 곳을 고른 당사자가 동천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음먹으면 숨을 수 있는데 작은 무리들이야 수풀 속에서 오죽하겠는가.
‘벌레? 독충? 아니면 설치류?’
빠르게 머리를 회전하는 가운데 마침내 다가오던 생물체 중 하나가 동천에게로 펄쩍 뛰어올랐다.
“우씨! 쥐새끼?”
본능적으로 손을 휘둘러 내려친 동천은 일그러진 얼굴로 쥐와 접촉한 부위에 병균이 옮지나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러나 뒤이어 사방에서 쥐 떼들이 동시에 달려들자 지금의 걱정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당장에 추가로 수십 마리들을 손으로 쳐내야했던 것이다.
팍! 파파팍!
손날을 만들어 목표물 하나 하나를 정확히 찔러댄 동천은 찌르는 힘이 너무도 과하자 쥐들의 몸통이 단숨에 뚫려버리는 감각을 손끝을 통해서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쏟아져 내리는 내장과 피 섞인 오물들의 환희(?)가 추가로 그의 시야를 어지럽히자 당장에 먹었던 아침밥이 목구멍을 헤집고 탈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웁! 우웁! 우왁? 이 새끼들이 어디를 기어들어 오고 지랄이야?”
잠시 방심한 사이에 쥐들이 다리를 타고 올라와 바지며 웃옷이며 무서운 줄을 모르고 무작정 기어올라왔다.
몸을 한번 회전하여 쥐들을 떨쳐낸 동천은 이미 핏물로 끈적거리는 손을 말아 쥐고 권(拳)으로 바꿔 쥐들을 상대했다.
“이익, 이 몸의 옥 같은 손이 썩으면 니들이 책임질 겨? 아니지? 아니면서 왜 덤비고들 지랄이야? 죽어, 죽어!”
처음에 위험한 생물이었다면 도망갈 생각이었는데 고작 쥐새끼일 뿐이어서 상대한 동천이었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결코 친근할 리 없었던 쥐들이 도통 줄어들 생각을 안 하자 물러서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자연적으로는 도저히 일어나기 힘든 현상이어서 자신의 존재가 들킨 것이라고 보는 게……, 아니 이 정도로 난리를 쳐놓고도 들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라고 보는 게 나았다.
다만 동천은 강호경험이 일천하여 설마하니 동물을 조종하는 무림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일 따름이었다.
그때 허벅지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켁? 이것들이 이제는 물기까지 하잖아?”
그냥 덤비는 것과 몸에 상해를 입히는 것의 차이는 엄연히 달랐다. 더더군다나 동천의 경우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쥐들의 상태가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마치 흥분제를 투여한 쥐처럼 입에 거품까지 물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안되겠다고 생각한 동천은 서둘러 신법을 사용해 자리를 벗어났다.
“후우, 이놈의 새끼들. 꿈에 볼까 무섭네.”
쥐 떼의 포위망에서 벗어난 동천은 진절머리를 치면서도 나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쥐들에게서 해방된 것은 잠깐이었다. 이제는 멀리에서 봐도 쥐라는 것을 알아볼 정도로 군집된 쥐들이 힘없는 수풀을 내리누르며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겁을 한 동천은 석추양에게 들키고 뭐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쥐들도 어쩔 수 없는 폭포에 생각이 미친 동천은 재빨리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귀영신법을 펼치자 그의 몸은 쏜살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이놈의 잡것들! 폭포에 가서 손만 씻기만 해봐라! 개미 밟듯 발로 짓밟고, 염통을 터트리듯 짓이겨 터트리고, 돼지 오줌보 걷어차듯 하늘로 날려 보낸 뒤에 제갈량이 49인의 머리를 만두로 빚어 풍랑(風浪)을 잠재웠듯 마지막에 딱 49마리만 목을 따서 폭포에 흘려주마! 킬킬킬!”
이야기는 난잡했지만 결론은 발만 쓴다는 소리였다. 까놓고 말해서 손으로 죽여도 빈틈이 생겼는데 발로 죽인다고 해결이 될까 만은 비상시에는 폭포로 뛰어들면 그만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천은 자신만만했다.
잠시 후 쥐 떼보다 한참이나 앞서 폭포에 도착한 그는 반경 20여장 넓이로 찰랑거리는 물가에 다가가 서둘러 손을 담갔다.
“어, 시원하다. 시원한 건 시원한 거고. 으득, 본격적으로 수공(手功)을 사용하면 한끼 식사감도 안 되는 것들이 감히 이 몸의 행보에 찬물을 끼얹어? 이 몸의 이름을 걸고 장담하건대! 니들 오늘 다 죽었어! 뭐 몇 놈 살면 사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