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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6화


여섯 방위에서 산책이라도 하듯 유유하게 걸어오는 여섯 걸개. 한 명은 백발이 성성한 데다 머릿결이 거친지 하늘로 솟구쳐 두 번 다시 잊지 못할 인상이었다. 다른 다섯 걸개도 한 번만 보면 영원히 잊지 못할 만큼 기도가 강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개방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가오는 사람은 단 여섯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적지인살은 수천 명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은 소 떼도 지나갈 만큼 넓었지만 물 한 방울 새어 나가지 못할 엄밀한 막이 느껴졌다.

‘진짜 고수들이다. 흑봉광괴… 구지신검에 못지않은 고수야. 저자들은… 사결이군. 호법이 저 정도인가? 하늘이 도와도 빠져나갈 수 없겠군.’

절망감이 엄습했다. 살수행을 하다 보면 실패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상황이 반전된다. 죽을 뻔한 자가 죽이려 덤벼들고, 죽이려던 자는 쫓기는 입장이 된다. 적지인살도 그런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무공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인에게. 그러나 그때도 지금처럼 암담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적지인살은 옷깃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았다. 종리추였다.

“도망가요. 여기 있으면 죽어요.”

‘도망? 하하! 어디로 도망간단 말이냐. 하늘? 땅속으로 꺼져 버릴까? 차라리 저들을 모두 죽이라는 편이 낫겠군.’

종리추가 안쓰러웠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냉엄하게 쏘아져 오는 살기가 보이는가. 아직 십 장이나 떨어져 있는데 살점을 베어오는 느낌이 드는가. 죽음을 보고 있는가. 천음산에 오는 게 아니었다. 무조건 도망쳤어야 했다. 분명히 갈 길을 모두 막아놨겠지만 그래도 도망쳤어야 했다.

‘인피면구를 얻으면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흑봉광괴는 그것마저 알고 있었다. 살혼부 무인들 중에 적지인살만이 인피면구를 제조할 수 있고, 즐겨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래서 습관은 사람을 죽인다. 살수가 제일 먼저 노리는 것이 습관인데, 그걸 알면서도 당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습관이란 정말 고치기 힘든 부분이다.

“어서 도망가요.”

종리추는 과자 사달라고 칭얼대는 아이처럼 보챘다. 적지인살은 대답 대신 기형월도를 뽑아 들었다.

‘차마 말로 할 수 없구나. 대답이 충분했을 줄 안다.’

대답은 충분했다. 종리추는 재촉하지 않았다. 잡아당기던 옷깃도 놓아버렸다.

‘내세에는 버젓한 집에서 태어나…?’

적지인살은 종리추의 기이한 행동에 눈만 끔벅거렸다. 종리추는 양손을 맞잡아 입으로 가져가더니 힘껏 불기 시작했다. 마치 고동처럼, 피리처럼…

우우! 우우우우! 우우우…!

기이한 음률이었다. 배고파 울부짖는 승냥이의 울음소리처럼도 들렸고, 먹이를 찾아 하늘을 배회하는 독수리의 ‘까악’ 대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좌우지간 대낮이니 망정이지 야밤에 들었다면 소름이 쫙 끼쳤을 기이한 소리였다. 흑봉광괴와 다섯 호법이 십여 장 간격으로 좁혀왔을 때 기이한 일이 또 벌어졌다.

푸득! 파파팟! 후두두둑…!

천음산이 살아 움직였다. 천음산 묘지가 살아서 꿈틀거렸다. 천음산 곳곳에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회곡음은 분명히 아니었다. 회곡음이 이렇게 소름 끼칠 리 없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적지인살마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했다.

“됐어요! 됐어!”

종리추가 좋아서 펄쩍 뛰었다. 그리고 곧 기회를 놓칠세라 양손을 입에 대고 더욱 힘차게 불어댔다.

우우우우! 우우! 우우…!

파팟! 푸드득…! 찌찌찌…!

‘이게 도대체 무슨 괴변…?’

적지인살은 종리추를 쳐다보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기 위해 눈길을 돌리랴, 흑봉광괴를 쳐다보랴 정신이 없었다. 정신이 없기는 개방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들도 사방에서 들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잠시 얼이 빠진 것 같았다. 소리의 정체는 곧 드러났다.

쥐 떼…!

엄청난 쥐 떼였다. 수십, 수백 마리도 넘는 것 같았다. 천음산에 무슨 쥐가 그렇게 많은지, 왜 한꺼번에 몰려나오는지 모르지만 종리추가 불어대는 소리와 연관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추… 이 아이… 보물이야. 세상에 다시없는 보물…’

적지인살은 살천문이 어린 꼬마 하나를 왜 잡지 못했는지 이해했다. 살천문이 아니라 살혼부와 척을 졌다 해도 잡지 못했을 게다. 어쩌면… 혼자라면… 개방의 천라지망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적지인살은 문득 종리추가 짐이 아니라 자신이 종리추의 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우우! 우우…!

종리추가 불어대는 소리는 더욱 급박해지고 빨라졌다. 그럴수록 쥐 떼는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이 더욱 미쳐 날뛰었다.

찌직! 찌지직…!

징그럽기 이를 데 없는 쥐들이었지만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산밑으로 달려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장관이라고만 할 수도 없었다. 근처에서 나온 쥐 떼는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 도망쳤다. 한두 마리 같았으면 발길로 차버릴 텐데 수십 마리나 되니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좀 더 높은 곳에서 튀어나온 쥐는 미친 듯이 달려 내려오고 있다. 흑봉광괴와 다섯 호법은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모른다는 얼굴들이었다. 흑봉광괴의 반응이 제일 빨랐다.

쉬익!

흑봉광괴는 더 이상 여유를 부리지 않고 쾌속하게 신형을 날렸다. 개방 문도라면 모두 펼칠 줄 아는 대팔건곤보가 펼쳐졌다. 하지만 흑봉광괴가 펼치는 대팔건곤보는 개방도들이 펼치는 신법과 차원이 달랐다. 발이 땅에서 떨어져 훨훨 나는 듯 빠르기가 화살 같았다. 다섯 호법도 일제히 달려들었다.

우우우! 우우…!

종리추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소리를 불어댔다.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적지인살이었다. 여섯 방위에서 쳐오는 타구봉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난감했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한 명이라도 죽이고 죽는다. 비응회선. 비응회선을 펼쳐야겠군.’

적지인살은 진기를 한껏 끌어올려 십지에 운집했다. 손가락이 창날같이 빳빳하게 곤두섰다. 양팔을 옆으로 활짝 뻗었다. 다리만 들어 올린다면 소림오권 중 학권의 기수식과 비슷했다. 그때였다.

“어서요. 어서 도망가요.”

종리추는 달려드는 흑봉광괴와 다섯 호법이 보이지 않는지 적지인살의 옷섶을 잡고 늘어졌다.

“비켯!”

적지인살은 고함을 질렀지만 종리추는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쥐들한테 물려요. 지금 도망가야 한다구요.”

“뭣!”

“빨리요. 시간 없어요.”

적지인살은 다시 한 번 당황했다. 종리추는 지금 흑봉광괴로부터 도망치자는 것이 아니라 쥐 떼에게서 도망치자고 말하고 있다. 고개를 돌려 쥐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섬뜩했다. 쥐들만 달리는 게 아니었다. 토끼, 너구리… 쥐 떼에 묻혀 가련하게 보이지만 분명히 다른 동물도 함께 미쳐 날뛰었다. 다른 동물은 쥐 떼의 공격 대상이었다. 쥐 떼는 닥치는 대로 물어뜯으며 길을 열었다.

“이, 이거…”

“빨리요.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뼈만 남아요.”

적지인살은 화급히 종리추의 허리춤을 움켜잡고 신형을 날렸다. 그의 눈에도 쥐 떼의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종리추의 말대로 뼈만 남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움직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쥐 떼는 피에 굶주린 쥐들 같았다.

“헛!”

“이, 이런!”

흑봉광괴와 다섯 호법은 신형을 마저 전개하지 못했다. 그들도 쥐 떼의 기세를 보았고, 성급한 놈은 다리를 물어오기까지 했다.

쉬이익!

적지인살은 모든 진기를 쥐어짜 용천혈에 운집했다. 그의 강철 같은 발은 앞서 가는 쥐들을 짓밟으며 나갔다. 다행스러운 점은 쥐들에게는 동료애가 없다는 점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것 외에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망가는 데 장애가 되는 것, 그런 것만 물어뜯는 것 같았다. 엄밀한 막이 형성되어 있던 흑봉광괴와 다섯 호법의 포위망은 쉽게 뚫렸다. 흑봉광괴가 놓치지 않겠다는 듯 허공으로 신형을 띄워 공격해 왔지만 단숨에 날아오기는 너무 멀었다. 그는 땅에 발을 딛자마자 쥐 몇 마리를 차버려야 했고, 적지인살에게 그 순간은 천금같은 시간이었다.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뭐냐?”

“예?”

“그 소리 말이다. 어떻게 쥐들이 기어 나왔지? 천음산에 있는 쥐란 쥐는 모두 나온 것 같던데.”

“훗! 별거 아니에요.”

“…!”

“산에서 산 적이 있거든요. 친구가 없어서 사귄 놈이 쥐예요. 처음에는 먹이만 주다가 찍찍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서 따라 해 봤어요.”

‘뭐야? 쥐와 말을 할 수 있다는 거야? 허! 이거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쥐들은 모여 살지 않아요. 자기밖에 모르거든요. 배가 고프면 새끼도 잡아먹어요. 그래서 새끼를 낳으면 어미에게 먹이를 충분히 줘야 해요. 안 그러면 새끼들을 다 잡아먹거든요.”

“…”

“그런데 쥐들이 한결같이 똑같은 소리를 낼 때가 있어요. 산사태가 날 때였거든요. 우연히 들었는데 모두 똑같은 소리를 내는 거예요. 그래서 따라 해 봤죠, 뭐.”

“그게 그 소리냐?”

“처음에는 잘 안 됐어요. 눈만 말똥말똥 뜨고는 먹을 것은 언제 주냐 하는 표정인 거예요. 한참 걸렸는데. 히히! 결국 해냈지 뭐예요. 제가 우우 하면 먹이를 먹다가도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거예요. 히히!”

종리추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걸렸다. 착한 일을 하고 난 다음 부모에게 칭찬을 기대하는 아이처럼.

“잘했다. 네 덕분에 목숨을 건졌구나.”

“저도 그렇게까지 몰려나올 줄은 몰랐어요. 몇 마리 정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아저씨들 다쳤을까요?”

적지인살은 마땅히 해줄 말이 없었다. 어느 것이 종리추의 얼굴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보물은 보물인데…’

심계라면 너무 깊다. 어린아이가 이 정도라면 성장하고 난 다음에는 따를 사람이 없으리라. 진실로 물어온 것이라면 살수가 되기에는 마음이 너무 여리다. 적을 걱정하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안 다쳤을 게다.”

적지인살은 평범한 대답을 해줬다.

“다행이에요. 휴우!”

종리추는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미치겠네. 내가 괴물을 데려왔구먼. 괴물도 완전히 상괴물이야. 도대체 자란 환경이 어떻기에 이런 괴물이 됐지? 형이랑 같이 자랐으니 힘들고 고되지만 형제애는 잘 알 테고, 형제애를 알면 정이 있다는 건데… 변검을 배우자면 혹독한 시련을 거쳤을 테고 원망도 많이 쌓였겠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군.’

적지인살은 생각을 접었다. 종리추는 하루 이틀로 알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적지인살은 백하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구포나 망양 쪽으로 가면 함정에 걸려들기 십상이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을망정 백하를 뚫는 쪽이 한결 쉬워 보였다. 낮에는 낙엽을 덮고 잠을 청했다. 움직이는 것은 날이 저물고도 밤이 깊어 사위가 캄캄한 해시 무렵이었다. 발걸음 하나에도 살얼음판을 딛는 것 같은 주의를 기울였다. 앞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나도 몸을 숨겼고, 사람 모습이라도 비치면 한 시진이고 두 시진이고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나아가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날은 조그만 야산 하나 넘는 데 하룻밤을 보낸 적도 있었다.

이레가 넘어가자 적지인살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인피면구 일곱 장을 완성했다. 방부제에 담갔다 꺼내 그늘에 말린 횟수가 스무 번이 넘고, 고무처럼 탄력 있고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위해 열기에 쪼였다 굳히기를 열세 번. 종리추는 낮에라도 편히 잘 수 있었지만 적지인살은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하며 애쓴 결과였다.

“이리 와라.”

적지인살은 종리추의 얼굴을 보며 세상에 태어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얼굴을 상상했다.

“인피면구 제조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얼마나 배웠느냐?”

종리추는 자는 척했지만 적지인살을 속이지는 못했다. 굳이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종리추가 잘 보이는 곳에서 인피를 만들었다.

“만드는 방법은 알았는데 하나도 모르겠어요.”

또렷또렷하게 대답했다.

“방법을 알았는데 하나도 모르겠다?”

“먼저 인피를 어떤 두께로 떠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부님은 방부제라고 하셨지만 어떤 약재를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늘에 말리셨지만 얼마나 말려야 하는지도 몰라요. 불에 쪼이는 것도 그래요. 어느 상태까지 쪼여야 하는지, 얼마나 굳혀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걸요.”

“하하하! 그만하면 됐다. 이 년에 걸쳐서 배운 것을 하루아침에 배울 수는 없지.”

적지인살은 완성된 인피 중에서 머리 속에 그려진 얼굴에 적합한 인피를 골랐다.

“인피는 상태가 좋은 가죽에 불과하다. 사람의 얼굴을 만드는 것은 가죽이 아니라 뼈야.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기 위해서는 뼈를 잘 만들어야 한다.”

종리추의 얼굴에 아교를 바르고 수액 굳은 것을 붙였다.

“답답하더라도 참아라.”

“답답하지 않아요.”

“그래?”

“노상 가면을 썼는걸요.”

‘그럴 수도 있겠군.’

종리추의 얼굴은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오고 콧대가 우뚝 선 얼굴 형태를 띠었다. 적지인살은 다시 아교를 바르고 횡성산 무덤에서 뜬 소년 얼굴을 덮씌웠다. 윤곽이 맞을 리 없었다. 적지인살은 소도로 큰 부분을 잘라내 가며 윤곽을 맞춰갔다.

“모르는 사람은 인피를 벗기면 그대로 쓰는 줄 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주 급할 경우, 몇 시진 정도밖에 쓰지 못한다. 오래 쓰려면 세심하게 얼굴을 만들어야 해.”

소년의 허벅지 가죽을 꺼내 부족한 부분을 이었다.

“인피를 쓸 때 가장 고려해야 할 부분이 눈과 입이다. 눈과 입은 어떻게 할 수 없지. 큰 것을 작게 할 수도, 작은 것을 크게 할 수도 없어. 내게 딱 알맞은 인피를 구하기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 그래서 이렇게 허벅지 살로 보충하는 거야. 그렇다고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 약간의 주름살, 속눈썹… 이런 게 인상을 다르게 만들지.”

적지인살은 말을 하면서 먼저 발랐던 아교보다 좀 묽어 보이는 아교를 꺼냈다.

“이건 맞댄 살의 흔적을 없애주는 아교다. 이걸 바르면 들뜬 살이 이어지지. 눈썰미가 예리한 사람도 쉽게 발견할 수 없단다. 조금 따끔거릴 게다.”

적지인살은 다시 머리카락을 꺼냈다. 역시 시신에게서 잘라온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게 잘랐다.

“눈썹은 아주 공이 들여야 돼. 아교를 조금만 적게 발라도 툭툭 떨어지고, 조금 많이 바르면 반짝반짝 윤이 나지.”

그는 무려 반 시진에 걸쳐 꼼꼼히 눈썹을 붙였다.

“가장 나중에 할 일이 얼굴 테두리야. 살가죽과 머리카락이 맞닿는 부분은 간과하기 쉽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곳이지.”

남은 머리카락을 살과 이마의 경계에 듬성듬성 심었다.

“이젠 다 됐다. 한 시진 동안 그늘에서 말려라. 햇볕을 쬐지 않도록 조심하고.”

남은 머리카락과 허벅지 살은 아낌없이 버렸다.

“살이 뜯어지거나 눈썹이 빠지면 인피를 벗어야 한다. 임시방편은 절대 안 돼. 인피를 쓸 때는 한순간에 만들어 써야지, 시간을 두었다가는 다른 얼굴이 되고 만다. 인간의 얼굴이야 원래부터 좌우가 다르지만, 심하게 어긋나면 이상한 느낌을 주지.”

종리추가 그늘로 가서 앉자, 적지인살은 인피 중 하나를 꺼내 자신의 얼굴을 분장하기 시작했다. 한 시진 후, 직지인살은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었다. 주독이 걸린 빨간 코에, 굵은 주름이 패인… 좋은 옷을 입으면 부귀한 상인 같고, 허름한 옷을 입으면 등이나 쳐 먹고 사는 백수 건달 같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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