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153화
“방법이 없겠어?”
“없어.”
“아냐, 있어. 방법은 틀림없이 있어. 이곳… 백천의는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어. 우리도 그럴 수 있어.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해. 찾지 못하면 만들어야 해.”
“……”
“천객이 뭐야! 천객이 도대체 뭐기에 천객은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못한다는 거야! 천객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야. 천객이 할 수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어.”
제칠비주 독심미화 여숙상은 붕붕 날아다니는 비적마의를 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비적마의를 뚫고 들어갈 수 없다. 백천의는 ‘사방이 온통 길’이라고 말했지만 비객에게는 사방이 온통 철벽이다.
제일비주 유홍은 유구무언, 할 말을 잃었다. 천객의 등장으로 비객의 중요도가 많이 떨어졌다. ‘많이’라는 말도 그나마 좋게 봐줘서 하는 말이다. 비객은 천객의 수족으로 전락해 버렸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사마의 척결을 위해서 준비된 중원 최후의 수단이 겨우 잔심부름이나 하는 시종에 불과한 처지가 되었다.
예전처럼 문파에 몸을 담고 있었다면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아니다. 천객의 시종이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마의 무리만 베어낼 수 있다면 그까짓 신분이나 역할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마 무리를 타도하는 데 천객이면 어떻고 비객이면 어떤가.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만 부딪치면 천객과 비객의 벽을 실감한다.
‘구진법에 지원하는 것인데… 비객이 되는 것 또한 천객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후훗! 우리는 수련을 했지만 천객은 죽음의 사선을 넘었다. 그 차이가 오늘의 차이를 만든 거야.’
유홍은 비객 대신 천객에 가담하지 못한 것이 못내 한스러웠다. 특히 지금처럼 무공으로 넘지 못할 벽을 실감하게 될 때는.
“그래, 방법을 찾아보지.”
“반드시 찾을 거야.”
“그래, 반드시.”
“오래 기다릴 수 없어.”
“그래,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야.”
유홍은 힘없이 대답했다.
‘가서 기다려. 어제 저녁도 먹지 않았잖아.’
한 줄기 음성이 목구멍에 매달려 간들거렸다. 생각은 있지만 입 밖으로 쏟아낼 수 없는 말이다. 다른 때 같으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여숙상도 받아들일 말이지만 지금의 여숙상을 보고 있노라면 차마 말할 수 없다.
여숙상은 비적마의가 우글거리는 곳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절대! 날씨가 궂어도 오로지 비적마의만 뚫어지게 응시할 뿐 몸을 돌보지 않는다. 비적마의의 숲만 넘어서면 자신을 강간한 구류검수가 있다는 생각이 그녀를 그렇게 지독하게 만들었으리라.
유홍은 정운이 거처하고 있는 움막을 찾았다.
“길을 열어줄 수 없을까?”
“……”
“비적마의를 잠시만…”
“제일비주.”
“……?”
“그러지 마.”
“……?”
“판단하지 마. 나서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
“뭐…라고!”
“공격하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흔적을 찾아내. 살문 놈들이 마음대로 팔부령을 들락거리는데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하면서 공격 운운한다는 건 어이없잖아?”
“……”
제일비주 유홍은 여기서도 할 말을 잃었다. 서로 존중하던 사이, 예의를 꼬박꼬박 갖추며 상대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던 사이. 화산파의 매화검수와 소림사룡은 그런 관계였다. 유홍은 아직도 그런 관계를 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소림사룡과 매화검수 간의 거리는 천객과 비객으로 구분되는 순간 사라졌는데… 문파를 버렸다면서 문파에게 준 배분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불쌍해 보였다.
유홍은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공격하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흔적을 찾아내.”
정운의 냉혹한 음성이 귓전을 윙윙 울렸다. 천객이면 어떻고 비객이면 어떤가. 그는 화산파 문도다. 그러나 천외천 무인이 되는 순간 화산파라는 사문은 인생 한켠으로 밀쳐졌다. 비객이 되면서부터 화산파와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졌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그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마음 놓고 사마외도를 척결할 수 있으니 마음 홀가분하다. 문파에 오명을 씌우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고, 정도인으로서 명예나 체면도 훌훌 벗어던졌다.
모든 게 홀가분하다. 처음 천외천에 몸을 담글 때 가졌던 마음, 악마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죽여 버리겠다는 마음만 간직하면 된다. 그랬는데… 회의가 밀려든다.
천외천과 비객은 같은 뜻을 지녔다. 무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결성한 천외천, 구파일방 장문인들이 십왕에 대신해 만든 비객. 비객들을 천외천에 끌어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구십 명의 비객들 중 천외천에 몸담았던 사람은 열네 명. 십사혈도에 지나지 않지만 나머지 비객들도 천외천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순순히 가담했다. 절대 주저하지 않았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뜻도 같았고, 행동 방식도 같았다. 천외천과 비객은 동등한 선상에서 움직이는 혈도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천외천에게 천객이 탄생하는 순간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졌다. 천외천 혈도나 비객은 오로지 천객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처럼 되어 버렸다.
시키는 대로라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만 해도 그렇다. 제일비와 제칠비는 살문을 공격하고자 하나 천객 정운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단 한 사람, 정운이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십여 명의 비객들이 공격을 못하고 있다. 우습게도 그게 현실이다. 정운은 비적마의를 돌파할 수 있지만 비객에게는 그런 능력이나 무공이 없다.
“참! 하나 말해줄 게 있는데.”
걸어 나가는 유홍의 등 뒤에 정운의 비웃는 듯한 음성이 내리꽂혔다. 실제로 정운이 비웃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유홍에게는 비웃는 듯이 들렸다.
“제구비객이 몰살했다는군.”
“……!”
유홍은 너무 놀라 눈을 부릅떴다. 제구비객…… 비객 아홉 명이 몰살하다니! 세상에 누가 있어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비객은 무공으로 싸우지 않는다. 살수들처럼 암습을 전문으로 한다. 초절정고수 아홉 명이 암습을 가한다면 그야말로 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천객이 등장하는 순간 무적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무림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 말이다.
“삼절수사 정군유도 제구비객들이 몰살할 때 같이 죽었다. 후후! 약한 사람은 죽게 마련이지. 그게 무림의 생리야.”
정운은 일말의 동정도 느끼지 않는지 냉혹한 음성으로 말했다. 구진법은 사람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기재들을 초강고수로 바꿔놓은 것은 굉장한 변화다. 하지만 그들의 심정까지 냉심으로 얼려 버린 것은 놀랍다고 감탄할 수만은 없다. 그것은 어쩐지 비정하게만 느껴진다.
유홍은 힘없이 걸음을 떼었다.
대래봉 정상에서는 오곡동이 보이지 않는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절벽 밑으로 고개를 내밀어 쳐다봐도 보이지 않는다. 오곡동은 코밑에 위치한 입처럼 위에서 보아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살문이 오곡동에 둥지를 틀면서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 줄사다리가 그것인데 대래봉 정상에서 오곡동까지 단단히 박아놓은 줄사다리는 웬만한 강풍에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살문 살수들은 재주 부리는 원숭이처럼 줄사다리를 오르내린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사내도 여인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위험천만한 줄사다리를 평지 걷듯 오르내린다.
살문 살수들에게 줄사다리는 외부 세계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다. 유일한 통로? 천만에! 아니다. 살문 살수들에게는 분명히 다른 길이 있다. 줄사다리가 외부 세계로 연결된 유일한 통로일지는 모르지만 대래봉을 벗어나는 길은 아닌 게 분명하다.
여숙상은 제칠비객들을 이끌고 오곡동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이래 봤자 필요없어. 저놈들이 보이는 곳으로 다닐 것 같아?”
여숙상을 비주로 택한 비객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럼 날개라도 달렸단 말야! 아냐, 놈들도 우리하고 똑같은 인간이야. 분명히 어딘가 통로가 있어. 그걸 찾아야만 공격할 수 있다면 반드시 찾아!”
여숙상은 유홍을 믿지 않았다. 천객을 믿는 것도 아니다. 정운도, 진조고도 믿지 않았다. 그녀의 믿음은 옛날 구류검수라는 사형에게 강간을 당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을 좇는다.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더 좋은 판단은 없는지…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그녀의 판단으로 현재 제일 좋은 행동은 오곡동을 주시하는 것이다. 그들이 오가는 모습을.
‘반드시 허점을 드러낼 거야! 사람인 이상!’
하루, 이틀…… 여숙상이 오곡동을 노려본 지도 벌써 사흘이 넘어섰다. 팔부령의 일과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불었다가 멈추고, 새들이 날다가는 쉬고… 모든 게 똑같았다. 천변만화하게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만 빼면 사흘 동안 무엇이 변하기를 기대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그렇군.’
여숙상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 무변화는 여숙상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살문에 남아 있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아.’
줄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거리는 사람의 체형이 거의 비슷하다. 옷 입은 모습은 다른데 체형이 비슷하다. 위장이다. 위장으로 눈속임을 하고 있다. 현재 살문에 남아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칠팔 명을 넘지 못한다.
‘껍데기뿐이야. 모두 빠져나갔어. 치잇!’
이제 확실해졌다. 중원 곳곳에서 일어나는 살풍은 살문 짓이다.
제일비주 유홍, 그는 또 한 번 바보가 되었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일 아냐? 살문이 아니면 감히 천외천 무인들에게 검을 들이댈 문파가 몇이나 될까? 생각나는 게 있어? 살문을 빼고 말야.”
“……”
“그런 걸로는 소림 고집불통들을 물러서게 하지 못해. 우린… 살문이 팔부령을 떠났느냐 떠나지 않았느냐를 찾는 게 아냐. 그들이 어디로, 좀 더 정확히 말해 줘? 어느 통로로 해서 어떻게 빠져나갔는지를 알아야 해. 그것만이 소림 고집불통들을 물러서게 할 수 있어. 그래도 한때는 차기 장문인감이라는 매화검수가 그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하다니 실망이 커.”
유홍의 심정은 처참하게 구겨졌다. 비객이 되면서, 살수들에게 은신술을 배우면서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모두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뱃속에서 붉은 용암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오는 듯했다.
“말조심 좀 해야겠군. 난 네 수하가 아냐. 알았어, 정운?”
“호오, 그래?”
“나 역시 천외천의 뜻에 동조했어. 비객이 되지 않았다면 구진법을 받았을지도 모르지. 그대처럼 천객이 되었을 수도 있고.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 짓밟지 마라.”
“자존심이 꿈틀거린다는 이야기인데, 자존심은 무공만이 세워줄 수 있지.”
스르릉……!
정운이 검을 뽑아 곧추세웠다. 날카로운 검기가 사방을 베었다.
‘이건 아냐, 이건…’
또다시 천외천에 대해 회의가 치밀었다. 아니, 좀 더 명확히 상대를 구분하면 천외천이 아니라 천객이 못마땅하다.
유홍은 군말 없이 물러섰다. 정운은 물러서는 유홍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검에서 발산되는 검광을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훗! 제일비주,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그럼 정운이 오냐, 고맙소 하고 큰절이라도 할 줄 알았어?”
‘제일비주…’
유홍은 정운의 모멸스러운 말보다 여숙상의 ‘제일비주’라는 말에 더 가슴이 찢어졌다. 제일비주라는 말 대신 전처럼 사형이라는 말이 듣고 싶다. 단둘이 있을 적에는 비객이라는 울타리보다 화산파의 사형제 간이라는 인연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정운처럼 모욕해도 좋다. 그보다 더한 말을 해도 좋다. 여숙상이 하는 말이라면 ‘자진’하라고 해도 기꺼이 따를 용의가 있다. 전처럼…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할 도리는 다한 거야. 우린 비객이야. 천외천이기도 하지. 사마를 죽이는 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약속한 두 집단에 모두 포함되어 있어.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무슨 말인지 알아? 제일비주라 해도 내 행동을 막을 수는 없다는 거야.”
“여매!”
“그런 소리 하지 마. 난 제칠비주지 제일비주의 사매가 아냐. 화산파의 여숙상은 이미 죽었어. 다시 한 번 그런 식으로 부르면 비객이라는 허명도 벗어버리겠어.”
“……”
유홍은 사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왜 명령을 받아야 하지? 사마가 보이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여도 된다면서? 그러기 위해 모인 사람들 아냐?”
여숙상이 벌써 세뇌를 시켰는지 제칠비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의 동의를 얻어내기는 쉽다. 천객들의 오만한 행동은 천외천 무인들 간의 친목을 깼다. 군림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로 분류하게 만들었다. 지배당하는 자에 속한 사람들은 불만이 없을 수 없다.
무림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될 줄 알았던 비객들. 구대문파에서 각기 ‘뛰어난 기재’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고, 장문인 후보를 거론할 때는 빠진 적이 없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토록 무시당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여숙상이 말했다.
“내가 여기서 오곡동을 지켜본 것은 천객에 대한 예우야. 이제 예의를 지켰으니 행동해도 되겠지. 비적마의의 틈을 찾아내는 대로 공격할 거야.”
제일비주 유홍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는 알고 있다. 여숙상이 옛날 팔부령 싸움을 참조해서 하후가 무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특이한 광목을 주문해 놓았다는 사실을. 여숙상은 비적마의에게서 틈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문한 광목이 완성되기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제칠비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부탁도 안 될까?”
“그만 돌아가. 제일비객들이나 다독이는 것이 좋을 거야. 그 사람들… 너와 정운이 나눈 대화 내용을 알고 있어. 비객의 우두머리가 천객에게 무시당했다고 꽤나 분노한 것 같던데?”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부탁 하나만 하자.”
“해봐.”
“한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죽여. 말을 나눌 필요도 없어. 쳐다볼 필요도 없겠지. 무조건 죽여.”
“물론!”
여숙상은 말이 끝나자마자 되받았다. 유홍이 말한 ‘한 사람’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아는 까닭이다. 여숙상은 더 이야기를 나누기 싫다는 듯 휭 소리가 나게 일어나 숲 속으로 걸어갔다.
‘흥분이 지나치게 커.’
살문을 공격하는 데 천객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데는 유홍도 동의한다. 여숙상의 말이 백 번 옳다. 좀 더 효율적인 공격을 위해서 천객의 명령을 들었지만, 처음부터 천객과 비객은 갈 길이 달랐다. 천객은 천외천의 가장 강한 무인으로 활동하면 되는 것이고, 비객은 처음 약조대로 구대문과 장문인의 연서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그랬다면… 제구비객들이 몰살당하는 일도 없었으리라.
유홍은 마음을 다잡았다.
‘장문인들의 명령을 받아야 해.’
수단 방법을 무시하고 사마를 척결하더라도 정해진 규율은 있어야 한다. 비객들에게 그것은 장문인들의 연서다. 그만한 족쇄도 없다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죽고 만다. 꼭 지금처럼, 이미 죽어버린 제구비객들처럼.
그전에 마지막으로 사매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 이번 공격이 어쩌면 조금이나마 한을 푸는 경우가 될지도.
‘흥분을 조금만 달래면 되는데……’
유홍은 제칠비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났다. 제칠비객은 제칠비주만을 따른다. 하나의 일에 각기 다른 명령이 나왔을 경우, 제칠비객은 가장 우선적으로 제칠비주의 명령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어떤 면에서 제일비주가 제칠비객을 만날 이유가 없다. 그가 비객 모두를 총괄 책임지는 제일비주라 해도.
제칠비객의 전권은 제칠비주에게 있으니 자칫 월권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유홍은 여숙상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제칠비객을 만났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목숨을 앗아간다. 다른 일들은 ‘차후’라는 것이 있지만 무인에게 다음 기회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다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지. 사매… 넌 내가 지켜주겠어.’
유홍의 눈가에 깊은 그늘이 주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