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18화 – 수뢰비의 첫선
수뢰비의 첫선
원래 수공이란
물 속에서 인간들로 하여금 어류보다 빨리 헤엄치고, 움직일 수 있게 만들기 위해 개발된 무공이다.
한 마디로 말해 물고기측에서 보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간들의 시건방지고 하늘 두려운 줄 모르는 가당치도 않은 도전이었고, 인간측에서 보면 인간 특유의 노력과 연구 개발에 의해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은 쾌거였다.
물고기처럼 장시간 호흡을 참으며,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공부! 수공이란 무척 배우기 난해한 무공이기도 했다.
원래 수상전의 기본 전법은 그것이 약탈 내지는 보급이 아닐 경우 에는, 적의 배 밑창이나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침몰시키는 게 이쪽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일단 배가 가라앉기만 하면, 그 다음은 물이 알아서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수공에 약하기 때문에 처리하기가 더욱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 수월함이 남경충 박멸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비류연이 암습자들을 얼간이 취급한 것이기도 했다.
완전히 다른 세계로 떨어진 이질감은 생소한 감정이었다. 벌써 생명의 위협도 한 번 느꼈다. 그러나 마냥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랬다간 어 느 새 자신의 목에 타인의 칼이 장식품 대용으로 장식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윤준호는 급히 정신을 추스르며 수공 수업 시간에 배웠던 가르침을 상기했다.
‘우선 물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을 친구라고 생각해라.’
천무학관에는 특수 교양으로 수공 공부도 있었는데, 모두들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 시간에 열변을 토하던 무사부의 목소리가 귓속에 쟁쟁거렸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서의 심리 변화를 잘 다스려야만 한다. 수중에선 변화보다는 간결과 빠름이다. 모든 변화를 배제하고 일직선으로 적을 공격해라.’
이제 남궁상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또다시 자신을 향해 암습자 한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윤준호는 수공에 익숙치 않은 터라 벌써부터 숨이 막혀 왔다. 호흡 이 곤란해지자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졌다.
암습자들이 쓰는 무기는 모두 단순하지만 날카롭게 생긴 살상력 높은 무기들이었다. 모두들 수중에서 쓰기 알맞게 제작된 것들이었다.
수중에서 쓰는 무기는 물의 저항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모든 장식품들을 빼고 가장 간소하게 만들어져 있다. 알록달록 너덜너덜한 장식품들이 수중에서는 자신 의 생명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얍!”
윤준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암습자를 향해 무의식 중에 매화검법 중에서도 가장 간결하면서도 빠른 초식인 매화관홍(梅花貫虹)을 펼쳤다.
“푸욱!”
윤준호 자신도 놀랄 정도로 매화관홍의 일초는 매끄럽게 펼쳐졌다. 으레 매화검법을 펼치고 난 후 나타나는 과민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서…설마! 맞아. 물 속에는 냄새가 없지!’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을 순간 윤준호의 몸에 전율이 흘렀다. 막막하기만 하던 눈 앞에 길이 열린 듯한 느낌이었다.
“…..!”
하지만 깨달음의 기쁨도 잠시, 호흡이 한계에 다다른 윤준호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야 했다.
다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려온 윤준호의 눈이 처음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 몸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와 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아수라장의 한가운데서도 너무나 태연한 비류연을 보며 나예린이 물었다. 추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비류연은 화내는 그녀의 얼굴도 예뻐 보였다. 아니, 오히려 차가운 조각상 같던 평소보다 감정의 편린을 나타내는 지금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누굴 도우란 말인가요?”
그녀의 고운 아미가 살짝 떨렸다.
“물론 지금 물 속에서 고전하고 있을 주작단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즉 주작단은 다 뛰어들었는데 당신은 여기서 팔자 좋게 뭐하고 있냐는 이야기였다.
“그건 너무 쓸데없는 걱정인 것 같군요. 제가 안 도와 줘도 그들끼리 잘 할 겁니다.”
“매우 자신만만하시군요?”
“소저께선 걱정이 되시나 보지요?”
“물론이에요. 수공 공부가 약한 그들이 적들의 앞마당 안으로 뛰어 들었는데 걱정이 안 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나예린의 말은 당연하고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논리 사고의 결과물이었다. 정파의 제자들은 특별한 몇몇 경우를 빼고는 수공에 약한 게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어차 피정파에선 방문좌도(傍門左道) 내지는 잡술(雜術) 취급받는 무공이 바로 수공이었던 것이다.
“나 소저야말로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 같군요. 그러면 그들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어요. 쓸데없는 걱정에 심력 소모하지 말고, 그것보다 우리 낚시 나 할까요?”
주작단원들을 수백 번은 족히 물 속으로 집어던져 본 비류연은 그들의 수공 공부 능력에 대해 아무런 걱정도 의문도 품지 않고 있는 눈치였다.
“아까부터 끈질기시군요.”
비류연은 싱긋 웃고 말았다. 벌써 낚시 얘기만 세 번째 꺼낸 그였다.
“좀 그런 편이죠. 그럼 저 혼자 해야겠군요. 물도 맑고 날씨도 화창한데 낚시나 해 볼까나…… 랄랄라! 오늘 같은 천기면, 물고기 대신 사람이 낚여도 놀라울 게 없 을 것 같네요.”
놀이라도 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난간 쪽으로 다가간 비류연의 손이 춤추듯 경쾌하게 들렸다가 수면을 향해 내뻗어졌다.
출(出)!
“파악!”
순간 그의 소매로부터 세 줄기 섬광(閃光)이 뻗어져나와 수면 밑으로 사라졌다. 섬광은 작고 조그만 파문만을 수면 위에 남겼다.
비뢰도(飛雷刀) 검(劍) 오의(義)
수뢰비령(水雷飛)의 장(章)
뇌격(雷擊) 어뢰(魚雷).
“컥!”
첫 번째 섬광이 정확히 맨 선두에 서 있던 암습자의 목젖을 꿰뚫었다.
영사심결(靈絲心結)
투시(透視)
견(見)!
일렁이는 수면을 향해 손을 뻗은 채 묵묵히 바라보는 비류연의 손가락이 미약하게 꿈쩍였다.
“뭘 하는 것일까?”
비류연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나예린은 의문을 품었다. 그녀의 눈으로도 현재 비류연이 펼치는 기()의 실체를 파악해내기란 불가능했다. 단지 추측해 볼 뿐이었 다.
‘설마 비도(飛刀)?”
비도(飛刀)라니?
물 속에서 쓸 무기가 따로 있지 웬 비도란 말인가! 이 또한 자연의 섭리를 과도하게 어기는 천인공노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로부터 비도란 물 속에서 절대로 쓸 수 없는 무기 중 하나로 꼽혀왔던 것이다. 비수라면 모르되 비도라니. 나예린은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의 제물로는 만족하지 못한 듯 수뢰비의 섬광궤적)이 예리한 각도로 꺾이며 다음 먹이를 향해 날아갔다.
‘뭐…뭐냐? 으아아악!’
‘구호(號)! 칠호(七號)!!’
이 느닷없는 사태를 지켜보는 암룡 이호의 눈에 절망이 감돌았다. 갑자기 자신들의 앞마당인 물 속으로 겁없이 뛰어든 주작단에게 부하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것만 해도 울화통이 치미는데, 부하들이 느닷없이 의문사까지 당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의가 이제는 그를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다. “귀…귀신이냐?”
그가 귀신이라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귀신은 그의 물음에 대답해 줄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었다. ‘크악!’
비명은 속으로만 지를 수 있었다.
암룡 이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한 순간의 번뜩임을 본 듯했다. 그는 끝끝내 귀신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채 생을 끝내야만 했다.
어두운 물 속을 기척조차 없이 가로지른 세 가닥 섬광은 수중에서도 마치 의지를 가진 듯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정확히 아홉 명의 생명을 거두어 갔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완료(完了)!
낚시는 끝났다.
순식간에 스물다섯이던 암습자가 열여섯으로 줄어들자, 주작단의 운신이 더욱 원활해졌다. 쪽수의 세 불리를 벗어난 그들의 검이 거침없이 암습자들을 향해 날아 갔다.
암습자들의 수가 주작단과 동수가 된 그 순간, 승부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암습자들의 몸이 고요하고 깊은 어둠의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들이 떠오를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이틀 후 몸 속에 공기가 가득 차기 전까지.
만일 장강을 무리지어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떼의 점심 식사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몸 안에 부기가 차올라 이틀 후쯤 떠오를지도 모른다. 충고하건대 그건 안 보는 게 밥맛 유지에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