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87화
수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안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집안일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수련의 몫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집안일에 소홀하면 자잘한 먼지가 곳곳에 알게 모르게 쌓이기 때문에 요새 무공 수련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던 수련은 날을 잡아서 대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에구구.. 힘들어라.”
바닥을 닦다가 허리가 아팠는지 수련은 잠시 허리를 쭈-욱! 폈다.
쉰 김에 마저 쉬고 싶었지만 생각 외로 먼지가 구석구석에 쌓여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쉬고 다시 청소를 했다. 일층을 다 청소한 수련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수련이 이층에서 처음으로 청소하러 간 곳은 정원의 방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수련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냄새 때문이었다. 정원의 방에는 시큼털털한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코를 막고 손을 휘젓던 수련은 얼른 창가로 달려가 문을 열어젖혔다.
“푸-하! 아휴, 냄새…”
수련은 참았던 숨을 얼른 내뱉었다. 창문으로 들어왔던 상쾌한 공기들은 잠시 후 방안의 공기를 이끌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당연히 다시 냄새를 맡게 된 수련은 얼른 코를 부여잡았다. 수련은 코맹맹이 목소리를 냈다.
“청목 할머니는 목욕도 안 하나?”
말을 하고 보니, 수련은 정원이 목욕을 하는 걸 여지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대신 정원의 빨랫감은 보통 사람보다 두 배나 많았다. 목욕을 잘 안 하는 대신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한 벌 입고, 나머지 한 벌은 잠자고 깨어날 때까지 입었다가 벗었다. 새 옷으로 냄새를 줄여보려는 속셈이었다.
사정화는 그런 정원의 행동을 보고 눈치챈 것 같았지만 정작 빨래를 해주는 수련은 다 늙은 할머니가 주책이라고 속으로 투덜댔다. 방안 구석구석 들춰내며 청소를 하던 수련은 간간이 정원이 꼭꼭 숨겨놓은 냄새나는 속옷들을 찾아내고는 자신의 앓던 이가 빠진 듯 속 시원해했다. 청소를 다하고 정원의 방에서 나온 수련은 일층으로 내려가 몇 장의 속옷들을 물에 담가둔 후 오랫동안 비워 두었던 손님용 방들과 사정화의 방을 치우러 다시 올라갔다.
끼이이-이익–
너무 소홀히 했는지 손님용 방문은 기름이 말라서 거친 소음(騷音)을 터트렸다. 그리고 다른 방들과는 달리 눈에 띄게 지저분했다. 수련은 먼지가 살짝 얹혀진 물건들을 닦아내며 푸념 섞인 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못 살아.. 며칠 소홀히 했다고 너희들이 나한테 그럴 수가 있니?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다 알았다구! 흥! 두고 봐라.”
수련은 자신이 닦는 물건들과 일방적인 대화를 나누며 더욱더 벅벅! 닦았다. 물건 닦는 걸 다 끝내고 침대 이불을 창가에 올려놓은 수련은 조그마한 방망이로 거세게 두드렸다. 이불속에 숨어있던 먼지들은 사방으로 비산(飛散)하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수련은 먼지가 확! 풍기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먼지가 입에 들어갔는지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콜록! 콜-록! 읍.. 퇘. 너도 나를 안 도와주는 거니?”
눈물을 찔끔! 하던 수련은 옆 벽면 구석에 전에는 못 보던 것이 보이자 의아해서 다가갔다. 가까이 가보니 언제 생겼는지 몰라도 커다란 구멍이 훤히 보였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자 좀 찜찜했지만 별일 아니겠지 하고, 그 방을 나와 옆방으로 들어갔다.
수련은 얼른 가서 구멍을 찾았다.
구멍이 뚫린 반대쪽 벽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수련은 또다시 고개를 수그리고 구멍을 보았다. 당연히 아까 자신이 있었던 손님용 방안이 보였다. 몸을 일으킨 수련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입술을 내밀고는 다른 쪽을 살펴 보았다. 꼼꼼히 주위를 둘러본 수련은 마침내 침대 뒷편 모서리 부근에 또 다른 구멍을 발견하였다.
“이상하네? 이게 도대체 무슨 구멍이지?”
침대 밑쪽으로 기어들어간 수련은 바깥이 훤히 보이는 구멍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대충 크기를 가늠해보니 그 구멍의 크기는 자신의 머리통만 했다. 호기심이 동한 수련은 머리를 구멍 쪽으로 살살 들이밀었다. 처음에는 버거웠지만 고개를 흔들며 밀어보자 수월하게 들어갔다.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 됐다! 야호!”
마침내 구멍 바깥쪽으로 목까지 밀어 넣은 수련은 환호성을 지른 후 목을 요리조리 돌리며 밖을 보았다.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이 보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예전에 동천이 기거하던 집이 보였다. 오른쪽을 보니 정원(庭園)과 그 사이로 넓은 대로가 보였다. 그곳을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무와 돌로 둘러싸인 산이 보였다. 감상이 다 끝나자 수련은 고개를 뺐다.
“어? 이.. 이게….?”
고개를 약간, 돌려 빼보았다.
턱….
들어갈 땐 잘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이상하게도 턱이 걸렸다. 당황한 수련은 이번엔 고개를 수그리고 빼보았다.
탁….
입 부근이 구멍 벽면에 부딪혔다. 점점 불안함을 느낀 수련은 진땀을 흘리며 몸을 뒤로 땡겼다.
턱, 탁, 틱, 택..
턱, 탁, 틱, 택…
할 수 있는 목 동작을 다 해본 수련은 자신이 목이 빠지지 않는 이 현실(現實)에 대해 어이가 없었다.
수련은 소리쳤다.
“살려줘요-!”
점심이 되자, 동천은 어김없이 밥을 먹으러 물동이를 내팽개치고 자신의 방으로 달려왔다. 4일 동안 죽어라고(도연이 없는 동안은 좀 놀면서.) 물을 퍼부었는데도 기초 체력장은 그런 동천의 노력에 호응(呼應)을 해주지 않았다. 하룻동안 퍼 날라서 겨우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아도 다음날 와보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이에 동천은 무지하게 화가 났지만 그나마 조금씩 늘어나는 물웅덩이를 보고 작은 위로를 삼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 웅덩이가 몇십 분의 일조차 안 됐기에 금세 화를 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책을 읽느라고 물웅덩이를 생각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점심 시간은 한 시진이었기에 밥을 재빨리 먹어 치우고 난 동천은 시간이 남아돌아서 천천히 책을 읽고 있었다.
“으음.. 그래, 좋았어!”
동천이 혼자 중얼거리며 책을 읽고 있자 음식을 치우던 소연은 궁금해서 다가갔다. 동천이 화정이의 다리를 베고 누웠기 때문에 들려있는 책의 제목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소연은 책의 제목을 읽어 보았다.
“복(復)..수(讐)..혈(血)…전(戰)? 주인님! 그거 못 보던 책인데.. 어디서 나셨어요?”
한참 재미있게 책을 읽던 동천은 방해가 되자 짜증이 났지만 곧 자신의 넓은 마음으로 그 화를 식혔다. 동천은 책을 약간 치워서 소연을 보았다.
“이거?”
소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요.”
동천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을 했다.
“으응.. 이 책이 어디서 났냐면, 어젯밤 화정이하고 놀고 있는데 약간, 서재에 부딪혔었거든? 근데 거기서 이게 하나 떨어지더라고.. 그래서 뭘까? 하고 읽어보니 꽤 재미있더라? 그래서 지금 내가 잠깐 짬을 내서 읽고 있는 거야.”
동천의 말에 소연은 고개를 끄덕이곤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마저 남은 식기(食器)들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사실, 어젯밤 화정이와 일방적인 들어 메치기 놀이를 하던 동천은 바닥에 메친다는 걸 잘못해서 서재 쪽으로 메쳐버렸다. 당연히 서재의 모든 책들이 쏟아졌고, 투덜거리며 책을 제자리에 꽂아 넣던 동천은 복수혈전이란 영웅 소설을 보고는(삼류 소설인데 동천은 영웅 소설이라 생각했다.) 호기심에 읽어 보았다. 원래 삼류가 다 그렇듯이 흥미도는 짱이었다. 절반 정도를 읽다가 잠이 들었던 동천은 지금 마저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주씨 잘한다! 죽여! 찔러!”
몸을 움찔거리며 소리치는 동천을 내려다보는 화정이의 시선은 천진난만(天眞爛漫) 했다.
꼬르르-륵….
뱃속에서 밥을 달라는 신호(信號)를 벌써 여러 번 보내왔다. 그러나 수련은 그런 뱃속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아직 목이 빠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 바로 생리 현상이었다. 수련은 아까부터 오줌이 마려웠다. 그러나 지식인이 이런 곳에서 실례를 할 순 없다는 생각에 다리를 배배 꼬며 참았다.
“살려.. 줘… 요..”
당연히 들을 사람도 없겠지만 아까 하도 소리를 쳤더니 목이 다 아팠다. 잠시 쉬어서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은 힘을 줘서 소리를 질렀다간 쌀 것 같기에 마음대로 소리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서러웠다.
단, 한 번의 호기심이 이렇게 될 줄이야..
“히잉.. 배고프다. 그리고… 그보다 쌀 것 같애잉~~!”
그렇게 수련이 울먹이고 있을 때 무언가가 수련의 치마를 잡아끌었다. 이에 기겁을 하며 놀란 수련은 무의식(無意識)적으로 치마를 당긴 쪽에 발을 오므렸다가 내쳤다. 곧이어 “퍽!”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발의 느낌이 꽤 육중(肉重) 했다. 난데없이 발길질을 당한 무언가는 고통을 호소하며 뒤로 물러났다.
“찌-찍!”
기분 나쁜 소리를 들은 수련은 자신의 뇌를 자극해서 그 소리가 어떤 것인지 추적해 나갔다.
‘고양이는 야옹.. 강아지는 멍멍… 염소는 메에~… 호랑이는 어흥!… 나비는 나풀나풀… 쥐새끼는….??’
“꺄아-아-악!! 저리 가! 저리 가라구!”
수련은 겁에 질려서 몸을 마구 뒤흔들었다. 다리는 사정없이 허공을 난타(亂打)했다. 아마, 지금의 발차기는 그 어떤 고수라도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쥐 또한 마찬가지였다.
퍼퍼-벅!
운이 나빴는지 연속으로 세대를 얻어맞은 검은 쥐는 비명을 지르며 굴러 나자빠졌다. 그 비명 소리에 수련은 소름이 쫘-악! 끼쳤다. 아울러 시원함을 느꼈다. 수련은 울상을 지었다. 쥐 때문이 아니라 잠깐 동안 시원함을 느꼈던 부분 때문이었다. 지금은 시원함 대신 찝찝함이 느껴졌다.
수련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