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60화
기회란 노력한 자에게만 오는 것은 아니다.
부스럭!
바깥의 입구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갈연은 긴장된 눈초리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은형포단이 살짝 걷혔고 동천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제갈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오, 오셨어요?”
동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예, 조금 늦었지요? 하하, 물을 구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네요. 이것도 그나마 겨우 구한 거니까 어서 마시세요.”
1각(15분) 전쯤에 겨우 제갈연을 진정시켰던 동천은 물을 구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상황이었다. 그녀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환자가 깨어났을 때 목말라 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저어…, 그걸 마셔야 하나요?”
상대의 수고를 생각했을 때 예의가 아니었지만 그녀로서는 선뜻 입을 가져가기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물을 가져온 동천이 다른 어떠한 도구도 배제한 채 양손으로 보물을 감싸듯 물이 새어나가지 않게끔 떠왔던 것이다.
당연히 그녀가 그 물을 마시려면 동천의 손과 접촉이 불가피했으므로 차마 마시지는 못하고 부끄러워서 되물어 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동천은 제갈연의 물음을 다른 쪽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였다.
“괜찮아요. 손은 정말 수십 번 이상이나 씻은 상태예요. 하나도 안 더러우니까 어서 마음놓고 마시세요.”
그러고 보니 동천의 어투는 딱딱한 존댓말에서 친근감 있고 좀더 순화된 듯한 반 존대로 바뀌어있었다. 그 이유는, 물을 구하러 나서기 전에 제갈연이 동천의 말투를 거론하며 너무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동천도 체질상 오랫동안 멋진 척을 할 수가 없었기에 옳다구나 편안하게 대해주기로 했고 말이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후우, 아니에요. 마실게요.”
상대의 눈에는 사심이 없어(?) 보였는데 자신만 괜히 앞서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자는 남자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성장의 징후가 빠르기 때문에 자신보다 2살이나 어린 동 공자는 필시 이성에 관하여 눈을 뜬 상태가 아닐 것이라는 위험한 결론을 지었던 것이다.
‘그래, 상대는 아직 16세야. 미묘한 나이여서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여자가 아니라 남자야. 그러니까 동 공자님은 예의가 바르고 배려심도 뛰어난 16세의 순진한 소년일 뿐인 거야. 이분이 양손을 사용하여 물을 떠다 줬다면 떠다준 성의 그대로 마시면 될 것이고, 치료를 위해서 내 환부 위에 손을 올린다면 그저 어린 소년의 순수한 의술행위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후륵, 후르륵!
일단 내린 결론을 바탕으로 마시기 시작하자 동천의 손안에 고여있던 물은 그녀의 작은 입술 속으로 거침없이 빨려 들어갔다.
‘어라, 잘 마시네? 난 또 손을 한번만 씻은 게 들켜서 안 마시려고 했던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벼?’
손을 두어 번 더 씻는 것이 몇 천년이 걸리는 것도 아닐진대, 고작 한번만 씻은 손으로 환자에게 물을 떠 먹였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동천에게는 손 한번 씻어준 것도 정말 대단한 선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방향치인 그로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돌아가는 길이 막막해지는 현실이 항상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 좋게도 멀지 않은 곳에서 개울가를 발견할 수 있어서 그나마 떠온 것이었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런 깨끗한 물은 언감생심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리라.
“잘 마셨어요. 고마워요.”
그녀의 감사에 동천이 밝게 웃어주었다.
“아니에요. 되려, 다시 떠주지 못해서 제가 다 미안할 따름이죠. 하하하!”
동천은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제갈연은 자신을 편하게 해주려고 농담을 해준 것으로 착각했다. 절로 기분이 좋아져서 소리 없이 웃음을 짓자 상처가 울렸는지 따갑고 시큰한 아픔이 밀려왔다.
그래도 그녀는 버틸 만하여 참으려고 했으나 동천의 눈치가 더 빨랐다.
“아프죠? 생각해보니까 제가 잠을 좀 자서 진기를 흘려보내 준지가 꽤 된 것 같네요. 음, 일단은 배부터 채우고 오늘 저녁까지는 치료를 끝마치도록 노력해봐야겠어요. 우선 이것 좀 드세요.”
동천은 귀의흡수신공으로 그녀의 상처를 달래준 뒤 품속에서 둘둘 말린 보자기 속의 육포를 한 움큼 쥐어 제갈연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동천이 건네준 육포의 양은 그녀가 하루동안 넉넉히 먹고도 넘쳐날 양이었다.
“동 공자님은 소녀를 돼지로 아시나봐요? 호호,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요.”
그녀는 받았던 것을 거의 다 되돌려주고는 육포 다섯 조각을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다. 그것을 본 동천은 ‘금식일(禁食日)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금식은 아예 먹지 않는 것이었으니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그만큼 동천의 기준에서는 적게 먹었던 것이리라.
“우물우물, 안 쪽의 손상된 내부장기를 말끔히 치료하고 나면요, 외상뿐이어서 움직이는 데에는 다소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내공으로 보호하면서 걸어가면 참을 만은 할 거예요. 꿀꺽! 그런데 어디로 가실 생각이세요?”
그녀의 하루식사를 한끼 분량으로 해결한 동천이 물어보았다. 얼마나 순식간에 먹어치웠던지 그녀의 수중에는 아직도 육포 조각이 쥐어져 있는 상태였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육포와 동천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그녀는 ‘이것도 드실래요?’ 라고 물어보았지만 육포라면 동천의 품속에도 아직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그가 먹고자 했다면 굳이 그녀의 것을 탐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괜찮아요. 저는 또 많이 있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되요. 그보다 차후의 일을 미리미리 정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어디로 향하실 겁니까?”
두 번째 묻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엉뚱한 말을 한다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처사인지라 그녀는 어제 미리 결정해두었던 진로를 말해주었다.
“지금쯤이면 기습을 당했던 협산 진영도 회복을 했겠지만 모르는 일이기 에 가장 안전한 예곡 쪽으로 가려고 해요. 저어…, 동 공자님. 같이 가 주실 거죠?”
‘윽!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 같이 가 달라는 말이데 얘가 물귀신 작전을 쓰네?’
동천은 오련과는 체질적으로 안 맞아서 그곳으로 따라가고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외상까지 완치를 시켜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도 걸리는지라 강진구의 생사가 불분명했다.
잠시 골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던 그는 결국 예곡까지는 책임을 지겠다고 대답해주었다. 말 그대로 예곡 앞까지만 동행해주고 자신은 신비하게 사라지면 그만이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 고마워요, 동 공자님! 공자님께서 같이 가주신다니까 벌써부터 마음이 든든하고 이제 세가의 식구들을…….”
순간 말하다 말고 제갈연이 파랗게 질렸다. 깜짝 놀란 동천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물어보았다.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제갈연은 당연히 문제가 있다는 얼굴로 울먹이며 동천에게 입을 열었다.
“흐윽, 전 나쁜 계집이에요! 제가 너무 이기주의여서… 그래서 정작 중요한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제가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과 친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흑흑흑!”
동천은 거기에 왜 자신이 제외된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기상조가 아닌지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한 그녀를 살짝 안아주며 생각했다.
‘쳇! 난 또 뭐라고. 하긴, 그걸 지금에야 생각했다는 건 좀 그렇다. 울어도 싸다 야.’
그의 생각대로 울어도 싸긴 했지만 동천이 그것을 계속 지켜봐 줄 리는 없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달래주었다.
“연 소저, 그들을 위하여 울어주는 것은 좋지만 그들의 죽음을 불쌍히 여기시지는 말아주십시오. 그것은 자랑스러운 오련을 위하여 기꺼운 마음으로 죽어간 용사들을 모욕하시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대 제갈세가의 여식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슬픔을 받아들이시고 그것을 이겨내실 줄 아셔야 제갈세가는 물론이거니와 오련의 식구들을 떳떳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위로해주고도 제법 근사한 것 같자 동천은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캬아! 오늘 말 빨 좀 된다! 사실 이런 건 어록으로 만들어서 두고두고 대대손손 물려줘야 하는데 말야. 흐흐, 그런 의미에서 지금 확실히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꼭 기입해 둬야지? 랄라라∼.’
동천이 위로한답시고 샛길로 빠지는 사이에 그래도 효과가 조금은 있었던 지 아랫입술을 꽉 깨문 제갈연이 결의에 찬 눈으로 동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살짝 기대어 있었음을 깨닫고 황급히 옆쪽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무마시키고자 눈물을 훔치며 동천에게 물었다.
“훌쩍, 그래야 하는 걸까요?”
동천은 바로 반응하여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입니다. 아마 그들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어느새 다시 자세를 잡기 시작한 동천은 소위 소연이 말하던 느끼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기름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였지만 동천에게 호감 이상을 느끼고 있었던 제갈연에겐 너무도 당차고 멋있는 목소리로 들려왔다. 그러나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네, 말씀 감사해요. 공자님의 배려 깊은 말씀을 듣고 나니까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돌아가신 분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잡혀가신 모용 공자님과 나머지 분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후우!”
모용상현과 떨거지들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천도 강진구 때문에 걱정이 되긴 되었다.
그래도 강진구가 눈치 하나만큼은 제법인지라 괜히 사람들 앞에서 튀다가 별것도 아닌 놈이 까분다고 칼침에 맞아 죽을 일은 없었으니 일단은 안심할 수가 있었다.
“자세한 것은 저도 모르겠지만 죽일 의도는 없는 것 같더군요. 아마도 그들은 모용 공자의 가치를 간파하고 데려간 듯 싶습니다. 즉,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의 가치에 합당한 대가만 치러 준다면 풀려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입니다. 후후, 그 분에 관해서는 안심하십시오.”
순간 제갈연의 안색이 밝아졌다.
“아! 정말 그렇겠네요?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동천은 그러고 보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재빨리 주위를 환기시켰다.
“자자,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거론해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보다는 서둘러 치료에 들어가는 게 좋을 듯 싶은데요?”
제갈연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네, 공자님.”
긍정의 대답을 해준 그녀가 수줍게 눕자 동천은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이번 치료는 어제의 경우와는 다르게 내공이 고갈되면 잠시 그녀와 떨어져 쉬었다가 회복하고 나면 치료를 반복하는 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와의 내공 공유가 어렵게 되자 혼자서 운기조식으로 기운을 회복한 뒤에 치료를 해주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헥헥! 젠장 할! 이런 건 하나도 재미없다구! 으악! 악! 짜증나 죽겠네?’
동천이 굳게 믿는 신념 중에 하나가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혼자만 주고 있었으니 때려 치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인내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치료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긴 했으나 그 날 저녁이 되자 겨우겨우 녹초가 되어 내부 쪽으로는 말끔히 치료할 수가 있었다.
‘해, 해냈다! 이건 정말 인간 승리다!’
“허억, 허억!”
마지막 고비라는 생각에 쉼 없이 내공을 쏟아 부었더니 기운이 하나도 없고 숨이 턱까지 차 올라 그를 괴롭혔다. 다소 몽롱해진 눈으로 컴컴한 공간을 바라보자 갑자기 하얗게 불태웠다며 기절했던 마부 새끼의 얼굴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갑자기여서 바로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렇게 그가 누워서 호흡을 고르는 동안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끝마친 제갈연은 외상의 통증 외에는 내부의 고통이 전혀 없자 감동의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어제만 해도 살아남기는 글렀다고 체념했었는데 단 이틀만에 기적적으로 관통된 내부가 치유되었던 것이다. 그때 그녀의 뇌리에 번쩍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 동 공자님! 호, 혹시, 신성(神聖) 종가진(鍾假眞) 어르신의 제자 분이 아니신가요?”
‘신성 종가진? 종가진? 망가진? 아? 예전에 약왕전에서 봤던 그 실성?’
누구인지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실성한 놈과 자신을 비교하다니……. 동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어디를 봐서 자신의 위대한 의술이 신성 종가진을 떠올리게끔 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씨! 내가 사부님의 존함을 거론했어도 그렇구나 하겠는데, 고작 실성한 삼류 돌팔이 의원과 이 몸을 비교해? 그냥 콱 다시 찔러서 없던 일로 해 버릴까보다! 에이, 퉤!’
신성 종가진은 정도와 마도를 가릴 것 없이 의술의 신으로까지 추앙 받는 인물이었지만 동천은 그와의 첫인상이 별로였던 것도 있었고, 애초에 자신의 사부말고는 의원을 의원 취급도 안 하는 인간인지라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진정한 후에 생각해보자 자신의 생각이 너무 과격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비록 대놓고 내뱉은 말은 아니었지만 칼로 찌르니 뭐니 흥분할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후우, 진정하자.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몸을 연모하는 여인인데 적어도 그런 생각은 자제하는 것이 진정한 대협의 풍모가 아니겠는가. 응? 그걸 깨달았다는 것은 이제 이 몸이 대협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말이 되는가?’
결국 그가 이상한 쪽으로 빠져서 저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짓자 그것을 제멋대로 착각한 제갈연은 놀라서 벌어지는 입술을 급히 한 손으로 틀어막았다.
해는 이미 저물어서 그녀의 내공으로는 겨우 사람의 윤곽선을 확인할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족했는지 그녀는 선망의 눈초리로 동천을 우러러보았다.
“아! 신성께서는 제자가 없으신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이제 보니까 은밀히 동 공자님을 받아들이신 상태여서 그분의 가르침을 구하러온 인재들을 죄다 마다하셨던 것이로군요? 와아, 그런 비사가 있었다니…….”
‘아예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한심하게 생각하는 동천의 마음에 덧붙이자면 ‘소연 같은 애가 또 있었단 말인가?’ 정도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잠시 머리를 굴려보자 귀찮은 신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굳이 아니라고 말하진 않았다.
첫째로 제갈연에게 비밀엄수를 지키게 하면 될 것이고, 둘째로 이 넓은 중원의 땅덩어리에서 제갈연과 함께 있을 때 종가진을 만날 확률은 그야말로 멀쩡한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하려다가 자신이 벼락을 맞아 살아난 뒤에 그 일로 말미암아 신체적으로 벼락의 기운을 흡수하게 되어 벽력신공(霹靂神功)을 창안해내는 확률 보다 훨씬 미미하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위의 확률은 신빙성이 없다.
“으음! 역시 소저의 혜지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제갈 소저이기에 특별히 밝히는 것일 뿐 이 비밀은 죽음까지 가져가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 사부님께서는 어느 기인과의 자존심 문제 때문에 제자를 들이지 않기로 약조하였는데 만일 그 약조를 깨트린다면 자결을 하셔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시기 때문입니다. 제 말…, 이해하셨습니까?”
엄청난 사실(?)에 파랗게 질린 제갈연은 자신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고개를 상하로 움직였다. 가볍게 생각하고 물어봤던 것이 당대 기인의 생명줄까지 틀어쥐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니 그녀로서는 무섭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에, 동 공자님. 하, 하지만 어찌 그러한 비밀을 소녀에게…….”
동천은 힘겨운 얼굴을 하다가 씨익 웃어주었다.
“제갈 소저이기에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아!”
순간 그렇게도 불안했던 생각들이 환희의 물결로 바뀌어 그녀의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녀는 방금 전에 나누었던 동 공자님과의 대화가 세상의 그 어떠한 남녀간의 밀어(密語)보다도 더욱 달콤하고 짜릿한 기쁨으로 다가왔음을 확신했다.
자신이기에 알려주는 비사(秘事)라니…….
자신을 향한 동 공자님의 마음이 진정으로 지고지순하지 않은 이상 사부의 생명이 걸려있는 비밀을 공유하고자 했을 턱이 없었다.
얼굴이 익어버릴 듯이 화끈거리기 시작한 그녀는 터질 듯한 가슴을 지그시 눌러가며 애써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사람의 마음대로 될 수 있는 성질이던가?
‘이, 이건 혹시 나를 향한 마음을 은밀하게 고백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줘야만 하지? 아앙, 몰라∼!’
모르는 게 차라리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