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86화
늘 그렇듯이 동천은 아침을 먹을 때가 되자 깨어났다. 아니, 깨워졌다는 말이 더 타당했다. 동천을 깨운 장본인은 화정이었다. 새벽마다 울어대는 닭을 보고 번뜩이는 재치로 생각해낸 동천은 화정이를 닭으로 생각했는지 자신이 밥 먹을 때를 기억하라고 한 뒤 그때가 되면 자신을 깨우라고 시켰다. 화정이는 닭도 아니면서 그때가 되자 어김없이 깨워주었다. 한껏 기지개를 켜면서 깨어난 동천은 잠에서 깨기 위해 일어나 앉은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잠시 후 어김없이 뽀뽀를 주고받았다.
“화정아. 가서 수련을 깨워라. 가서 밥 먹자고 해.”
동천이 명령을 내리자 화정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소연의 비명이 들렸다.
“아-야~! 아퍼! 이거 놔!”
그 소리가 들리자 동천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웃어댔다.
“큭큭큭…! 으헤헤! 역시, 아침은 이렇게 활발해야 된다니까?”
남의 고통은 동천의 행복.. 동천은 화정이에게 자신을 깨움과 동시에 가서 자고 있는 소연이도 깨우게 했다. 물론, 비명 소리를 들었듯이 평범하게 깨우는 게 아니라 자고 있는 소연의 볼따구를 잡고 늘어뜨리며 깨우라고 시켰다. 원래는 동천이 훨씬 늦게 깨어나지만 화정이에게 자신을 깨우라고 시킨 시간이 묘시(卯時): 오전 6시)였기 때문에 진시초(辰時初): 오전 7시)쯤에 깨어나는 소연은 동천보다 늦게 일어나는 꼴이 되기에 동천보다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소연도 아프긴 싫으니까 동천보다 일찍 일어나겠지만 아직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잠시 후 소연은 볼을 비비며 푸석푸석한 얼굴로 들어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화정이가 볼을 사정없이 꼬집었는지 소연의 볼은 벌겋게 부어있었다. 동천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킥킥.. 그래, 너도 잘 잤지?”
“예.. 반 시진 뒤에 밥 차려 올게요.”
소연은 별 할 말이 없는지 그 말을 끝으로 나갔다.
“그래라. 히히…”
동천은 자신만 일찍 일어나고 소연은 계속 잔다는 것에 대해 기분이 나빴었다. 그래서 운기조식을 취하느라 밥 먹기 반 시진 전에 깨어나는 동천은 그 시간에 소연도 잠을 못 자게 일부러 깨우는 못된 심보를 발휘했다. 동천은 운기조식을 한식경(30분)만 했고, 나머지 한식경은 풀렀던 허리띠를 다시 차서 몸을 움직이는데 소비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은 지나가는 개새끼보다 중히 여기지 않았는데 유독, 사부의 말은 철저히 지키는지라 동천은 운기조식과 수련할 때.. 그리고, 목욕할 때 빼고는 허리띠를 허리에 꼭 차고 다녔다.
“밥 가져와!”
모든 과정을 끝내고, 동천이 제일 처음 한 말이었다. 셋이서 오순도순 밥을 먹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오순도순 먹는 것은 동천과 화정이뿐이었다. 소연은 밥을 먹으면서 내내 자신에게 튀겨지는 건더기를 쳐내느라 밥을 먹으면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푸하하하–!!”
동천이 웃을 때마다 밥알과 반찬 찌꺼기가 사방을 튀겨나갔다. 이미 그런 것에 이력이 났는지 소연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하나하나를 일일이 쳐냈다. 그러던 중 건더기 하나가 소연의 수강(手剛)(?)을 뚫고 밥그릇에 안착했다. 그것을 보자 동천의 눈은 반짝!였고 소연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소연은 얼른 자신의 밥그릇에 처박힌 파편을 꺼내서 버리려고 했지만 그전에 움직인 사람이 있었으니…
“자..! 소연아. 이거하고 같이 먹어!”
동천은 웃으면서 고기 한 점을 자신의 파편 위에 올려주었다. 그러나 소연은 당연히 그것을 먹고픈 생각이 없었다.
“저.. 그만 먹으면 안될까요?”
동천은 열심히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엣! 먹어! 너, 주인님께서 친히 반찬을 올려줘서 먹으라고 권하는데 안 먹겠다는 거냐?”
소연은 질린 표정으로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녀로서는 먹을 수밖에 없었다. 소연은 목구멍에서부터 넘어오려는 것을 꾹! 참고는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서 씹어 삼켰다. 파편이 고기에 가려진 것이 그나마 작은 위로라면 위로였다.
“히히! 맛있지?”
‘나쁜 주인님…’
그 상황에서 나온 최고의 욕이 나쁜 주인님일 정도로 착했던 소연은 그래도 지금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는 고기가 맛있다고 생각했다. 소연은 화정이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는지 자신의 밥그릇에 상당수의 파편이 튀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잘도 먹었다. 이럴 때는 생각 없는 화정이가 부러웠다.
“에휴…”
소연이 나직이 한숨을 쉬며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동천의 파편이 소연의 밥그릇으로 다시 날아왔다. 이번에는 왕건더기였다. 소연이 다시 놀라고.. 그것을 본 동천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기 한 점을 집어 주었다.
“자..! 소연아. 이거하고 같이 먹어!”
밥을 다 먹고 난 동천은 여지없이 자신의 뒷마당으로 걸어나갔다.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늦게 나갔었는데 어제 도연이 몸조리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에 좀 짜증이 나도 도연한테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시간은 거의 지키는 편이었다. 역시나… 뒷마당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도연은 물통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동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천이 오는 쪽으로 물통을 들고 있던 도연은 주인이 나타나자 재빠르게 들고 있던 물통을 내려놓고는 깍듯이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오냐.”
인사를 받고 난 동천은 방금 전 도연이 뭐하는 짓이었나 해서 물어보았다.
“왜 물통은 들고 있었냐?”
도연은 주인의 질문에 물통을 바라보며 얼버무렸다.
“그냥, 들어봤습니다.”
도연을 계속 바라보던 동천은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너, 혹시.. 그거 계속 들고픈 생각 없냐?”
“없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