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94화
도연은 목검을 건네받은 뒤 두 여자가 조잘거리자 미련 없이 몸을 돌려 5장 앞 정도에 보이는 집으로 걸어갔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쥐를 잡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 이유는 주인의 수련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동천은 쥐를 잡은 경과 보고를 듣기 전까지 수련을 미루겠다고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주인이 자신에게 가보라고 시킬 때도 군말 없이 그러겠다고 한 것이었다.
“…….”
걸음을 빨리해 마침내 집 앞에 당도한 도연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집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꼼꼼히 살펴본 도연은 동천이 집이었던 곳과 사정화의 집 사이의 떨어진 틈새로 들어가 보았다. 양옆을 두리번거리다가 사정화의 집 쪽에서 심하게 긁힌 자국을 보았다. 아래서부터 점점 위로 올라가며 긁힌 자국이었다. 도연은 그 자국을 따라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서 도연은 커다란 구멍을 보았다. 아울러 무슨 생각을 했는지 희미한 신음을 터뜨렸다.
“으음.. 쥐가 이렇게 기어 올라갈 수 있다니….”
도연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직 실물을 보진 못했지만 대단한 놈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 도연은 구멍 난 부분을 기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쥐는 일층에 없고 이층에만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지체 없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도연은 제일 처음에 보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갉아먹고 긁힌 자국은 보이질 않았다. 대신 서가와 벽면 사이에서 냄새나는 속옷 하나를 꺼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나머지 작은 벌레들이 속옷 사이로 마구 기어 나왔다. 도연은 고개를 젓고 다시 원래 있었던 자리로 쑤셔 넣었다.
“여기는 아닌 것 같은데….”
그 방에서 나온 도연은 옆방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던 도연은 어렵지 않게 하나의 구멍을 보았다. 구멍의 크기가 상당했다. 몸을 숙이고 들여다보았다. 구멍의 저편에서 외로이 놓여있는 목검 하나를 보았다. 탐색을 마친 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만일을 위해 꼼꼼히 주위를 살폈다.
“또 하나가 있군. 여기가 그 애가 말하던 그 방인가?”
침대 뒤편 모서리 부근에서 발견된 구멍의 주위에는 벽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있었다. 침대 밑으로 들어가서 바깥쪽을 자세히 보려고 하던 도연은 바닥에서 솔솔~ 풍기는 찌린내 때문에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도연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쥐가 싼 건가.”
생각 같아서는 침대를 치우고 구멍 바깥쪽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도연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다만 이곳이 아까 자신이 올려다보았던 구멍 난 방이라고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이곳에 쥐는 없는 것 같았다.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던 도연은 처음에 발견한 구멍에서 반짝이는 두 쌍의 붉은빛을 보고 흠칫했다. 구멍 안쪽이 원래는 어둡지 않았으나 검은색의 몸이 구멍을 꽉! 막다시피 하고 있었으므로 마치, 컴컴한 동굴 같아 보였다.
“너로구나…”
한 손으로 가볍게 쥐고 있던 목검은 어느새 두 손으로 거세게 쥐어져 있었다. 쥐는 상대를 감지해 보려는 듯 코를 실룩이며 한 발을 조심스레 내딛었다. 도연은 쥐 같지도 않은 쥐를 바라보며 이런 쥐를 보고도 용케 잘 대처한 소연을 떠올렸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여린 모습만 보여주던 소연이 수련까지 업고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정말 칭찬할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도연은 이 감정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듯 먼저 도발했다.
“놀아보자.”
도연은 목검을 까딱거리며 쥐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도연은 목검을 쥐고 있던 두 손 중 한 손을 들어 가슴속으로 집어넣었다. 잠시 후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빼낸 도연은 발로 바닥을 거세게 내리쳤다.
쾅-!
“찌-익!”
그 소리에 놀랐는지 기겁하며 구멍 안쪽으로 몸을 숨겼던 쥐는 상대의 도발을 눈치채고 금방 고개를 내밀었다. 쥐는 머리를 쳐들고 경계를 했다. 솜털까지 곤두서 있는 게 위협적으로 보였다. 도망가는 줄 알고 내심 걱정했던 도연은 상대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그래.. 그래야지.”
쥐를 때려잡기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여러 가지 중 몇 가지를 꼽아볼 수 있는데 첫째는 지금 거리가 멀어서 도망치기 전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쥐가 불리하면 언제든지 구멍 쪽으로 도망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셋째는 둘째와 같은 맥락으로 쥐가 머리만 내밀고 몸은 구멍 안쪽으로 숨어서 때릴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상대의 몸집이 거의 고양이에 육박했기 때문에 한 방으로 잡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 그에 대비책으로 한 수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도연은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쥐는 여전히 털을 곤두세우며 구멍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도연은 초조해졌다. 거리는 좁혀지는데 쥐는 나올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었다. 거리가 너무 좁혀지면 반격당할 때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다가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연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쥐와 도연의 거리는 약 반 장 정도였다.
“안 나올 거냐..”
자신의 의사(意思)를 물어보았지만 상대방이 대꾸해줄 리가 없었다. 도연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
“미끼가 필요하니?”
말을 마친 도연은 쥐에게서 잠시 시선을 떼서 양쪽 벽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구멍 옆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신의 키만 한 서랍장이 있는 것을 보았다. 잠깐 동안 생각에 잠긴 도연은 다시 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쥐는 그 자세 그 표정으로 도연을 노려보고 있었다. 도연은 목검을 서서히 들이대며 말했다.
“지금 주마..”
쥐는 자신에게 목검이 다가오자 몸을 움츠리며 구멍 뒤로 숨었다가 목검이 구멍 쪽으로 거의 다가오자 갑자기 달려들어 목검 끝을 힘있게 물었다. 이는 도연이 바라던 상황이었다.
‘걸렸다!’
속으로 기쁨의 탄성을 지른 도연은 쥐가 유인 작전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밀고 당기는 식으로 조금씩 구멍 쪽에서 끌어냈다. 구멍 안쪽에서 안 나오려고 버티던 쥐는 생각을 바꾸었는지 밖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돌면서 목검을 물고 늘어졌다. 도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구멍 쪽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목검을 휘둘렀다.
“하-압!”
“쮜-이익!”
목검 끝이 잘게 부서지며 쥐가 날아갔다. 괴성을 지르며 날아간 쥐는 볼썽사납게 벽에 부딪혔다. 목검을 허리춤에 끼고 아까 보아두었던 서랍장으로 달려가던 도연은 그것을 보고 멈칫했다. 지금 되돌아가 쥐를 내려치면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 한순간의 생각으로 인해 쥐는 자세를 고쳐 잡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제길…”
한순간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함으로 기회를 놓친 도연은 자기 자신에게 신경질을 내며 서랍장을 구멍 쪽으로 밀었다. 구멍을 막으려는 것이다. 서랍장에는 들어있는 게 많았던지 생각 외로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나동그라졌던 쥐는 구멍이 막힌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다급히 구멍 쪽으로 달려들었다. 다급해진 도연은 이를 악물며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이야-아-압!”
쿠-웅!
“찍.. 찍!”
도연은 구멍에 미치지 못해서 서랍장이 엎어지자 순간적으로 몸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다행히도 끝부분이 구멍을 가리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반대로 구멍 쪽으로 달려들던 쥐는 서랍장이 넘어질 때 어느 정도 시간의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 심리 때문인지 구멍을 눈앞에 두고도 급히 방향을 틀어 뒤로 물러났다.
도연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연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얼른 침대 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에 또 하나의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침대 쪽 구멍은 바깥쪽으로 연결되었기에 도망가면 다시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未知數)였다. 침대를 들어 엎을 수도, 침대 밑을 막을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던 도연은 할 수 없이 침대 쪽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버티고 섰다. 그는 허리춤에 끼어 놓았던 목검을 다시 빼들었다. 긴장 탓에 굳어있었던 도연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서렸다.
“자.. 이제, 어디로 도망갈 테냐.”
“아~앙! 언니이이.. 말해줘요.”
“너도 참 끈질기다. 가능하면 나도 말해주고 싶은데 없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니?”
나올 건덕지도 없는데 동생이 자꾸 매달리자 소연은 난감(難堪)했다. 말을 해주고 싶어도 해줄 말이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소연은 자신의 팔 소매를 부여잡고 늘어지는 동생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그 바람에 수련은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 했다.
“아앗? 어어어어? 으다다닷..! 아야!”
다리에 힘을 주고 두 팔을 풍차 돌리듯 돌려대던 수련은 결국에는 엉덩방아를 찧고야 말았다. 그 모습에 소연은 웃었다.
“푸-웃! 호호. 거봐, 네가 쓸데없이 억지를 부리니까 그렇게 넘어지잖니. 그러지 말고 어서 도연에게 가보자.”
말과 동시에 소연은 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칫-!”
수련은 입을 삐죽이며 언니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동생이 일어나자 소연이 말했다.
“어서 가자, 늦었어.”
수련은 앞서 걸어가는 소연을 보며 아직도 의심을 풀지 않았다. 수련은 얼른 뒤쫓아가 나란히 걸어가며 말을 꺼냈다.
“내가 동천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할 테니까,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봐요. 예?”
동천 얘기가 나오자 소연은 갑자기 과민 반응을 보였다.
“수련아! 거기서 주인님 얘기가 왜 나오니? 내가 도연이랑 무슨 사이가 아닌 것이 확실하지만 아니, 확실하지 않다 쳐도 왜 도연과 나 사이를 말하는 데 주인님이 왜 나와!”
수련은 언니의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곧이어 무엇이 생각났는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소연은 자기가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떨떠름해지는 것을 느꼈다.
“왜.. 왜 그래?”
언니의 버벅거리는 물음에 수련은 더욱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호호. 언니, 동천에게 이 일이 알려지면 둘 사이가 어떻게 틀어질까 봐 그러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