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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712화


서장(序章).

하늘의 도리(道理)란 항상 그러하다. 무언가를 얻는다면 무언가는 잃게 되는 것이 세상사 당연한 이치……. 허허! 얻는 것은 확실하건만 잃는 것을 알지 못하매, 하늘의 공정함이 너무도 야속하구나.

정해진 운명의 만남.

“멈추시오!”

소로(小路)를 걷고 있던 노인과 청년은 난데없이 들려온 고함에 순순히 멈추어 섰다. 경공술을 발휘하던 것도 아니었고 화급을 다투는 상황도 아니었는지라 상대가 멈추라고 하니 멈추어 준 것이다.

“노부에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는가?”

수수한 용모에 기품이 서린 듯한 노인이 상대와 눈을 마주하자 길을 막고 선 사내들 중 하나가 거칠게 나가려던 생각을 바꾸고 정중히 말했다.

“이 길로 계속 가시게 된다면 천마동이 나오게 됩니다. 신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흠! 그런가? 허허, 제대로 찾아오긴 했나보구먼. 그래, 자네들은 어느 문파의 사람들인가?”

되려 질문하는 노인의 행동에 길을 막은 자들의 안색이 눈에 띠게 험악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눈에는 이 노인이 한낱 촌부로만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촌부가 무림인들이 득실거리는 이 험난한 곳까지 올 수 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머리를 굴리는데는 당최 소질이 없는 자들이어서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때 다행스럽게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던 처음의 사내가 공손히 대답을 해주었다.

“저희들은 혈사교의 소속으로서 실력 이하의 무림인들은 걸러내라는 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와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 졌기에 현재는 출입이 완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기회랍시고 몰려드는 어중이떠중이들이 꼭 있었던 만큼, 적어도 일류 이하의 잔챙이들은 출입을 통제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사건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거든 신분을 밝혀달라는 뜻이기도 했고 말이다. 다행이 사내의 말을 잘 이해한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는가? 허면 어쩔 수 없지. 노부와 이 아이는 암흑마교의 진영으로 가는 중일세. 노부는 장노삼이라고 하고 이 아이는 도연이라고 하지.”

그 말에 사내들의 안색이 바로 풀어졌다. 알다시피 혈사교와 암흑마교는 현재 공동전선을 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암흑마교의 소속이셨습니까?”

“허허, 나는 아니지만 이 아이는 암흑마교의 소속이 맞다네. 바로 약왕전의 소전주를 주군으로 모시고 있지.”

“아, 그러셨군요. 그럼 간단한 절차가 필요하니 증명패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증명패가 없었던 장노삼은 도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연은 약간 난색을 짓다가 하는 수 없이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소전주님의 특별 지시로 신분을 숨긴 채 정파에 머물고 있었던 터라 현재 증명패를 소지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애초에 위험을 방지하고자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순간 사내들의 기세가 달라졌다. 그런 거짓말은 충분히 지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이라는 확증 또한 없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말씀은 이해하겠습니다만 이렇게 보내드렸다가 일이라도 터지는 날이면 저희들의 처지가 무척이나 곤란해집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암흑마교 측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1각은 넘지 않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일개 마도의 무사치고는 너무도 바른 예의이자 장노삼은 잠시 억류를 하겠다는 뜻임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지 않았다. 이제 다 온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굳이 분란을 일으킬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말이다. 하여 그는 허락했고, 잠시 후 찾아온 암흑마교의 무사가 바로 통과를 시켜주어서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그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혈사교의 무사들은 알지 못했지만 약소전주의 수하라는데 그 진위여부를 떠나서 꼬치꼬치 캐물어 볼 정도의 담력을 지닌 하급 무사가 암흑마교에는 없었던 것이다.

“허허, 미안하네만 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

생각 외로 길어지는 산행에 장노삼이 묻자 암흑마교의 무사는 짐짓 과장된 행동을 보이며 대답을 해주었다.

“어이쿠!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다른 분들도 아니고 약소전주님의 일행 분들이신데 어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십니까? 헤헤, 안 그래도 다 와 가는 중이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저기 보이는 저 고개만 넘어가시면 곧 보이실 겁니다.”

그의 말대로 삼엄한 경비 속에 암흑마교라는 깃발이 도처에서 휘날리는 모습을 곧 발견할 수 있었다. 도연은 거기까지 당도해서야 자신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말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하급 무사를 바라보며 약간이나마 미안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분을 확인할 생각조차 않고 바로 본영까지 데려왔던 것이니 내심 얼마나 가슴을 졸였겠는가. 확실히 동천의 악명은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연아! 흑흑, 왜 이제야 왔어!”

도연의 신분을 확인 시켜준 것은 다름 아닌 소연이었다. 도연은 반가운 마음에 그녀와 대화를 나누려고 했었으나 어쩐지 그녀가 반가움에 우는 것이 아닌 것 같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불안감을 느끼며 다급히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 소연아! 혹여, 주군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벌어진 거니? 그런 거야?”

주위의 사람들이 제발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좀처럼 진정을 하지 못하던 소연은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흐윽, 그게 말이지. 주인님께서……, 처, 천마동에 들어가셨어. 흑흑흑!”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진 도연은 자리를 옮기자고 말한 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그에 소연은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친구인 도연의 존재에 안도감을 느꼈는지 그제야 조리 있게 설명을 해줄 정도로 진정이 되었다. 덕분에 차분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듣게 된 도연은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음미할 수 있었다.

“그랬었구나.”

무심한 듯한 차가운 목소리에 소연은 소름이 돋았지만 도연의 표정은 결코 무심하다고 할 수 없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은 무엇인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인내하고 있는 듯 했고, 그의 주먹은 으스러져라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간발의 차로 시간을 맞추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내가 조금만 더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아껴가며 속도를 냈더라면 주군을 옆에서 보필할 수 있었을 텐데! 크윽!’

주먹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은 이제 전신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분노가 제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어깨를 집는 따스한 손길이 있었다. 이제껏 담담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노삼의 손이었다. 도연은 그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것을 인지한 장노삼은 그에게 말했다.

“걱정 말거라. 동천은 틀림없이 무사할 테니까!”

확신을 하는 듯한 대답에 도연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그렇게 단언하실 수가 있는 겁니까?”

장노삼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분하지만 노부가 단언하건대 녀석의 집안 사람들은 대대로 장수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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