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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87화


“에 또…, 그래서 말이죠. 결국, 공동 발굴로 합의를 보고 그때까지는 서로 칼을 겨누지 않기로 약조를 했어요.”

동천은 내용이 길어서 대충 자르며 보고를 올렸지만 그래도 중요한 부분은 전부 대답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보고가 끝나자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내용을 간추렸다고는 하지만 자파의 이득을 위해 서로들 힘 겨루기를 하느라 시간을 소모했던 것이어서 동천의 보고방식은 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부 설명하자면 너무 따분하고 지루한 보고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천마지가의 나머지 9장에 관해서는 그 누구든 소지자가 나타나면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발굴의 참여권과 함께 천마동의 진입 우선권을 부여해주기로 했다고?”

‘이씨, 아까 말해줄 땐 눈뜨고 디비 잤나. 입 아프게 시리 한 말 또 하게 만드네?’

불평을 하면서도 동천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가씨. 사실 이럴 때 아니면 천마지가를 언제 다 모아서 훑어보겠어요? 물론 이 사건이 지나간 후에 나머지 것들을 모으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각 파에서 소장 중인 것들은 건드릴 수 없을 것이 뻔한지라……. 아참, 그리고 천마지가를 전부 모으면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았어요.”

천마지가는 천마의 8가지 무공들이 각각 4장씩 분할되어 32장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같은 무공의 조각들끼리만 반응하여 숨겨져 있던 지도를 보여주었다.

이때 쉽게 생각하면 같은 무공의 조각들을 우선적으로 구하면 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천마동의 위치를 찾는데 그 많은 인력과 길고 긴 시간들이 투자되었을 리는 만무할 터.

이렇듯 천마지가의 조각들을 수중에 넣었어도 운이 따라야 지도를 참조할 수 있다는 상황을 비춰 보았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 본다면 모든 조각들을 모았을 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또 다른 특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을 하는 중이었다.

물론, 동천이 보았을 땐 헛 짓거리였지만 말이다.

“일 리가 있는 생각이야. 그만큼 천마지가 32장은 하나의 세력, 혹은 누군가의 독단적인 힘으로 모두 모을 수 있을 만한 쉬운 물건이 아니니까.”

‘얘가 이 몸이 마음만 먹는다면 천마지가가 아니라 천마지가 할애비라고 해도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네? 쯧쯧, 하여간 인재를 놔두고도 활용할 줄을 모른다니까?’

그렇게 생각한 동천은 말했다.

“그렇긴 해도 천마지가를 전부 모았을 시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리라고 보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도가 그려진 그림을 숨긴 것만으로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할 텐데 거기에다 다른 무언가를 더 적용시킨다는 게 사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거든요.”

그것은 비단 동천뿐만이 아니라 천마지가를 전부 모으고 싶어하는 사람들까지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사안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인들은 ‘그래도 천마대제 님의 무공구결을 사본으로라도 보유하고 싶은 것이 무림인들의 심리야.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만무하지.’ 하고 기대를 버리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오랜만에 그럴 듯한 주장을 펴는구나. 하지만 진본을 전부 수중에 넣을 순 없다고 해도 천마대제 님의 무공구결을 사본으로라도 보유하고 싶은 것이 무림인들의 심리야.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만무하지.”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더라고요. 더군다나 머리를 써서 하나의 무공을 기준으로 4장이 되지 않는 한 공개하지 않기로 하고 말예요.”

공동 발굴에 참가하기로 한 이상 암묵적인 공동운명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비밀이 있어서는 곤란한 법.

그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천마지가를 내부적으로만 공개하기로 원칙을 정했다.

하지만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천마지가의 보유 개수를 속이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라.

기껏 다른 세력들이 모아서 하나의 무공 조각들을 3장 보여주었을 때 나머지 한 세력이 1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애초에 없다고 속였을 때의 상황을 말이다.

그럼 그 세력만 엄청난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내려진 결론이 천마지가의 각 무공 당 4장이 전부 모였을 시에만 보유한 문파에서 공개를 하자는 것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합의가 길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들이 이 문제로 얼마나 고심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증거이리라.

여하튼, 사정화는 말했다.

“그 문제는 아까 들었을 때도 생각했지만 하루만에 결론을 도출시킨 것이 용하군. 어쨌든 수고했어. 오늘은 가서 푹 쉬어.”

“예, 아가씨. 푹 쉴게… 예? 오늘은 요? 그럼 내일도 제가 뭘 해야 하나요?”

“당연한 걸 가지고 뭘 그리 놀라. 내일은 나도 움직일 테니까 정원 할멈과 같이 나하고 동행할 준비를 하고 있어.”

“아니 그게…….”

“안 가?”

“가, 가요! 그럼 편히 쉬세요. 헤헤.”

매서워진 그녀의 눈매를 접하고 바로 꽁무니를 뺀 동천은 나오면서 씨발 씨발을 입에 달았다.

물론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욕을 했고 말이다.

‘그냥 솔직하게 늙은 할멈과 같이 가기엔 뻘쭘하니까 이 몸에게 의지하는 거라고 하면 어디가 덧 나냐? 하여간 계집애가 음흉스러워 가지고 속내를 전부 다 드러내지를 않는 다니까?’

결론은 마음 넓은 자신이 이해해줘야겠다는 것으로 끝났지만 주둥이는 별도였던지 자신의 막사로 돌아오는 내내 구시렁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 이제야 오셨어요?”

“헤에, 동천 왔어?”

“야옹∼.”

혼자만 사는 곳에서 자신을 반겨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외로 쫓기는 중이라거나 성격적으로 이상한 사람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다행히 예외에 들지 않았던 동천은 눈을 반짝이더니 피곤한 얼굴로 화정이에게 다가가 가슴에 폭 안겼다.

“으아, 힘들었다! 역시 힘들 땐 화정이의 가슴이 최고야.”

부비부비.

“아하하! 동천, 애기 같아.”

“앗?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어서 떨어지세요!”

동천이 화정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비비자 당황한 소연은 재빨리 둘의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동천이 아랫것의 말을 들을 턱이 없었다.

“싫어. 나 피곤해서 당분간 이러고 피로를 풀어야 겠으니까, 넌 나가서 저녁 좀 차려와. 아! 이 몸 배고파 돌아가시겠구나!”

“차라리 배고파 죽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던 소연이었지만 당장에는 떨어지게 할 수 있어도 그 후가 두려워지기 때문에 차마 그런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그녀는 다른 말로 떨어지기를 유도했다.

“그, 그럼 제가 발 씻어 드릴게요! 피곤하실 땐 발 마사지가 최고래요!”

“응? 발 마사지?”

반응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어렸을 적에 간단하게 발 한번 씻기게 한 것을 제외하고는 소연에게 발을 씻기라고 맡겨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기회를 포착한 소연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예, 발 마사지요. 발만 씻기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온도의 물에 푹 담궈서 경락을 자극시키며 씻겨주면 피로회복에 그렇게 좋대요.”

“호오, 그으래? 그럼 어디 준비해 와봐. 이 몸이 한번 체험해주실 테니까.”

구미가 당긴 동천이 화정이에게서 떨어지자 거기에서 그러고 가만히 있으라고 신신당부한 소연은 급히 나가서 뜨거운 물에 대야를 준비해왔다.

동천은 그 사이에 화정이에게 다가가 여러 가지 재미있는(?) 놀이를 했는데, 소연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척했다.

“후우, 후! 별 일 없으셨죠?”

“당연히 없었지. 그리고 넌 있으면 좋겠냐?”

째려보는 주인님의 눈빛에 기가 꺾인 소연은 머쓱하게 웃으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호호, 그럴 리가요. 어서 신발이나 벗으세요.”

에헴! 하고 소리 친 동천은 느긋하게 신발과 버선을 벗었다.

그러자 본래의 피부색깔과는 다른 까무잡잡한 발이 드러났다.

“윽? 이, 이게! 주인님, 도대체 발은 언제 닦으신 거예요?”

동천은 멀뚱히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셈을 하다 포기한 듯 시선을 내리며 소연에게 말했다.

“뭐 세수하고 머리는 감아.”

결론은 발 닦은 지가 꽤나 오래 되었다는 소리였다.

소연은 정말 더러워서 못 닦겠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한 몸 희생해서 화정이의 순결을 지키는 것이라면 이런 것쯤이야 참을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뽀득, 뽀득! 뽀드득!

“우와, 동천 때 많다!”

“시끄러, 임마.”

“냄새도 엄청나!”

“시끄럽다니까? 너 맞을래?”

“아, 알았어. 때리지는 마. 딴 애들은 안 그런데 동천이 때리면 아프고 아프면 또 맞을까봐 싫고 무서워.”

“알면 입 닫아. 아, 좋다! 소연아, 더 박박 문질러라. 시원하구나. 프하하!”

소연은 넘어올 것 같아서 안색이 별로 안 좋았지만 간신히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에. 그 전에 물 좀 갈고 올게요. 화정아 같이 가자.”

“응! 그래!”

소연에게 쪼르르 다가가는 화정이의 모습에 깜짝 놀란 동천은 급히 말했다.

“걔는 왜 데려가냐?”

왜냐고 묻는다면 아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화정이를 혼자 놔두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주인님의 성격상 자신을 못 믿느냐며 방방 뛸 것이 분명하기에 대충 둘러서 말했다.

“화정이는 사소한 거라도 옆에서 보고 배우게 하는 게 중요해서 제가 데려가려고요. 호호,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얼른 가져와서 마저 씻겨드린 후 식사를 차려오도록 할게요.”

빈틈이 없는 대답에 동천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침대 위에 엉덩이를 걸친 그 자세에서 벌렁 드러누웠다.

“쩝, 저게 나이 좀 먹더니 머리를 쓰는 것 같단 말야? 아! 순진했던 소연이가 왜 저렇게 변했단 말인가!”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지금 지껄이는 중이었지만 동천은 자신에 관해서만큼은 결백하다고 믿기에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다.

“화정이의 교육이라면 틀린 말도 아니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러고 보니까 요새 감정 표현들도 풍부해지고 성장하는 느낌이 확연히 든단 말야? 음, 인면지주의 기운을 모두 흡수한 탓에 그 계기가 촉발된 건가? 그러고 보니 그 찌꾹인가 개꾹인가 하는 인면지주의 알은 쌈 싸먹었나 당최 보이지를 않네?”

처음에 발 닦는 물을 구해올 때에는 마침 저녁을 준비하던 숙수들이 끓인 물을 남겨 놓은 상태였기에 바로 가져온 것이었다.

그러나 물을 다시 갈아야 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만큼, 두 번째 준비하는 시간은 조금 걸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동천도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생각해 보니까 화정이가 무섭다고 했던 게 며칠 전이 처음이 아니었잖아?”

인면지주의 알 문제는 화정이가 오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었기에 그녀의 감정표현 쪽으로 넘어갔던 것인데 불현듯 민낭의 동굴에서 빠져나오며 들렸던 마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거기에서 이명호월을 만났던 것이고 심심하면 뭘 씹어대던 돼지새끼도 기억났다.

그리고 정체 불명의 노인들과 세력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사실 화정이가 무섭다고 말한 그때에는 암흑마교로 돌아가는 일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먹는데 관심이 더 많았다.

뭐 이제와 생각하니까 ‘그때에도 무섭다는 감정을 알았었구나…….’ 하는 것이지, 사실 동천의 입장에서는 그때 건 지금이건 간에 화정이를 대하는 것이 달라지는 게 아니었으므로 크게 관심 있어 하지는 않았다.

그저 감정들이 살아나기 시작해서 잠깐 놀랐을 뿐 별반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에이! 내가 알게 뭐냐. 그것보다 그 늙은이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게 더 중요한 건데 말야. 음, 금문하고 장문이랬지 아마? 참 나, 이름 한번 참 개판이네.”

엄한 사람들 이름가지고 불평을 늘어놓는데 소연과 화정이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남는 물이 없어서 다시 끓이느라고 늦었어요.”

“알면 어서 닦아. 찜찜하게 닦다 기다리게 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찜찜한 것은 그녀였지만 그녀는 용케 내색 않고 웃는 낯으로 죄송하다며 다시 발을 씻겨주었다.

동천은 발이 따듯해지며 간질거리고 시원해지자 기분이 다시 좋아졌는지 풀린 얼굴로 화정이에게 물었다.

“화정아, 그런데 너 말야. 그 쯔꾹인가 찌꾹인가 하는 거 어디 있냐?”

주인이 묻자 화정이는 ‘이젠 냄새 안 나네. 신기하다.’ 라고 중얼거리다가 동그라진 눈으로 되물었다.

“응? 그게 뭔데?”

“에이 씨! 그 인면지주의 알 말야! 알!”

“알? 인면지주? 그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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