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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82화


피식!

두 눈으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던 그녀는 문득 실소를 했다. 이러한 경우로는 생각지도 않았던 녀석이었는데 호승심까지 일어날 정도라고 생각하자 자기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녀석을 무시한 건 정작 내가 아니었나 싶군.’

이제부터라도 웬만큼 대접을 해주리라 마음먹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천을 무시했었던 지난날을 반성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제껏 무시 받을 짓만 골라서 하고 다녔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내심 고개를 내젓고 기분을 환기시킨 그녀는 지나가는 와중에 멀리에서 놀고 있는 동천을 보게 되었다. 말 그대로 놀고 있는 중이어서 살짝 눈살을 찌푸린 그녀는 짐짓 모른 척 그대로 지나쳤다. 자신의 처소로 방향을 잡은 그녀는 비록 바뀐 성격 때문이긴 했지만 저런 녀석에게 호승심까지 느꼈다는 것이 자못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아! 더 이상 집적거리는 놈들도 없고……. 무지하게 따분한 날들이로구나!”

닷새 전에 그 습격이 있고 나서 더 이상의 추가적인 공격은 없었다.

다만 정찰을 나가거나 순찰을 돌던 무사들이 당하는 일들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고 강한 고수들을 동행시키자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의 적들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 사이 동천이 잡아들인 자에게 알아낸 것이라고는 자신들은 비밀결사대이며 천마동에 접근하는 자들은 세력을 불문하고 습격하도록 지시를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별로 신빙성이 없는 것이 세력을 불문한다는 말과는 달리 습격을 받은 쪽은 마도의 무리들 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암흑마교 측에서는 절반의 말만 믿는 실정이었으며 겨우 목숨을 연명할 만큼의 여지만 남겨 놓은 채 계속 고문을 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여러 문파들과 고수들이 모여들고 있어서 긴장감은 어느 때 못지않게 높잖아요.”

자고 있는 화정이의 머리를 무릎으로 베어주고 있는 소연이 살짝 끼여들었다.

동천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긴장감과 습격은 별개의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터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에그, 걔네들이 머리에 화살 맞았냐? 아무리 긴장감을 고조해봐라. 감히 본교를 공격할 수나 있나.”

그러자 소연이 대답했다.

“그건 그렇지만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어떻게 알겠어요?”

“쳇, 그렇게 따지면 예쁜 여자들이 다 죽고 소연이 니가 천하제일 미녀가 될지 어떻게 알겠냐는 말과 뭐가 다르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한 소연은 반론을 제기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쓸데없이 주인님의 심기를 거슬릴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예에, 아참! 아까 아침에 보니까 사람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던데 왜 그런지 아세요?”

그녀가 화제를 바꾸자 동천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글쎄? 이 몸은 오늘 밖으로 나선 적이 없으셔서 잘 모르겠는걸? 헌데, 아랫것들이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디?”

소연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예, 신분이 높으신 분들도 비슷해 보이던걸요?”

하급무사들 뿐만 아니라 고수들까지 분주하다는 소리에 동천이 흥미의 눈길을 보냈다. 아무래도 무언가 한 건 터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래? 음,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 몸이 한번 움직여봐야 쓰겠는걸?”

자리에서 일어난 동천은 뒤따라오려는 소연에게 화정이나 잘 재우라고 명령한 뒤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팔자걸음으로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그리고 확실히 누가 봐도 평소와는 다른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빈 공터에 모여 도열해 있는 무사들이 눈에 뜨였다.

“뭔 일이래?”

그렇게 중얼거린 동천은 아랫것들에게 물어봐야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았으므로 그들을 지나쳐 적어도 확답을 내려줄 수 있는 인물에게 찾아갔다. 바로 혈각주인 초무강이었다.

“각주님 안에 계신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내들 중 1명에게 묻자 계시다는 답변이 나왔고 동천은 절차를 거쳐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나갈 차비를 다 갖추고 서 있던 초무강은 안으로 들어온 동천을 환대했다.

“어서 오게. 자네도 그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것인가?”

역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확신한 동천은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주위에서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몰라 여쭈어 보려고 왔습니다.”

“하하, 그런가? 어찌 되었든 잘 왔네. 나가면서 이야기하지.”

“예, 각주님.”

동천이 대답하자 초무강은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거닐며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요 며칠 간의 수색 끝에 천마동의 정확한 위치가 밝혀졌다네. 물론, 그곳을 발견한 곳은 무림맹이지만 말일세.”

‘오옷? 드디어!’

놀라운 소식에 절로 흥분을 한 동천은 가빠지려는 호흡을 진정시켰다. 그는 안 그런 척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그래서 전부다 무장을 갖추고 있었군요?”

“그렇지. 그리고 우리는 곧 혈사교와 함께 자리싸움을 하고자 출동할 걸세.”

‘저도요?’

라고 말할 뻔한 동천은 그저 수긍하는 듯한 태도만을 보이며 초무강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녔다.

이제 알아낼 것은 다 알아내서 더 이상 그에게 볼일이 없었지만 딸랑 이야기만 듣고 뒤로 빠지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시는 중이십니까?”

“수하들의 집합 상태를 점검한 뒤 아가씨에게 가려는 중일세.”

“아, 네에.”

사정화에게는 동천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는 그다지 꺼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뒤늦게 나타나서 구경(?)하러 가는 것보단 애초에 얼굴도장을 찍고 당당하게 움직이는 것이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초무강의 뒤를 따라다니다가 마침내 확인을 끝마친 그와 함께 사정화의 거처로 찾아갔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모든 준비를 확인 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모일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모인 자리여서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동천은 별것도 아닌 것들이 자신에게 눈깔을 부릅뜬다며 속으로 방방 떴지만 겉으로는 그저 조용히 있었기에 아무도 그를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사정화가 대답했다.

“괜찮아. 그리고 이제 혈각주도 왔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녀의 시선이 초무강을 떠나 단정한 차림의 노인에게로 향하자 그 노인이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이야기를 접하셨듯이 무림맹이 착하게도 천마동의 입구를 발견해 주었습니다.”

혼천부의 집법당주 혁필상이 농담 식으로 서두를 꺼내자 몇몇만 웃고 나머지는 무표정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혁필상은 분위기를 띄우는데 실패했음을 깨닫고 바로 이야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그 입구는 뚫린 곳이 아니라 묻혀있는 곳으로 판명되었기에 당장에는 급한 상황이 아닙니다. 문제는 본교 외엔 아무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은 안 했지만 힘으로는 타 세력들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는 것쯤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모두의 두뇌는 해결책을 찾기 위하여 빠르게 돌아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곳에 주둔한 본교의 힘으로는 그곳을 사수할 수가 없어 보이는군. 집법당주는 다른 고견이 있는 것인가?”

초무강이 묻자 혁필상이 대답했다.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지금의 이 인원으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하지만 혈사교와의 공조체제를 끊지 않고 정파와 협상을 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혈사교와 손을 잡고 천마동이 발굴될 때까지 같이 버텨 보자는 것이 아니라 혈사교의 힘까지 보탠 뒤 정파와 협상을 하자? 방금 그런 뜻으로 말한 것 같은데, 본 각주의 말이 맞는 것인가?”

혁필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실 마도 문파들을 규합하여 정파와 대립체제를 구축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실제로 천마동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전력소모의 누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하책(下策)에 불과합니다.”

그때 아수전의 부전주가 조용히 끼여들었다.

“그렇다면 상책은?”

혁필상은 안 그래도 대답할 예정이었는데, 뭐가 그리도 급하여 묻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그러나 곧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입을 열었다.

“방금 말씀을 드렸다시피 적어도 천마동이 입구가 열리고 그곳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피를 흘려서는 안 됩니다. 천마대제님의 유물을 취하기 위해서는 한순간의 힘의 집중이 필요한데 미리 전력을 깎아 먹는다면 그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천마동의 입구 발굴을 정파와의 합의 하에 이루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아수 부전주는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견을 제시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정파 놈들이 차후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세워주는 것 아니오?”

혁필상은 낮게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입구를 같이 발굴하자는 조항만 넣으면 됩니다. 그 후에는 먼저 차지하는 쪽이 임자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번엔 초무강이 물었다.

“일견 합당한 듯 보이나 입구가 드러나고 편가르기를 하자면 마도 보다는 정파의 무리들이 유리한 것을 모르는가?”

“그래서 혈사교와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만 합니다. 차후, 우리와 그쪽 중 어느 누가 물건을 차지하던지 그에 합당한 재화를 건네주기로 말입니다.”

그때 사정화가 입을 열었다.

“다른 문파들은 몰라도 혈사교와는 끝까지 칼을 맞대지 않게끔 만들자?”

혁필상은 공손히 대답했다.

“예, 아가씨. 그들로서도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인지라 마지막까지 뒤를 받쳐 줄 든든한 세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제법 일리가 있는 소리에 그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대충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적어도 유물을 취하기 전까지는 2배 이상의 전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협상단의 구성은?”

혁필상은 신념에 가득 찬 눈빛으로 조용히 말을 꺼냈다.

“미진하오나 본교에서는 소신이 나설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안 그래도 나서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는지라 따로 생각한 사람도 없는 실정이었다.

괜히 실패라도 한다면 그 죄는 성사시켜 보겠다고 나선 자가 다 뒤집어쓰기 때문이었다.

“좋아. 맡아봐.”

사정화의 허락에 혁필상의 허리가 깊숙이 숙여졌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성사시켜 보겠습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준 사정화는 말했다.

“그렇다면 먼저 혈사교와 만나 협의를 이루어내야 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아가씨. 소신이 곧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켈켈, 그럼 나머지는 천마동의 입구로 가 있는 겐가?”

잠자코 입을 다물던 정원이 묻자 혁필상은 잠시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서로 부딪히지 않는 한 안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혈사교와 함께 움직이는 편이 좋습니다.”

결론은 혈사교와 협의를 이룬 뒤 움직이자는 말이었다.

그러자 정원은 뜻 모를 웃음을 지으며 켈켈거렸다.

그것을 지켜본 혁필상은 적어도 반대의 뜻은 없는 것이라 여기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혈사교와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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