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6화
‘어? 무공 수련에 웬 곡괭이와 삽이야?’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기에 동천은 다급하게 물어봤다.
“아니? 사부님. 저게 뭐예요?”
동천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안 하던 역천은 자신의 발로 가로 방향으로 한 장 반 정도 줄을 긋더니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별거 아니다. 저기… 끝쪽에 여기 바위와 똑같은 바위가 보이지?”
사부의 말에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바위를 쳐다본 동천은 다시 끝쪽 담벼락의 구석탱이에 박혀있는 것을 보았다. 왠지 모를 예감을 느끼며 동천은 불안한 눈초리로 역천을 바라봤다.
“그… 런데요?”
“하하하! 그래, 그래서 네가 이 곡괭이로 우선 저기까지 한 방향으로 네 무릎 깊이까지 땅을 판 다음에 바로 옆을 기준으로 다시 파면서 돌아오면 왕복 일 회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반복해서 이 사부가 줄을 그은 너비만큼 땅을 다 파면 기초적인 연무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사부의 웃음 띤 대답에 동천도 마주 웃었다. 좀 의미가 다른 웃음이었다.
“하. 하.. 하…. 그런데, 꼭 해야 하나요?”
역천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럼. 고럼.. 네가 무공을 배울 장소는 네가 만들어야 하는 게 배우는 자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흐흐흐.. 그리고, 네가 허리에 찬 돌(운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거 계속 차고 있어라.”
“예에? 그건 말이 다르잖아요! 제가 이거 차고 있는다고 얼마나 불편했었는데요! 그리고 이거 계속 차고 있으면 내공을 못쓴다구요.”
“그래! 이 사부의 말이 그 말이다. 네가 만약에 내공을 쓴다면 기초 체력 단련이 별 효험을 못 거두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 차고 있으라는 얘기다.”
다시 변명을 해보려던 동천은 사부가 안색을 굳히자 ‘싫어요.’라는 말을 쏙! 집어넣었다. 할 수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의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죠. 뭐…”
제자의 말에 역천은 웃으면서 뒤에 시립해있는 도연에게 말했다.
“흐흐흐.. 그래. 도연아..”
도연은 반보 앞으로 나섰다.
“예. 전주님.”
“잘 지켜봐라.”
“예.”
도연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절도 있게 대답하자 역천은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천은 다시 동천을 쳐다보았다.
“그래.. 동천아. 이제 시작하자. 먼저 곡괭이다.”
동천은 굳이 싫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예….”
바닥에 있는 곡괭이를 집어든 동천은 곡괭이를 어깨에 턱.. 걸쳐놓고,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위로 들어 올려 있는 힘껏 내리쳤다.
퍽…!
한 번 내리친 후 역천을 쳐다보자 역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라는 무언의 표시인 것이다.
퍽.. 퍽…!
‘제기랄.. 이게 도대체 무슨 무공 수련이야? 나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될 것 같구만…’
내심 불평을 하던 동천은 기초 체력을 바탕으로 곡괭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사부가 보고 있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괭이질을 하던 동천은 절반쯤 파가자 팔이 저리고 숨이 가빠와서 이마를 훔치며 잠시 멈춰 섰다.
“헉헉.. 아이고 힘들어…”
동천이 움직임을 멈추자 뒤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왔다.
“제자야! 쉴려면 적어도 한쪽 끝까지 다 파고 쉬어라. 그전에는 허락할 수 없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앞에서 인상을 찡그리던 동천은 뒤를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사부님..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역천은 보통 때와는 달리,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안돼!”
‘에이.. 씨발..’
어쩌겠는가? 사부의 명령인데.. 동천은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역천은 자세히 보고 있다가 땅의 깊이가 일정하지 않다면, 지적을 해서 다시 파라고 명령했다. 괭이질이 갈수록 느려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동천의 숨결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헉헉.. 주.. 죽겠다….”
한쪽으로 다 판 동천은 곡괭이를 내팽개치고 그 자리에서 벌렁! 누워버렸다. 그런 동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역천은 뒤에 서 있는 도연에게 말했다.
“잘 지켜봤느냐?”
“예.”
“그래.. 나는 일이 있어서 가야 하니까, 이제부터 너는 내가 한 그대로 동천을 지적해주면 된다. 할 수 있겠느냐?”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좋다. 내가 동천에게도 말하고 갈 테니까 너에게 뭐라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끝으로 동천에게 다가가서 상황을 설명해준 역천은 동천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자 잘해보라고 말해준 뒤에 암약전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사부가 돌아가자 동천은 신이 나서 바닥을 굴렀다.
“아이고.. 살았다.”
그렇게 동천이 빈둥거리자 도연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걸어와서 동천 앞에 섰다.
“주인님.. 오늘 안에 적어도 두 번은 왕복해야 한다고 전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도연이 차분하게 말해줬지만 동천에게는 개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동천은 바닥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는 코딱지를 파기 시작했다.
“이 새끼야.. 천천히 해도 되니까 거기서 사부님이 오시나 망이나 보고 있어…”
그러나 도연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안됩니다.”
이에 동천은 어이없어하면서 천천히 일어섰다. 일어선 동천은 도연의 가슴께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야. 좋은 말로 할 때, 가서 망이나 봐라. 알았냐?”
도연은 완강(頑强)했다.
“절대로 안됩니다.”
“어어? 너 맞을래?”
동천이 주먹을 들이대도 도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맞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동천의 주먹이 도연의 복부를 강타했다.
퍽!
“욱!”
생각 외로(사실은 생각 이상으로.) 강한 충격에 눈을 부릅뜬 도연은 다음 주먹이 자신의 면전으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퍽! 퍽! 퍼버-벅!
동천은 간만에 신이 나서 도연을 신나게 패기 시작했다. 키도 비슷했으므로 때리기도 편했다. 도연이 연속타로 맞고 나가떨어지자 동천은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소리쳤다.
“하하하! 어떠냐? 정의(正義)의 주먹의 맛이!!”
동천에게 흠씬 맞고 쓰러졌던 도연은 바닥에 쓰러져 있다가 잠시 후에 독기(毒氣) 어린 눈빛으로 일어나서 동천을 노려봤다. 입안을 혓바닥으로 몇 번 휘저은 도연은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내뱉었다.
“다…치셨습니까?”
‘어? 이 새끼가 분위기 잡네?’
순간적으로 움찔했던 동천은 자신의 신분을 감안해서 마음을 고쳐 잡고는 인상을 썼다.
“다 안 다쳤다. 어쩔래? 네가 어쩔 거야!”
“그럼, 속이 풀리실 때까지 때리십시오.”
도연의 상태를 잠시 지켜본 동천은 더 때려도 죽을 것 같지 않기에 군말 않고, 신나게 두드려 팼다.
“오냐, 이 새끼야! 네가 때려달라는데 내가 마다할 것 같냐? 오늘 열 받는데 죽어봐! 죽어!”
진짜 죽일 정도로 살벌하게 때리던 동천은 만신창이가 다 돼서 도연이 쓰러지자 그제서야 손길을 멈추었다. 동천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턱에 고인 땀을 훔쳤다.
“헉헉… 때리기도 힘드네..”
동천이 힘들어서 쉴 겸 돌계단으로 가서 쉬고 있을 때, 꿈틀하던 도연은 계속 쓰러지며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기어코 다시 일어났다. 그는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면서 동천에게 다가왔다.
“다… 때리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