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8권 11화 – 사부! 중양표국을 방문해 버리다
사부! 중양표국을 방문해 버리다
-사실대로 거짓말하기
중양표국은 철화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대장간을 나선 지 채 일각도 안 되었을 때 노인은 벌써 중양표국이라고 적혀진 편액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놈이 여긴 무슨 일로 들렀었을까?”
노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표사 나부랭이나 하고 있을 리도 없고…….
그때 문 저 안쪽에서 큰 목소리가 문짝을 꿰뚫고 노인의 귓가를 울렸다.
“이 검에 어울리는 사람은 바로 저예요!”
기왓장이 덜컹거릴 정도로 쩌렁쩌렁 울리는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 게다가 들어본 기억이 있는 목소리였다.
“분명 별명이… 침백련이라 했던가?”
중양표국은 아미파에 대해서는 편의를 아끼지 않았다. 든든한 방패막이인데 어찌 간수를 소홀히 하겠는가. 아미파 제자라면 언제든지 중양표국의 표행에 동행할 수 있었다. 말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숙박, 식사까지 모두 도맡아 해결해 주었다. 물론 여행 경비는 모두 표국 분담이었다. 이는 주작단과 함께 남창을 향한 이 후로 굳어진 관례였다. 그들은 여행에 대해서는 전문가였기 때문에, 강호초출의 새내기 제자들을 내보내는 아미파로서는 나름대로 안심할 수가 있었다. 다만 표행 의 특성상 중간중간에 도적들의 습격을 받을 위험이 있었지만, 혼자 몸으로 떠나도 산 두세 개에 한 번씩은 꼭 도적들이 나오는 게 작금의 세상이었다. 게다가 중양 표국하고 함께 여행을 떠나면 왠지 모르게 강해진다는 소문도 있었기 때문에 아미파뿐만 아니라 사천의 유명한 문파들에서도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다. 중양표국은 중양표국대로 표행에 동행하는 고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안전해지기 때문에 마다하지 않았다. 일종의 상부상조였다. 그런데 마침 남창으로 향하는 대규모 표행이 생겼고, 도착 예정일도 입관 시험일 전이었다. 천무학관에 볼일이 있는 진소령과 유란,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와 개인적인 이유를 지닌 유은성과 유운비가 이곳 중양 표국에 한데 모이게 된 것은 그러한 연유에서였다. 그리고 지금 유란과 유운비가 다투고 있는 것은 한 자루의 검 때문이었다.
“유 소저가 이 검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 검은 저의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던 것입니다. 막말로 제가 먼저 침발라놓은 것이죠. 그 러니 한발 늦으신 유 소저께서 양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웃기지 마세요. 전 그 검을 사기 위해 삼 년을 참아왔어요. 그 검을 살 돈도 모두 제가 한 푼 두 푼 아껴서 모아놓은 돈이에요. 제가 사부님께 손 벌려서 그 검을 사 는 줄 아세요? 자기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든 비용이 사백님 전낭에서 나오는 어디 사는 누구랑은 각오가 다르단 말이에요, 각오가!”
“하지만 늦은 건 늦은 겁니다. 행복은 선착순인 것 모르세요? 빠른 자가 이기는 겁니다. 찌르기처럼.”
“흥, 유 소협은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 그 검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그냥 듣고 못 넘길 말이군요. 아직 본 적도 없잖습니까?”
“그걸 꼭 봐야 아나요? 하지만 굳이 보여주고 싶다면 사양하지 않겠어요. 어때요? 지금 여기서 승부를 가려서 이기는 쪽이 저 ‘비천’의 소유주가 되기로 하는 것 이?”
“후회하실 텐데요, 유 소저?”
“겁나세요?”
“좋아요. 해봅시다. 오늘 점창의 찌르기가 얼마나 빠른지 직접 견식시켜 드리겠습니다.”
“흥, 그렇다면 전 아미의 검이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직접 체험시켜 드리죠.”
두 사람이 막 검을 뽑으려는 순간 이 둘의 작태를 지켜보고 있던 진소령이 한마디 했다.
“두 사람 모두 그만! 지금 누구 안전에서 싸움질들인지 알고나 있느냐?”
“허허, 진 소저, 괜찮습니다. 젊을 때는 원래 혈기를 주체 못하는 법이지요.”
속으로는 ‘운비 녀석, 두고 보자’고 벼르고 있으면서도 유은성이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사람은 둘인데 검이 하나니 문제군요. 멀쩡한 검을 반 토막 내서 나눠줄 수도 없고…….”
그러나 아이들을 바라보는 진소령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다.
“내가 보기엔 너희 둘 모두 이 검을 가질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하도록 하자. 우선 내가 책임지고 이 검을 보관하고 있겠다. 그리고 입관 시험을 치른 후 보 다 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검을 주겠다. 불만있느냐?”
“…어, 없습니다.”
“저… 저도요.”
“유 대협께서는 어떠신가요?”
“저야 뭐 별다른 이견이 있겠습니까? 뜻대로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당분간 이 검은 제가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리 알고 이 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정진하거라. 알겠느냐?”
진소령의 근엄한 말에 두 사람 모두 똑같이 울상이 되어 대답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저 노인이 바로 그…….?
접객 담당의 정중한 안내를 받아 국내로 들어온 백발백염의 노인을 본 순간 장우양은 그 노인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그는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드디어 그때가 왔구나!’
언젠간 오리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때가 오니 긴장을 감출 수 없는 장우양이었다. 저 노인이 비류연이 경고한 바로 그 흉악 무자비한 노인이었다. 언 젠가 중양표국을 풍비박산 내기 위해 습래(襲來)하리라 비류연에 의해 예언되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분명 그 노인은 나의 행방을 물을 거예요. 그리고 만일 모른다고 하면 그 표국을 서까래 하나 남기지 않고 절단 내버리겠죠.’
‘왜 모른다고 말한 이유만으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당연하잖아요. 사실 알고 있으니깐요.’
“예? 아니, 그게 무슨?”
‘그 노인한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요. 상대가 거짓말을 하면 귀신같이 알아내거든요. 그냥 눈만 한번 뚫어져라 쳐다보면 끝나요. 가끔은 쳐다보지도 않고 금방 알 아채죠. 독심술을 익히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전설의 타심통이라도 익히고 있는지는 몰라도 암튼, 어설픈 거짓말 따위는 절대 통하지 않아요. 항상 사실만 말해야 하 죠.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내 소재를 가르쳐 주면 안 돼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조금 전에 항상 사실만 말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만 말하면서도 얼마든지 상대를 속일 수 있어요.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 수법을 쓰고 있죠. 국주님은 지레 겁먹지 말고 내 말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럼 표 국이랑 장 국주님 모두 안전할 겁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비 공자??
“그건… 사실의 일부만 말하는 거죠.’
그 방법을 듣긴 들었지만, 역시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실전에서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침착하자며 속으로 자신을 달래는 장우양이었다. 자신의 말에 중 양표국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중양표국이라는 작은 표국을 맡고 있는 장우양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르신의 존성대명을 접할 영광을 주시지 않겠습니 까?”
“난 이름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네. 그러니 알려줄 것이 없군.”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어르신을 뭐라 칭하면 좋겠습니까?”
“흠, 그러고 보니 부를 말이 하나 있어야 편하겠군. 아무렇게나 칭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냥 늙은 사부, 노사부라고 부르게.”
“노… 노사부님이요?”
장우양은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가 아는 노사부가 또 한 사람 있었던 것이다. 그 노사부는 이 노인에 앞서 이미 한 번 중양표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전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그에게는 노사부라 불러야 할 사람이 둘이나 생긴 것이었다.
“왜 곤란한가?”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에잇,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본명도 아니고 단순한 칭호이니 한 사람이 두 사람으로 늘어도 크게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그 칭호는 임시인 듯한 느낌이었고, 오랫동안 쓸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두 노사부가 동시에 그 앞에 나타나지만 않는다면 그가 곤란을 겪을 일은 없었다.
“그럼 앞으로 ‘노사부님’이라 부르겠습니다.”
“마음대로 하게.”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노사부가 대꾸했다.
“이런 누추한 곳에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노사부님!”
“한 녀석을 찾고 있네. 사내아이로 나이는 이십대 초반일세. 앞머리가 길어서 평소에 눈을 가리고 다니지 본 적이 있나?”
“그분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그 망할 녀석 이름은 비류연이라고 하네.”
‘역시!’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그럼 그 비류연이란 분은 노사부님과 어떤 관계인지요?”
“내 못난 말썽꾸러기 제자 녀석일세.”
“아, 그렇군요, 제자 분이셨군요.”
어? 뭔가 이상했다. 분명 그 비류연이 중양표국에 처음 찾아왔을 때 내민 서찰은 그의 사부인 노사부로부터의 서찰이었다.
“아, 물론 이쪽도 노사부이긴 하지만, 그쪽 노사부는. 비류연의 사부가 두 사람이라도 된단 말인가?”
에, 그러니깐… 에……. 에잇, 헷갈려. 그럼 이 노사부는 누구고 그때의 그 노사부는 또 누구란 말인가?
갑자기 머리가 뒤엉킨 실타래처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장우양이었다. 일단 편의를 위해 비류연을 이 노사부의 제자로 가정하기로 해버렸다. 그 편이 덜 헷갈릴 것 같았던 것이다.
“알고 있나?”
“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그 녀석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제가 몇 년 전에 파양호 근방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습니다.”
“부분만 말해요. 전체를 다 말할 생각을 하지 말고.”
천무학관이나 남창에 관한 이야기는 쏙 빼버렸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남창은 분명 파양호 근방에 있는 큰 도시였으니 말이다.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노사부가 장우양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위축된 장우양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흠, 사실인 모양이군.”
노사부의 한마디에 장우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녀석 꽤 먼 데까지 갔네그려. 귀찮게스리.”
잠시 투덜거리던 노사부의 눈에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상자들을 옮겨와 수레에다 싣고 있었다. “저쪽에서 사람들이 짐을 꾸리며 분주하게 오가는 것을 보니 곧 표행을 떠날 모양이로군. 안 그런가?”
“그… 그렇습니다, 어르신!”
하필이면 이럴 때에. 장우양이 잠시 당황하며 대답했다.
“언제 출발인가?”
“내일 새벽에 길을 떠납니다.”
“장소는?”
여기서 장우양은 잠시 대답을 멈추었다. 노사부가 다시 물었다.
“저 표행은 어디로 향하는 건가?”
“명심하시길. 절대 거짓을 말해서는 안 돼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자위하며 장우양이 대답했다.
“나… 남창입니다.”
“거기 분명히 파양호 근방이었지 않나?”
“그… 그렇습니다, 노사부님!”
저 표물이 가는 곳은 바로 무의 성지 천무학관, 이번 표행은 천무학관과의 기념비적인 첫 거래였던 것이다. “잘됐군.”
노사부가 한마디 툭 던졌다. 중양표국 남창행 표행에 인원이 한 명 더 늘어나는 데는 그걸로 족했다.
***
비류연은 자다가 눈을 번쩍 떴다. 아직 등은 침대에 붙인 채 그대로였다. 마치 떠오르듯 침상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비류연이 오른손으로 왼쪽 귀밑과 목덜미를 훑 듯이 쓰다듬었다. 손에 축축한 수분이 묻어 나왔다.
“식은땀?”
비류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인가, 류연?”
자고 있던 모용휘가 일어나 눈을 비비며 물었다. 비류연이 잠자다 깬 기척을 그도 느낀 모양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래? 나도 경험이 있어서 아는데 푹 자두는 게 좋아.”
그리고 모용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요즘은 악몽에 괴로워하지 않고 편히 잘 수 있게 된 모용휘는 깊은 잠의 소중함을 깨달은 이후 잠자는 시간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비류연은 다시 어둠 속에 혼자 남게 되었다.
“설마 내가 꿈 따위를 꾼 건 아니겠지?”
꿈은 잠자는 사람들이 꾸는 것이지, 깨어 있는 사람이 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만일 그가 악몽을 꿨다면 그 내용이 남겨져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내용은커녕, 꿈을 꾸기는 꿨는지조차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건 뭔가의 암시인가? 요 몇 년간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예감만으로 지레 겁먹는다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을 비류연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자자!”
그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단이었다. 이번에는 꿈 같은 것은 꾸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