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722화
쩌저저저저! 퍽!
벽이 갈라지고, 이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동천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였으며 그의 고막을 후벼파듯 미친 듯이 울어대는 윙윙거림은 그의 정신을 마구 헝클어 놓기에 충분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쉬이 정신을 놓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화정이에게 받은 기운을 다시 되돌려줘야만 했기 때문이다.
휘익!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그의 전신을 스쳐지나가며 허공의 존재를 알려왔다. 아울러 동천은 두려움 반 안도감 반이 뒤섞인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제엔장, 끝도 없이 떨어지네.’
언제 바닥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그의 솜털까지 곤두서게 만들었지만 앞서 말했듯 동천은 뜻 모를 안도감에 정신을 추스르고, 화정이에게 받은 기운을 되돌려주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녀가 동천에게 보내준 기운은 내공이라기보다 생명의 기운에 가까웠기에 서둘러 돌려주어야만 그녀가 안전해지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화정이의 기운은 동천과 파장이 잘 맞는지 그의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아우러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천에게만 일방적으로 좋은 상황으로서 만일 상대가 화정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동천은 필시 그대로 꿀꺽했을 것이 분명했다.
“돼, 됐다! 윽?”
자신의 몸 속에 들어와 있던 화정이의 기운을 모두 돌려보내 주자 동천은 심정적으로 크나큰 상실감을 느꼈던지 돌연 현기증까지 느꼈다. 원래 정상의 몸이 아니었던 그였기에 긴장이 풀어짐과 동시에 급격한 피로가 엄습해왔던 것이다.
“아아아아악!”
그때 어디선가 돼지(?) 멱따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실제로 그런 비명소리는 아니었지만 정신이 가물거리는 와중에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여서 동천의 귀에는 그렇게 들려왔다는 뜻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 덕분에 겨우 정신의 끈을 잡아챈 동천은 누워 있는 자세로 떨어지던 신형을 가까스로 움직였다. 그리곤 힘겹게 서 있는 자세로 세운 뒤 천천히 왼발을 축으로 회전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큭? 더, 더럽게 힘드네!’
떨어지는 속도와 진탕된 내부가 줄다리기를 하자 귀영신법 상의 귀영낙화(鬼影落花)가 쉽사리 제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척하면 척이라는 말이 있듯 화정이가 같이 돌아주며 회전에 도움을 주자 그제야 귀영낙화의 위력이 본 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다.
미세하지만 몸이 가벼워지고 떨어져 내리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 같았으며 급기야는 그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제야 동천은 한 가닥이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그의 발 밑으로는 희미하지만 투명한 막이 생성된 듯한 모습이 보였다.
‘내력의 지속적인 보충이 어려워 그렇지 바닥이 매끄럽기만 하다면 최소한 무사할 수 있고, 최대로는 다리가 부러지는 선에서 그칠 수 있을 것 같다. 으으, 그런데 진짜 다리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예전에 귀영낙화를 수련하다 엄지발가락이 부러졌을 때의 고통이 되살아나는지 동천은 심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발가락 하나 부러진 것도 그 고생을 했는데 그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다리 전체가 부러진다고 생각하자 눈앞이 깜깜했던 것이다.
“헤헤, 동천 괜찮아?”
그때 되돌려 받은 기운을 몸의 회복에 사용하느라 그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화정이가 동천을 더욱 꼭 안으며 물어왔다. 이때 동천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튀어나온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하마터면 자세가 흐트러질 뻔했지만 용케 회복하고 대꾸했다.
“으으, 야! 너 같으면 지금 이게 괜찮아 보이냐? 그리고 이 몸은 무사히 착지하는데 신경을 집중해야 하니까 이제 말 걸지마. 알았어?”
“응, 알았어!”
동천의 목소리는 퉁명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어쩐지 평정을 되찾은 목소리였다. 그것을 느꼈던지 대답하는 화정이의 목소리 또한 밝았다. 그런데 이제는 착지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하는 이때 자꾸만 그의 신경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아까부터 들려오는 요상한 비명소리였다.
‘젠장! 이제는 환청까지 계속 들리나?’
쉽사리 단언할 수 없는 부분이었음에도 그는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구멍이 뚫렸으니 남도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지만 사람이 저렇게 악악거리며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댈 수는 없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아아아악!”
하지만 그는 곧 점차 선명하게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환청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뭐, 뭐지?”
“몰라, 동천? 아까부터 소릴 질렀는데.”
“이씨! 이 몸이 귀머거리냐? 그걸 못 듣게? 내 말은 누가 저 지랄로 시끄럽게 하냐는 거지!”
면박을 주는 동천의 행동에도 화정이는 전혀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상대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몰라? 걔잖아, 걔. 소홍이.”
“뭐, 뭐시여?”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든 동천은 보이지도 않는 위를 쳐다봤다가 하마터면 균형을 잃을 뻔했다.
“이크크! 니,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목소리 듣고 알았지. 헤헤!”
동천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흐미! 넌 저 목소리가 사람의 목소리로 들리디?”
순간 자신이 말해놓고도 강소홍을 너무 폄하했다고 생각했는지 동천은 재빨리 머리 위를 향해 소리쳤다.
“강 소문주님! 저희가 소문주님의 아래에 있거든요? 하지만 언제 바닥에 떨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우리와 합류해야 합니다!”
혹시나 또 다른 사람도 떨어지는 중일까 싶어 평소처럼 그녀를 부르자 그녀도 동천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거짓말처럼 비명소리가 뚝 그쳤다. 그러나 잠시일 뿐이었고 그녀는 다소 급한 듯 대답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하죠?”
“잘해야지!”
화정이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천이 재빨리 알려주었다.
“어떻게 내려오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몸을 걷는 것처럼 바로 세워서 공기의 저항을 줄이세요! 그래야 저희랑 가까워 질 테니까요!”
바로 이해한 강소홍은 비록 보이진 않지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두려워 마냥 비명만 질러댔던 것이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이중적일지는 몰라도 어느새 침착해지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요! 천근추를 사용하겠어요!”
“예, 기다릴게요!”
힘차게 대답해준 동천은 언제 바닥이 보일지 모르는 다소 비관적인 상황이었음에도 그녀를 닦달하거나 재촉하듯 종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이 그것이 효과를 봤는지 신형을 바로 세워 천근추의 묘리를 살린 그녀가 순식간에 동천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왔고 그는 재빨리 소리치며 그녀를 잡아챘다. 지닌 바 감지력의 감각을 최대한 동원하여 거의 본능적으로 잡아챈 것이다.
“그만! 잡았……, 됐다!”
“아! 후우, 고마워요.”
그제야 살았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녀를 잡아챈 것은 상당량 운이 작용한 결과였다. 동천의 감지력이 큰 몫을 한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지만 떨어지는 장소가 동천과 거의 일직선상이었다는 것은, 운이 작용했다고 보지 않는 이상 좀처럼 만나기 힘든 행운이었던 것이다.
“뭘요. 그것보다 괜찮아요? 아, 그리고 그대로 회전에 몸을 맡기면서 몸을 가볍게 하세요. 할 수 있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은 팔과 부드러운 동체를 통하여 잔 떨림이 전해져 오자 동천은 먼저 그녀의 상태부터 물어본 후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내심 두려움을 참고 있었던 그녀는 빠르게 떨림을 회복하곤 대꾸해 주었다.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보다 이젠 어쩌죠?”
꼭 필요한 질문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쓸데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제아무리 잔머리에 강한 동천일지라도 딱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최대한 귀영낙화에 신경을 쓰며 강소홍을 안심시키는데 주력했다.
“제 예감으로는 바닥이 보이려면 아직 좀 남은 것 같으니 충분히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보다 혼자 떨어지셨나요?”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 지금 당장에 곤두박질을 쳐도 이상하지 않을 판에 그저 예감만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좀 남았다는 이야기이자 강소홍은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그녀로서는 동천의 감지력과 예지력을 알 턱이 없으니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후우! 일단, 두 분이 떨어진 후 저 혼자 떨어졌으니 이후로는 알 길이 없어요. 그리고 어떠한 준비를 하겠다는 거죠?”
동천은 자신이 세운 계획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여겼지만 상대가 해결책부터 듣기를 원하자 하는 수 없이 대답해주었다.
“훗, 그래요? 그럼 평소처럼 누님이라고 부르죠 뭐. 아, 준비 문제는요. 바닥에 닿기 직전에 누님께서 화정이의 무릎을 발판 삼아 뛰어오른 후 능력껏 착지하시면 되요.”
“뭐? 그! 그……러엄, 너희는?”
호칭 문제로 싸울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바로 언쟁을 포기하고 물었다. 아무리 천길 낭떠러지라도 떨어지기 직전에 확실한 디딤판만 있다면 충분히 제 한 목숨 건질 수 있는 게 무림인이었다. 상대의 말대로만 된다면야 무엇이 두렵겠는가 만은, 반대로 나머지 둘은 죽겠다는 소리로 들렸으니 그녀로서는 묻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스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천은 씨익 웃으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 다정도 하셔라. 하하, 저는 걱정 마세요. 여기 화정이와 힘을 합쳐서 착지하면 되니까.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누님이 떨어져서 순서만 약간 바꾼 것뿐이에요. 헤헤, 그보다 이렇게 양손에 꽃을 쥐고 있으니까 나중에 잘못될 때 잘못될지라도 당장에는 기분이 좋은데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의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가하자 당황한 강소홍은 얼굴만 살짝 붉혔다. 어리긴 해도 엄연히 외간남자여서 당장에 떨어져야할 입장이었지만 그렇다고 매정하게 손을 뿌리치자니 허공 중에서 무슨 변수가 생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 놀리지 못해? 어린 게 엉큼하긴!”
“에이~, 남자는 다 그런 거예요. 엉큼한 것에 나이를 따지는 건 어리석은 거라고요.”
“동천, 엉큼한 게 뭐야?”
동천은 그녀를 잘 타일렀다.
“화정아. 이 주인님은 참으로 바쁘시단다. 그런 건 나중에 물어보지 않으련?”
“우웅! 뭐 그럴 게.”
현재 그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상황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음에도. 아니, 그보다 더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들의 대화는 다소 비정상적일 정도로 침착했다.
동천의 도움으로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며 떨어지는 상황이기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직접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과연 몇이나 이들처럼 침착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사람이라면 죽음에 무감각하거나 정신 나간 부류의 사람들. 혹은, 정신력이 범인을 초월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침착하게 대응하기란 요원할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강소홍으로서는 앞서 언급한 부류들 중에서 전혀 닮은꼴이 없었고 말이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혹시, 기절한 와중에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마 진짜로 그런 것일까?’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어 봤지만 아프다는 감각이 생생했다. 꿈은 아닌 것이다.
‘아아,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왜 이리 침착한 것인지…….’
그녀는 잘 몰랐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믿음이라는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동천의 행동이 믿음직하고 그의 말이라면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동천과 함께 있으면 그 과정이 어떠하든 기필코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별로 좋은 뜻의 믿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잠깐!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강소홍이 스스로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잠깐 사이에 동천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여, 퍼득 정신을 차린 그녀가 귀를 기울이자 희미하지만 무언가 모를 잡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글쎄……. 들리는 것 같긴 한데,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어.”
“으음, 그래요?”
대번에 심각해진 그들은 아래쪽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소리가 난다는 것은 이제 곧 바닥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였지만 그럴수록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살아남는데 한 가닥 희망이라도 걸어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그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화정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가르쳐 주었다.
“동천, 저 소리가 잘 안 들려? 저거 물소리잖아.”
“뭐? 넌 잘 들려?”
“응. 난 아까부터 듣고 있었거든. 근데 왜?”
태연한 화정이의 목소리에 울화가 치민 동천은 하마터면 양손을 들어 그녀의 목을 조를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바닥이 땅이 아니라 물이라면 지금까지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누님, 잘 들으세요! 우리가 귀를 기울여도 자세하게 들을 수 없을 정도의 거리였는데도 물소리가 들린 거였다면 적어도 고인 물은 아니라는 소리이고, 그 물의 흐름이 생각 이상으로 거칠다는 뜻이기도 해요! 여기까지는 이해했죠?”
강소홍은 굳어진 얼굴로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야.”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되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까! 거기에다 바닥이 깊은 물이라면 제 능력으로 셋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으니까 더더욱 그래요! 누님으로서도 괜히 서로 떨어졌다가 급류에 휩쓸려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는 불상사를 겪긴 싫겠죠? 그렇죠?”
강소홍은 약소전주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라는 식으로 대답을 유도하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거친 물소리가 확연히 들려오자 여자의 마음은 역시 갈대였는지 자신 있게 현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동천을 믿어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할게! 나, 난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동천이 목소리를 높였다고 그녀 또한 높이란 법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확연히 천둥과 같이 물소리가 들려옴에 행여나 자신의 목소리가 먹힐까 두려워 의식적으로 더욱 큰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그녀의 대답이 끝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음진 동천은 한껏 심호흡을 하더니 질끈 눈을 감았다.
‘씨부럴! 더럽게도 긴 바닥아. 이제야 밑바닥을 보이는구나. 오냐! 어디 한번 해보자. 이 몸의 운과 실력이 위인지, 아니면 네놈의 끈질긴 죽음의 손짓이 위인지!’
번쩍!
강소홍은 지근거리에서 동천과 마주하고 있었지만 단 한 점의 빛도 없는 공간이었기에 그가 두 눈을 감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찰나간 눈앞에서 두 개의 섬광이 번쩍였다 사라지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며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이때의 동천은 그녀가 떨건 말건 신경을 분산시킬 틈이 없었다. 그런 것은 살고 난 이후에 질릴 때까지 신경을 써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준비 됐죠? 가능한 내공을 끌어 올려 심맥을 보호하고 바닥이 꽤 깊거나 빠져나오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귀식대법을 운용하세요! 알았죠? 화정이도 알았지? 아참, 귀식대법은 죽지 않을 정도로 숨을 꾹 참으면 되는 거야! 화정이 알었어?”
“응! 동천!”
“그, 그래! 우린 잘 해낼 수 있겠지?”
쿠쿠쿠쿠쿠!
이제는 확연히 들릴 정도의 굉음이 그들의 고막을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산 속의 텅 빈 공간에 형성된 장소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거친 급류의 아우성 소리였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호흡이 가빠진 강소홍은 두려움을 물리치고자 자연스럽게 그들을 꼭 안았으며 그들도 화답하듯 서로를 꽉 안아주었다. 그때 그녀는 환청인지 몰라도 화정이가 ‘읍, 으흥!’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지만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덮치는(?) 뭉클한 무언가를 느끼곤 그녀 또한 비슷한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읍! 웁!”
놀라하는 그녀에게서 입술을 뗀 동천은 소리쳤다.
“하하, 살아남는다면 실컷 맞도록 할게요! 자아, 준비들 하시고! 서로 절대로 손을 놓치면 안 된다는 걸 잊지 말고!”
“너, 너는! 너란……!”
억울한 듯 소리치던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아랫도리가 서늘할 정도로 지척간에서 거친 물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휘몰아치듯 흘러가는 급류에 몸을 맡기고야 말았다.
풍덩!
콰콰콰콰콰콰―!
물살의 굉음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미약한 소음을 자아낸 그들은 이내 파도에 모래알갱이가 휩쓸리듯 급류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세 인간을 집어삼킨 물살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칠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