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행방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모인다
강호란도는 동서남북 네 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각의 지역은 동구, 서구, 남구, 북구라 불리웠다. 그리고 천무학관 일행이 배를 타고 도착한 항구는 남구 에 위치해 있었다. 백결의 시큰둥한 안내에 따르면ᅳ그는 타인과의 대화조차 불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항구가 위치한 남구에서 동쪽으로 가면 유흥과 도박 업 소가 몰려 있는 동구가 나온다. 홍등가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는 말에 눈빛을 반짝이던 몇몇 남자 관도는 여자 관도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그곳은 밤에 불이 꺼지는 경우가 결코 없는 불야성이라 했다. 주야장천 영업에 힘쓰는 근면성실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 모양이다.
숙박 업소는 북구에 위치해 있었다. 즉, 항구에 도착한 손님들은 유흥과 도박장이 밀집 지역을 지나지 않으면 숙박 업소에 다다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 곳은 물론 계산된 배치였다. 그리고 서구에 무엇이 있는지는 즐거움으로 남겨둘 테니 심심하면 직접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즐거움으로 남겨주었다기보다는 그저 더 이상 길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다는 게 더 큰 이유인 것 같았지만.
동서남북 각 구역 사이에는 조그만 수로가 나 있어서 각 지역을 넘어갈 때는 구름 모양의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그들이 맨 처음 건넌 다리는 ‘남동운교’라 했는데 쉽게 말해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라는 뜻이었다. 이 수로 덕분에 구역 구분이 꽤 명확한 편이었다.
“당신들이 선물 받은 것은 동구에 위치한 도박장이라면 어디에서라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소.”
백결이 최소한의 말만 사용해 말했다. 더러운 인간들과는 필요 이상으로 길게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그런 인간이 었던 것이다.
“선물이라면 ‘그것’ 말이군요?”
남궁상이 용천명과 마하령과 비연태에게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 도전(賭錢)이라고 했던가요? 도박하는 데만 쓸 수 있는? 일단 따라가 보죠. 아직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위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군요.”
감각을 예민하게 개방해 주위를 살폈지만 특별한 미행이나 매복의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돈 자랑인지도 모르지. 자기들은 돈 많다는 걸로 우리들에게 뻗대려는 게 아닐까?”
비연태의 의견이었다.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군요.”
용천명이 그 의견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그럼 어떻게 움직이면 좋겠나?”
“아직 이것이 함정이 아니라는 증거는 전혀 없는 거지요?”
남궁상이 물었다.
“그건 그렇네.”
“그렇죠.”
용천명과 마하령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습격받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죠. 일단 저 백결이란 친구가 안내하는 곳까지는 함께 가도록 하고 그 후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조를 나누어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습격 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고, 비상 신호를 올리면 재빨리 도우러 갈 수도 있었다. 여차하면 역습도 가능할 수 있었다. 단, 각개격파를 당할 지도 모르니 긴밀한 연락은 필수였다.
“좋은 생각이네.”
“찬성이에요.”
“난 상관없네.”
세 사람 모두 찬성했다. 혹시나 비상시를 대비해 가져온 비상 신호탄을 각 조마다 나눠주기로 했다. 단, 간부진은 비상시를 대비해 같이 다니기로 했다. 이들 네 명 이면 어지간한 일에도 즉각적으로 대처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네, 대장.”
“일단 마 소저랑 함께 조를 짜놓도록 하지. 괜찮겠소?”
“문제없어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남궁상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사례했다. 용천명과 마하령은 머리를 맞대고 조 편성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했다. 서너 개 조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았다.
그때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가 있었다.
“저기…… 남궁 대장님?”
남궁상은 자신을 부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남궁상은 잠시 움찔했다(왜 그래야만 했는지 알지 못한 채). 그녀는 바로 연비였는데 안색이 무척 창백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아, 연비 소저! 무, 무슨 일이십니까?”
남궁상이 쭈뼛하며 물었다. 이 사람은 어쩐지 대하기 어려웠다. 단순히 일격에 기절한 전적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본능이 더 이상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알려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아아, 뱃멀미 때문인지 몸이 좋지 않군요. 먼저 객잔에 가서 쉬었으면 좋겠군요. 그래도 될까요?”
힘없는 목소리로 연비가 파리한 색깔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아, 그러십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몸이 아프신데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요.”
자신을 단 한 방에 쓰러뜨린 사람이 고작 뱃멀미 정도로 고생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약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연히 뱃멀미였을 뿐 이겠지. 남궁상은 깊게 캐묻기를 거부했다. 분명 연비는 눈에 확 띄는 미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능은 자꾸만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지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이런 감각은 대사형 이외에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이곳은 아직 안전한 곳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머, 그렇게 깊이 배려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남궁 대장님!”
연비가 감격하며 말하자 남궁상은 조금 우쭐해졌다. 미인의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남자에게 있어 언제나 영광스런 일이었다.
“아, 아닙니다. 당연한 제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리고 이렇게 겸손하게 사양하면 더욱 멋진 남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진령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재빨리 자신의 망상을 접으며 헛기침을 했 다.
“어, 어흠. 호위를 따로 붙여 드릴까요?”
호위 대상이 이런 미인이면 지원자들이 줄을 설 터였다. 그 호위가 과연 안전한가는 장담할 수 없다는 난점에 봉착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함께 가면 되니까요.”
아픈 연비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나선 사람이 바로 나예린이었다.
“아, 그러면 되겠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나 소저 같은 고명한 검술의 소유자께서 함께 가신다면 저도 안심이 되지요.”
남궁상이 얼른 승낙했다.
“히잉, 언니, 들어가시게요? 전 언니랑 함께 놀고 싶었는데…….”
이진설이 무척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다.
“저기 계신 효룡 공자랑 놀면 되잖니?”
나예린이 손가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장홍, 윤준호와 함께 서 있던 효룡을 가리켰다.
“옛, 저 말입니까?”
의외의 기습에 깜짝 놀란 효룡이 반문했다. 설마 나예린이 자신을 직접 가리키며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앗! 생각해 보니 그런 방법도 있었네요.”
마치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듯한 이진설의 말투에 효룡은 그만 상처받고 말았다.
‘흑흑, 나 따위 완전 잊었단 말이지…….?
축 처진 그의 어깨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자, 그렇게 풀 죽어 있지 말게. 원래 여자의 우정 사이에 남자가 들어갈 틈 따윈 없는 법이라네. 그건 사랑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거든.”
곁에 서 있던 장홍이 불쌍하다는 듯 효룡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럼 재미있게 놀다 오거라.”
나예린과 연비가 남고 나머지 일행들은 백결을 따라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진설은 아쉬워했지만 별수없었다. 이제 단둘만이 남게 되었다.
“다 갔나요?”
파리한 안색을 한 채 의자에 비스듬히 힘없이 앉아 있던 연비는 빼꼼 눈을 뜨며 물었다.
“네, 모두 갔어요, 연비.”
“좋았어!”
갑자기 기운이 솟았는지 연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창백하던 얼굴엔 어느새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자, 그럼 가볼까요?”
나예린의 팔에 자신을 팔을 잽싸게 두르며 신이 난 목소리로 연비가 외쳤다.
“가다니? 어딜요? 몸은 괜찮아요, 연비?”
“린이랑 둘만 있으니 다 나았어요, 홋호호!”
연비가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나예린도 함께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꾀병이란 이야기군요?”
“그런 거죠.”
연비가 살짝 혀를 낼름 내밀었다.
“이런 깜박 속고 말았군요. 그런데 어디로 가죠?”
“어디든지요. 난 린이랑 오붓하게 둘이서만 놀고 싶었거든요.”
물론 다른 의도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좀 더 행동의 제약을 적게 받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연비는 어쩐지 궁지에 몰려 있는 듯했고, 그녀가 느끼기에 자신의 도움이 필요했다.
“자, 그럼 우선 뭘 하죠?”
“음… 일단 양육관(羊肉串양고기 꼬치구이)부터 먹을까요?”
이런 노점에서 파는 음식들 중에서도 그것은 단연 독보적인 맛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노점 맛 기행이 시작되었다.
연비와 나예린은 노점상을 돌며 이런저런 투철한 실험 정신과 도전 정신으로 이것저것 희한하게 생긴 먹거리들을 사 먹으며 여러 놀이들을 즐겼다. 좀 전의 심각 하고 고뇌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연비가 계속 이곳에서 머문 채 놀기만 할 뿐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자 오히려 초조해진 쪽은 나예린이었다.
“정말 괜찮겠어요?”
“그럼요, 그럼요. 낙승! 낙승! 맘 편히 가져요. 여유가 있어야 평소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는 거예요. 앗! 저것 맛있겠네요. 이번엔 저거 먹으러 가요.”
그리고는 나예린을 이끌고 풀빵 파는 곳을 향해 전력질주해 갔다.
그 옆에 고리를 던져서 들어가면 상품을 가져가는 놀이가 있었다. 연비가 고리를 잡고 던지자 백발백중이었다. 던지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었다. 너무 많이 따서 주인이 울상이 되자 나머지는 돌려주고 맘에 드는 인형 하나만 받아왔다. 그리고는 나예린의 손을 잡고 걸어가며 뒤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예전부터 꼭 린이랑 이렇게 해보고 싶었어요.”
연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십 년 전부터 말이죠. 하지만 계속 기회가 닿지 않았죠.”
“연비…….?”
진정이 가득한 그 말에 나예린이 어찌 감동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십 년 전의 일이 생각나자 무한한 감회가 샘솟았다.
“아쉬움이란 건 한 번 남기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나 봐요. 오늘의 이 일은 일종의 복수전이라고 할 수 있죠.”
생긋 웃으며 연비가 말했다.
“복수전이요?”
노는 것을 복수전이라고 표현하다니… 연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요, 복수전이죠. 십 년을 별러온. 시장 조사를 겸한 복수전.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요?”
“어디로요?”
그러자 연비가 대답했다.
“어떤 땐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멈추어 있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죠. 자, 그럼 가볼까요?”
그리고는 나예린이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그녀의 손을 붙잡은 채 빠른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 나예린으로서는 도저히 짐작조 차 가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 거죠?”
그러자 연비가 대답했다.
“돈의 흐름을 찾아서!”
아쉽게도 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물건이었다. 아무리 금전에 어려움없이 커온 나예린이지만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큰돈을 벌려면 돈이 돈을 벌게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곧 상당한 초기 자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 이런 아무런 인연도 없는 외딴 곳에서 갑자기 삼십만 냥이 라는 눈 돌아갈 만큼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과연 벌 수나 있을까? 어떤 과정을 통해야 그 돈을 벌 수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연비는 모든 계산
을 끝마치고 행동에 돌입하려 하고 있었다.
“자, 서둘러야 해요.”
연비는 정말 급한 듯했다. 나예린은 엉겁결에, 그 진지한 모습에 어떤 반론도 이의도 제기하지 못한 채 뒤따라가야만 했다. 연비의 얼굴은 마치 전장에 나가는 전 사처럼 결의로 굳어 있었다.
“그런데 연비, 잠깐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따라가는 건 좋지만 그전에 의문은 해소해 놓고 싶었다.
“물론이죠. 얼마든지 물어봐요.”
숨길 건 아무것도 없다는 태도로 연비가 대답했다. 발걸음은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돈을 벌 거죠? 설마 도박?”
조금 전 들은 이야기론 이곳은 술과 향락과 도박의 천국이라 했다. 조금만 걸어왔을 뿐인데도 그런 퇴폐, 향락적인 분위기가 곳곳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연비가 정색하며 말했다.
“아뇨, 도박은 안 해요. 내기는 많이 해봤어도 도박은 안 해봤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 남이 만든 판에 발을 들이미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연비가 딱 잘라 말했다.
“어머, 지금 연비, 누구랑 똑같은 말을 하네요?”
나예린이 깜짝 놀라며 신기하다는 듯 반문했다.
“누구요? 그것참, 상당히 어정쩡하고 광범위한 표현이네요.”
짐짓 모른 척 시침을 떼며 연비가 대답했다.
“있어요, 그런 사람이. 나중에 꼭 소개시켜 줄게요.”
나예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하곤 말이 좀 통할 것 같네요.”
연비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때때로 많은 것을 놓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필요에 따라 관점을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면 어떨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금 연비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돈의 길이었다.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 은 비교적 간단했다. 그동안 많은 단련을 했기 때문에 훨씬 더 쉽게 그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길은 자신이 걸을 수 있는 길일 때 의미가 있다. 남이 걸어갈 수 있는 길 따윈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 어딜 가고 있는 거죠?”
수많은 인파 사이를 진지한 표정으로 가로지르는 연비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것은 목적지를 알고, 자신의 발걸음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 다.
“돈 벌러요.”
연비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연비는 전에 여기 와본 적이 있어요?”
“아뇨. 당연히 오늘이 처음이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망설임없이 걸어갈 수 있는 거죠? 어떻게 이쪽으로 가야 돈을 벌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거죠?”
용안도 만능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녀가 용안의 소유자라 해도 금전 감각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 상태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돈이란 남이 벌어다 주는 것이었지 자 신이 벌 필요는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린, 돈이란 건 말이에요, 선악도 의지도 없는 단순한 도구예요. 결국 그걸 쓰는 것은 사람이죠. 그러니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돈이 모이게 마련이에요. 돈의 흐름 과 사람의 흐름은 결코 별개가 아니거든요.”
“아!”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녀는 연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어느 쪽이든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의문을 품을 수 없고, 의문이 없으면 역시 답도 구할 수 없는 모양이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이 일에 ‘생존(生存)’이 걸려 있다고 하니 자신과는 관심과 집중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쪽이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향하는 곳이니 이쪽으로 가다 보면 ‘돈의 집적소’라 불릴 만한 무언가가 나오겠죠. 유흥가나 도박장 쪽은 아닌 듯한데…….”
그렇다고 몸을 팔아 돈을 벌 생각도 없었고,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도박에 의존할 생각도 없었다.
원래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언제나 가장 큰 이익을 안겨주게 마련이라는 것을 연비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그 경험이 그렇게 썩 즐겁지는 않 았다 해도.
인파의 파도를 헤치며 얼마를 걸었을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예린은 어떤 위화감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연비와 함께 걸어가면 갈수록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눈치 챘어요?”
연비가 싱긋 웃으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역시…….?
“의도한 거였냐고요? 물론이죠.”
“왜?”
현상을 파악했다고 해서 그 뜻까지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죠? 돈도 마찬가지예요. 관심을 가지고 파고들다 보면 돈이 가는 길, 돈의 흐름이 보이게 되죠.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가에 따라서 더 넓게 보일 수도 있고, 더 좁게 보일 수도 있어요. 공부할 생각이 없으면 돈 벌 생각도 말아야죠. 구닥다리 생각이나 하고 있으면 평생 돈을 벌 수 없을 뿐이에요. 뭐, 평생 가난뱅이로 사는 거야 자신의 선택이겠지만, 거기에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아달라고 그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한 다음 연비는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심연의 구멍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건물 앞에 섰다. 커다란 돌을 둥그렇게 쌓은 매우 독특한 형식의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원형 석벽 저 너머로부터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나예린은 다 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자신과 맞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커다란 정문 쪽으로 다가가자 질서 유지를 위해 세워놓은 문지기가 보였다. 험상궂은 인상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연비가 물었다.
“여기가 어디죠?”
“이곳이 어딘지도 모른단 말이오?”
사내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모르니까 묻잖아요. 알면 왜 물어요?”
하긴 그것도 그랬다.
“여긴 투기장이오.”
문지기 사내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그 투기장?”
“그렇소, 바로 그 투기장이오.”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데 돈을 거는 그 투기장?”
“맞소, 바로 그 투기장이오. 이름은 ‘원통’이라 하오.”
상대가 미녀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귀찮은 문답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문지기 사내의 본심이었다. 그건 그렇고 원통이라니, 정말 대충 지은 티가 역력한 이 름이 아닐 수 없었다.
“우승하면 상금도 있겠죠?”
“물론이오.”
“그렇군요. 고마워요.”
그리고는 빙글 몸을 돌려 나예린에게 말했다.
“자, 그럼 들어갈까요, 린?”
“저 투기장에요?”
연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경… 하러요?”
“아뇨, 참가하려고요.”
연비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