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93화
“잘 해봐.”
“예.”
도연이 명령을 받들어 몸을 돌리자 수련이 미적거리다가 이미 밖으로 먼저 나간 도연을 뒤따랐다. 이를 본 소연이 수련을 불렀다.
“수련아, 너 어디가니?”
“어디가긴 어디가요. 제가 안내해 줘야 하잖아요.”
듣고 보니 그 말에 일리가 있었지만 동생을 걱정하는 소연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됐어. 내가 가줄게. 너는 여기서 잠시 쉬고 있어.”
수련은 고개를 도리 저었다. 그 쥐가 얼마나 무서운지 잊어버린 수련은 살쾡이처럼 거대한 쥐라는 언니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무섭긴 해도 남자가 같이 가니 문가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그 쥐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아니에요. 제가 가서 직접 확인해 볼 거예요.”
소연은 답답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자신도 무서워서 오한이 서리는데 그 자리에서 헤벌레~ 했었던 주제에 확인해 본다니.. 아까는 기억을 잃어버려서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것 때문에 탈인 것이다.
“안돼! 넌, 거기 가면 분명히 그 쥐를 보고 기절할 거야!”
“언니도 참! 기절은 무슨 기절을 해요. 제가 그렇게 연약한 애인 줄 알아요?”
소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넌 너무 연약한 애라구. 수련아. 다시 생각해봐! 그 쥐는 아주 무서워.. 나도 지금 생각하면 무섭단 말야.”
소연은 몸으로 떠는 시늉까지 하면서 동생을 위협(威脅) 해 보았지만 수련은 막무가내였다.
“그래도 갈래요.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수련아.. 다시 한번 생각해봐.”
“갈래요.”
두 여자가 바로 자신의 앞에서 쫑알거리자 드디어 참을 수가 없었던 동천이 안색을 굳히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야.. 니들 갈려면 가고, 말려면 말지 빨리 정해.”
주인의 굳은 얼굴에 소연은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예.. 그럴게요. 수련아. 우선 밖으로 나가서 얘기하자.”
언니가 자신의 손을 잡고 끌고 나가자 수련은 할 수 없이 끌려 나갔다.
“어어..? 언니, 너무 세게 잡아끌지 말아요.”
소연은 동천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알았어. 빨리 나와.”
밖으로 나간 둘의 목소리는 조금씩 멀어져 갔다. 자신과 화정이.. 이 둘만 남은 방안은 그제서야 조용해졌다. 동천은 살 것만 같았다.
“후아.. 이제야 조용해졌네. 하여튼 계집애들이 주둥이만 살아가지고.. 쯧쯧. 나중에 누가 데려갈는지… 그 인간들도 참 불쌍하겠다.”
도연은 안내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사정화의 집으로 가는 길은 자신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때 안내를 해주다가 쓰러져서 이번이 처음이긴 했지만 혼자 찾아갈 자신이 있었다. 도연은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두 여자가 뒤에서 입씨름을 하느라고 자신이 쳐다보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필요없는 존재들이기는 했지만 도연은 말없이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걸어갔다.
“호호호! 거짓말이죠? 그렇죠?”
“아니라니까. 정말 무섭고 커다란 녀석이었다고!”
“거짓말하지 마세요. 제가 아무리 쥐를 무서워하고 쥐에 관한 지식이 없다 해도 그렇게 큰 쥐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요. 호호! 거짓말이죠?”
소연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동생이 하도 답답해서 차라리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순간의 치우침으로 동생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남게 하고 싶진 않았다. 소연은 최선책을 생각해냈다.
“좋아. 그럼, 네가 가서 보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어. 대신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알았어?”
드디어 언니가 자신에게 지고 들어오자 수련은 신이 나서 폴짝! 뛰었다.
“야호! 알았어요. 후훗.. 제가 언니의 옆에서 꼭.. 달라붙어 확인해 볼게요.”
“에휴…”
다짐은 받았지만 왠지 믿음이 안 가는 동생의 행동에 소연은 그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도연은 사정화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연은 뒤를 돌아 수련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맞습니까?”
오긴 왔지만 확실하지 않아서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묵묵히 앞을 보며 걸어가던 인간이 갑자기 물어오자 수련은 얼떨결에 대답해주었다.
“예? 아예.. 여기가 아가씨 집이 맞아요.”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을 듣자 도연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입구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을 따라 걸어가던 도연은 걸음을 멈추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이 이상해서 수련이 물었다.
“저기.. 왜 그러세요?”
두리번거리던 도연은 고개를 돌려 수련에 초점을 맞췄다.
“생각해보니, 맨손으로 왔습니다. 쥐를 잡는 데 맨손으로 잡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도연의 이상한 행동에 내심 가슴을 조아렸던 수련은 그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아아.. 그거요? 제 방에 목검이 두 개나 있거든요? 거기서 줄게요.”
수련이 웃으며 앞서 달려나갔다. 소연은 그녀를 말리려고 했지만 동생은 어느새 저만치 달려간 후였다. 소연은 애써 동생을 잡지 않았다. 동생의 방에는 목검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가서 없으면 다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다시 돌아오는 동생의 손에는 목검이 들려 있었다.
“자, 여기 있어요.”
도연은 건네주는 목검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도연의 인사에 수련은 멋쩍은 듯했다. 그녀는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뭘요.”
둘의 인사치레가 다 끝나자 소연이 다가와 수련에게 물었다.
“얘, 그거 어디서 난 거니? 네 방에는 분명히 목검이 두 개밖에 없었을 텐데..”
수련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어댔다. 벌어진 손가락들 사이로 새하얀 수련의 이가 반짝였다.
“호호. 언니 말투가 왠지 내 방에는 목검이 없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소연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들리는데요… 가 아니라 정말로 네 방에는 목검이 하나도 없어. 내가 아까 말했듯이 하나는 네가 이층에 버려두고 왔고, 다른 하나는… 아! 너 그거 문 앞에서 주웠구나? 그렇지?”
그제서야 자신이 수련을 업고 내려와서 목검을 문 앞에 버려둔 채 주인님께 돌아갔던 것을 기억해냈다. 소연은 그제서야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았다는 듯 웃음 지었다. 수련은 고개를 끄덕이며 언니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맞아요. 거기서 주웠어요.”
소연은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지자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쥐를 잡으러 가야 하는데 한자리에서 너무 많이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소연은 도연을 불렀다.
“도연아, 같이… 어?”
없었다. 옆에 있던 수련도 도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참을 찾아본 수련이 말했다.
“어디 갔죠?”
소연은 동생의 손을 붙잡고 달려나가며 말했다.
“빨리 가보자. 걔 먼저 갔나 봐.”
그렇구나.. 하고, 언니를 따라 달려가던 수련은 생각해보니 언니가 도연에게 반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수련은 걸음을 멈추었다.
“언니, 언제부터 저 도연이란 사람한테 말을 놓게 되었어요?”
소연은 빨리 도연을 쫓아가야 하는데 동생이 쓸데없는 질문을 해대자 말을 안 해줄 수도 없고 해서 한숨을 내쉰 뒤 간단하게 말해주었다.
“나하고 나이가 같아서 말을 놓게 됐어. 이제 됐지?”
수련은 모자란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묘하게 웃었다.
“안됐어요. 그거 말고, 좀 더 자세하게 말해줘요… 예?”
수련의 머릿속에는 쥐라는 단어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만 언니가 도연이라는 사람에게 어떤 계기로 말을 놓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 쥐를 잡기 위해서 도연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 하는데 동생이 자신을 안 놓아주자 소연은 다급해졌다.
“수련아. 그거뿐이야. 어서 빨리 가자.”
‘어머? 언니의 저 표정 좀 봐! 호호, 분명히 뭐가 있어.. 내가 꼭, 알아내고 말 테다.. 호호호!’
수련은 엉뚱하게 생각했는지 언니의 팔을 부여잡고 떼를 썼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언니와 도연의 관계를 꼭, 알아내리라는 집념의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아잉~ 그러지 말고 빨리 자세하게 가르쳐줘요.”
“수련아. 정말 없다니까!”
수련은 언니의 말을 안 믿었다.
‘헤엣~! 내가 속을 줄 알고?’
그녀는 더욱 떼를 쓰면 언니가 결국 모든 걸 털어 놓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아아~ 잉~! 언니니니니이… 가르쳐줘요오오…. 예? 가르쳐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