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159화

비타임 가입코드 : onb

사신 – 159화

종리추와 하후가주, 양가주는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도, 바람에 피비린내가 실려와도,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와도 석상처럼 굳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당한다.’

하후가주와 양가주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눈길을 돌릴 수도 없었다. 들려오는 비명은 문도들의 것이 틀림없다. 연이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으니 문도들이 계속 당하고 있는 게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정신이 미치지 않는다.

살문주 종리추는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 살문 살수들의 무공이 놀라운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살문주의 기도가 이 정도일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일개 살수들의 우두머리 아닌가. 살문 살수들의 무공을 생각해서 체면도 내팽개치고 연수를 했는데,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 틈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자신들의 틈을 막아내기에 급급하다.

‘무리다. 천객 아니면 상대할 수 없어. 이자는 무극을 깨달았어. 크다……’

종리추가 들고 있는 것은 짧은 비수다. 손가락 하나 정도에 불과한 비수. 자루도 없어서 들고 있는지 들고 있지 않은지 판가름조차 용이하지 않은 극히 작은 비수. 하지만 양가주나 하후가주에게는 그토록 작은 비수가 거대한 철벽처럼 여겨졌다.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철옹성처럼.

대치한 상태에서 허점을 발견할 수 없다면…… 이미 진 싸움이다. 허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은 상대를 공격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싸움을 피하고 싶은, 너무 강해 보여서 싸우면 질 것 같은 기분. 무공을 최상의 상태에서 펼치기 위해서는 무심이 필요한데, 마음속에 공포가 깃들었으니.

방법은 있다. 움직이는 것이다.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나서 도저히 싸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어도 그것은 단지 싸우기 직전의 느낌일 뿐이다. 몸을 움직이고 무공을 펼치기 시작하면 활로가 생긴다. 내가 움직이면 적도 움직이고, 서로가 움직이는 가운데 허점이 보이게 된다. 상대를 어떤 식으로 요리할지도 접전을 시작한 후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하후가주와 양가주는 움직이지 못했다. 몸을 움찔거리기만 해도 종리추의 손에 들려 있는 비수가 날아들 것 같았다.

무극. 무공을 익혔으되 잊어버렸다. 싸우되 싸우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훨훨 날아가는 몸이니 상대의 공격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빠르니 쾌, 중, 환이라는 의미가 사라진다.

천객과 같은 경지다. 이런 사람의 무공은 초식으로 봐서는 안 된다. 몸이 움직이는 대로, 감각에 따라 움직이는 무공이다. 얼마나 이런 경지에 오르려고 부심했던가.

쾌, 중, 환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수레바퀴와 같다. 쾌를 얻으면 중이 모자란다. 중을 얻으면 환에서 모자람이 보인다. 셋을 모두 얻었다고 생각하면 다시 쾌가 부족해 보인다. 하나를 얻을수록 무공은 진일보하지만 그 끝은 어디인지. 쾌, 중, 환의 연결 고리에서 벗어나는 무공은 어떤 것이 있는지.

쒜에에엑!

하후가주 섬전신도 하후명은 일도에 전신 진기를 모두 싣고 짓쳐 나갔다. 문도들의 비명 소리는 이제 그와 상관없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자식들이 피살당했고 인피가 벗겨졌지만 그 역시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게 느껴진다. 아니,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살문 살수들은 죽일 놈이다. 이름 없는 강변에 올 적만 해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강렬한 살념에 몸이 팔팔 끓어올랐다. 무림의 명성, 배분을 무시하는 천객이나 비객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위신보다도 살문 살수들을 죽여야 한다는 욕구가 더 진하게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도에 한 올 진기도 남기지 않고 모두 실은 지금은 살념도 들지 않는다. 비객의 모습도 천객의 안하무인 격인 태도도 생각나지 않는다. 양가주와 연수한 것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옆에 양가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렸다.

보이는 것은 오직 종리추다. 이것도 잘못된 말이다. 종리추의 실체 모습은 흐릿해져 보이지 않는다. 그가 보는 것은 종리추라는 인간이 아니라 천 년 세월 동안 꿋꿋이 풍우를 견디어 온 거대한 고목이다.

그렇다. 그는 지금 고목을 베어내고 있는 게다. 무슨 초식으로 베어낼까? 푸훗! 미숙한 생각이다. 초식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신도는 바람결을 가르고 흐른다. 그거이면 족하다. 바람에 부딪히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뚫으려고도 하지 않고 유유히 흐르면 그만이다.

고목을 베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초식으로 베어내려던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단순한 나무가 아니던가. 필생 숙적이 아니라 나무일 뿐이다. 나무를 베어내는 데 무슨 초식이 필요한가. 나무의 결에 순응하여 가장 잘 잘리는 부위로, 가장 잘 잘리는 각도로,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속도와 힘을 가미하면 끝나는 것을.

쒜에에엑……!

섬전신도 하후명의 신도가 유유히 흘렀다. 엄청난 파괴력은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랄 만큼 빠르지도 않았다. 도법에 어떤 특성이 있냐고 물으면 즉각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을 평범한 도법이었다.

종리추는 맞받지 못했다.

쒜에엑……!

일도가 흘러갔다, 종리추의 옷자락을 잘라내며. 종리추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비수를 휘둘러 보지도 못한 채 신도가 다가오자 훌쩍 뒤로 몸을 뺐다.

공격이 실패한 후에는 반드시 허점이 생긴다. 도나 검의 경우에는 병기를 든 쪽에 허점이 생겨 반격의 급소로 활용되곤 한다. 허점을 파고들 만큼 빠른 무공을 지녔으면 반격할 수 있는 것이고, 느리다면 물실호기가 되고 말겠지만.

종리추는 파고들지 못했다.

파아앗!

섬전신도 하후명의 신법이 더욱 빨라졌다. 잉어가 물살을 역류하듯이 흘러가던 도를 뒤집어 치올렸다. 속도나 도에 깃든 힘은 감당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거목이든 바위든 부딪치는 것은 모두 부숴 버릴 기세다.

섬전신도 하후명은 만족했다. 자신의 도법은 나무랄 데 없지만 정작 본인이 느끼기에는 한 점 무리가 없어 편안하다. 보통의 빠르기로, 보통의 진기를 실어 가볍게 쳐내는 느낌이다.

종리추가 날래게 물러섰다. 이번에는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한 걸음을 물러설 경우 하후명의 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게다.

하후명의 눈빛이 반짝였다.

‘잡았어! 후후후!’

투지가 끓어올랐다. 종리추를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물밀 듯이 밀려와 전신에 회오리쳤다.

파아앗……!

하후명은 종리추를 바싹 따라붙었다.

‘마지막은 회선이도로……’

회선이도는 하후명의 평생 절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공이 비슷한 무인과 겨룬다고 가정했을 때, 상대가 한 번 공격하는 동안 자신은 두 번 공격할 수 있다. 상대가 어떤 공격을 해오든 한 번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차단하고 다음 움직임으로는 절명시킨다.

섬전신도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지 않는 한 펼치지 않았다.

페에에엣!

섬전신도 하후명은 손에 힘을 꾹 주고 도법을 전개했다. 거리는 지척, 도를 피할 수 없는 거리다. 속도는 일행에 이도. 병기를 들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종리추처럼 단병을 든 자라면 일도에 손목을 자르고 이도에 몸통을 가른다.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 물러설 마음으로 신형을 움직이려다가는 처음 일도에 손목이 아니라 몸통이 잘릴 수가 있다.

무인이라면… 무공을 익힌 자라면 무조건 병기를 들어 막으려고 하는 게 상리다.

피유웃!

일도가 악마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렸다.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사선으로 내려치는 일도. 도를 등 뒤까지 뺐다가 그물을 던지듯 휘둘러 치는 공격이기에 파괴력은 강할 수밖에 없다.

일도가 흘렀다. 하후명은 도가 내려오는 탄력을 이용해 팽이처럼 뱅그르르 돌았다. 도가 상대의 몸을 비켜 다시 공격이 가능한 상단에 위치하기까지는 그야말로 촌각에 불과하다. 회선이도의 유일한 허점이라면 바로 그 순간을 노리는 것인데, 그것은 어떤 무인이라도 불가능하다. 눈 한번 깜짝하는 순간보다 더 빠른 찰나를 어떻게 잡아낼 것인가.

그러나…… 하후명은 섬뜩했다. 일도에 걸리는 것이 없다. 처음부터 회선이도를 작심하고 펼쳤으니 몸은 도를 따라 회전하기 시작했는데, 물러설 기미를 보였든, 병기를 들어 막으려 했든 도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쒜에에엑……!

회선이도의 두 번째 도가 터졌다. 그러나,

“헛!”

하후명은 회선이도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종리추의 상반신은 옆으로 기우뚱하게 뉘어지고 있다. 처음 일도를 좌궁보라는 말도 안 되게 간단한 보법으로 피해낸 것이다. 그의 모습이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 것은 하후명의 도법이 그만큼 빨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리추의 보법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재차 일격이 가해지고 있으니.

회선이도는 적이나 자신이나 생각할 시간을 빼앗아 버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좌궁보를 전개할 수 있었을까.

페에에엣!

회선이도의 두 번째 도가 이미 피해 버린 빈 공간을 훑었다. 하후명은 정말 전개하기 싫었지만, 이미 쏟아져 버린 도법을 회수하기란 본인 자신도 불가능했다.

종리추의 상반신이 꿈틀거렸다. 넘어질 듯 앞으로 기우뚱했다.

“헉!”

하후명은 난생처음 무지막지한 고통을 받았다. 전에도 창에 찔리고 검에 베인 경험은 많다. 가장 지독하게 당한 것은 스무 살 안팎이었던 것 같은데…… 근 반년간이나 요양을 할 만큼 중상을 입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고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신이 마비되는 느낌과 불개미 수천 마리가 한꺼번에 달라붙어 살점을 뜯어 먹는 느낌이 동시에 일어난다. 심장에 작은 쇳조각이 간신히 끝 뿌리만 남긴 채 틀어박혀 있는 것은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야 보였다.

“쿨럭!”

기침이 쏟아졌다. 심장에서 역류하는 피가 다시 한 번 전신을 할퀴고 지나간다.

“잘하고 있었는데…… 잡았는데…… 정말 잡았는데……”

자신이 당했다는 것,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이제 숨 몇 번 들이쉴 시간밖에 없는 그로서는 조금 전 일을 되새기는 것이 더욱 급급했다.

세상사를 잊었다. 도법도 잊고, 자신도 잊었다. 무념무아무상. 기분이 상쾌했다. 비로소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그토록 추구하던 극쾌, 대중, 만환이 비로소 도에 실렸다.

하후명은 분명히 느꼈다. 종리추는 맞받지 못했다. 물러서기에 급급했다.

‘그랬어……’

하후명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 순간만은 그가 싸우던 상대는 종리추가 아니라 거대한 고목이었다. 이기고 지는 승패에는 초연했다.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살심도 일어나지 않았다.

승기를 잡았다고 느낀 순간 무념은 깨졌다. 도법은 적당한 속도, 적당한 변화를 거부했다. 그리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 극쾌, 대중, 만환을 가미했다. 나무의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잘라내는 도법 대신 무지막지하게 빠름과 힘과 변화로 단번에 고목을 잘라내려 한 것이다.

무초에서는 이겼으나 유초로 돌아서는 순간 졌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놈…… 무인으로 태어나 무극을 경험했으니……’

하후명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둡게 뒤덮였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가주……’

양가주 양왕은 하후가주의 변모한 모습부터 죽는 순간까지 한 점도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자신이 끼어들 틈도 없는 짧은 순간에 벌어진 공방이다. 끼어들려고 작심하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하후가주의 상황을 직감했기에 끼어들지 않았다.

하후가주가 전개한 도법은 분명 예전에 그의 도법이 아니다. 진정 깜짝 놀랐고 감탄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하후가의 도법보다 자신의 창법이 훨씬 강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하후가주의 지금 공격만은 어떻게 막아낼 수 없다. 하후가주에 비해 자신은 너무 느리다. 예전의 그라면 패도적일지언정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심득이다. 하후가주는 절대절명의 싸움판에서 심득을 얻은 게다. 그래서 끼어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저만한 도법이면 충분히 종리추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그런데 죽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사실 양가주는 하후가주의 마지막 도법을 보지 못했다. 종리추를 몰아붙일 때까지만 해도, 그의 위치에서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회선이도를 전개할 즈음에는 하후가주의 등을 보는 위치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후가주의 도법이 쾌속하게 바뀌었고, 죽었다.

마지막에 하후가주는 회선이도를 펼쳤다. 하후가주는 회선이도를 숨기지만 무림고수들 중 회선이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양가주도 직접 눈으로 견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말은 많이 들어왔다.

하후가주 섬전신도 하후명의 최후 초식.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하후가주의 최후 초식이라는 회선이도가 먼저의 공격보다 약해 보인다.

그 순간 하후가주는 심득을 잃고 자신의 무공을 펼친 것이다. 양가주는 촌각에 불과한 시간 동안 상황을 정확히 읽어냈다.

‘이자는 내 상대가 아냐. 후후, 우물 안 개구리였군. 하늘 높은 줄 몰랐다.’

마음과 다르게 몸은 반대로 반응했다. 창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전신은 완벽한 긴장으로 팽팽하게 곤두섰다. 중원제일창이라는 이름을 걸고 종리추와 부딪치고 싶은 욕구가 꿈틀꿈틀 새어 나왔다.

그도 무인이다. 중원에서 가장 고절한 고수로 지칭받는 고수들 중 한 사람이다. 상대하기가 벅찬 상대를 만났으니 무공을 겨뤄보고 싶은 욕구가 무지막지하게 밀려든다.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절세미인을 만났을 때처럼 흥분이 치민다.

시선을 돌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싸움의 선택권을 종리추에게 넘긴 것이다. 종리추가 틈을 노리고 공격해 오면 맞받아 나갈 것이고, 공격해 오지 않으면…… 이런 행동 때문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종리추는 한눈파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 강자. 미세한 틈을 잡으면 승패로 결착시킬 수 있는 절대 무인.

전체적인 싸움은 결코 불리하다고 할 수 없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여인은 소고다. 삼절수사에게 치명상을 입었다고 했으니. 온몸에 상처를 입어 성한 곳이 없으면서도 성난 고양이처럼 날뛰는 여자는 소여은이라.

살수비기로 숨어서 싸우던 자도 표면으로 떠올랐다. 하후가, 양가의 무인들이 종적을 잡아냈고 이제는 정통 무공으로 싸우는 길밖에 없다. 그는 주로 각법을 사용하고 있으니, 유구일 텐데…… 현재 유구는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거침없이 몰아붙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하지만 끝났다. 하후가와 양가의 무인들이 공격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틈을 노리고 있는 게 뚜렷이 잡힌다.

유구의 각법은 점점 제약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도와 창의 합공을 효율적으로 막아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날랜 원숭이처럼 팔팔 나는 키 작은 무인이다. 각법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뛰어난 자이니…… 모진아라는 남만인일 게다. 저자는 확실히 문제다. 하후가와 양가의 무인들은 그를 잡아내지 못할 것 같다.

종리추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양가주가 손속을 늦추자 죽음이 임박한 하후가주의 귓가에 입을 대고 무슨 말인가 속삭였다.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하후가주의 얼굴색이 시커멓게 변색되었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인가 종리추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양가주의 생각을 대변이라도 하듯,

“하하하!”

하후가주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하후가주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실제로 눈빛이 반짝였는지는 모르지만 양가주가 보기에는 분명히 약간 생기가 돌았다.

‘회광반조……’

사람이 죽을 때에는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맑은 정신이 마지막으로 한 번 깃든다고 한다. 혼탁한 세상에서 혼탁함에 묻혀 살던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고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하후가주의 활력을 돋운 것은 바로 그 회광반조다.

하후가주는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 내 쩌렁 고함을 질렀다.

“하후가 무인들은 돌아가라! 하후가로 돌아가 십 년 폐관하라! 돌아…… 무림에 간여하지 말고…… 절대……절대!”

하후가주의 고함은 생사의 결전으로 정신을 분산할 수 없는 무인들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그의 음성은 강변을 지나쳐 저 멀리 있는 들판까지 회오리치는 듯했다.

“가주!”

지척에 있던 하후가 무인 중 한 명이 달려와 하후가주의 몸뚱이를 부둥켜안았다. 아무리 싸움에 정신이 팔려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하후가주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심장에 비수가 틀어박히는 순간도.

하지만 나서지 못했다. 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자기 위치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상대하고 있는 자, 상대하려고 하는 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은 다른 상황이다. 하후가주의 입에서 도를 거두고 돌아가라는 말이 떨어졌다. 그 말을 좇든 좇지 않든 선책은 차후의 일이다. 가주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으니 싸움을 잠시 미루어도 괜찮다.

“절대…… 절…… 대…… 무림…… 에 간여…… 폐관……”

하후가주는 부르르 몸을 떨다 축 늘어졌다. 그것이 하후가주의 마지막 모습이다. 하후가주는 회광반조가 이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주름진 눈가에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굴러떨어졌다.

‘이게 무슨 일……?’

양가주는 혼란스러워졌다. 치명상을 당한 하후가주는 상황을 정확히 분석할 능력을 잃었다. 싸움이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지, 아니면 몰살할 처지인지…… 그가 물러가라고 고함을 친 것은, 하후가로 돌아가 십 년 폐관하라는 유언은 아무도 종리추가 귓가에 속삭인 말 때문이리라.

그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살수라면 치를 떨던 하후가주가 문도를 물리는가. 종리추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문도를 물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후가주를 안고 있던 하후가 문도가 종리추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그가 말했다:

“가주님이 당했으니 나 정도는 상대도 안 되겠지. 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반드시 당할 거다. 반드시 차디찬 땅 위에 몸뚱아리를 눕히게 될 거야.”

그는 하후가주의 시신을 안고 들고 일어섰다. 양가주를 향해 고개만 끄덕여 인사한 그는 부상을 입은 도객들을 축 늘어뜨리고 있는 문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시신들을 챙겨라! 우린 돌아간다!”

양가주와 종리추의 조용한 눈싸움은 근 반 시진 동안 지속되었다.

휘이이잉……!

바람 소리가 천둥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어느 때 같으면 부는지 불지 않는지 신경도 쓰지 않을 바람 소리건만 일촉즉발의 긴장된 상태에서 부는 바람 소리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싸움을 하는 곳은 없다. 하후가 무인들이 물러가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양가주는 싸우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유구와 모진아가 소고와 소여은의 상태를 보살피고 있지만 그들을 향해 창을 뻗는 무인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기묘했다. 계속 싸울 것인가, 아니면 가주의 명령을 기다려야 하나. 엉거주춤. 문도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양가주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졌다.”

“……”

“내 생에… 널 상대할 수 있는 창법을 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 다시 보지. 살아 있다면. 가자!”

양가주는 미련 없이 등을 보였다.

비타임 가입코드 : on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