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0권 8화 – 영입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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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0권 8화 – 영입 제의

영입 제의

-혈옥선자 옥유경

우당탕탕! 쿠당탕탕!

동정호 변에 위치한 환상객잔의 밤은 탁자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요란히 시작되었다.

한 상 휘어지게 차려진 탁자가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네 명의 사내가 객점 바닥을 보기 좋게 나뒹굴었다.

“썩 사라져라!”

식탁에 앉은 채 싸늘한 눈빛으로 그 꼬락서니를 지켜보고 있던 영령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꺼져 버려! 젓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벼 파기 전에!”

손바닥을 탁탁 털며 몽무는 조금 더 과격하게 소리쳤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난 사내들은 줄줄 흘러내리는 코피도 훔칠 생각 못하고 걸음아 나 살려라, 줄행랑 을 놓았다. 그 모습을 냉랭한 눈길로 바라보며 환무가 한마디 했다.

“버러지들이 너무 많군요, 아가씨.”

“그렇구나. 이걸로 도대체 몇 번짼지…….

자세를 바로 한 영령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여긴 분명 마천각의 영역일 텐데? 왜 저런 떨거지들을 가만 놔두는 걸까?”

시정잡배가 이토록 활개 치는데도 그냥 내버려 두는 마천각의 저의가 궁금했다.

“여긴 순찰도 안 도는 걸까?”

짝짝짝!

짧고 규칙적인 세 번의 박수 소리와 함께 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멋진 솜씨더구나.”

말이 나오기 전까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던 영령은 화들짝 놀라 몸을 휙 돌렸다. 삼십대쯤 되었을까? 당당한 표정에 언뜻 냉혹함이 엿보이는 아름다운 여인 이 그곳에 서 있었다.

“엄청난 박력.

언뜻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할 정도의 강함이었다.

“선배님께선 누구시죠?”

영령이 잔뜩 긴장하며 물었다.

“내 이름은 일단 옥유경이라고 하는데… 우리 앉아서 이야기할까?”

빈자리 한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옥유경이 말했다.

“아, 예! 물론입니다. 어서 앉으세요.”

영령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서둘러 자리를 권했다.

“고맙구나.”

“흐음, 그러니까 여기에는 마천각이란 곳에 시험을 치기 위해 온 것이란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선배님.”

“내가 보기엔 그곳 전체를 통틀어도 너만한 기운을 뿜는 이는 많지 않은데, 너 같은 인재가 어느 산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이제야 나왔는지 그것이 의문이구나. 그 런 궁벽한 산골에 있었던 것치고는 교육도 아주 잘 받은 것 같은데? 옷차림도 그다지 유행에 뒤처진 것 같지 않고 그 모습이면 명문정파의 후기지수라 해도 믿겠구 나.”

그녀의 평가대로 영령의 옷차림은 나무랄 데 없이 매우 단정하고 깔끔했다.

“예, 시녀 중 한 명이 무척 그런 쪽에 민감해서요. 주인인 제가 모욕을 당하거나 비웃음당하는 것은 곧 자신의 수치라고 생각하거든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 일로 몽무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

“흐음… 좋은 시녀구나. 그런데 아무도 마천각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해서 곤란해하던 참이었다고?”

“예, 선배님!”

“그렇다면 자넨 운이 좋군. 여기서 날 만났으니.”

“예?”

“지금 자네에게 나만큼 우수한 길잡이는 없을 거란 얘기지. 왜냐하면 난…….”

그러나 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앗, 대장님! 어디 가셨나 했더니 여기 계셨군요.”

전신을 빠짐없이 불꽃 색의 옷으로 휘감은 이십대의 여인 한 명이 빠른 걸음으로 객잔 안으로 들어오더니 큰 소리로 여인을 불렀다. 보는 사람의 감탄을 자아낼 만 큼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응? 류하구나? 네가 여긴 웬일이냐?”

그녀는 바로 화산 천무봉에서 염도에게 일격을 맞고 기절한 전적이 있던 진홍의 검희 석류하(石榴霞)였다.

“저기…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잠시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석류하가 말했다.

“여기에 언제 문제가 생기지 않은 적이 하루라도 있었느냐?”

“그건 그렇지만 이번 건은 좀 더 특별합니다.”

“그러더냐?”

도대체 무슨 일로 자신이 필요한지 물으려던 옥유경의 말은 영령에 의해 끊기고 말았다.

“저… 그런데 누구시죠?”

영령이 경계심을 지닌 채 물었다.

“아, 신경 쓰지 말게. 내 제자 중 하나라네. 류하야, 인사하거라. 몽환산장의 몽영령, 몽 소저란다. 곧 우리 식구가 될 사람이지.”

“어머, 인재 영입 중이셨어요?”

“그래, 쓸 만한 인재 같았거든. 너도 그 활약상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구나. 다른 멍청한 사내 녀석들이 눈독들이기 전에 먼저 획득해 놔야지.” 당연하다는 듯 옥유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무슨 말씀인지 통……”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뭔가 이야기가 하나 끝나 있었다. 영령으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 자네가 마천각에 입각하게 되면 우리 부대 ‘혈봉대’를 지원하라는 이야기일세. 자네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하나 만들어놓지.”

“입각하면이라니요? 당신께선 누구시죠?”

누구길래 그런 말이 가능할까?

“어머, 이분 모르세요? 이분이 바로…”

“쓸데없는 소개는 됐다. 난 마천각에서 아이들에게 검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제칠(第七)기숙사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그 부대에 들어오 라는 이야기다.”

워낙 갑작스런 일이다 보니 영령은 어안이 벙벙했다.

“보아하니 무슨 이야긴지 아직 모르겠는 모양이구나.”

영령이 맞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전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부대에 들어오라뇨? 전 배우러 마천각에 들어가는 건데요?”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옥유경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엉겁결에 사과하고 만 영령이었다.

“좋아, 곧 우리 대에 들어올 사람이니 본녀가 선심 써서 성심성의껏 가르쳐 주마. 이곳에는 총 십삼 대가 있지. 그리고 총 열두 개의 기숙사가 있다. 그리고 각 기숙 사를 총괄하는 대장은 전통적으로 ‘무교관’이 맡고 있지. 물론 예외도 있지만.”

의문이 풀리기보다는 더욱 깊어질 따름이었다.

“넌 천무학관과 마천각의 기숙사 체재 중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잘 모릅니다.”

“그건 바로 기숙사의 운영에 대한 차이이다. 우리 자랑스런 마천각의 열두 기숙사는 모두 하나의 부대와 동등한 체재를 갖추고 있다. 그 안에서의 서열도 엄격하

지. 대장과 부대장 이하 백여 명이 언제든 전투에 나갈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지.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말이다. 기숙사가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곳인 줄 아는 어디의 멍충이들과는 엄격함의 차원이 다르다고나 할까.”

“과연 그렇군요. 두 곳에 그런 차이가 있었다니 놀랍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 무작위로 뽑힐 때도 있지만, 보통은 심사를 한다. 인재인 경우에는 서로 차지하기 위해 난투를 벌이기도 하지. 뭐, 흔히 있는 일이지. 그중에 서도 본녀가 총괄하고 있는 제칠혈봉대는 마천각 ‘상삼대(上三隊)’, 혹은 ‘마삼천(魔三天)’이라 불리고 있지.”

드러난 그녀의 신분에 영령은 깜짝 놀랐다.

“그럼 당신은…….?

그녀는 허리에 손을 대고 가슴을 당당하게 앞으로 내밀었다.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그런 당당함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 당연한 감이 빗나가 고 말았다.

“선생님이셨군요!”

영령이 보여준 의외의 반응에 놀라 발목을 삐끗한 것은 오히려 석류하 쪽이었다.

“서, 선생님이라니… 하하…….”

그리 틀린 말이 아닌데도 굉장히 생소하게 들렸다.

“본녀를 그런 식으로 부르는 건 너밖에 없구나. 혈나찰이란 별명은 많이 들었지만 선생님이라……. 그 말을 들은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좋아, 점점 맘에 들었다!”

“아니, 그게… 아직 결정된 게…….?

“이쪽도 잘 부탁해요, 후배님!”

그제야 석류하의 시선이 영령을 향했다. 그녀의 고개가 잠시 옆으로 갸우뚱한다.

“응?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않나요?”

“글쎄요, 전 기억에 없는데요?”

“그래요? 확실히 낯이 익은 얼굴인데… 이상하네…….”

석류하는 의혹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모양인지 연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회포는 나중에 풀고. 그래, 무슨 일이더냐?”

옥유경이 석류하를 향해 물었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그 일도 있었지. 그러니까 그게…….”

영령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석류하가 귓속말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옥유경의 얼굴에 드리운 노기는 짙어졌다. “그 녀석들이 또다시 감히…….”

옥유경, 그녀는 차갑게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알았다. 내가 곧 가마. 그럼 다음에 보자, 영령!”

“살펴가십시오.”

바람처럼 갑작스레 사라지는 옥유경을 향해 영령이 포권하며 말했다.

“아, 그리고 내일 동쪽 다섯 번째 부두로 가보는 게 좋을 거다. 그곳에 네가 필요한 것이 있을 테니.”

“예? 그게 뭐죠?”

멀어져 가는 옥유경을 향해 영령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접수처!”

그 말을 끝으로 두 여인의 신형은 객잔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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