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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88화


이대로 가다가는 주인님의 기분만 나빠질 것 같자 조심스레 지켜보던 소연이 화정이에게 말했다.

“화정아. 왜 있잖아, 그거. 네 가슴속에다 넣고 단 한시도 떨어트리지 않고 있는 하얗고 말랑말랑한 구슬.”

그제야 화정이의 머리가 회전을 했다.

“아아∼ 방울방울이?”

소연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그거야. 주인님께서는 지금 그걸 말씀하시는 거였어.”

“헤헤, 그렇구나. 난 또 동천이 나한테 쯔꾸 쨔꾸 하길래 그런 이름의 먹는 걸 달라는 줄 알고 깜짝 놀랐지 뭐야?”

그게 왜 먹는 걸로 인식됐는지는 잘 몰랐지만 누가 동천의 강시가 아니랄까봐 식탐 하나는 만만치 않은 화정이었다.

여하튼, 동천은 그녀가 인면지주의 알을 인식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헛소리 그만 하고, 그 알 지금 어딨냐?”

동천이 고개를 삐딱하게 만들어 불량스럽게 묻자 화정이는 자신의 가슴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휘휘 젖는 듯 하다가 새하얀 빛을 발하는 아이 주먹만한 크기의 알을 꺼내들어 보여주었다.

“어디 있긴, 여기 있지. 그런데 이건 왜?”

“일단 내놔봐.”

그렇게 화정이의 손에서 인면지주의 알을 가로챈 동천은 생각했다.

‘아까 그렇게 만졌을 땐 잡히지 않았던 알이 어떻게 저 녀석의 가슴속에서 나온댜? 거 참, 희한하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동천은 바로 관심을 끊었다.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유 백색의 말랑말랑한 인면지주의 알을 자신의 시선과 맞춘 뒤 자세히 살펴보았다.

예전에 보았을 때에는 뿌연 안개와 같이 속이 비치지 않았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숙성(?) 되었는지 지금은 약간 맑아져 속의 내용물이 희미하게 내비치는 상황이었다.

“확실히 거미새끼는 거미새끼네. 다리가 많은걸 보니.”

“정말? 거기 거미새끼가 있어? 어디어디?”

동천은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으면서 그것도 모르고 있는 화정이를 한심하게 바라본 뒤 자신의 손을 잡아당기는 그녀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야, 아직 다 안 봤으니까 넌 이따가 실컷 봐.”

그러자 화정이는 동천의 손을 끌어 당겨 보는 대신,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 요리조리 얼굴을 돌리며 살펴보았다.

잠시 신기한 듯 쳐다보던 그녀가 말했다.

“동천, 방울방울이 차갑고 좋지? 그치?”

“얼굴 치워라. 정신 산만하다.”

“어, 알았어. 차갑고 좋지? 그치?”

대답을 안 해주면 계속 반복해서 물어볼 태세였다.

귀찮아진 동천은 그렇다고 말해줬고 화정이는 좋아서 ‘와아, 와아!’를 연발했다.

‘지랄한다.’

내심 혀를 찬 동천은 곧 인면지주의 알로 초점을 맞추었다.

‘가만 있자……! 이걸 이 몸이 드셔서 내공에 보탬을 주는 것이 나을라나, 아니면 부화되도록 놔뒀다가 실 좀 뽑아서 옷이나 한 벌 구비하는 게 나을라나?’

인면지주의 알은 음(陰)한 속성이어서 동천이 복용하고자 한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항광의 내공조차 아직 다 흡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작(?) 몇 십 년 정도의 내공이라면 모를까, 최소 2갑자에 달하는 인면지주의 알이라면 현재 동천의 능력으로 보았을 때 백이면 백, 전부를 흡수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미처 흡수하지 못한 인면지주의 기운은 동천의 세맥과 뼛속으로 스며들어갈 것이 분명했고, 속성은 비슷해도 엄연히 다른 항광의 독공과 잦은 마찰을 빚을 것이 또한 분명했다.

하여, 당장에는 드러나진 않겠지만 차후에 환골탈태를 할 때나 내공이 극성으로 올라갔을 때 크나큰 부작용으로 다가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동천, 그거 다 보면 방울방울이 나한테 다시 줄 거지? 그치?”

화정이가 무언가를 느꼈는지 입맛을 다시고 있는 동천에게 물었다.

동천은 대답해주었다.

“압수야.”

“뭐어? 동천, 장난치지마. 줄 거지? 우웅…, 아까 돌려준다고 했잖아아∼.”

청천벽력 같은 대답에 두 눈이 동그래진 화정이는 뒤로 갈수록 울먹이는 어투로 매달렸다.

동천은 당장에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화정이의 눈동자를 보자 찔리는 것을 느꼈지만 내공증진의 유혹이 컸기에 매정하게 뿌리치기로 했다.

“훠이! 저리가! 이건 이 몸의 기가 허할 때 몸보신용으로 잡수실 테니까.”

결국 화정이는 울음보를 터트렸다.

“으앙∼! 동천 거짓말쟁이! 흑흑, 내 방울방울이 돌려줘! 돌려줘! 돌려줘어잉!”

“에그, 돌려줘?”

“흑흑, 흑……. 응!”

울다가 두 눈이 초롱초롱해진 화정이가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인면지주의 알을 올려놓은 뒤 핑그르르 돌렸다.

“자, 돌렸지? 이제 됐지?”

“…….”

화정이가 할 말을 잃었다는 것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어서이리라.

설마 하니 저따위 짓을 할 줄 그 누가 예측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동천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것은 좀 심했다고 생각한 소연은 재빨리 중재에 들어갔다.

“주인님, 그거 복용하시려고 그러죠? 음, 그것도 좋지만 제 생각에는 부화시켜서 키우는 게 낫다고 봐요. 왜냐하면 실을 뽑아서 무기나 각종 물품을 만들 수도 있고, 소매 안에 감추고 다니다가 위급한 순간에 공격하도록 훈련을 시킬 수도 있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암기처럼 쏘아져 나가 상대방을 물어 녹이는 상황을 요.”

귀가 얇은 편이었던 동천은 듣기에 또 그럴 듯 하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을 느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비장의 한 수를 가지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기 때문이다.

“호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를 잡자고?”

소연은 먹혀들어 가는 것 같자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인님. 사실 내공증진의 영약은 나름대로 쉽게 구할 수는 있지만 인면지주의 알은 정말 천운이 닿지 않는 한 절대로 구할 수가 없는 보물 중에 보물이잖아요.”

‘보물 중의 보물’ 이라는 말을 듣게 된 동천은 하마터면 자신이 큰 실수를 할 뻔했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는 없지만(?) 팔아야 할 상황이 오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에헴! 음, 그러고 보니 키워서 잘 활용해야겠구나.”

소연은 반색을 하며 대답했다.

“그럼요. 잘 생각하셨어요. 호호호!”

동천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나직이 웃는 소연에게 물었다.

“근데 이건 언제 부화 하냐?”

“예? 그, 글쎄요?”

“몰라?”

“네에, 그게 잘…….”

모르겠다는 그녀를 살짝 째려본 동천은 이내 표정을 풀고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긴장 풀어. 일단 밥이나 차려오고, 알의 부화에 관해서는 내일 아침까지 알아와.”

“예, 그럴……. 예? 그, 그걸 어떻게 내일 아침까지 알아와요?”

고개를 끄덕이던 소연이 화들짝 놀라 얼굴을 쳐들자 동천은 한쪽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힘들어?”

소연은 애써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죠. 주인님도 참. 호호.”

“그래 알았어. 그럼 모레까지 알아와.”

“윽! 주인님, 그것도 좀 힘들겠는데요.”

마침내 동천은 폭발했다.

“아씨! 내일도 힘들다, 모레도 힘들다! 그럼, 글피도 힘들겠네? 참 나, 도대체 니가 할 줄 아는 게 뭐냐?”

소연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했다.

“주, 주인님. 그런 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몰라요. 억지쓰지 마세요.”

동천은 두 눈을 부라렸다.

“억지? 지금 니가 공정함의 대명사인 이 몸 앞에서 억지라고 말했냐? 좋아, 그럼 이 몸이 한 달 안에 알아내면 너 어쩔래? 이 몸이 시키는 일은 무조건 다 하기. 어뗘? 할텨?”

소연은 그게 공정함이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괜히 큰일날까 싶어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건을 들어봐도 이제껏 자신이 해 온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손해보는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저기, 주인님. 그럼 전 식사 준비하러 나가봐도 되죠?”

“응? 어, 그래. 되도록 빨리 가져와. 그리고, 화정아. 옜다. 쌍방울 다시 줄 테니까 잘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이 몸이 다시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줘. 행여나 다른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넘겨주지 말고. 알았지?”

동천이 소연과 대화를 하는 동안 공 던져주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맑은 눈망울을 내비치던 화정이는 건네주는 인면지주의 알을 감싸 쥐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동천, 고마워! 나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안 보여주고 넘겨주지도 않을게! 아, 방울방울. 내 방울방울. 에헤헤!”

찌꾹, 찌끅! 찌이―꾹!

화정이는 좋아하는 걸 넘어서 알을 터트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천은 설마하니 정말로 터지겠느냐는 생각에 주의만 주고 말았다.

그렇게 기다리다 저녁을 먹은 그는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호랑이 굴에 억지로 들어가는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사정화에게 찾아갔다.

“아, 차 마시는 중이셨네. 아가씨, 언제 가실 예정이세요?”

정원과 마주 앉아 식후의 차를 마시고 있던 사정화는 상체를 약간 틀어 동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다 마시고.”

그녀의 말이 끝나자 정원이 입을 열었다.

“켈켈, 약소전주. 노신은 안 보이는가?”

‘너무 잘 보여서 목 조르고 싶다.’

“하하, 당연히 보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안부인사를 여쭈려고 했습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시죠?”

정원은 엎드려 절 받기이지만 일단 안부를 물어왔으므로 대답을 해주었다.

“늙으면 다 그렇지. 흘흘, 자네도 내 나이가 되면 하루가 지날 때마다 어제보다 피곤한 듯한 느낌을 받을 걸세.”

그렇게 피곤한 김에 제발 좀 죽어서 편해지라고 내심 기도한 동천은 아직도 정정한데 그 무슨 말씀이냐고 인사치레를 해주었다.

사정화는 서 있는 동천에게 말했다.

“거기에서 그렇게 있지 말고 이리 와서 기다리는 동안 과일이나 먹어.”

“헤헤! 그럴까요, 그럼?”

마다 않고 자리에 앉은 동천은 거의 손대지 않은 상태의 과일들을 하나 둘씩 냉큼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사정화는 뜬금 없는 사안에 관해서 물었다.

“동천, 화정이와 소연에게는 손 안 댔겠지?”

“우물우무…, 컥? 켁켁! 쿨럭쿨럭! 흐아, 흐아. 아주 주느 줄 아랐다. 험, 당연하지요. 그랬다간 아가씨께 맞아 죽게요?”

화정이를 조금(?) 건드리긴 했지만 그거 가지곤 크게 악화될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동천은 당당하게 말했다.

사정화는 그런 동천의 심중을 살펴보려는 듯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고 이내 말했다.

“뱉은 거 닦아.”

“예? 예, 아가씨. 헤헤, 당연히 닦아야죠. 아? 여기도 튀었네? 오잉, 여기도?”

동천이 어렸을 적의 실력을 발휘해 근처의 수건으로 식탁을 깨끗이 닦는 동안 사정화는 정원과 공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파 쪽에서 발굴 인원의 우위를 차지하려는 듯 싶다고?”

“켈켈, 그렇습니다. 그런 쪽으로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허점을 파고든 것 같습니다.”

“혈사교와 환마교도 쪽도 우리와 비슷해?”

“비슷한 게 아니라 똑같이 당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인력의 숫자가 본교가 20명, 환마교가 22명, 혈사교가 20명인데 반해 무림맹은 30명, 오련 또한 32명, 그리고 만독문이 28명입니다. 켈켈, 거기에다 감시단의 고수들 또한 정파 쪽에서 많게는 3명, 적게는 2명까지 더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아가씨의 방문 시 조치가 필요할 듯 보입니다요. 켈켈켈!”

마도 쪽에서는 발굴단이야 공동이기 때문에 사람의 숫자에 관하여 무관심했고, 으레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던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조정을 실시할 명분이 생기지만 만독문이라는 변수가 있기에 그게 또 여의치 않았다.

숫자의 합산 면에서 정파가 62명이고 마도 또한 62명이어서 중립을 자처한 만독문의 숫자를 제외하면 동등한 노동인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만독문의 행보는 중립이라고 보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다는 것이 마도 문파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암흑마교와 혈맹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정보를 교환하거나 왕래가 없을뿐더러 되려 정파와 의견을 같이 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기 때문이었다.

“할멈, 노동자들의 틈에서 무슨 수작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어. 그것을 거론하면 괜히 속이 좁은 것으로 비추어지지. 조정할 수 있는 것은 감시단의 고수들뿐이니 그렇게 알고, 만독문에 관해서는 따로 조치를 취할 거야. 그곳에 관해서는 신경을 끊어.”

“예, 아가씨. 켈켈.”

정원이 대답하자 그녀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 사정화는 동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넌 언제까지 닦고 있을 거지?”

“에?”

뭔 소리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뜬 동천은 뒤늦게 식탁의 구석구석을 반짝거릴 정도로 열심히 닦고 있는 자신의 손을 발견했다.

아마도 사정화의 눈치를 보며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니 손만 자동적으로 식탁을 닦고 있었던 것 같았다.

동천은 재빨리 손을 내리며 멋쩍게 웃었다.

“아하하. 이제 그만 닦아야죠. 안 그래도 바로 중단하려고 했어요.”

그런 모습이 별로 탐탁치 않았던지 사정화는 차갑게 굳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 이제 갈 생각이니까.”

상전이 일어났는데 수하가 덜 먹었다고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자 동천은 참 이기적인 년이라고 욕을 하며 뒤따라 일어났다.

“헤헤, 저도 다 먹었어요. 어서 가요.”

“켈켈켈! 약소전주가 욕 좀 보는구먼.”

‘주둥이 닥쳐!’

동천은 실실 쪼개는 정원의 안면을 냅다 후려갈기려고 싶었지만 그놈의 신분 차이가 뭔지 결론은 언제나처럼 두고보자로 끝이 났다.

그들은 그렇게 발굴 현장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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